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사 발전 단계에 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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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사 발전 단계에 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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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 E-mail … 0
질문 속에 교리사적 흐름의 정중앙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서로 모르는 10 명의 화가나 작가를 순서대로 한 장의 10분의 1씩을 맡겨 그림이나 글을 적게 하면서 사전에 서로가 연락하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완성 된 작품을 미리 받아 둔다면, 뒷 순서로 갈수록 자기 몫의 10분의 1과 자기가 희망한 완성 작품이 일치 될 확률은 많아 집니다. 그러나 1번으로 올라 갈수록 희망한 완성 작품과 멀어 집니다. 이렇게 한다 해도 1번의 그림과 1번의 최종 작품이 같아 질 확률은 있습니다. 이유는 동 시대에 살면서 동일 환경에서 살았거나 그런 환경을 들었기 때문에 전문가들끼리는 개성도 있으나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농구의 양팀 5명씩 총 10명이 좁은 농구코트에서 숨가쁘게 뛰는데 90% 이상의 활동을 서로 예측합니다.

이 10 명의 화가나 작가를 선택하면서 고구려 건국 시기의 장관 1명, 백제 말기의 사병 1명, 통일신라 건국의 노예 1명, 후삼국에 중국으로 이민 간 상인 1명, 고려시대 무인정권의 칼잡이 1명, 조선 건국의 사육신 1명, 사육신을 찢어 죽인 임금 1명, 일제 때 경찰한 사람, 북한의 건국 초기 김일성대 철학과 주임교수 1명, 남한의 전두환 최측근 1명으로 10명을 택하여 그렇게 해 보라고 한다면 같을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10 명을 뽑으면서 아프리카 추장 1명, 일본의 사무라이 1명, 중국의 요리사 1명, 베트남의 빨치산 졸개 1명... 이런 식이 되면 더 어려울 것입니다.

타 종교는 진화론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만 시대와 국가와 출신과 성장과정과 개인의 천차만별의 모든 요소가 다 다르다 해도 중생을 시킨 주님이 그들의 영안을 띄워 보여 주면서 적게 했으니 10분의 1을 처음 그린 사람이나 10분의 10을 마무리 한 사람이나 붓만 다르지 작가는 한 분이므로 틀릴 수가 없습니다. 과학의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과학 내에서도 묘하게 신화며 전설이며 소설의 세계입니다. 과학이 진정 과학적 사고방식에 철저하다면 비록 하나님을 찾지는 못해도 그 어떤 완전자 절대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전개해 나가는 것이 세상이며 그 목적에 맞게끔 분자 입자 하나까지 시계 바늘처럼 맞물려 돌아 간다고 결론을 내야 합니다.


교리의 발전 과정에서 성경이 66권으로 확정 되던 시기는 신앙의 표시만 나면 잡혀 죽던 극단적 박해 시기로 오늘로 말하면 평양 정권하였습니다. 바로 그 극단적으로 불리한 환경 때문에 66권의 정경론은 제대로 도출 되었고 더듬을 것도 없었습니다. 성경의 한 글자 때문에 처참하게 죽어야 한다면 종교 자유가 허락 된 훗날처럼 오늘처럼 논문거리 하나 내어 남들의 주목을 받아야 하는 이런 장난질을 할 리가 없습니다. 자기가 성경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그 안에 담긴 글자 하나에 인생의 모든 것과 처참한 십자가를 각오해야 했기 때문에 오늘의 철 없는 신학자들이나 정경론에 말장난을 하고 있지 그 당시는 토씨 하나 나올 것도 없이 66권은 확정이 되었습니다. 교리사의 정경론 논쟁은 마치 오늘 청년 세대에게 6.25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 논쟁과 같고, 전쟁에 총을 든 군인과 피난했던 사람들에게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박해 시기가 끝나고 종교의 자유를 넘어서 신앙의 만능 시대에 접어 들 때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의 문제가 생깁니다. 중세 1천년에 걸친 기본구원론과 20세기 중반에 들어 한국의 교회 환경에서 백영희에 의한 건설구원론 완성은 주님 한 분의 기획 연출 결론입니다. 특히 백 목사님은 성경 한 권으로만 살았던 분이며 성경 한 권을 떠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구약으로 준비하신 주님이 신약의 2천년의 발전을 정확히 이끌고 나오셨는데 오늘 말세 마지막에 있는 우리가 이렇게 술술 훑어 가며 잘 아는 이유는 열매를 보며 나무를 짚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하신 '신학생'께서 적은 말씀에 구구절절 동감합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이 사이트는 '백영희신앙'연구회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어부 아버지가 바다에 가서 이름 모를 수 많은 물고기를 잡아다 큰 수족관에 넣어 뒀습니다. 그 것을 잡고, 그 것을 분류하고, 그 것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은 이 부족한 답변자와 질문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인데 그 것들이 태평양 바다에 있을 때는 우리 후학이 할 수 없었습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
: 개인적으로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습니다.
:
:
:
: 종교개혁의 이신칭의교리(기본구원) 다음에는
:
: 반드시
:
: 건설구원교리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
: 백영희목사님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누군가를 통해서 건설구원교리를
: 밝히시고 확립시켰을 것입니다.
:
: - 아이가(성경론 정립) 자라서 청소년이(삼위일체 정립)되고, 청소년이 자라서 청년이(기독론정립)고, 청년이 자라서 중년이(기본구원 정립), 중년이 노년이 되고(건설구원 정립)
:
:
: 교리사의 체계화과정도
:
: 1.신구약66권정립(계시론)
: 2.삼위일체정립(신론)
: 3.신인양성일위정립(기독론)
: 4.이신칭의정립(기본구원)
: 5.건설구원정립
:
: 위의 교리체계화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
: 위의 순서는 필연중에 필연입니다.
:
: 가장먼저 신구약66권이 정립되어야하고, 그 다음에 반드시 삼위일체가 정립되어야 하고
: 그 다음에 반드시 신인양성일위가 정립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반드시 기본구원(이신칭의)가 정립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반드시 건설구원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
: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기독교가 참 진리라면,
: 이 순서는 당연히 필연중에 필연이고 절대적으로 이러한 순서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
:
:
:
:
:
:
: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 : 아래글은 이영인목사님의 글입니다.
: : 하나님께서 2000년동안 교리사를 순차적으로 이치적으로 논리적으로 인도하셨습니다.
: : 이러한 방향이 우리의 신앙발전과 원리가 같다고 하셨습니다.
: :
: : 질문1. 이러한 방향이(7순서로 교리를 체계화 시키심) 우리신앙에 도움이 되는 이유를
: :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 질문2. 하나님이 교리를 확립 정리시켜주실때,
: :
: : 삼위일체전에 먼저 이신칭의교리를 확립을 절대 안시켜주셨을것 같습니다.
: : 기본구원교리확립전에 건설구원교리확립을 안해주셨을것 같습니다.
: : 건설구원교리확립전에 기독론(신인양성일위)교리를 절대 확립시켜주셨을 것 같습니다.
: :
: :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7시기 순서대로 교리를 확립시켜주셨을것 같습니다.
: : 저의 생각이 맞을까요?
: :
: :
: :
: :
: : (개인적인 간증)
: : 정통기독교 교리사책을 몇권을 보았습니다.
: : 정통기독교에서는 공통적으로 교리사의 과정을
: :
: : 1. 신구약66권 정립 2. 삼위일체정립 3. 기독론정립(신인양성일위) 4. 종교개혁의이신칭의정립 으로보고 있습니다.
: :
: :
: :
: : 일반교단의 교리사정립 내용을 보면서, 마지막에 건설구원교리가 와야
: : 된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이 안태어나셨더라도, 하나님이 누군가를
: : 통하여서 `건설구원(기능구원)`교리를 정립하게 하셨을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
: : 그리고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시구나. 기독교가 진정 참 진리이구나.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영인목사님이 기독교외에 모든 다른종교는 진화종교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외에
: : 다른 모든종교는 처음 이야기했던 내용과는 달라집니다.
: :
: : 하지만 기독교의 교리사과정을 보면, 완결된 신구약66권 성경에서, 원래 가지고 있던 교리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치적으로 밝혀지고 정리되고 체계화가 되고 있습니다.
: :
: : 백영희목사님의 건설구원교리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저는 기독교가 참진리라고 확신을 못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후에(기본구원) 건설구원교리가 세워지면서
: : 2000년 기독교의 교리사의 과정을 보면서, 기독교가 참 진리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 : (이영인목사님 덕분에 알게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
: :
: : 20대초반에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는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교리사 전개과정을 보면서
: :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직접듣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저의 손끝에 계신것 같습니다.
: : 이영인목사님께 많이 감사드립니다.모두가 목사님 덕분입니다.
: :
: :
: :
: :
: : - 이영인목사님의 글-
: :
: : 통신 기술의 발전이 유선 전화를 뛰어 넘고 스마트 폰으로 바로 간다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없습니다. 자전거와 자동차를 거치지 않고 비행기를 바로 발명해서 공중에 띄운다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 배를 만들어 노를 젓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잠수함을 먼저 개발한다는 논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 :
: : 예를 드신 것은 세상의 자연 현상입니다. 이 자연 현상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 자연을 만들 때 자연도 이치를 따라 만들고 존재하고 이치를 따라 돌아 가도록 해 놓았습니다. 물론 창조의 능력으로 종종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이치를 중단 시키거나 이치에 없는 일들을 하시만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으십니다. 자연과 물리를 만든 이유는 그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필요해서 만들었으니 당연히 자연을 물리에 따라 운영하고 계십니다.
: :
: :
: : 교회의 교리 발전은 우리의 신앙 발전과 그 원리가 같습니다. 범위를 좁히면 개인의 신앙 발전이고 범위를 넓히면 교회의 교리 발전입니다. 교리의 발전은 교회 발전의 중심입니다.
: :
: :
: : 세상의 통신과 교통의 기술 발달은 그 겉 모습이 하나님과 무관한 것 같으나 속으로는 역시 하나님의 주권 섭리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발달이 되도록 세상을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만들었고 또 그렇게 발달의 과정을 밟도록 이치도 그렇게 만들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런 단계를 실제 밟고 발달을 시켰습니다. 달리 해도 되는데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왜 이치를 가르치는가? 우리 믿는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그 진리를 배우는데 이용하고 참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 :
: : 하나님은 전능자시니 우리를 오늘의 이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만들 수 있고, 우리의 신앙과 구원의 방법과 우리의 교회 역사와 각 시대의 모든 상황 전부를 하나님은 지난 6천 년과 다르게 전개 시킬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인류의 지난 6천 년도, 각 시대의 교회와 그 내용도, 그리고 각 시대의 연결 모습도 오늘까지 흘러 내려 온 것처럼 이렇게 예정하고 이렇게 실제 섭리해 오셨습니다.
: :
: : 이치를 내신 하나님은 이치의 하나님이시며 그 이치를 낸 이유는 그 이치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것은 세상 이치나 진리의 이치나 마찬 가지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교리 발전의 단계도 이렇게 논리적으로 필연적으로 마치 통신과 교통의 수단들이 발달 해 나가듯이 그런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게 하신 이유는 그런 모습을 가진 역사라야 우리를 가르치고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 :
: :
: : 왜 도움이 되느냐? 이 문제는 7 단계들을 살펴 보면 바로 답이 나올 듯합니다.
: :
: :
: :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은 교리사에서 어떤위치에 들어가는지?
* 이영인목사님께서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경론(계시론) - 삼위일체론(신론) - 신인양성일위론(기독론) - 이신칭의론(기본구원)
- 건설구원론(기능구원론)

총론질문)
2000년 교리사의 과정을 보면 위의 내용과 같습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은 교리사과정 가운데서, 어떠한 `위치-가치`가 있을까요?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인죄론논쟁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거스틴은 원죄론과 타락가운데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죄를 지을 자유밖에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예정에 의해서만 죄와 사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의 참된 자유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새로운 삶에로 이끄실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실때(구원받았을때) 인간의 참된 자유가 성취될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정했으며, 태어날때 부터 죄에 저항할 수 있고
의를 행할수 있는 참자유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인간이란 어떤존재인가? 에 대해서 논쟁을 했는것 같습니다.


각론질문1)
그렇다면 어거스틴의 인간이란 어떤존재인가? 어거스틴의 인죄론(원죄- 자유의지 - 하나님의 은총과 예정에 의한 구원)도 기독론과 종교개혁의 기본구원(종교개혁) 사이에
위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각론질문2)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어거스틴으로 돌아간 종교개혁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거스틴은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준비 예비케 하기 위한 하나님이 세우셨을까요?
실제 어거스틴의 깨달음들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시대의 깨달음들을 가질수 있었을지?
의문이기도 하고, 루터목사님은 성경만으로도 이신칭의를 혼자서 깨달었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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