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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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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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표현입니다. 중요한 대목을 '매끄럽게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P.209/12줄-18줄
▪'믿는 것은 그것도 마음의 행위가 아닌가?'

->
칼빈 이후 정통 교리의 입장은 몸의 행위만 행위로 보고 마음의 행위(생각)는 행위로 보지 않습니다. 성수주일과 연보는 행위로 보고, 마음으로 믿는 그 믿음은 행위로 보지 않고 행위의 반대인 믿음으로 봅니다. 우리는 몸의 행위나 마음의 행위나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그들은 마음을 영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물질인 육의 일부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육'은 오로지 '몸'뿐입니다. 우리에게 '육'은 '몸과 마음'입니다. 따라서 '믿는 것은 그 것도 마음의 행위가 아닌가?' 이렇게 반론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제기하는 이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때 그것을 인간 자유의사로 배척하지 않고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
몸으로 활동한 것은 인간의 노력이고, 마음으로 활동한 것은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오해입니다.


▪'배척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주는 것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 갈등이나 주관의 긴급행위가 주동되고 원인된 것은 아니다.'

->
몸이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행위이고, 마음이 믿음을 가지는 것도 행위입니다. 몸과 마음이 신앙 생활을 위해 움직인 것은 전부 '행위'며 '노력'입니다. 하나님의 전적 은혜라고 할 때 그 은혜에는 인간의 노력이 전혀 들어 가지 않습니다.


▪'마음의 생각조차도. 그 마음,그 자유성으로 받아들일수 있도록 성령이 감동감화의 역사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인격성을 살리면서 역사한 것이다.'

->
마음에게 행동이 필요하게 한 것은 인간 스스로 노력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대화의 상대, 반응하는 상대, 주고 받는 상대, 자유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 것은 전부 중생 후 건설구원 과정에서 일어 나는 일입니다. 믿지 않던 사람이 마음 속에 믿음을 가지게 되면 이는 이미 영을 중생 시켰고 그 영이 마음을 달래어 생기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믿음'을 가지려는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미 중생은 되었고 이제부터 건설구원의 노력입니다.


■*pkist/연구실/정리/기본구원/(2)기본구. 원의 결과/1영의중생

▪예수님을 믿었다면....이를 중생이라고 합니다.

->
일반적으로 말할 때 믿는 사람은 '중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알기도 전에 또 노력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그 사람을 씻어 그의 영을 살렸다는 말입니다.

->
보통 중생 순간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자기를 기억할 때는 출생 때가 아니라 몇 년이 지나야 합니다. 출생 순간이란 본인은 모릅니다. 부모가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은 그 어떤 형태로도 개입되지 않습니다.""심지어 마음으로 믿는 행위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
중생이란 죽은 영이 살아 나는 것이니 객관의 하나님이 살리는 것이지 우리 스스로 살아 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가 중생 된다고 하는데 교리적으로 이 표현을 할 때 교계의 전통적인 이해는 '마음으로 믿으려고 노력하다가 드디어 믿어지는 순간이 오면, 자기 마음이 믿었으니 중생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중생이란 죽은 마음이 살아 나는 것이 아니고 죽은 영이 살아 나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은 선악과를 먹은 뒤에도 죽지 않고 장례식 날까지 불신자도 살아서 움직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표현은,사람이 아는 면으로만 말을 한 것입니다......사람이 믿을 마음을 가질땐 이미 하나님께서 먼저 그 사람의 영을 무조건 은혜로 살려놓은 중생이 먼저 있었습니다.


▪백영희연구의 글과 pkist의 글의 내용이 다르다고 이해됩니다..윗부분의 김남식저자의 글은 기본구원 받은 자의 중생후의 건설구원이 아닌지요? 제가 저자의 글을 잘못 이해한 것인가요?

->
김남식 저자는 이 번 연구를 발표하면서 백 목사님의 교리가 너무 중대하고 깊기 때문에 외부인이 설명을 하다가 오해를 빚을 수 있기 때문에 공회 내부의 글을 최대한 인용했습니다. 질문 중에 비교해 주신 '백영희 연구'의 해당 내용은 우리 연구소에서 발표한 글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 LA 님이 쓰신 내용 <<
:
: 백영희연구 글을 읽고 의문이 생겨서..
:
: *백영희연구/ 구원의 종류/기본구원
: P209/12줄-18줄
: "믿는 것은 그것도 마음의 행위가 아닌가?
: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때 그것을 인간 자유의사로 배척하지 않고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배척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주는 것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 갈등이나 주관의 긴급행위가 주동되고 원인된 것은 아니다. 그 마음,그 자유성으로 받아들일수 있도록 성령이 감동감화의 역사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인격성을 살리면서 역사한 것이다."
:
: *Pakist/연구실/정리/기본구원/(2)기본구. 원의 결과/1영의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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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을 믿었다면....이를 중생이라고 합니다.사람이 알기도 전에 또 노력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그 사람을 씻어 그의 영을 살렸다는 말입니다.사람의 노력은 그 어떤 형태로도 개입되지 않습니다.""심지어 마음으로 믿는 행위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표현은,사람이 아는 면으로만 말을 한 것입니다......사람이 믿을 마음을 가질땐 이미 하나님께서 먼저 그 사람의 영을 무조건 은혜로 살려놓은 중생이 먼저 있었습니다.
:
:
: 백영희연구의 글과 pkist의 글의 내용이 다르다고 이해됩니다..윗부분의 김남식저자의 글은 기본구원 받은 자의 중생후의 건설구원이 아닌지요? 제가 저자의 글을 잘못 이해한 것인가요?
:
:
: 명쾌함을 느끼며 백영희연구를 읽었습니다. 손에서 책을 놓기 싫었습니다.
'백영희 연구' p.209의 표현
백영희연구 글을 읽고 의문이 생겨서..

*백영희연구/ 구원의 종류/기본구원
P209/12줄-18줄
"믿는 것은 그것도 마음의 행위가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때 그것을 인간 자유의사로 배척하지 않고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배척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주는 것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 갈등이나 주관의 긴급행위가 주동되고 원인된 것은 아니다. 그 마음,그 자유성으로 받아들일수 있도록 성령이 감동감화의 역사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인격성을 살리면서 역사한 것이다."

*Pakist/연구실/정리/기본구원/(2)기본구. 원의 결과/1영의중생

예수님을 믿었다면....이를 중생이라고 합니다.사람이 알기도 전에 또 노력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그 사람을 씻어 그의 영을 살렸다는 말입니다.사람의 노력은 그 어떤 형태로도 개입되지 않습니다.""심지어 마음으로 믿는 행위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표현은,사람이 아는 면으로만 말을 한 것입니다......사람이 믿을 마음을 가질땐 이미 하나님께서 먼저 그 사람의 영을 무조건 은혜로 살려놓은 중생이 먼저 있었습니다.


백영희연구의 글과 pkist의 글의 내용이 다르다고 이해됩니다..윗부분의 김남식저자의 글은 기본구원 받은 자의 중생후의 건설구원이 아닌지요? 제가 저자의 글을 잘못 이해한 것인가요?


명쾌함을 느끼며 백영희연구를 읽었습니다. 손에서 책을 놓기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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