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루터, 발전은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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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루터, 발전은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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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체적으로
어린 교인까지 살피면서 개혁의 첫 문을 열 때는 루터의 디아포라 길로 시작합니다.
루터의 수고로 개혁의 문이 열렸다면 이제는 칼빈의 아디아포라 길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대립 된 두 길 중에 한 길을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자라가는 과정의 선후입니다.

2. 한국교회의 경우
1백 년 한국에 처음 온 선교사들은 루터의 방식으로 이 나라 교회를 시작 시켰습니다.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에 심지어 추도예배는 루터식이지 칼빈식은 아닙니다.
심지어 선교사 전부가 한국식 이름을 가진 것도 그런 면입니다.

그러나 1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가 마치 십계명처럼 지켜 지는 것은 한국교회의 어린 면인 동시에 죄 되지 않은 한국교회의 전통을 쉽게 바뀌지 않겠다는 것 역시 루터식입니다. 다행히 한국사회의 유교 불교식 장례 형식이 크게 바뀌는 바람에 이제는 따질 것도 없을 상황이지만 역사 연혁적으로 보면 한국교회의 장례 예배는 근본적 변경이 칼빈식을 향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3. 공회의 경우
고신에서 제거 되면서 공회는 뭐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회' '제직회' '웨스트민스터문답' '총회 공과' '새찬송' 등 거의 전부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말에는 '당회, 제직회 -> 권찰회' '새찬송 -> 공회 찬송'으로 변경했습니다.


루터는 1천년의 천주교 세계를 개혁한 첫 개혁자고
칼빈은 루터의 열어 놓은 길에 봇물이 터질 때 출발했던 2세대 개혁자입니다.

두 사람은 교회사의 발전 단계에 쓰임 받은 분들이면서
한 교회나 한 사람의 신앙 내면적으로 현실마다 사건마다 사명마다 적용 될 모습입니다.
또한 이 두 개념은 그 어느 시기를 통해서라도 꼭 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어떤 면으로는 두 개념이 고착 되어 함께 가기도 합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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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디아포라(adiaphora), 비본질적인 문제들에서 자유하라!
: 한국 칼빈학회 공개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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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월 17일부터 21일까지 학회가 있었습니다. 성경이 금하지 않으면 천주교의 전례라 해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루터의 입장인 '디아포라'라고 합니다. 반면에 칼빈은 성경이 명령하지 않았다면 천주교의 전례는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아디아포라'라고 합니다. 백영희 노선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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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칼빈학회(회장 박경수 교수)는 목회자와 학생 등을 대상으로 1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이수영 목사) 언더우드 교육관 미션홀에서 ‘신학이 있는 목회, 목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주제로 제2회 한국칼빈학회 공개강좌를 개최했다. 강사로는 박경수 교수(장신대 역사학)가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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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에 있었던 강좌에 20여명의 청중들이 모여 박경수 교수의 기독교 강요 3권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박 교수는 19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 강의하면서 아디아포라(adiaphora)로부터의 자유에 대해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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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를 위해서 먼저 '아디아포라'란 단어를 잠시 살펴보자. 아디아포라는 희랍어 '아디아폴론'의 복수형으로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용어는 '성경에서 명하지도, 금하지도 않은 행동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종교개혁에 있어서 루터와 칼빈 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디아포라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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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의하는 박경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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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와 칼빈, 쯔빙글리와 멜랑히톤 모두 근본적으로 성경에 기초한 개혁을 말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디아포라의 문제에서는 서로 다른 관점을 취했다. 루터는 성경이 명백하게 금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 로마교회의 전통과 관습은 구속력이 있고, 따라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이 명(命)하지 않는 한 로마교회의 모든 전통이나 관습들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원리는 교리적인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교회관이나 교회정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디아포라(diaphora)라고 하고 반대로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고 있고, 따라서 임의로 할 수 있도록 남겨진 영역을 아디아포라(adiaphora)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몇 시에 예배드릴 것인가, 예배 시에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할 것인가, 예배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여기 속한다. 이런 선 이해를 가지고 박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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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교수는 칼빈을 인용하여 자유는 칭의로부터 나온다고 하며 그리스도인의 자유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 차원의 자유는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이다. 두 번째 차원의 자유는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양심의 자유이다. 세 번째 차원의 자유가 아디아포라(adiaphora)로부터의 자유 즉 비본질적인 문제들로부터의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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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교수에 의하면, 칼빈은 일상가운데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양심에 거리낌이나 마음에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예를 들어 성례에서 어떤 포도주를 쓸 것인지, 물을 한번 뿌릴 것인지 세 번 뿌릴 것인지와 같은 것들은 각 지 교회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얽매여서 신앙 양심의 거리낌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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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교수는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는 교회 정체 체제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의하면 교회 정치체제는 구원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장로교 정치제도 뿐 아니라 감독정치도 가능하다고 칼빈은 주장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는 칼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칼빈주의 신학자들이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 부분을 몰라서 너무 편협적인 경향을 띠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칼빈학자들 간의 일부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칼빈이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를 중요시 여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비본질적인 것에 얽매여서 갈등을 만들고 거기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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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빈학회가 사용하는 마크는 SFC마크 도안과 같다.
: 그러나 또한 칼빈이 밝혔듯이 우리의 자유를 방종과 남용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의했다. 우리는 약한 형제들의 무지와 형편을 고려하면서 자유의 사용을 조절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사랑을 추구하며 이웃의 덕을 세우는데 유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명백한 규칙은 이웃의 덕을 세우는 결과가 될 때에는 우리의 자유를 행사하고, 이웃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강의했다. 우리의 자유는 신앙 양심의 자유이다. 박 교수에 의하면 양심이라는 말은 con+scientia (하나님과 공유한 지식)이다. 따라서 양심의 문제는 Coram Deo의 문제이고 우리의 자유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이다. 비본질적인 것으로부터 자유하여 말씀의 본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디아포라'論과 백영희 노선
아디아포라(adiaphora), 비본질적인 문제들에서 자유하라!
한국 칼빈학회 공개강좌

2015년 8월 17일부터 21일까지 학회가 있었습니다. 성경이 금하지 않으면 천주교의 전례라 해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루터의 입장인 '디아포라'라고 합니다. 반면에 칼빈은 성경이 명령하지 않았다면 천주교의 전례는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아디아포라'라고 합니다. 백영희 노선은 어떻습니까?


한국칼빈학회(회장 박경수 교수)는 목회자와 학생 등을 대상으로 1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이수영 목사) 언더우드 교육관 미션홀에서 ‘신학이 있는 목회, 목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주제로 제2회 한국칼빈학회 공개강좌를 개최했다. 강사로는 박경수 교수(장신대 역사학)가 섬겼다.

18일에 있었던 강좌에 20여명의 청중들이 모여 박경수 교수의 기독교 강요 3권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박 교수는 19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 강의하면서 아디아포라(adiaphora)로부터의 자유에 대해서 강조했다.

이해를 위해서 먼저 '아디아포라'란 단어를 잠시 살펴보자. 아디아포라는 희랍어 '아디아폴론'의 복수형으로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용어는 '성경에서 명하지도, 금하지도 않은 행동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종교개혁에 있어서 루터와 칼빈 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디아포라의 문제였다.


▲ 강의하는 박경수 교수

루터와 칼빈, 쯔빙글리와 멜랑히톤 모두 근본적으로 성경에 기초한 개혁을 말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디아포라의 문제에서는 서로 다른 관점을 취했다. 루터는 성경이 명백하게 금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 로마교회의 전통과 관습은 구속력이 있고, 따라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이 명(命)하지 않는 한 로마교회의 모든 전통이나 관습들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원리는 교리적인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교회관이나 교회정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디아포라(diaphora)라고 하고 반대로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고 있고, 따라서 임의로 할 수 있도록 남겨진 영역을 아디아포라(adiaphora)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몇 시에 예배드릴 것인가, 예배 시에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할 것인가, 예배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여기 속한다. 이런 선 이해를 가지고 박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자.

박 교수는 칼빈을 인용하여 자유는 칭의로부터 나온다고 하며 그리스도인의 자유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 차원의 자유는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이다. 두 번째 차원의 자유는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양심의 자유이다. 세 번째 차원의 자유가 아디아포라(adiaphora)로부터의 자유 즉 비본질적인 문제들로부터의 자유이다.

박 교수에 의하면, 칼빈은 일상가운데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양심에 거리낌이나 마음에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예를 들어 성례에서 어떤 포도주를 쓸 것인지, 물을 한번 뿌릴 것인지 세 번 뿌릴 것인지와 같은 것들은 각 지 교회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얽매여서 신앙 양심의 거리낌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이다.

박 교수는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는 교회 정체 체제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의하면 교회 정치체제는 구원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장로교 정치제도 뿐 아니라 감독정치도 가능하다고 칼빈은 주장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는 칼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칼빈주의 신학자들이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 부분을 몰라서 너무 편협적인 경향을 띠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칼빈학자들 간의 일부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칼빈이 아디아포라로부터의 자유를 중요시 여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비본질적인 것에 얽매여서 갈등을 만들고 거기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 칼빈학회가 사용하는 마크는 SFC마크 도안과 같다.
그러나 또한 칼빈이 밝혔듯이 우리의 자유를 방종과 남용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의했다. 우리는 약한 형제들의 무지와 형편을 고려하면서 자유의 사용을 조절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사랑을 추구하며 이웃의 덕을 세우는데 유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명백한 규칙은 이웃의 덕을 세우는 결과가 될 때에는 우리의 자유를 행사하고, 이웃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강의했다. 우리의 자유는 신앙 양심의 자유이다. 박 교수에 의하면 양심이라는 말은 con+scientia (하나님과 공유한 지식)이다. 따라서 양심의 문제는 Coram Deo의 문제이고 우리의 자유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이다. 비본질적인 것으로부터 자유하여 말씀의 본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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