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질문을 상세하게 다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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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을 상세하게 다시 드립니다.

분류
김누겸 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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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드립니다.


1.

답변 목사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사실 저는 예전에 '교만'에 관해서(문답방 1151번) 질문을 드린 사람입니다. 교만에 관한 목사님 답변을 읽고 보이지 않는 교만과 잠시 싸웠었습니다. 대속은 높고 나는 보잘 것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자꾸 사상전을 펼치다 보니, 실은 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언젠가 부터 고민거리던 마음속의 교만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교만을 아직 뽑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평안이 깃들고 있습니다.)


2.

근데, 또 한가지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율법주의란 말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는 제가 율법주의로 살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답변 목사님 말씀대로 건설 구원에 있어서의 율법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3.

이미 칼빈도, 아니 좀 제대로된 신학자 정도만 되도 성화도 하나님의 예정안에 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성도의 견인'이 맞는 표현인가요? 저는 칼빈이 건설구원까지는 못미쳐도 성화가 예정 안에 포함되었다고 깨달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답변 목사님 말씀을 들어보면 그것이 아닌 것 같은데 건설구원을 깨닫지 못한 것을 강조하시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오해를 풀어주십시요.


4.

저도 성도의 견인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교리적으로는 백영희 건설구원(기능구원)에 바탕을 두고 기본, 건설 구원의 하나님의 전적은혜와 절대예정을 믿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성화도 하나님의 예정안에 있고, 성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자신의 성화도 하나님의 전적 은혜였다'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입니다. (말했던 것이 심히 부끄럽습니다.)


5.

근데,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다 치고, 그런 사실을 안다고 해도 실제로 율법주의가 생활 속에 없을까요? 전 지금까지 그런 사실 잘 알고 있었지만, 어느날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니 율법주의로 살고 있던 것입니다. 이럴수가? 사죄, 칭의, 화친, 소망 이것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던 내가 알고보니 내가 '의'를 이룰려고 바둥거리고 있는 것이였습니다.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을 외치는 것 조차 내 노력을 넣을려고 해서 그럴까요?


6. 저에게 일반교계의 혼동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설구원이 인생의 목표라는 것을 혼동하고 그것의 방편을 이해하지 못한 듯 싶습니다.


7. 저는 최근 성경만 유기적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고 실생활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유기적'으로 기르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도, 어려운 현실도,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닮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유기적으로 하나님을 닮아 가는 과정 자체에서 율법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8.

부끄럽지만 내 자신을 살펴보니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 좀 열심 있는 사람, 교리를 그냥 좀 알고 있는 사람, 평신도든 목사님이든 백영희 신앙 노선에서 말하는 진정한 '목회'를 해보지 못한 사람은, 건설구원을 알든 모르든 99%는 율법주의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전적 은혜, 전적 예정을 인정한다고 해도, 알고도 당하는 것이 세상이고 마귀입니다.


9.

백목사님의 건설구원을 나름대로 깨달았다고 했지만 지난세월 돌아보니 율법주의가 대부분 이였습니다. 그래서 한숨은 나오나 자학은 하지 않습니다. 깨달았으니 돌이키고 싶습니다. 율법주의는 자학과도 연결될까요? 사실 이 질문을 하기전에 '자학'에 대해서 질문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자학도 조금 있는 편입니다.


10.

구체적으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성경을 좋아하고 가급적 매일 읽으려 합니다. 이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큰 축복이요, 전적 은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려 해도 잠마귀를 극복못해서 평생 못읽는 사람을 보니, 내게 주신 은혜가 크다는 것을 '지식'으로 잘 알고 실제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살다가 성경을 많이 읽을 수 없는 환경이 다가오면, 마음속으로 불평을 합니다. 성경도 못읽는 현실이 너무 싫은 것입니다. 중심이야 하나님께서 받으실지 모르지만 현실관으로 보면 빵점입니다. 또 성경을 많이 읽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 보겠다고 한참 꿈꾸다가 나이가 먹고 세상살이, 가정살이 해보니 죽기전에 도저히 100독은 불가능 하겠다고 스스로 포기합니다. 성경 많이 못읽으니까 나는 앞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 글렀다. 사도 바울도 못따라가는데 하고 스스로 한숨 짓고 그려러니 포기합니다. 그러다가 또 열심히 읽어 보려고 애를 씁니다. 이게 율법주의 아닌가요? 예를 들다보니 좀 정확히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이 예를 떠나서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자기 노력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제가 보기에는 저를 포함에서 총공회에 있다고 해도 90~99%라고 단정합니다.


11.

전적 하나님의 은혜만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저는 교리 좋아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긴박합니다. 교리체계 전체를 통해 정중앙에 있는 질문을 했다고 하셔서 다른 사람들 위해 자세히는 썼습니다. 이제 내가 율법주의로 살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근데 구체적으로 어떤 면이, 어떤 부분이 율법주의냐 하는 것입니다. 자학을 버리고 냉정스레 살펴보면 주님께 붙들린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근데 무엇이 어떤 것이 도대체 나를 율법주의 몰고 가느냐? 주님께 붙들렸다가도 도대체 무엇이 나를 율법주의로 몰고 가느냐?


12.

'하나님이 기르시는 과정 중이다'와 '대속 입고 살지 않았다'고 말하면 대꾸할말 없는 정답이겠지요. 그러나 그 답으로는 현재의 율법주의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신앙으로 말하면 10점 짜리지만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은 붙들고 살고 싶어 했습니다. 제 노력으로 이것을 붙들려고 했을까요? 이게 율법주의일 까요? 간단히 질문했으나 이제는 혼동이 옵니다. 실생활에서 무엇이 율법주의인지요? 어떻게 막을까요?


13. 은혜주의지만 율법안에서의 은혜주의 입니다. 말씀 안에서의 은혜주의 입니다. 답변이 길어진다면 나누어서 은혜주의 + 경건주의를 설명해 주십시요. 좌로 치우치면 율법주의, 조금 돌이키면 은혜주의 거기서 경건주의로 가려고 우로 치우치면 다시 율법주의, 어렵습니다!!!
[건설구원] 실생활에서의 율법주의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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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앙에 열심이 있는 사람 치고, '율법주의'적인 면이 없는 사람이 없을 듯 싶습니다. 율법주의와 은혜주의를 구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메모에 보니,

율법주의 : 예수님의 대속없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려는 것

은혜주의 :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 주님의 것된 것이 주님의 은혜로 의를 이루는 것


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실생활에서 자기도 모르는 율법주의의 예와 무서움과 막는 방법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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