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속에 결론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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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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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0 00:00
1. 사회적 책임이라는 표현
- 세상의 내면
삼성이나 LG처럼 대기업들이 우리 사회 일반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돈을 크게 벌었는데 이 사회의 공정한 경쟁 속에서 그들은 실력이 있어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법적 잣대를 엄청 나게 정밀하게 만들어 그들의 훗날과 오늘의 깊은 속을 헤집으면 그 소유주들과 그 회사 직원들은 거의 다 교도소에 들어 갈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그 잣대로 일반 국민 전부를 조사하면 더하면 더했지 또 덜한 사람도 없습니다. 도둑놈들의 세상에서 성공한 도둑들이 재벌이고 실패한 도둑들이 양민들입니다. 사회의 구조가 바로 이런 본질과 내용을 가졌음을 서로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실패한 도둑들이 성공한 도둑들에게 좋은 말로 할 때 좀 내 놓을래 아니면 너희들이 적법하게 돈을 벌었다고 우기다가 폭동을 만나 홀랑 다 벗겨 질래? 이렇게 질문을 했고, 역사적 교훈과 세계적 추세와 여러 상황을 볼 때 얼른 돈 몇 푼을 내 놓고 좋게 넘어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눈치 없이는 그런 재벌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빼앗아 내는 도둑놈들의 도둑이나 또 억울하지만 내 놓지 않을 수가 없어 돈을 빼앗기는 도둑놈들이나 피차 남들이 듣고 보는 데 이 홈의 솔직한 표현으로 말할 수는 없어 국어 순화법을 사용한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 노름판과 도적 세계의 윤리
이 개념은 노름판에 돈을 딴 사람이 개평이라는 이름으로 딴 돈에서 얼마를 주변 사람들에게 돌립니다. 노름은 그 자체가 불법행위이므로 불법행위로 딴 돈이나 계약한 것이나 그 세계의 미풍양속이나 전통 같은 것은 하나도 지킬 필요도 없고 법적인 의무도 없지만 도둑놈들끼리도 도둑 세계의 무슨 의리나 나눠 먹기의 법이 있으니 도둑이 다른 도둑의 물건을 훔치거나 함께 도둑질을 해 놓고 나눠 먹을 때 거짓말을 하면 아주 나쁜 죄인으로 취급하듯이 노름의 세계에서도 개평을 주지 않으면 그 놈은 정말 나쁜 놈입니다. 어쨌든 처자식을 술집에 잡혀 놓고 노름을 해도 개평은 주는 것이 그 세계의 윤리입니다.
- 세상이 짖는다고 기독교도?
세상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날 때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없었는데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지게 되니까 돈을 많이 딴 쪽에서도 어느 날 민란이 날까 겁이 나고 또 지혜롭게 생각하면 미리 눈치도 보이고 하니까 사회적 책임이라는 거창하고 묘한 표현을 가지고 해결을 할 수가 없는 세상을 그들 스스로 어느 정도 조율을 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세상에 유행을 타고 언론에서 떠들고 이 표현이 유식한 사람의 멋 있는 표현이 되자, 기독교가 그 표현을 교회 안으로 가져 와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로 바꾸어 세상 속에 기독교도 한 다리를 집어 넣고 소외 되지 않으려 이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이라면 하나님 없는 세상은 생지옥이고 믿는 우리는 생천국이니까 천국을 이미 가졌고 천국을 건설하는 방법을 아는 우리는 세상에서 먹어도 못 먹어도 그뿐인 세상을 두고 논하지 않고 세상의 사회적 책임이든 세상의 소외자든 세상의 강자든 다 버려 두고, 오로지 세상에게 우리가 할 말은 예수님 믿고 함께 천국 가자는 말만 우리가 할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믿는 우리의 말씀 생활을 보임으로 세상을 초월하고 말씀으로 사는 생활을 따라 오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니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예배당 1층을 동네 사람 커피점이나 세상 책을 읽는 장소나 연애하는 ㄴㄴ들 만나는 장소로 제공하거나 세상 행사하는데 쓰레기 줍고 길 안내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만 전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2. 근본주의의 사회 격리적 현상
내가 살아야 남을 살립니다. 내가 내 속에 말씀으로 충만해야 남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이끌 수가 있습니다. 근본주의가 세상이야 죽든 말든 나만 기도하고 성경 읽고 나만 계명 지키면 된다라는 생각에 그친다면 근본주의가 아니라 반 쪽짜리 근본주의거나 인도식 고행주의나 염세주의일 것입니다. 참 된 근본주의라면 성경 그대로라야 하니 우선 내가 하나님과 말씀에 붙들려 벌벌 떠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웃을 버려 두는 것이 아니고 이웃을 돌아 볼 틈도 여유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좀 시간이 흘러 가고 나면 이제 주변을 돌아 봐도 자기 내적 신앙의 균열이나 탈선이 생기지 않도록 굳은 신앙이 될 것인데 이제 이 정도 단계가 된다면 그 때부터는 불신 이웃들과 죄 되지 않은 부분은 조금씩 접근도 하면서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 먼저 다가가기도 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를 살려 내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을 살려 낼 정도의 굳은 신앙을 가져야 하는데 세상이 술 먹으러 가자 할 때 함께 술 자리에 가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사회와 격리나 분리 현상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보입니다. 세상이 싫고 세상을 떠나고 싶고 세상은 줘도 이유 없이 무조건 버리고 보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은 근본주의의 초년생이거나 아니면 근본주의 같은데도 사이비 근본주의입니다. 원래 시장에는 정금도 있고 잡금도 있고 모조품도 있고 구리 반지도 있는 법입니다. 그 구별은 각자 자기의 의무며 책임입니다.
3. 복음주의와 세상주의
복음을 좀 적극적으로 전하자는 뜻으로 시작한 것이 복음주의입니다. 그러나 그 태동과 배경을 좀 아는 사람들은 그런 이름에 잘 넘어 가지 않습니다. 먼저 내가 말씀대로 살고, 말씀에 붙들린 내가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 정식인데 잘못 된 근본주의가 자기만 말씀에 붙들리고 남들은 죽든지 말든지 던져 두는 현상이 좀 나오니까 그 잘못 된 근본주의를 핑계 삼아 이 판에 그냥 복음주의라는 더 멋 진 이름을 내 걸고 그 동안 양심 가책 때문에 하지 못하던 별별 죄라도 전도의 이름을 앞 세우고 전도를 하기 위해 술집에도 들어 갈 수 있다 한 다음 술집에 들어 가서 술 주정뱅이가 된 것이 복음주의입니다.
참 된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의 장성한 상태고, 참 된 근본주의는 복음주의의 준비 단계라야 합니다. 이리 치우쳐 다 죽고, 이리 치우쳐 죽는 이들을 보면 죽지 않으려고 반대 쪽으로 치우치다가 역시 그 쪽 구덩이에 다 빠져 죽고 나온 것이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한 길이 중요한 것입니다.
4. 질문자의 마지막 표현에서 답변자의 설명의 결론을 읽었습니다. 옳습니다. 공회가 그렇게 잘 걸어 가는 편은 아니지만 사상은 그렇습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1.
: 기독교에서 `사회적책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경우가 있습니다.
: `사회적책임`이 여러방향 여러의미 일수 있겠으나, 공회신앙노선은 `사회적책임`에
: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
: 2.
: 근본주의신앙이 옳은방향이나, 사회와 분리된것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 복음주의신앙이 사회적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상사회운동의 느낌이 있습니다.
:
: 근본주의 - 복음주의 모두 원래는 좋은의미일터인데, 현재 느껴지는 것은
: 근본주의의 부정적느낌은 사회와의 분리
: 복음주의의 부정적느낌은 세상사회운동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
: 아직 근본주의신앙을 복음주의신앙을 바로 지키는 교회나 교단도 있을것이라 생각을합니다.
: 총공회신앙은 참된 근본주의 - 복음주의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 세상의 내면
삼성이나 LG처럼 대기업들이 우리 사회 일반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돈을 크게 벌었는데 이 사회의 공정한 경쟁 속에서 그들은 실력이 있어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법적 잣대를 엄청 나게 정밀하게 만들어 그들의 훗날과 오늘의 깊은 속을 헤집으면 그 소유주들과 그 회사 직원들은 거의 다 교도소에 들어 갈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그 잣대로 일반 국민 전부를 조사하면 더하면 더했지 또 덜한 사람도 없습니다. 도둑놈들의 세상에서 성공한 도둑들이 재벌이고 실패한 도둑들이 양민들입니다. 사회의 구조가 바로 이런 본질과 내용을 가졌음을 서로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실패한 도둑들이 성공한 도둑들에게 좋은 말로 할 때 좀 내 놓을래 아니면 너희들이 적법하게 돈을 벌었다고 우기다가 폭동을 만나 홀랑 다 벗겨 질래? 이렇게 질문을 했고, 역사적 교훈과 세계적 추세와 여러 상황을 볼 때 얼른 돈 몇 푼을 내 놓고 좋게 넘어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눈치 없이는 그런 재벌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빼앗아 내는 도둑놈들의 도둑이나 또 억울하지만 내 놓지 않을 수가 없어 돈을 빼앗기는 도둑놈들이나 피차 남들이 듣고 보는 데 이 홈의 솔직한 표현으로 말할 수는 없어 국어 순화법을 사용한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 노름판과 도적 세계의 윤리
이 개념은 노름판에 돈을 딴 사람이 개평이라는 이름으로 딴 돈에서 얼마를 주변 사람들에게 돌립니다. 노름은 그 자체가 불법행위이므로 불법행위로 딴 돈이나 계약한 것이나 그 세계의 미풍양속이나 전통 같은 것은 하나도 지킬 필요도 없고 법적인 의무도 없지만 도둑놈들끼리도 도둑 세계의 무슨 의리나 나눠 먹기의 법이 있으니 도둑이 다른 도둑의 물건을 훔치거나 함께 도둑질을 해 놓고 나눠 먹을 때 거짓말을 하면 아주 나쁜 죄인으로 취급하듯이 노름의 세계에서도 개평을 주지 않으면 그 놈은 정말 나쁜 놈입니다. 어쨌든 처자식을 술집에 잡혀 놓고 노름을 해도 개평은 주는 것이 그 세계의 윤리입니다.
- 세상이 짖는다고 기독교도?
세상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날 때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없었는데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지게 되니까 돈을 많이 딴 쪽에서도 어느 날 민란이 날까 겁이 나고 또 지혜롭게 생각하면 미리 눈치도 보이고 하니까 사회적 책임이라는 거창하고 묘한 표현을 가지고 해결을 할 수가 없는 세상을 그들 스스로 어느 정도 조율을 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세상에 유행을 타고 언론에서 떠들고 이 표현이 유식한 사람의 멋 있는 표현이 되자, 기독교가 그 표현을 교회 안으로 가져 와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로 바꾸어 세상 속에 기독교도 한 다리를 집어 넣고 소외 되지 않으려 이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이라면 하나님 없는 세상은 생지옥이고 믿는 우리는 생천국이니까 천국을 이미 가졌고 천국을 건설하는 방법을 아는 우리는 세상에서 먹어도 못 먹어도 그뿐인 세상을 두고 논하지 않고 세상의 사회적 책임이든 세상의 소외자든 세상의 강자든 다 버려 두고, 오로지 세상에게 우리가 할 말은 예수님 믿고 함께 천국 가자는 말만 우리가 할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믿는 우리의 말씀 생활을 보임으로 세상을 초월하고 말씀으로 사는 생활을 따라 오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니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예배당 1층을 동네 사람 커피점이나 세상 책을 읽는 장소나 연애하는 ㄴㄴ들 만나는 장소로 제공하거나 세상 행사하는데 쓰레기 줍고 길 안내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만 전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2. 근본주의의 사회 격리적 현상
내가 살아야 남을 살립니다. 내가 내 속에 말씀으로 충만해야 남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이끌 수가 있습니다. 근본주의가 세상이야 죽든 말든 나만 기도하고 성경 읽고 나만 계명 지키면 된다라는 생각에 그친다면 근본주의가 아니라 반 쪽짜리 근본주의거나 인도식 고행주의나 염세주의일 것입니다. 참 된 근본주의라면 성경 그대로라야 하니 우선 내가 하나님과 말씀에 붙들려 벌벌 떠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웃을 버려 두는 것이 아니고 이웃을 돌아 볼 틈도 여유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좀 시간이 흘러 가고 나면 이제 주변을 돌아 봐도 자기 내적 신앙의 균열이나 탈선이 생기지 않도록 굳은 신앙이 될 것인데 이제 이 정도 단계가 된다면 그 때부터는 불신 이웃들과 죄 되지 않은 부분은 조금씩 접근도 하면서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 먼저 다가가기도 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를 살려 내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을 살려 낼 정도의 굳은 신앙을 가져야 하는데 세상이 술 먹으러 가자 할 때 함께 술 자리에 가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사회와 격리나 분리 현상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보입니다. 세상이 싫고 세상을 떠나고 싶고 세상은 줘도 이유 없이 무조건 버리고 보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은 근본주의의 초년생이거나 아니면 근본주의 같은데도 사이비 근본주의입니다. 원래 시장에는 정금도 있고 잡금도 있고 모조품도 있고 구리 반지도 있는 법입니다. 그 구별은 각자 자기의 의무며 책임입니다.
3. 복음주의와 세상주의
복음을 좀 적극적으로 전하자는 뜻으로 시작한 것이 복음주의입니다. 그러나 그 태동과 배경을 좀 아는 사람들은 그런 이름에 잘 넘어 가지 않습니다. 먼저 내가 말씀대로 살고, 말씀에 붙들린 내가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 정식인데 잘못 된 근본주의가 자기만 말씀에 붙들리고 남들은 죽든지 말든지 던져 두는 현상이 좀 나오니까 그 잘못 된 근본주의를 핑계 삼아 이 판에 그냥 복음주의라는 더 멋 진 이름을 내 걸고 그 동안 양심 가책 때문에 하지 못하던 별별 죄라도 전도의 이름을 앞 세우고 전도를 하기 위해 술집에도 들어 갈 수 있다 한 다음 술집에 들어 가서 술 주정뱅이가 된 것이 복음주의입니다.
참 된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의 장성한 상태고, 참 된 근본주의는 복음주의의 준비 단계라야 합니다. 이리 치우쳐 다 죽고, 이리 치우쳐 죽는 이들을 보면 죽지 않으려고 반대 쪽으로 치우치다가 역시 그 쪽 구덩이에 다 빠져 죽고 나온 것이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한 길이 중요한 것입니다.
4. 질문자의 마지막 표현에서 답변자의 설명의 결론을 읽었습니다. 옳습니다. 공회가 그렇게 잘 걸어 가는 편은 아니지만 사상은 그렇습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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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기독교에서 `사회적책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경우가 있습니다.
: `사회적책임`이 여러방향 여러의미 일수 있겠으나, 공회신앙노선은 `사회적책임`에
: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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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근본주의신앙이 옳은방향이나, 사회와 분리된것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 복음주의신앙이 사회적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상사회운동의 느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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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주의 - 복음주의 모두 원래는 좋은의미일터인데, 현재 느껴지는 것은
: 근본주의의 부정적느낌은 사회와의 분리
: 복음주의의 부정적느낌은 세상사회운동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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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근본주의신앙을 복음주의신앙을 바로 지키는 교회나 교단도 있을것이라 생각을합니다.
: 총공회신앙은 참된 근본주의 - 복음주의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