신앙의 '교리'와 '노선' - 성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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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교리'와 '노선' - 성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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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잘못 파악하여 죄송합니다. 다시 안내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교리'와 '노선'을 말씀하는 성구를 중심으로 합니다.


1. 교리에 대한 성구
교리란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했다는 뜻입니다. 66권 성경 전체를 통해 여러 면으로 가르친 말씀을 최소한으로 줄였을 때 교리라 합니다. 교리라는 단어가 이런 뜻이라는 전제하에,

(1) 역사적으로
- 행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안디옥교회에 사도 바울은 구원이란 할례와 상관 없이 얻는다고 가르쳤는데 다른 사람들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구약 전체와 신약을 비교하면서 서로 가르치는 내용이 달랐습니다. 성경 전체를 두고 '구원'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이 2 가지 가르침은 설교의 차이가 아니라 교리의 차이라고 합니다. 이 2 가지 교리를 두고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도와 형제들이 함께 모여 결론을 낸 것이 신약의 대표적인 첫 교리 작성 과정입니다. 물론 주님이 오셔서 이미 바리새인들과 많은 교리 차이로 논쟁을 했고 사도행전에도 시작하는 초기부터 여러 결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그 과정을 하나의 주제로 형성하는 과정은 행15장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이후 신약교회는 오늘까지 교리를 요약해 왔고 확정해 왔습니다.

- 요일2:22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예수님이 가신 뒤의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상태에서 예전에 예수님을 회고할 때 그 분은 사람이었는가? 하나님이었는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분이었는가? 이런 기본적인 문제조차 헷갈렸습니다. 그 분의 몸을 생각하면 사람이고, 그 분의 능력과 역사를 회고하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전개 과정을 보면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던 롬1:14과 요1:1 이하가 그 결론입니다. 그런데도 요일2장에서는 여전히 이 것이 문제가 되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정말 사람으로 오셨는지를 두고 교회는 의견을 달리 했습니다. 아무렇게나 믿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육체로 오심을 믿지 않는 쪽은 교회 안에 있으나 교회가 아니며 이들이 오늘 여호와증인의 첫 길을 연 이단이었습니다.

(2) 필요성
- 마16:13
예수께서 ..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예수님이 제자들을 오래동안 직접 가르친 다음에 한 마디로 물었습니다. 별별 학설과 주장과 이론들이 나왔습니다. 남들이 하는 말을 다 두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했고 그 대답한 요약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 건설을 말씀했습니다. 천주교는 베드로 개인에게 교회설립권과 천국입성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바로 그 뒤에 사탄이라 한 것을 볼 때 말이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그 깨달음이 교회와 천국 건설입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지만 한 마디로 예수님을 요약한 것. 이 것이 교리입니다.

아무렇게나 믿으면 되지 않느냐? 그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알고 어떻게 요약했는지, 그 지식을 따라 믿게 되어 있으니 지식이 잘못 되면 가는 길이 달라 져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면서 곳곳에 이렇게 교리를 요약했습니다.

(3) 성경과 '교리' 표현
왜 성경에 '교리'라는 표현이 없는가? 이렇게 물으면 이렇게 되물어 보겠습니다. 성경에 한국이 없으니 한국은 원래 없던 땅인가? 성경은 세계지리부도로 만든 책이 아니어서 한국은 기록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왜 '교리'라는 단어가 없는가? 적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하셨고 또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실 때 '교리서'로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성경은 '신학' 책으로 적지 않았고 '교회사'로 적지도 않았고 '주석'으로 적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주님이 '성경'은 '성경'으로만 적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담지 않은 것은 없으나 그렇다고 어느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왜 이 주제에 대해 표현이 없느냐고 한다면, 요21:25에서 세상에 다 둘 수가 없습니다.

어느 시대, 어떤 교회, 어느 교인이, 어떤 상황에서도 이 성경의 한 말씀을 붙들고 살피면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도록 적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어느 한 논점이나 필요만을 위해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당장 답답한 문제를 만날 때 성경은 나의 문제를 속 시원하게 기록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없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가 진행 되면서 역사 전개 속에서 이단들이 시비를 걸고 나올 때 또 우리 스스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생각 못한 문제가 나올 때, 모든 교회가 무조건 하나로만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 간추려 졌고 그 간추려 진 것은 성경 안에서도 위에 몇 성구를 통해 그 예가 있었지만 교회사적으로도 삼위일체 교리 등으로 하나씩 요약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교리'라는 단어가 없는 것은 따로 적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2. 노선에 대한 성구
노선이란 걸어 가야 할 길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길로 가는 것이 바른 신앙일까? 교파마다 교인마다 자기 길을 찾고 그 길을 걷게 됩니다. 노선이라는 단어가 이런 뜻이라는 전제 하에,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두 길을 말씀했습니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이 문제는 마7장에서만 한 번 나타난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이 땅 위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내부에는 또 자기 내면에서는 항상 이 문제가 닥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인가? 우선 좁고 어려우나 그 결과가 생명이 된다면 그 길로 갈 것인가? 그 끝은 멸망이겠으나 우선 넓고 편한 길을 택할 것인가?

교회마다 예배 시간을 정하고 설교 길이와 내용을 따로 정합니다. 모든 것을 각 교회는 그 교회가 알아서 정합니다. 예배당의 규격과 예배 순서와 시간을 분단위로 초단위로 정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이 것은 교리화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그렇게 하는 전체 이유가 개척교회요 시골교회여서 그런지 아니면 우선 사람들이 좋아 하는 쪽으로 해 줘야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사람이 많아야 교회의 경제가 좋아지고 남들이 알아주고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이니 그렇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개척교회여서 일시 잠깐 전도를 위해 예배 시간을 그렇게 했으나 어느 정도 가르친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사람이 자기를 꺾고 고쳐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할 것인가? 그 속에 기본 방향과 큰 길을 정하는 것을 두고 '노선'이라고 합니다.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런 성구들이 길을 두고 우리를 가르친 말씀입니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이런 문제 때문에 신앙의 노선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왕상12장에서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10지파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북쪽 10지파의 '이스라엘' 국가를 세웁니다. 남쪽에는 유다와 베냐민 2지파를 중심으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으로 계속 왕을 세워 나라를 지키는데 이 나라를 '유다' 나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2 길이 나뉘었고 이 2 길 중에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이 것은 각자의 선택 문제입니다. 당시는 르호보암이 심했고 여로보암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습니다. 문제는 길이 문제였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르호보암의 유다 나라는 우여곡절을 거치지만 예수님으로까지 이어 집니다.


3. 교리와 노선
교리는 비교적 구체적인 면을 말하고, 노선은 전반적 분위기와 방향을 말합니다. 교리는 서로 따져서 옳고 그른 것, 정확한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일일이 비교해서 비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노선이라는 것은 넓은 의미기 때문에 전체의 향방만 비교할 수 있을 뿐이고 내면의 세밀한 것을 일일이 따지기 어렵습니다.

세상을 두고 말한다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단어는 노선을 말하는 것이고, 삼권분립과 총통제 중에 어느 것이 민주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교리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타교단 님이 쓰신 내용 <<
:
: 저의 질문은 교리라는 단어와 신앙노선이라는 단어를 나타내는 성경구절을
: 알고 싶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아도, 교리라는 단어자체와 신앙노선이라는
: 단어자체가 없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리는 기독교의 중심이며, 신앙노선이라는
: 의미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단어인데, 정작 교리와 신앙노선이라는 단어가
: 성경에 명문화되어 표현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
: 제 자신도 그렇고, 어린신앙들에게 교리와 신앙노선을 이야기 하면
: `성경에 교리와 신앙노선이라는 단어가 나오냐?`고 질문이 들어옵니다.
:
: 교리와 신앙노선 이 두단어를 나타내주는 성경구절과, 왜 그 구절이 교리와 신앙노선을
: 의미하는지 총론적 각론적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
교리와 신앙노선을 나타내는 성경구절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리와 신앙노선을 나타내는 성경구절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구절들이 왜 교리와 신앙노선을 나타내는지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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