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할 실력이 없어 도망가는 일은 있을지라도, 정답을 말하라면 순교가 정답니다.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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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할 실력이 없어 도망가는 일은 있을지라도, 정답을 말하라면 순교가 정답니다.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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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순교~]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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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형룡박사님 뿐 아니라 다른 학자들이나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①환란을 당했을 때, 특별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의 그 사명은 큰 시험거리입니다.


원래 받은 사명을 계속하는 중에 순교할 현실이 닥치게 되면, 자기 속에서 가장 고차원의 투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악령이 외부에서는 환경을 통해 몰아붙이면서 그 사람 마음 속에는 살아 나갈 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사냥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비교적 택하기 쉬운 퇴로를 하나 열어놓고 그 외의 다른 곳에서는 몰이꾼들이 난리 법석을 떠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는 외목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②닥친 환란은 외부 시험이지만, 사명으로 살 길을 찾게 하는 것은 악령의 내부 시험입니다.


신사참배를 가지고 천하를 시끄럽게 만들어놓고 그 와중에서 '박사님'들에게는 후대 교회를 위해서 한 차원 높은 결단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신학교에서 목사 후보 학생들에게 그렇게 진리를 외쳤고 가르쳤으니 의례껏 저런 분들이야 무섭거나 죽기를 두려워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긴 특별한 사명이 있으니 원치 않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잠시 환란이 지나가도록 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박사님들 마음도 편하고 또 주변에서도 워낙 위대한 학자들이니까 그럴 것이라고 인정을 받는 것도 쉽습니다. 이렇게 큰 범위에서 슬슬 몰아가면 학자님치고 마침내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도되는 퇴로를 이용하지 않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③사명을 위해 환란을 피한 사람은, 환란 후에 교회 내에서 묘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명을 위해 환란을 피하는 것을 보는 악령은 악령대로 쾌재를 부릅니다. 그 학자가 그 환란을 마지막 고비에서 넘겨보지 못한 이상, 그 이후 평화 시대가 열리게 되면 그 학자는 그 학자의 권위와 실력으로 평화시 교계의 최고 선생 자리에 올라 앉을 것인데, 그때에 그 학자는 자기가 처신했던 것에 매여서 평생 미묘한 처신을 하게 됩니다. 박형룡박사님의 해방 후 처신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바로 이 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박형룡박사님과 같이 한국교계 최고의 학자를 사례로 연구하려고 하면 한국교계 역사 전반을 이해해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타락은 작게는 한 교회의 작은 처리 하나에서 시작되지만 넓게는 태평양 바다와 같은 전체 범위에서 오염이 됩니다. 어느 한 교회의 작은 범위만 아는 사람은 눈 앞의 탈선은 방어할 수 있으나 교계적 범위에서 하달되는 탈선에는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의 애양원 교회가 지금도 손목사님 당시의 경건한 교회 운영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교회는 종교통합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통합교단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어느 칼에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는데 작은 범위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는 줄로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④이 문제는 교계적인 문제만이 아니고, 예수 믿는 우리의 평소 생활에 늘 함께 있습니다.


그대신 교회 내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을 살피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고위 공직에 있는 장로님이 주일에 너무 딱한 사정이 있어 출근을 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장로님의 심리 상태와 그 교회 목회자의 지도나 처신 그리고 주변의 여론이나 이해가 같은 원리로 작동하게 됩니다.


교회로서 대단히 비중있고 또 그 직장도 고위 공직이라고 한다면, 그 교회 담임목회자부터 십일조나 교회 대소사 일에 그분의 직책을 활용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사명을 강조하며 편하게 주일을 하루 빠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게 됩니다. 또 주변에서도 그 분 때문에 덕볼 일이 있고 또 과거에 있었던 분들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를 해 주게 됩니다. 본인도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고 또 자기 속에서도 그런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그냥 한번 넘어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번 주일을 어긴 적이 있는 장로님은 그다음 같은 교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이 주일문제 때문에 직장이나 가정 분란이 있게 될 때, 주일을 한번 슬쩍 어겼던 그 장로님이 앞장 서서 나서게 됩니다. 주일을 꼭 그렇게 바리새인처럼 지켜야 하는가.... 등등으로 논리를 펴게 됩니다. 할 말 없어 말 못할 사람이 없는데, 오죽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알아서 말을 잘 하겠습니까? 그 교회 주일 문제를 통째로 다 삼켜버리게 됩니다. 박형룡박사님이 해방 후 한국교회가 신사참배 문제로 분열을 일으키고 그 후 여러 분열이 발생될 때 그분의 처신과 그분의 입장은 참으로 이해하기 곤란한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서 다시 살펴본다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고 오히려 그렇게 되는 것이 필연적일 것입니다.


2.맡은 사명을 감당하다가, 순교의 형편이 오면 순교의 현실을 자기 현실로 받아야 합니다.


①세상일은,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세상은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할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이 중요한 일 때문에 내가 죽을 수가 없다는 논리가 통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때 장남들 대신 다른 아들들이 전쟁에 나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신원확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머리 숫자만 채울 때였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국방부장관이 소총들고 최전선으로 나가서 되겠습니까?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중요하고 잘난 사람은 위험한 곳에서 떨어져야 하고 돈은 많이 받아야 하고, 반대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돈은 적고 고생은 하고 위험은 많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타락의 결과입니다.


②교회일은, 사명가진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이 하십니다.


교회일은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 사람에게 교리를 맡겼는데 그 사람이 죽어야 하는 길을 가도록 현실이 조성되었으면 그 현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 현실에서 죽어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맡아 있는 이 중차대한 일은 어떻게 하고요? 하나님께서 그것은 걱정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이 인간끼리 세상을 경영하고 꾸려 나가야 하는 일은 위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께서 돌부처처럼 폼만 잡고 있지 않습니다. 살아 계시고 움직이시되 당신이 전적 알아서 합니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따라서 누구 아니면 교회가 안 된다라든지, 누구 아니면 어떤 일이 안된다 라는 개념은 정상적인 교회에서는 아주 금물입니다. 절대 금물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데 그 사람이 없어진다면? 아주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일이 더 이상 진행될 필요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중단시킨 것입니다. 만일 그 일이 계속 진행되어야 할 일이라면,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나타나서라도 그 일을 대신 하게 됩니다.


③초대형교회가 공중분해 될지라도 하나님께 맡기지 사람이 결정하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백영희목사님이 목회하던 서부교회를 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부교회가 외부적으로 유지되려면 백목사님이 있어야 하고, 아니면 차선으로 백목사님이 공개 지명한 후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이 사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도저히 하나님께서 후임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서부교회의 외형 유지는 하나님께서 하지 않겠다고 정한 것입니다. 당신이 정했다면 그렇게 알면 그만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거의 모든 분들이 누구를 세웠어야 했다, 기도로 응답을 받지 못했다면 공회 목회자 100명 중에 그래도 제일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지명했어야 했다, 백목사님의 평생 제일 마지막 최대 실수가 후임을 정하지 않은 것이라.....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만 이곳은 15년을 지나는 오늘까지도 이렇게 단정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후임처럼 중차대한 문제도 하나님께서 후임을 따로 하늘에서 떨어지듯 주시던지 아니면 서부교회의 외형 유지를 포기하시든지 당신이 하실 일이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지 않는데 일반 세상사람이 하는 것처럼 인간의 고려와 계산으로 처리하는 일을 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신본이라고 합니다. 그 마지막까지 그분의 순종걸음이 이 정도였기 때문에 이곳은 그 신앙걸음을 살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나님 순종 하나로만 살 수가 있겠는가!


④오늘 이곳이 감당하는 사명도, 이곳이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할 뿐입니다.


이곳 답변자는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작업을 전임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곳 답변자만이 그 교리작업을 전임할 사람이라고 친다면, 그리고 오늘 순교를 당하느냐 아니면 살 길을 택하느냐는 문제가 부딪혔다면? 두 말 할 것 없이 순교길을 택하게 됩니다. 어제까지 이 교리 작업의 전담자로 만든 것은 하나님이시니 그분이 그렇게 만들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죽어라고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또 그렇게 할 뿐입니다.


혹, 순교를 못했다면? 실력이 없어 낙제한 것입니다. 다른 핑게 댈 것이 없습니다. 겁이 나서 도망을 간 것입니다. 사명을 들고 나와서 그 훗날에 변명할 것이 없습니다. 실패를 했을지라도 그 평생 나는 그때 비겁하게 실패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윗처럼 돌이킨 후에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또 돌이킨 후에 평생 복음에 붙들려 살다가 순교 당한 베드로 같이 될 것입니다.


⑤로마의 칼을 피하여 로마를 벗어나던 베드로의 경우를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순교가 겁이 나서 도망간 사람이 그 훗날 사명을 핑게대는 경우라면, 그 사람은 그 살아 생전 평생에 그가 하는 일은 분명히 교회를 망치고 헤치는 일 뿐일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 마지막 로마가 불타는 가운데 그 제자들이 복음의 앞날을 위해 피하라 하여 대의명분 때문에, 소위 사명 때문에 로마 밖으로 피신하였다는 교회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베드로를 대신하여 못박히러 로마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돌이켰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진리 차원으로 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초대교회의 교회역사로 대할 수는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수준은 이제 이곳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사명을 인간이 하나님 없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날 로마로 다시 들어가서 죽었기 때문에 로마의 복음 운동이 식어지거나 끄지지 않았습니다. 복음 운동의 사역자는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그 운동에 태워질 장작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불길은 더욱 크게 일어나는 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참으로 신앙의 본질을 아는 분들은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도들이 움직인 기록인데 알고보면 일일이 성령이 움직인 행적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사명이 주어지면 그 사명에서 죽기를 소원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중간에 순교할 일이 오면 그 뒷날은 하나님이 맡아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나의 순종은 이것으로 완성이라 하며 찬송과 감사로 그 자리에서 주님 품으로 달려갔습니다.


3.불행히도, 오늘은 순교를 두고 의논할 만한 때가 아닙니다.


①순교는 커녕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으려는 시대입니다.


오늘 순교에 해당될 사람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질문은 실제로는 존재치 않을 일이지만 이곳이 연구실이니 연구실에서 이론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도 항상 이 신앙 걸음의 최종 목표지를 그곳에 두고 있습니다. 소원은 있으나 그렇게 되겠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교와 생사를 두고 논하는 것은 순교의 실력을 가졌거나 이루었다 함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 싶은 소망만은 분명히 하자는 것입니다.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대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이 있습니다. 순교자는 되지 못할지라도 순교를 좋아하고 순교를 향해 소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순교자의 상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마지막으로 하나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피할 길을 택할 경우도 있습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분명히 피할 때는 피했습니다. 백목사님도 생명을 아끼고자 피한 적도 많았고 또 수위와 청년들을 세워 지키게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는 피하고 언제는 죽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자기 혼자 결정할 일입니다. 아직 죽을 때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생명을 보존할 때인가, 그래서 피할 길을 주시는 그 길을 따라 살아나와야 하는가? 아니면 사명이고 교회고 가족이고 돌볼 것 없이 서슴없이 목숨을 버려야 할 때인가? 성경은 두 길을 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작은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평소는 별 것 없는데, 생명을 걸어야 하거나 아니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큰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때, 바로 그때가 문제입니다. 자기 속의 생애애착욕심이 자기 속의 양심을 포박해놓고 자기 속의 지성을 동원시켜 합리화를 시키기 때문입니다.


③연보를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목숨보다 작은 것이지만 경제를 두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주신 돈을 잘 아껴 사용함으로 복음의 뒷날 귀하게 사용할 때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돈이 아까와서 그냥 연보를 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꼭 같이 자기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으나 한 사람은 그 아파트를 팔아서 연보할 때가 와도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말 그 아파트를 팔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팔 사람입니다.


2003년 2월 17일 정오 12시를 기준으로 이 시각 이후에도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물질욕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시각 이후에도 살아 있는 사람은 생애애착욕 때문에 순교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렇게 단정할 사안은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순교와 생존을 두고, 다른 사람들의 재산 보유와 흩어 가난한 자를 구제한 것을 두고, 짐작은 할 수 있어도 단정을 하는 것은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


④참으로 바쳐야 할 때냐? 평소 작은 것에서 연습해 나가야 합니다.


박형룡박사님과 같은 경우는 워낙 한국교회가 그 분 한 사람으로 한국신학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대였고 그런 시기에 신사참배가 있었는데 이 사건은 해방 후에 뚜렷하게 공개 재판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비교적 소상하게 그 형편이 알려져 있습니다. 박형룡박사님 자신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 형편을 증언할 사람들이 거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예를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누구 이름을 불러 딱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렇게 애매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히2:15에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죽기가 두려워 도망가는 것이 우리 전부입니다. 그런데 아직 죽을 때를 주지 않기 때문에 목숨을 보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 핑게를 가지고 전부 사망의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면을 파악하고 때를 구별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이때는 죽지 않으면 안되는 때냐는 것을 바로 깨닫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곳의 모든 연구의 또 다른 방향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참으로 이때는 죽어야 할 때냐

참으로 이때는 다 버려야 할 때냐

참으로 지금은 한 칼에 모든 것을 끊을 때냐


평소 작은 것에서, 평소 할 수 있는 사안부터 철저하게 구별하는 연습과 그 희생의 댓가와 그로 인해 받는 하늘의 소망을 연습해 본 사람만이 훗날 큰 것을 두고 피할 길과 죽을 길을 택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교회 담임 목회직 하나를 두고도 살 길만을 찾아 합리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단언코 앞날의 환란에서는 살길만을 찾을 변절의 사람이 됩니다. 오늘 작은 것을 잘 이기는 사람이라도 힘이 없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잘 이겨 나가는 사람에게는 혹 소망이 있습니다. 이곳은 바로 이 길을 걷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순교] 사명과 순교를 선택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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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박형룡 박사라는 분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


박형룡 박사님께 순교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분은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한국의 조직신학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대의 명분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1. 우선 박형룡 박사님 관련된 일이 사실인지 신앙적인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2. 만일 답변 목사님께 순교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지금 하시는 '백영희 조직 신학' 교리 작업이 다 완성되지 못한 상태라면 어떻게 하시겠는지요? 지금까지 올라온 글을 읽어보면 답변 목사님은 조직 신학 연구를 사명으로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목숨이 아까워라기보다 사명 때문에 마음 편히 순교도 못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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