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죄, 실족케 하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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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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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3 08:22
1. 남녀의 이성 감정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 짐으로 타락한 우리에게 다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세계를 그리며 구원의 건설에 나설 수 있도록 그 출발의 기회를 주신 것이 부부제도입니다. 겉으로는 아이를 낳아 세대가 이어 지며 서로 협조하여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 가도록 주신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남녀가 부부로 하나 되어 사는 생활 속에서 주님과 하나 될 영생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돌아 보며 주님과 하나 되어 살 나라를 소망하고 그 나라에 맞는 내가 되도록 배우고 훈련하는 세계가 바로 가정입니다.
그런데 주님과 우리는 그 누구도 끼어 들지 않고 오로지 영원토록 단 둘만으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연습을 하려면 땅 위에서 부부로 살면서 오로지 자기 남자 하나만을, 그리고 자기 여자 하나만을 찾고 그 사람과만 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하나뿐인 자기 상대와 살려면 밋밋해서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우리에게 남녀의 이성에 끌리는 마음을 넣어 두셨습니다. 이 이성의 감정은 자기 남자 자기 여자 하나에게만 쏟아야 하고 이 것이 쏟아 질 때 두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계산할 수 없도록 참으로 신기하게 하나 되어 살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성에 대한 감정이란 부부 두 사람을 붙여 놓는 본드와 같습니다.
2. 어디로 가서 붙어야 할 것인가?
20대라는 나이는 이제 붙어야 할 적기입니다. 그래서 본드의 상태도 최상입니다. 이 상황에서 자기 남자나 자기 여자와 들어 붙으면 딱 좋은데, 문제는 본드라는 것은 돈도 붙고 먼지도 붙고 옷이나 머리카락에도 붙으면 죽자고 떨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어디에 붙어야 하는가? 옛날에 아무 남자에게나 들어 붙을 수 있는 사람을 기생이라 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는 창녀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유흥업소 종사자라고 표현을 순화 시켰습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습니다. 제 남자가 아닌데도 어디나 들어 붙습니다. 또 들어 붙기 위해서 자기를 꾸밉니다.
물론 주님은 자기 평생의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감추어 두셨습니다.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르고 만일 만나게 된다면 이성의 감정이 양 쪽을 붙게 만듭니다. 그래서 평소 생활 속에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짝을 만날 때 흙먼지가 들어 가서 만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자기를 씻고 다듬는 것은 좋습니다. 그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며 나의 충성이며 나를 관리하는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지나 가는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 보게 만들 정도가 되면 이 것은 제 짝을 만날 때 미안하지 않도록 자기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파는 여자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자기 어머니가 자기 아버지는 눈에 보이지 않고 이웃집 아저씨나 직장의 동료들 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지나치게 단장을 한다면 이 상태를 어머니라 해야 할까요? 아내라 해야 할까요?
언제 누구를 만나도 상대방과 바로 비벼 댈 수 있도록, 자기 옷의 곳곳을 잘라 내고 열어 놓고 얇게 만들어 순식간에 자기 몸을 다 내놓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한 상황이라는 것은 업소 여자의 근무 상태입니다. 요즘은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조차 그들과 대화할 때 시선을 좌우 15도 정도 옆을 봐야 할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제 남자 하나, 제 여자 하나만 만나서 그 쪽에만 들어 붙어 평생토록 지겹지 않도록 떨어지지 않도록 남자와 여자 쪽에 본드 칠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본드칠이 된 이성의 감정을 가지고 거리를 휩쓸고 강의실을 휘두르고 공사석을 막론하고 밤낮 없이 온 데를 쏘다니고 있으니 이 정도라면 노아 때 홍수로 천하를 대청소하듯 오늘 우리의 거리와 사회와 우리 모든 사람들은 쓸어 버려야 할 상황으로 생각합니다.
3. '단정함'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무 남자와 놀아 나는 방탕한 여자, 아무 남자에게는 돈만 받으면 자기를 맡기는 업소의 여성이라면 '단정'이라는 단어가 원수일 것입니다. 단정해야 한다는 표현은 영업 방해가 되고 개인의 죄 짓는 자유를 막는 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 자신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은 자기 남자 하나가 있고 그 남자에게만 자신을 열고 그 남자와만 본드칠을 해서 평생 떨어 질 수 없는 부부로 살려고 한다면, 그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 여성은 자신의 외모를 '단정함'으로 가꿀 듯합니다.
상대방에게 더럽고 흐트러지게 보이는 것은 실례가 됩니다. 상대방의 이성에 대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상대방을 유혹하는 죄가 됩니다. 자기와 하나 될 평생의 자기 사람과 만나는 그 날을 준비하며 또한 사회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 위해 자기를 '실무적으로 정성스럽게' 준비한다면 그 이름은 아마 '단정'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정함이라는 단어를 눈 앞에 두고 그 단어를 기준으로 삼고 자신의 옷과 몸을 살피면 불신자에게도 존경 받고 하나님 앞에는 복 받을 말세의 성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속에는 온갖 것을 다 담고 있으나 겉만 잘 가꾸어 순식간에 남의 시선을 끌어다가 자기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치장은 유흥업소 종사자입니다. 그에게는 그 젊은 순간 한 번의 몸 짓 때문에 평생 부부와 가정과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께서 뿌리를 뽑아 놓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러할 때 주님 생각함으로 자신을 절제하고 자신을 바르게 단장한 사람에게는 이 말세에 보석같은 분이 되고 주님은 특별한 은혜를 더하실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에 앞 서 일단 여성이 눈에 띄게 입고 노출이 심하면 범죄의 대상이 됩니다. 자기의 안전을 위해서도 조심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4. 성경으로 좀 살펴 보겠습니다.
이성에 관련 된 죄는 마음의 죄와 육체의 죄를 함께 놓고 금했습니다. 마음이 가면 몸은 따라 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가 다 같은 원리지만 그 중에서도 이성의 죄는 마음이 동하면 본능적으로 그리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쪽으로 휩쓸려 가기 때문입니다.
마5:28에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셨는데
마18:6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천하에 매력적인 사람이 있어도 세월을 이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추해 집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 될지라도 질문자 나이에는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아름다운 법입니다.
꿀단지는 야물게 싸고 덮어놓아도 개미가 모입니다. 똥단지는 아무리 밀봉해도 파리가 들끓습니다.
20대 질문자는 주변에서 가장 인물이 없다는 말을 들어도 과거 우리 나라 최고의 미모를 가졌다는 70대와 비교하면 비교할 수도 없는 좋은 용모일 것입니다. 20대는 흙먼지를 뒤집어 쓰도 돋보일 수밖에 없는데 이 것은 자기에게 부부로 맺어 주실 상대방을 만날 수 있도록 주신 자연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런 20대가 꾸미려고 든다면 그 것은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고 그들의 눈과 마음에 나쁜 생각을 하도록 돕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자연스럽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남들이 공연히 넘치는 마음으로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책임이 없으나, 내가 돋보이게 하고 남의 시선을 끌어 오도록 노력을 해서 그들 마음에 죄를 짓게 된다면 그 모든 행동을 영원히 불사르는 곳이 지옥인데, 믿는 우리의 행동이라 해도 죄의 행동은 영원히 불에 태워야 하고 질문자는 영원토록 천국에서 자신의 20대 옷차림을 돌아 보며 영원무궁토록 주님 앞에 머리 숙여 죄송할 것입니다.
* 이 게시판의 지난 날 이런 문제로 여러 말씀을 나눈 기억이 있습니다. 검색으로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
: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여성입니다. 교회에서 반사를 맡고 있습니다.
: 이제 날씨가 더워져서 거리에 나가보면 다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옷들도 짧아지고 더 가벼운 옷들을 입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 요즘 옷 입는것에 대해서 너무 고민이 많습니다.
: 저는 사실 치마는 거의 안 입는 편이지만 작년에 처음 짧은 바지를 사서 입었습니다.
: 항상 짧아도 무릎에서 한뼘 올라온 정도였지만 작년 여름에 남들이 입는 짧은 바지를 처음으로 입었습니다.
:
: 근데 계속 속에서 뭔가 양심에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다들 뭐 그렇게 입는데 교회에서도 거리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입는데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러고나서 안 좋은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제 신앙양심으로는 하나님이 옷 입는것에 대해서 징계를 하신거같아 회개를 하고 그 이후로 지금도 짧은 바지들은 다 서랍에 넣어놓고 집에서 조차도 입지 않고 있습니다.
:
: 근데 자꾸 서랍을 열때마다 그 짧은 바지들이 보이면, 또 밖을 나가거나 교회를 가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사람들의 옷 입은 것을 볼때 마다 이뻐보이고 나도 저렇게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런 옷을 교회에서만 안 입는다고 하더라도 반사인 제가 애들 눈을 피해서입는다는게 양심에 찔려서 입지 말아야하지 하고는 그런 유혹들을 떨쳐버릴려고 합니다. 또, 교회 몇몇분들도 저에게 제가 처녀이다 보니깐 옷 입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서 짧은 것을 입으면 남자를 미혹시키는 죄가 된다는 설명을 종종 해주셨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입지 않을려고 합니다.
:
: 그래도 자꾸 이 두 생각 사이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여서, 확실히! 단정을 지어놓고 싶습니다. 왜 짧은 옷을 입으면 안되는지의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 짐으로 타락한 우리에게 다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세계를 그리며 구원의 건설에 나설 수 있도록 그 출발의 기회를 주신 것이 부부제도입니다. 겉으로는 아이를 낳아 세대가 이어 지며 서로 협조하여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 가도록 주신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남녀가 부부로 하나 되어 사는 생활 속에서 주님과 하나 될 영생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돌아 보며 주님과 하나 되어 살 나라를 소망하고 그 나라에 맞는 내가 되도록 배우고 훈련하는 세계가 바로 가정입니다.
그런데 주님과 우리는 그 누구도 끼어 들지 않고 오로지 영원토록 단 둘만으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연습을 하려면 땅 위에서 부부로 살면서 오로지 자기 남자 하나만을, 그리고 자기 여자 하나만을 찾고 그 사람과만 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하나뿐인 자기 상대와 살려면 밋밋해서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우리에게 남녀의 이성에 끌리는 마음을 넣어 두셨습니다. 이 이성의 감정은 자기 남자 자기 여자 하나에게만 쏟아야 하고 이 것이 쏟아 질 때 두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계산할 수 없도록 참으로 신기하게 하나 되어 살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성에 대한 감정이란 부부 두 사람을 붙여 놓는 본드와 같습니다.
2. 어디로 가서 붙어야 할 것인가?
20대라는 나이는 이제 붙어야 할 적기입니다. 그래서 본드의 상태도 최상입니다. 이 상황에서 자기 남자나 자기 여자와 들어 붙으면 딱 좋은데, 문제는 본드라는 것은 돈도 붙고 먼지도 붙고 옷이나 머리카락에도 붙으면 죽자고 떨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어디에 붙어야 하는가? 옛날에 아무 남자에게나 들어 붙을 수 있는 사람을 기생이라 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는 창녀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유흥업소 종사자라고 표현을 순화 시켰습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습니다. 제 남자가 아닌데도 어디나 들어 붙습니다. 또 들어 붙기 위해서 자기를 꾸밉니다.
물론 주님은 자기 평생의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감추어 두셨습니다.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르고 만일 만나게 된다면 이성의 감정이 양 쪽을 붙게 만듭니다. 그래서 평소 생활 속에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짝을 만날 때 흙먼지가 들어 가서 만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자기를 씻고 다듬는 것은 좋습니다. 그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며 나의 충성이며 나를 관리하는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지나 가는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 보게 만들 정도가 되면 이 것은 제 짝을 만날 때 미안하지 않도록 자기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파는 여자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자기 어머니가 자기 아버지는 눈에 보이지 않고 이웃집 아저씨나 직장의 동료들 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지나치게 단장을 한다면 이 상태를 어머니라 해야 할까요? 아내라 해야 할까요?
언제 누구를 만나도 상대방과 바로 비벼 댈 수 있도록, 자기 옷의 곳곳을 잘라 내고 열어 놓고 얇게 만들어 순식간에 자기 몸을 다 내놓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한 상황이라는 것은 업소 여자의 근무 상태입니다. 요즘은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조차 그들과 대화할 때 시선을 좌우 15도 정도 옆을 봐야 할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제 남자 하나, 제 여자 하나만 만나서 그 쪽에만 들어 붙어 평생토록 지겹지 않도록 떨어지지 않도록 남자와 여자 쪽에 본드 칠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본드칠이 된 이성의 감정을 가지고 거리를 휩쓸고 강의실을 휘두르고 공사석을 막론하고 밤낮 없이 온 데를 쏘다니고 있으니 이 정도라면 노아 때 홍수로 천하를 대청소하듯 오늘 우리의 거리와 사회와 우리 모든 사람들은 쓸어 버려야 할 상황으로 생각합니다.
3. '단정함'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무 남자와 놀아 나는 방탕한 여자, 아무 남자에게는 돈만 받으면 자기를 맡기는 업소의 여성이라면 '단정'이라는 단어가 원수일 것입니다. 단정해야 한다는 표현은 영업 방해가 되고 개인의 죄 짓는 자유를 막는 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 자신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은 자기 남자 하나가 있고 그 남자에게만 자신을 열고 그 남자와만 본드칠을 해서 평생 떨어 질 수 없는 부부로 살려고 한다면, 그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 여성은 자신의 외모를 '단정함'으로 가꿀 듯합니다.
상대방에게 더럽고 흐트러지게 보이는 것은 실례가 됩니다. 상대방의 이성에 대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상대방을 유혹하는 죄가 됩니다. 자기와 하나 될 평생의 자기 사람과 만나는 그 날을 준비하며 또한 사회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 위해 자기를 '실무적으로 정성스럽게' 준비한다면 그 이름은 아마 '단정'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정함이라는 단어를 눈 앞에 두고 그 단어를 기준으로 삼고 자신의 옷과 몸을 살피면 불신자에게도 존경 받고 하나님 앞에는 복 받을 말세의 성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속에는 온갖 것을 다 담고 있으나 겉만 잘 가꾸어 순식간에 남의 시선을 끌어다가 자기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치장은 유흥업소 종사자입니다. 그에게는 그 젊은 순간 한 번의 몸 짓 때문에 평생 부부와 가정과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께서 뿌리를 뽑아 놓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러할 때 주님 생각함으로 자신을 절제하고 자신을 바르게 단장한 사람에게는 이 말세에 보석같은 분이 되고 주님은 특별한 은혜를 더하실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에 앞 서 일단 여성이 눈에 띄게 입고 노출이 심하면 범죄의 대상이 됩니다. 자기의 안전을 위해서도 조심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4. 성경으로 좀 살펴 보겠습니다.
이성에 관련 된 죄는 마음의 죄와 육체의 죄를 함께 놓고 금했습니다. 마음이 가면 몸은 따라 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가 다 같은 원리지만 그 중에서도 이성의 죄는 마음이 동하면 본능적으로 그리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쪽으로 휩쓸려 가기 때문입니다.
마5:28에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셨는데
마18:6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천하에 매력적인 사람이 있어도 세월을 이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추해 집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 될지라도 질문자 나이에는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아름다운 법입니다.
꿀단지는 야물게 싸고 덮어놓아도 개미가 모입니다. 똥단지는 아무리 밀봉해도 파리가 들끓습니다.
20대 질문자는 주변에서 가장 인물이 없다는 말을 들어도 과거 우리 나라 최고의 미모를 가졌다는 70대와 비교하면 비교할 수도 없는 좋은 용모일 것입니다. 20대는 흙먼지를 뒤집어 쓰도 돋보일 수밖에 없는데 이 것은 자기에게 부부로 맺어 주실 상대방을 만날 수 있도록 주신 자연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런 20대가 꾸미려고 든다면 그 것은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고 그들의 눈과 마음에 나쁜 생각을 하도록 돕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자연스럽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남들이 공연히 넘치는 마음으로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책임이 없으나, 내가 돋보이게 하고 남의 시선을 끌어 오도록 노력을 해서 그들 마음에 죄를 짓게 된다면 그 모든 행동을 영원히 불사르는 곳이 지옥인데, 믿는 우리의 행동이라 해도 죄의 행동은 영원히 불에 태워야 하고 질문자는 영원토록 천국에서 자신의 20대 옷차림을 돌아 보며 영원무궁토록 주님 앞에 머리 숙여 죄송할 것입니다.
* 이 게시판의 지난 날 이런 문제로 여러 말씀을 나눈 기억이 있습니다. 검색으로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
: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여성입니다. 교회에서 반사를 맡고 있습니다.
: 이제 날씨가 더워져서 거리에 나가보면 다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옷들도 짧아지고 더 가벼운 옷들을 입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 요즘 옷 입는것에 대해서 너무 고민이 많습니다.
: 저는 사실 치마는 거의 안 입는 편이지만 작년에 처음 짧은 바지를 사서 입었습니다.
: 항상 짧아도 무릎에서 한뼘 올라온 정도였지만 작년 여름에 남들이 입는 짧은 바지를 처음으로 입었습니다.
:
: 근데 계속 속에서 뭔가 양심에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다들 뭐 그렇게 입는데 교회에서도 거리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입는데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러고나서 안 좋은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제 신앙양심으로는 하나님이 옷 입는것에 대해서 징계를 하신거같아 회개를 하고 그 이후로 지금도 짧은 바지들은 다 서랍에 넣어놓고 집에서 조차도 입지 않고 있습니다.
:
: 근데 자꾸 서랍을 열때마다 그 짧은 바지들이 보이면, 또 밖을 나가거나 교회를 가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사람들의 옷 입은 것을 볼때 마다 이뻐보이고 나도 저렇게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런 옷을 교회에서만 안 입는다고 하더라도 반사인 제가 애들 눈을 피해서입는다는게 양심에 찔려서 입지 말아야하지 하고는 그런 유혹들을 떨쳐버릴려고 합니다. 또, 교회 몇몇분들도 저에게 제가 처녀이다 보니깐 옷 입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서 짧은 것을 입으면 남자를 미혹시키는 죄가 된다는 설명을 종종 해주셨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입지 않을려고 합니다.
:
: 그래도 자꾸 이 두 생각 사이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여서, 확실히! 단정을 지어놓고 싶습니다. 왜 짧은 옷을 입으면 안되는지의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옷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여성입니다. 교회에서 반사를 맡고 있습니다.
이제 날씨가 더워져서 거리에 나가보면 다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옷들도 짧아지고 더 가벼운 옷들을 입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옷 입는것에 대해서 너무 고민이 많습니다.
저는 사실 치마는 거의 안 입는 편이지만 작년에 처음 짧은 바지를 사서 입었습니다.
항상 짧아도 무릎에서 한뼘 올라온 정도였지만 작년 여름에 남들이 입는 짧은 바지를 처음으로 입었습니다.
근데 계속 속에서 뭔가 양심에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다들 뭐 그렇게 입는데 교회에서도 거리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입는데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러고나서 안 좋은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제 신앙양심으로는 하나님이 옷 입는것에 대해서 징계를 하신거같아 회개를 하고 그 이후로 지금도 짧은 바지들은 다 서랍에 넣어놓고 집에서 조차도 입지 않고 있습니다.
근데 자꾸 서랍을 열때마다 그 짧은 바지들이 보이면, 또 밖을 나가거나 교회를 가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사람들의 옷 입은 것을 볼때 마다 이뻐보이고 나도 저렇게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런 옷을 교회에서만 안 입는다고 하더라도 반사인 제가 애들 눈을 피해서입는다는게 양심에 찔려서 입지 말아야하지 하고는 그런 유혹들을 떨쳐버릴려고 합니다. 또, 교회 몇몇분들도 저에게 제가 처녀이다 보니깐 옷 입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서 짧은 것을 입으면 남자를 미혹시키는 죄가 된다는 설명을 종종 해주셨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입지 않을려고 합니다.
그래도 자꾸 이 두 생각 사이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여서, 확실히! 단정을 지어놓고 싶습니다. 왜 짧은 옷을 입으면 안되는지의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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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여성입니다. 교회에서 반사를 맡고 있습니다.
이제 날씨가 더워져서 거리에 나가보면 다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옷들도 짧아지고 더 가벼운 옷들을 입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옷 입는것에 대해서 너무 고민이 많습니다.
저는 사실 치마는 거의 안 입는 편이지만 작년에 처음 짧은 바지를 사서 입었습니다.
항상 짧아도 무릎에서 한뼘 올라온 정도였지만 작년 여름에 남들이 입는 짧은 바지를 처음으로 입었습니다.
근데 계속 속에서 뭔가 양심에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다들 뭐 그렇게 입는데 교회에서도 거리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입는데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러고나서 안 좋은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제 신앙양심으로는 하나님이 옷 입는것에 대해서 징계를 하신거같아 회개를 하고 그 이후로 지금도 짧은 바지들은 다 서랍에 넣어놓고 집에서 조차도 입지 않고 있습니다.
근데 자꾸 서랍을 열때마다 그 짧은 바지들이 보이면, 또 밖을 나가거나 교회를 가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사람들의 옷 입은 것을 볼때 마다 이뻐보이고 나도 저렇게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런 옷을 교회에서만 안 입는다고 하더라도 반사인 제가 애들 눈을 피해서입는다는게 양심에 찔려서 입지 말아야하지 하고는 그런 유혹들을 떨쳐버릴려고 합니다. 또, 교회 몇몇분들도 저에게 제가 처녀이다 보니깐 옷 입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서 짧은 것을 입으면 남자를 미혹시키는 죄가 된다는 설명을 종종 해주셨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입지 않을려고 합니다.
그래도 자꾸 이 두 생각 사이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여서, 확실히! 단정을 지어놓고 싶습니다. 왜 짧은 옷을 입으면 안되는지의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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