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교회 장로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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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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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23:10
백영희 목사님 생전에 계신 장로님들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대부분 소천하신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서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집사 장로까지 되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박영태장로님, 서문행장로님, 홍천화장로님 등
(서부교회 장로님 명단)
'백영희 생전 서부교회 장로님'이라고 한다면 좀 애매하지만 일단 연도와 명단이 확실한 분은 16명입니다.
1973년: 이동근
1980년: 김기수 강상영 손성준 이춘영 백도광 황길태 박영태
1982년: 정순환 홍종복 성정수 주덕원 이창수
1987년: 구의남 서문행
1989년: 이상원
(상기 인물들 중에)
* '초기화면/총공회/자료/'에서 검색할 수 있는 경우
김기수, 강상영, 백도광, 황길태, 정순환
* '총공회/자료'와 함께 '소식' 등에서 검색할 수 있는 경우
이동근(서봉월) 손성준(손권식) 이춘영(이진석) 주덕원 구의남(조순자)
* 설교록에서 검색을 통해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경우
상기 성함으로 5천 개의 설교록에 검색을 해보면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 기타 출간물
'서부교회 주일학교 - 기독지혜사'의 내용이 '초기화면/자료/출간목록'에 있는데 구의남(조순자) 서문행 장로님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 전체적으로 이 사이트의 상단 제일 우측에 사이트 전체 검색을 통해 참고하실 수도 있습니다.
(일단 세세한 안내는)
바쁜 내용이 아닌 듯하고, 다른 자료들을 살필 기회도 드린 듯하여 시간을 좀 가지고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 곳의 소개가 완료 되고 나면, 서부교회 교인이라 하셨으니 서부교회 곳곳에 질문을 해서 자료화를 하시고 이 곳에 도움을 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는 눈에 담지 못할 별별 기록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죄악 세상에 살기 때문에 필요해서 적어 주셨습니다.
(기준이 좀 애매)
그런데 보통 목사님의 80년대를 기억하는 분이 지금은 대부분이고 질문 내용도 목사님 생전이라 한 분위기를 볼 때 80년대 말일 듯합니다. 이동근 장로님은 1984년에 목사님이 되셨기 때문에 포함이 애매하고, 타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으나 서부교회 장로님으로 예우하거나 실제 활동한 분으로 1986년의 전호철 장로님 등 여러 분이 계십니다. 전 장로님은 경찰 간부로 훗날 경찰서장으로 재임하여 기록을 찾기 쉬우나 그 외에는 이름만 남아 있는 정도입니다. 항상 죄송한 것은 서부교회와 공회의 분위기에서 신상 파악은 여러 면으로 파악이 어렵습니다. 이 곳의 취지를 이해하시는 분들은 만사를 다 공개해 주시고, 자기 자랑은 생명 걸고 못한다는 소신이 계신 분들은 질문 자체를 분노하시기도 하며, 심지어 자기의 약점이 새어 나갈까 미리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분, 심지어 이 곳이 잘 될까 싶어 부공2처럼 작정하고 설교 필기까지 감추는 분들도 계십니다. 공회 정도의 신앙에서만 발견 되는 참으로 특이한 상황인데, 두루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이 곳은 이 노선 연구와 설교록의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해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두 공개하는 것에 주력해 왔습니다. 아주 가끔 우연히 묻혀 있는 분도 계십니다. 만사 이해하고 이 곳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부족이나 중요한 분이 누락 된 경우, 댓글이나 연구소 연락처로 적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김현찬 김효순'의 성함은 무척 중요한데 이 곳에서 요압처럼 적을까 싶어 가리기도 하지만 김효순은 요압의 길을 갔으나 김현찬은 훗날 전향하여 정말 귀하게 살다 갔습니다. 김효순을 이 곳이 요압이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음을 반론하기 위해서라도 자료를 제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백영희 생전 서부교회 장로님'이라고 한다면 좀 애매하지만 일단 연도와 명단이 확실한 분은 16명입니다.
1973년: 이동근
1980년: 김기수 강상영 손성준 이춘영 백도광 황길태 박영태
1982년: 정순환 홍종복 성정수 주덕원 이창수
1987년: 구의남 서문행
1989년: 이상원
(상기 인물들 중에)
* '초기화면/총공회/자료/'에서 검색할 수 있는 경우
김기수, 강상영, 백도광, 황길태, 정순환
* '총공회/자료'와 함께 '소식' 등에서 검색할 수 있는 경우
이동근(서봉월) 손성준(손권식) 이춘영(이진석) 주덕원 구의남(조순자)
* 설교록에서 검색을 통해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경우
상기 성함으로 5천 개의 설교록에 검색을 해보면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 기타 출간물
'서부교회 주일학교 - 기독지혜사'의 내용이 '초기화면/자료/출간목록'에 있는데 구의남(조순자) 서문행 장로님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 전체적으로 이 사이트의 상단 제일 우측에 사이트 전체 검색을 통해 참고하실 수도 있습니다.
(일단 세세한 안내는)
바쁜 내용이 아닌 듯하고, 다른 자료들을 살필 기회도 드린 듯하여 시간을 좀 가지고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 곳의 소개가 완료 되고 나면, 서부교회 교인이라 하셨으니 서부교회 곳곳에 질문을 해서 자료화를 하시고 이 곳에 도움을 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는 눈에 담지 못할 별별 기록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죄악 세상에 살기 때문에 필요해서 적어 주셨습니다.
(기준이 좀 애매)
그런데 보통 목사님의 80년대를 기억하는 분이 지금은 대부분이고 질문 내용도 목사님 생전이라 한 분위기를 볼 때 80년대 말일 듯합니다. 이동근 장로님은 1984년에 목사님이 되셨기 때문에 포함이 애매하고, 타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으나 서부교회 장로님으로 예우하거나 실제 활동한 분으로 1986년의 전호철 장로님 등 여러 분이 계십니다. 전 장로님은 경찰 간부로 훗날 경찰서장으로 재임하여 기록을 찾기 쉬우나 그 외에는 이름만 남아 있는 정도입니다. 항상 죄송한 것은 서부교회와 공회의 분위기에서 신상 파악은 여러 면으로 파악이 어렵습니다. 이 곳의 취지를 이해하시는 분들은 만사를 다 공개해 주시고, 자기 자랑은 생명 걸고 못한다는 소신이 계신 분들은 질문 자체를 분노하시기도 하며, 심지어 자기의 약점이 새어 나갈까 미리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분, 심지어 이 곳이 잘 될까 싶어 부공2처럼 작정하고 설교 필기까지 감추는 분들도 계십니다. 공회 정도의 신앙에서만 발견 되는 참으로 특이한 상황인데, 두루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이 곳은 이 노선 연구와 설교록의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해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두 공개하는 것에 주력해 왔습니다. 아주 가끔 우연히 묻혀 있는 분도 계십니다. 만사 이해하고 이 곳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부족이나 중요한 분이 누락 된 경우, 댓글이나 연구소 연락처로 적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김현찬 김효순'의 성함은 무척 중요한데 이 곳에서 요압처럼 적을까 싶어 가리기도 하지만 김효순은 요압의 길을 갔으나 김현찬은 훗날 전향하여 정말 귀하게 살다 갔습니다. 김효순을 이 곳이 요압이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음을 반론하기 위해서라도 자료를 제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홍천화 장로님,
80년대 기준으로 따뜻한 마음과 맑은 생활로 누가 봐도 참 복 되게 덕 되게 살았습니다.
동사무소 사무장으로 계셨는데 동장 바로 밑에서 동 업무를 총괄하는 분입니다. 서부교회는 교인이 많아도 공무원이 거의 없었고 또 실무를 잘 파악하는 직원들이 거의 없을 때여서 서부교회와 공회에 실제 필요한 업무를 문의하고 도움 받은 적이 많았습니다. 1987년 서영준 목사님 돌아 가신 뒤 사모님의 학원 사업이 시작 될 때도 소리 없이 도와 주셨고, 1989년 백 목사님 장례 때 묘소 때문에 그 짧은 장례 기간에 아주 민감하게 제기 된, 교회 내 묘소 추진을 두고 행정적으로 문제가 되어 신앙이나 인심 문제를 배제하고 너무 파급이 많을 것이라고 안내를 해 주셨는데, 연륜과 함께 행정 실무를 짚어 주신 그 점 때문에 장례의 전체 방향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따님이 홍용인 사모님이고 사위가 박성일 목사님이며, 두 분이 부산대 80년대 학번에 졸업도 그 시기였고 서부교회의 백 목사님 사후를 맡은 중간반 반사로 열심히 충성했습니다. 지금은 부산 경남 지역에서 '신앙 상담' 분야에서 출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길을 함께 하지 못해서 아깝지만 이왕이면 이 노선을 어디 가서든 잘 기억하고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의 활동 속에는 늘 이 길을 전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목사님 사후의 '직분'은 사실상 서부교회의 판세를 두고 결전이 벌어 졌기 때문에 거의 막혀 있었고 또 임명을 했다 해도 2층과 4층의 입장에서 내부적으로 활용 된 상황이어서 애매하지만, 그래도 세월이 이제 많이 지났고 더 이상 논란은 없어 졌으니 이전에 임명 된 호칭은 공회 역사에 정상적으로 편입하고 기록하는 것이 맞습니다.
장로교는 침례교나 감리교를 교회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그 것은 장로교의 일부 극단파들이 내부적으로 모였을 때 예외적으로 하는 말이고 이미 교계적으로 또 집안이나 지인 등으로 만나면 호칭으로 시비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총공회에 대해서는 대부분 지금도 뒤로 몰래 '백파'라고 치고 있으나 그런 것은 우리가 웃고 넘어 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홍천화 장로님,
더 자세한 이야기가 댓글에 추가 되면 공회의 인물사에 포함하겠습니다.
80년대 기준으로 따뜻한 마음과 맑은 생활로 누가 봐도 참 복 되게 덕 되게 살았습니다.
동사무소 사무장으로 계셨는데 동장 바로 밑에서 동 업무를 총괄하는 분입니다. 서부교회는 교인이 많아도 공무원이 거의 없었고 또 실무를 잘 파악하는 직원들이 거의 없을 때여서 서부교회와 공회에 실제 필요한 업무를 문의하고 도움 받은 적이 많았습니다. 1987년 서영준 목사님 돌아 가신 뒤 사모님의 학원 사업이 시작 될 때도 소리 없이 도와 주셨고, 1989년 백 목사님 장례 때 묘소 때문에 그 짧은 장례 기간에 아주 민감하게 제기 된, 교회 내 묘소 추진을 두고 행정적으로 문제가 되어 신앙이나 인심 문제를 배제하고 너무 파급이 많을 것이라고 안내를 해 주셨는데, 연륜과 함께 행정 실무를 짚어 주신 그 점 때문에 장례의 전체 방향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따님이 홍용인 사모님이고 사위가 박성일 목사님이며, 두 분이 부산대 80년대 학번에 졸업도 그 시기였고 서부교회의 백 목사님 사후를 맡은 중간반 반사로 열심히 충성했습니다. 지금은 부산 경남 지역에서 '신앙 상담' 분야에서 출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길을 함께 하지 못해서 아깝지만 이왕이면 이 노선을 어디 가서든 잘 기억하고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의 활동 속에는 늘 이 길을 전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목사님 사후의 '직분'은 사실상 서부교회의 판세를 두고 결전이 벌어 졌기 때문에 거의 막혀 있었고 또 임명을 했다 해도 2층과 4층의 입장에서 내부적으로 활용 된 상황이어서 애매하지만, 그래도 세월이 이제 많이 지났고 더 이상 논란은 없어 졌으니 이전에 임명 된 호칭은 공회 역사에 정상적으로 편입하고 기록하는 것이 맞습니다.
장로교는 침례교나 감리교를 교회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그 것은 장로교의 일부 극단파들이 내부적으로 모였을 때 예외적으로 하는 말이고 이미 교계적으로 또 집안이나 지인 등으로 만나면 호칭으로 시비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총공회에 대해서는 대부분 지금도 뒤로 몰래 '백파'라고 치고 있으나 그런 것은 우리가 웃고 넘어 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홍천화 장로님,
더 자세한 이야기가 댓글에 추가 되면 공회의 인물사에 포함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