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문제가 아니라 '준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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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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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9 19:30
일본에게 당하지 않겠다는 반일 감정이 있다고 일본에게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에게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일본이 쳐 들어 올 그 때에 왜놈들에게 우리가 질 수는 없다는 그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치기 전에 미리 '준비'한 것이 충분하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죽겠다며 '결심'을 밝혔는데 그렇게 마음이라도 먹었고 그렇게 표시라도 했으니 그런 마음조차 없고 그런 표시조차 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고문 고형을 당하고 처형 당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온 우주에 왕 노릇을 하는 사탄이 자기가 부리는 천하의 귀신을 동원하여 '우주적' 고난으로 예수님이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주님을 붙들고 함께 가려는 자에게는 그 큰 환란이 함께 들이닥칩니다.
사탄이 천하에 제일 교묘한 귀신을 제자들 마음에 넣어 두려움과 함께 생애 애착욕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예를 들면 '예수님은 이미 죽게 되었으니 수 제자인 나라도 살아 남아야 훗날 이 복음을 전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미혹까지 주면서 그리고 눈 앞에는 유난히 무서워 보이는 군인들이 평소보다 더 무섭게 보이게 합니다. 사방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 오는 이 환란은 예수님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비록 예수님이라 해도 예수님의 인간 단독으로는 이길 수 없고 예수님 속에 계신 하나님을 붙들고 그 은혜로만 넘어 갈 수 있는 차원인데 베드로는 그냥 3년을 따라 다닌 주님을 향해 '의리'로 '인정'으로 '사정'으로 또 하루에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을 변동할 수 있는 그런 천하디 천한 자기 단독의 감성으로 '죽기까지' 따른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그 날 십자가를 동행하려 했다면
풍랑 이는 바다에서 '이왕 한 번 죽는 인생이고 저 주님은 창조주요 전능자시니 한 번 믿어 보자' 하고 뛰어 들었던 것처럼 평소 매 순간 그렇게 계속해서 실제 맡기고 순종함으로 죽으면 천국 가고 죽지 않으면 더 살려 두시는 것이니 믿음의 증거를 가지고 힘 있게 살자는 자세로 꾸준히 모든 고비를 넘겨 따라 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4복음을 면밀하게 살펴 보면 베드로는 이랬다 저랬다 번복하면서 그 십자가 직전까지 갔던 '변덕' '변동' 많은 제자였습니다.
오늘도 우리 생활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님은 우리에게 작은 십자가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생각 없이 그런 기회를 뿌리치거나 무시하며 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평소의 작은 십자가를 다 이겨도 우리 앞에는 더 큰 십자가가 본고사처럼 기다리는데 평소 작은 십자가를 쉽게 포기하면서 훗날 크나 큰 결정적인 십자가 앞에서는 승리하여 평소 진 것을 모두 만회하겠다고 한다면 이 것이 바로 베드로 식입니다. 세상 시험은 그런 우연과 그런 재수가 통할 수도 있지만 정확무오한 주님의 인도와 우리를 길러 가는 과정에서는 '준비'가 된 것이 아니면 무조건 실패합니다. 다만 지난 날의 실패 때문에 이후로는 정말 실감 있게 제대로 준비하여 다음의 더 큰 십자가를 이길 수 있는 길이 있으므로 베드로의 실패는 우리의 안타까움이자 동시에 우리의 소망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그런 못난 사람이 되었으나 이후 닭 우는 소리만 들으면 그 때의 실패와 준비하지 못한 못난 자기를 탓하면서 면밀히 준비를 했고 네로 황제 때 로마의 전면적인 박해가 일어 날 때는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통과합니다.
>> 이완희 님이 쓰신 내용 <<
:
: 늘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
: 베드로가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을텐데
: 결국은 닭 울기 전 3번 부인하는 일이 일어나는 이 일이 사람이 어떠하길래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을 따라 죽겠다며 '결심'을 밝혔는데 그렇게 마음이라도 먹었고 그렇게 표시라도 했으니 그런 마음조차 없고 그런 표시조차 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고문 고형을 당하고 처형 당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온 우주에 왕 노릇을 하는 사탄이 자기가 부리는 천하의 귀신을 동원하여 '우주적' 고난으로 예수님이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주님을 붙들고 함께 가려는 자에게는 그 큰 환란이 함께 들이닥칩니다.
사탄이 천하에 제일 교묘한 귀신을 제자들 마음에 넣어 두려움과 함께 생애 애착욕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예를 들면 '예수님은 이미 죽게 되었으니 수 제자인 나라도 살아 남아야 훗날 이 복음을 전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미혹까지 주면서 그리고 눈 앞에는 유난히 무서워 보이는 군인들이 평소보다 더 무섭게 보이게 합니다. 사방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 오는 이 환란은 예수님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비록 예수님이라 해도 예수님의 인간 단독으로는 이길 수 없고 예수님 속에 계신 하나님을 붙들고 그 은혜로만 넘어 갈 수 있는 차원인데 베드로는 그냥 3년을 따라 다닌 주님을 향해 '의리'로 '인정'으로 '사정'으로 또 하루에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을 변동할 수 있는 그런 천하디 천한 자기 단독의 감성으로 '죽기까지' 따른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그 날 십자가를 동행하려 했다면
풍랑 이는 바다에서 '이왕 한 번 죽는 인생이고 저 주님은 창조주요 전능자시니 한 번 믿어 보자' 하고 뛰어 들었던 것처럼 평소 매 순간 그렇게 계속해서 실제 맡기고 순종함으로 죽으면 천국 가고 죽지 않으면 더 살려 두시는 것이니 믿음의 증거를 가지고 힘 있게 살자는 자세로 꾸준히 모든 고비를 넘겨 따라 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4복음을 면밀하게 살펴 보면 베드로는 이랬다 저랬다 번복하면서 그 십자가 직전까지 갔던 '변덕' '변동' 많은 제자였습니다.
오늘도 우리 생활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님은 우리에게 작은 십자가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생각 없이 그런 기회를 뿌리치거나 무시하며 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평소의 작은 십자가를 다 이겨도 우리 앞에는 더 큰 십자가가 본고사처럼 기다리는데 평소 작은 십자가를 쉽게 포기하면서 훗날 크나 큰 결정적인 십자가 앞에서는 승리하여 평소 진 것을 모두 만회하겠다고 한다면 이 것이 바로 베드로 식입니다. 세상 시험은 그런 우연과 그런 재수가 통할 수도 있지만 정확무오한 주님의 인도와 우리를 길러 가는 과정에서는 '준비'가 된 것이 아니면 무조건 실패합니다. 다만 지난 날의 실패 때문에 이후로는 정말 실감 있게 제대로 준비하여 다음의 더 큰 십자가를 이길 수 있는 길이 있으므로 베드로의 실패는 우리의 안타까움이자 동시에 우리의 소망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그런 못난 사람이 되었으나 이후 닭 우는 소리만 들으면 그 때의 실패와 준비하지 못한 못난 자기를 탓하면서 면밀히 준비를 했고 네로 황제 때 로마의 전면적인 박해가 일어 날 때는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통과합니다.
>> 이완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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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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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가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을텐데
: 결국은 닭 울기 전 3번 부인하는 일이 일어나는 이 일이 사람이 어떠하길래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베드로에 관해서 질문드려요
늘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을텐데
결국은 닭 울기 전 3번 부인하는 일이 일어나는 이 일이 사람이 어떠하길래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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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을텐데
결국은 닭 울기 전 3번 부인하는 일이 일어나는 이 일이 사람이 어떠하길래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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