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하게 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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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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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7 14:37
이 노선 전체가 함께 운영하는 것이 목표였고, 이 노선 전체가 모일 때까지 핵심 몇 사람이 함께 시작하기로 했는데 제 활동이 외부에 더 드러 났다고 해서 저를 치면 이 노선 연구가 멈출 것으로 생각해서 소송이 제기 되었습니다. 원고는 이겨도 지고 져도 지는 소송을 한 것이고, 피고는 져도 이기고 이겨도 이기는 소송이 되었습니다.
'신학'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제 심리를 예리하게 보셨습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벌써 백영희 원 자료와 그 활용 자료를 구분하고 뿌리와 둥치의 자라 감의 관계를 명확하게 했을 것인데 하도 배신할 ㄴ이라, 원래 간신이었다, 자기 명예 건설에 나섰다는 그런 비판을 많이 들었으므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너무 지나 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세월 그런 말은 지나 가는 바람 소리처럼 듣고 갈 길만 갔고 할 일만 했는데 최근에 돌아 보니 적어도 제 마음 속에 그 면을 의식하여 좀 지나 친 감이 있습니다.
저는 불신 시절에도 혈통적으로 천성적으로 의리나 충성이 좀 강한 면이 있었습니다. 원래 집안의 내력이 남을 부려 먹는 훌륭한 인물들이 거의 없고 남 밑에 기고 사는 머슴 기질이 강한데 제 주변은 좀 심하고 저는 좀 더한 편입니다. 지금 제가 섬기다시피 했던 분들이 함게 약속하고 가자고 한 길을 다 떠났고 저만 남았습니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의 기록을 살피다 보면 이 분들이 유교의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사상으로 그 길을 갔거나 적어도 그 영향이 없지 않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분들의 초창기는 분명히 그러 했으나 그들의 마침은 오로지 주님으로만 그 길을 갔다고 생각하나 교계나 세상이 유교의 충효 사상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면 무조건 부정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못난 집안의 형편 없는 인간이 귀한 도를 배우고 모두가 떠난 바람에 혼자 남았고 이런 환경에서 불쑥 역사의 배신자가 되지 않고 청사에 남을 의리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심리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인격형성 면을 지적하신 '신학'님의 짐작이 틀렸다고만 할 수 없고 또한 지난 세월 속에 수 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트라우마'는 제가 인지를 하든 그렇지 않든 제 속에 심겨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아주 심각하게 사색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복음에만 붙들려 왔는가? 앞으로 그렇게 가려면 어떤 면을 주의해야 할 것인가? 최근 제 주변에 생긴 수 많은 일을 통해 좌표 설정을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
: 스승을 위한 정성과 노력은 26년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소송까지 해서 막고나선다면 이것을 2세대 출발의 본격시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에 아는 분들이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분열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나치게 의인 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저는 연구부의 중심에 있는 이목사님께 지나치게 의리에 붙들리고 효도하려 하는 것도 절제하시라고 부탁합니다. 무슨 편집증이나 트라우마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인격형성이나 지난날 사건에 그런 사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학'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제 심리를 예리하게 보셨습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벌써 백영희 원 자료와 그 활용 자료를 구분하고 뿌리와 둥치의 자라 감의 관계를 명확하게 했을 것인데 하도 배신할 ㄴ이라, 원래 간신이었다, 자기 명예 건설에 나섰다는 그런 비판을 많이 들었으므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너무 지나 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세월 그런 말은 지나 가는 바람 소리처럼 듣고 갈 길만 갔고 할 일만 했는데 최근에 돌아 보니 적어도 제 마음 속에 그 면을 의식하여 좀 지나 친 감이 있습니다.
저는 불신 시절에도 혈통적으로 천성적으로 의리나 충성이 좀 강한 면이 있었습니다. 원래 집안의 내력이 남을 부려 먹는 훌륭한 인물들이 거의 없고 남 밑에 기고 사는 머슴 기질이 강한데 제 주변은 좀 심하고 저는 좀 더한 편입니다. 지금 제가 섬기다시피 했던 분들이 함게 약속하고 가자고 한 길을 다 떠났고 저만 남았습니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의 기록을 살피다 보면 이 분들이 유교의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사상으로 그 길을 갔거나 적어도 그 영향이 없지 않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분들의 초창기는 분명히 그러 했으나 그들의 마침은 오로지 주님으로만 그 길을 갔다고 생각하나 교계나 세상이 유교의 충효 사상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면 무조건 부정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못난 집안의 형편 없는 인간이 귀한 도를 배우고 모두가 떠난 바람에 혼자 남았고 이런 환경에서 불쑥 역사의 배신자가 되지 않고 청사에 남을 의리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심리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인격형성 면을 지적하신 '신학'님의 짐작이 틀렸다고만 할 수 없고 또한 지난 세월 속에 수 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트라우마'는 제가 인지를 하든 그렇지 않든 제 속에 심겨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아주 심각하게 사색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복음에만 붙들려 왔는가? 앞으로 그렇게 가려면 어떤 면을 주의해야 할 것인가? 최근 제 주변에 생긴 수 많은 일을 통해 좌표 설정을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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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을 위한 정성과 노력은 26년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소송까지 해서 막고나선다면 이것을 2세대 출발의 본격시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에 아는 분들이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분열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나치게 의인 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저는 연구부의 중심에 있는 이목사님께 지나치게 의리에 붙들리고 효도하려 하는 것도 절제하시라고 부탁합니다. 무슨 편집증이나 트라우마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인격형성이나 지난날 사건에 그런 사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2세대가 출발할 시점
스승을 위한 정성과 노력은 26년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소송까지 해서 막고나선다면 이것을 2세대 출발의 본격시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에 아는 분들이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분열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나치게 의인 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저는 연구부의 중심에 있는 이목사님께 지나치게 의리에 붙들리고 효도하려 하는 것도 절제하시라고 부탁합니다. 무슨 편집증이나 트라우마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인격형성이나 지난날 사건에 그런 사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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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위한 정성과 노력은 26년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소송까지 해서 막고나선다면 이것을 2세대 출발의 본격시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에 아는 분들이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분열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나치게 의인 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저는 연구부의 중심에 있는 이목사님께 지나치게 의리에 붙들리고 효도하려 하는 것도 절제하시라고 부탁합니다. 무슨 편집증이나 트라우마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인격형성이나 지난날 사건에 그런 사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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