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희와 세상 정치권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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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와 세상 정치권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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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주간은 '백영희 설교'를 복습하는 공회들의 집회가 진행 되고 있습니다. 2 곳에서는 공회들의 공식 집회이고 그 외 개별 교회나 여러 차원에서 80년대 말씀들을 복습하고 있을 것이니 질문 내용은 자연스럽게 제기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2 곳에서 진행 되는 공회 집회는 1986년과 1987년 설교를 복습하는데 바로 이 시기가 우리 나라로서는 해방 직후에 잠깐 나타 났던 상황처럼 무정부상태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안기부 또는 정보부라는 이름의 과거 군사정권의 정보기관이 반정부 운동을 감시하던 때와 달리 소위 민주화 세력의 이름을 내 건 당시의 야당과 운동권도 그들을 반대하던 운동을 그들 체계로 파악하고 대응했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1. 국가 정보기관
우선 당시 국가정보기관은 군의 보안사와 함께 민간의 정보부(안기부)가 정점에 있었고 그 하부에는 전국 경찰서에 정보과에 관할 지역의 교회를 사찰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 시절에는 국기배례와 새마을운동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총공회 전체가 사찰을 당한 적이 있는데, 실은 김영삼 대통령이 70년대 정권과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바람에 공회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죽음에 직접 원인이 부마사태 때문에 TV를 시청하다 변을 당했고, 그 부마사태의 핵심이 김영삼 의원의 국회의원 면직 때문이었는데 김영삼 당시 야당 총재는 부산 서구를 기반으로 했고 서부교회는 부산 서구의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정보의 초보만 알아도 어느 정도로 의심 받고 감시를 당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듯합니다.

2. 야당, 재야세력
그런데 실제 서부교회를 지켜 본 더 위협적인 세력은 정권의 정보부가 아니라 부산을 최대 발판으로 삼고 반정부 활동을 벌이는 야당과 재야세력들이었습니다. 설교록 검색으로 간단히 살펴 봐도 백 목사님은 국기배례나 교회를 정권이 직접 손을 대려 하지 않으면 보수 색채가 굉장히 강합니다. 교회의 원래 신앙 성향 때문에 그런데도 세상 정치가들은 극보수적 인물로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 대통령을 국부라고 하며 극히 칭찬하였고 오히려 그 반대세력을 극단적으로 비판해 왔습니다. 서울을 빼놓고 전국 최대 교회가 야당 발판에서 친정부 반야당 반학생데모적 발언을 쏟아 놓고 있었으니 백 목사님의 언행을 지켜 보는 정작 최대 최악의 적대 세력은 국가의 정보기관이 아니라 야당 민주화 세력들이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들은 집회 후 다시 적겠습니다.
또한 현재처럼 좌우 대치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 신앙의 원래에 충실하며 또한 세상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므로 더 이상 적을 것은 없을 듯합니다. 공회 내부에도 극단적인 반정부 세력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앙적으로는 극히 공회적이나 세상 정치에 대한 오판 때문에 그들 주변에 이 노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언행들을 해 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죄를 지을 기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 번 질문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3. 구체적으로,
1980년대 연구부 직원 대부분은 부산의 서부교회 내부 직원들이었습니다. 일부는 연구소 외적 업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부산의 정보 기관이 주로 사찰하던 중에 나온 구체적 증언입니다. 재야의 종교 사찰을 하던 담당자가 '신문 방송에서 양심 세력이라고 떠드는 이들이 있으면 정보 기관이 소리 없이 뒷조사를 하게 되는데 재산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봐도 약점이 참으로 많아서 꼭 필요할 때는 자료를 제시하면 아무 소리 없이 그다음부터는 입을 다무는데, 백 목사님 뒷조사는 아무리 해 봐야 아예 나오지 않는다. 나오지도 않고 나올 리도 없어 이렇게 말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 구도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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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 설교를 듣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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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 생전에 부산서부교회에서 목회하실 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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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년에 순교하셨으니 80년대 민주화운동이 거셀 적에 목회하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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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교회라고 하여도 장년 5,000 명 그리고 주일학교 12,000 명이 매주 모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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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은 규모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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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기관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규모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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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군다나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부마사태 등을 비롯해 민주화 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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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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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부에서 교인을 위장하여 교회 탐문을 해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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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민주화 운동 이런 것은 백 목사님 지도 하 서부교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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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당찮은 일이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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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기관 역시 후진적이었을 때라 사회 곳곳에 프락치를 심은 시절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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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라도 부탁을 해봅니다.
있음직한 상상 ( 안기부 )
백 목사님 설교를 듣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부산서부교회에서 목회하실 적에..

89년에 순교하셨으니 80년대 민주화운동이 거셀 적에 목회하신 셈입니다.

아무리 교회라고 하여도 장년 5,000 명 그리고 주일학교 12,000 명이 매주 모인다는 것은

적은 규모가 아닙니다.

국가기관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규모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부마사태 등을 비롯해 민주화 운동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었습니다.

안기부에서 교인을 위장하여 교회 탐문을 해보지 않았을까요.

물론 민주화 운동 이런 것은 백 목사님 지도 하 서부교회에서는

가당찮은 일이었겠습니다만,

정보기관 역시 후진적이었을 때라 사회 곳곳에 프락치를 심은 시절아니겠습니까.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라도 부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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