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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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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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교인 4 3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 대전'이 중세를 총괄했고, 16세기의 칼빈 '기독교 강요'가 종교 개혁과 오늘까지의 신앙 전체를 총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가 신약 교회사 2천년을 통해 당대를 가장 잘 집대성한 대표적 서적인지 궁금합니다.

신학 01.23 13:10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대의 탁월한 성경 주석가였습니다. 그는 욥기, 시편, 이사야, 4복음서(특히 마태, 요한), 바울 서신 등 성경의 주요 부분들에 대해 방대한 주석을 남겼으며, 그의 신학적 저술들은 이러한 철저한 성경 주석 작업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례론뿐만 아니라 기독교 윤리학을 집대성한 조직신학적 대작입니다. 아퀴나스는 이를 통해 교부 신학과 중세 신학을 체계적으로 종합하였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전개된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y)' 시대에도 아퀴나스의 유산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개신교 신학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교리적 오류(교황권, 화체설 등)는 배격했지만, 아퀴나스가 세운 조직신학적 틀(Frame)인 신론, 기독론 등의 정교한 구조는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개신교 조직신학의 체계를 세우는 모판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이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초대교회 교부 신학, 중세 스콜라 신학, 종교개혁 신학, 그리고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이 역사적 연속성 안에서 축적되고 정제되어 오늘날의 기독교 신학이 형성된 것입니다.
신학 01.23 13:36  
칼빈의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는 개신교 신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합니다. 이 책은 성경의 방대한 가르침을 복음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기술 하였습니다.
​기독교 강요의 신학적 탁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례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입니다. 칼빈은 교회사 속에서 산발적으로 논의되던 그리스도의 삼중직(선지자, 제사장, 왕) 교리를 구원론의 핵심 구조로  체계화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삼중직은 이후 개신교정통주의 기독론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또한 1559년 최종판의 구조는 현대 조직신학 목차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는 종교개혁 당시 신학적 혼란 속에서 종교개혁 신학의 명확한 기준점(Standard)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후 전개된 개신교 정통주의 및 현대 개혁신학 저술들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담당 01.23 14:19  
기독교 2천년을 크게 셋으로 나눈다면
1. 초대교회: 6세기까지라 할 수 있고 가장 좋은 집대성은 '어거스틴'입니다. 교리와 모든 면으로 잘 요약했고
2. 중세교회: 16세기까지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집대성을 했다는 것은 대개 일치합니다. '신학대전'이라는 책이 있고
3. 현대교회: 21세기까지라고 하겠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아직도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넘어 선 책은 없어 보입니다.

이 정도의 세월이 지나 갔으니 이제 아주 새롭게 다시 한 걸음을 더 나아 갈 필요가 있었고 공회의 노선이 그렇습니다.
참고로 교회는 중세 1천년은 곁길을 갔고 암흑시대라 합니다. 불신자들은 아퀴나스를 강조하고 우리는 지웁니다.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분야, 어느 한 시대만 특정해서 특별한 인물이나 집대성을 논하려면 교단에 따라 신학자에 따라 우리가 너무 소중하게 기억할 분들은 많습니다. 무디를 잊을 수 없고 스펄젼을 뺄 수도 없고 신학자를 말한다면 그 수는 참 많습니다.
그런데 교리, 신학, 성경, 설교, 목회, 시대, 교회의 흐름까지를 모두 망라하여 지난 날과 차원을 아주 달리 하는 인물이라면
어거스틴 - 칼빈 - 백영희, 이렇게 놓으면 될 듯합니다. 마음을 물질로 명확히 구분하는 삼분론, 중생 교리, 건설 구원, 그리고 성경 전체의 비원어 탈신학적 해석과 설교의 교리적 목회적 현장적 일치와 성과, 교회론적 교회의 바른 모습까지 그리고 시대의 시기까지를 다 놓고 봐도 그냥 주일학교 하나로 유명하거나 경건하여 특별하다고 그칠 분이 아닙니다.


백영희는 생전에 역사 2천년의 교회사를 두고 칼빈 이후 멈췄던 발전을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성경 해석적으로, 교회 운영의 현장까지를 다 놓고 봐도 분명히 한 걸음 더 나아 갔다고 보입니다. 그는 실제 그렇게 살다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그의 신앙 흔적과 함께 10만쪽의 강단 설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목록화 하고, 분야 별로 책자와 하고,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신앙의 모든 질문을 구체적으로 안내한 체계화는 백영희목회연구소의 이 곳 '사이트' pkist가 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백영희의 pkist 연구회 사이트'의 기록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이은 한 걸음이라고 요약해 보겠습니다.
신학 01.23 15:07  
루터는 아퀴나스에 대하여 좀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 선명 했던 것 같습니다. 칼빈은 아퀴나스를 신학 전개의 중심 권위로 삼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일정한 '거리두기'의 태도를 가졌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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