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질문입니다-믿음의 강약
| 분류 |
|---|
로뎀나무
0
2015.10.21 17:18
답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제 질문의 요지는 당연히 안먹긴 하는데 왜 그게 믿음이 약한걸로 분류가 되냐는 요지였습니다..제 생각엔 안먹는것이 믿음이 강한걸로 생각한다입니다..
그래서 아래 다른분 목사님의 설교내용을 있는그대로 퍼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저희교회 목사님이랑 설교내용이 일치하기에 모든교회가 다 이런 관점인지도 궁금합니다...
문제시에는 삭제 하셔도 됩니다..제가 줄이고 편집해서 질문하려했는데 원글 그대로 흐름이 있어서 전문을 게재하오니, 읽어보시고 제가 궁금한사항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로마서 14장 1절 - 5장 6절
오늘 본문은 이방 문화 속에서 섞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겪을 수 있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사도바울의 답변입니다. 유대인이 중심이 되던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오자 이곳에 있던 성도들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흩어져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이방 문화가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고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겪지 않았던 실질적인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성애’에 관한 문제였고, 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음식, 특별히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다가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이중에 동성애에 관한 문제는 지금도 한참 교회 안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동성애자들’에 대해 정죄하는 장면이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교회가 예수님처럼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의 배경을 모르는 궤변입니다.
유대인을 중심으로 사역했던 예수님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교훈을 남기지 않은 것은 적어도 그 당시 유대 땅에는 동성애라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에 물든 유대교였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동성애자들은 반드시 죽이라’(레위기 20:13)하신 구약의 말씀을 따라 철저히 동성애를 배격했습니다. 그래서 동성애라는 사악한 문화가 유대 땅에 뿌리내리지 못한 겁니다.
이처럼 동성애라는 죄 자체가 없었던 유대 땅과는 달리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이방 땅에는 동성애가 만연해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동성애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사실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서에는 없는 동성애에 관한 기록이 사도 바울의 서신(롬 1:27, 고전 6:9)에는 등장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요즘 어떤 이상한 목사가 설교와 언론을 통해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이니 교회가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되는 겁니다. 구약의 율법으로 교육받았던 이스라엘 땅에는 동성애라는 죄 자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이방 땅에는 동성애가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릇된 문화에 영향을 받아 동성애라는 죄에 빠진 것입니다. 한 때 동성애 청정국가로 불리던 우리나라에도 최근 동성애자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도 언론과 대중매체를 통해 이 사악한 문화가 퍼져나갔기 때문에 나타난 학습의 결과인 것입니다.
여하튼 동성애 문제는 이방 땅에 세워진 교회들 속에선 다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도 사도 바울이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한 것입니다(롬 1:27).
이처럼 이방 문화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동성애 문제’와 함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기를 먹는 문제’, 구체적으로는 “성도들이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서서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헬라문명이 지배하던 당시에는 헬라의 여러 신들을 숭배하는 우상과 제단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들에게는 매일같이 여러 짐승들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드려졌는데, 이 때 바쳐진 제물들은 대부분은 시장으로 다시 나와 서민들에게 유통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은 우상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들이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과연 성도들이 이런 고기들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과 고린도전서 8장과 10장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I.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대한 성경적 교훈
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17) 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우리를 더럽게 하거나 정결하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구약시대에는 결례, 정결의 예식이라고 해서 음식 가운데서도 먹어야 할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이 있었습니다.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 하는 것은 먹되”(레위기 11:3) 그렇지 않은 것은 부정하다 했고, 물고기 중에도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먹되”(레위기 11:9) 그렇지 않은 것은 먹지 못할 부정한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정결한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에 대한 구분은 신약시대에 와서는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렇게 보는 첫 번째 근거가 사도행전 10장에 등장합니다. 욥바 지역에서 사역하던 사도 베드로가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보았는데,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규정한 음식들이 가득담긴 바구니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잡아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하늘에서 다시금 음성이 들려오는데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9-15)하십니다. 이 환상을 본 직후 베드로는 이방인인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 자신을 청하여 복음을 듣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구약시대 당시에는 부정하게 여겨지던 음식들을 이제 하나님께서 정결한 음식으로 받아주셨으며, 구약시대 당시에는 부정하게 여겨졌던 이방인들을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신다는 의미를 담은 환상인 것입니다. 부정한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을 허무셨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친히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모든 식물은 깨끗하다.”(막 7:18,19)하셨습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이 매일 시장에서 접하는 고기들도 그렇다는 겁니다. 이것을 먹음으로 우리가 더러워지는 것도 또 이것을 먹지 않음으로 우리가 정결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8장 4절에서는 특별히 “비록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었다 할지라도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을 먹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음식에 대한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로마 교회 안에는 이 교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 먹는 일 자체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식물은 깨끗하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자유롭게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믿음이 연약하여 아예 고기 먹는 것 자체를 꺼려하고 채소만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
이 문제로 인해 로마 교회 안에서도 서로를 비판하며 다투는 일이 생겨났는데,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는다. 그러니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먹고 마시는 일로 서로를 정죄하지 말라”(1-3)는 겁니다.
믿음의 정도와 생각에 따라 자유롭게 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고, 이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기를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과 믿음의 차이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고기 먹는 일로 서로를 비방하거나 다투지 말고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구원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며칠 전에 쓴 힐송 처치 찬양 사역자였던 ‘달린 첵’에 관한 글 때문에 블로그에서 CCM에 관한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현대적인 음악이나 현대적인 악기들이 사용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쉽게 결론을 내기 힘든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타나 심지어 피아노도 한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합당치 않다는 이유로 거부된 적이 있었습니다. 초창기에 기타나 피아노는 클럽이나 술집에서 사용되었던 악기였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 찬송가 삽입된 곡들 가운데는 군대에서 사용하던 행진곡이나 유행가에 가사를 붙인 것들도 있습니다. 통합찬송가 545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라는 찬송은 스코틀랜드의 노래 ‘애니로리’라는 유행가에 가사를 붙인 겁니다. 이런 기준에서 따지면 현대 음악이나 현대 악기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적합지 않다는 주장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엔 현대 음악 특히 팝 음악에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여하튼 이 모든 것들은 각자의 믿음이나 생각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과 기준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로 서로를 정죄하지 말라”는 교훈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II. 신앙생활의 3가지 원칙
이처럼 음식과 절기에 관한 실질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된 사도 바울의 교훈은 신앙생활에 중요한 3가지 원칙을 제시함으로 교훈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살펴봅니다.
1. 먼저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6-8)하십니다.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는 것이니”(6) 먹든지 마시든지 주를 위하여 하라 하십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8)하십니다. 먹고 마시는 사소한 일로부터, 살고 죽는 심각한 일에 이르기 까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즉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그 기준점으로 삼으라는 겁니다.
지금 내가 먹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겁니다. 또 내가 삶으로 영광이 되면 살고, 이 순간 죽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흔쾌히 죽음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2. “강한 자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15:1,2)하십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 할지라도 이를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를 거리껴하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고기를 먹는 일이 내게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혹여 이 일로 인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실족하는 일이 생겨난다면, 그들을 위해서 고기 먹는 것을 삼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강한 자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1)하십니다. 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라”(2)하십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함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것”(롬 13:8)입니다. 자신이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하려는 태도가 사랑입니다. 무엇을 먹어도 되냐, 안되냐를 따지는 율법적인 규례가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사랑의 법’을 앞설 수 없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사랑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3. “한 마음이 되도록 힘쓰라”(5,6)하십니다.
음식에 관한 일로 교회가 분열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구원에 관계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이로 인해 다투고 분열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6)합니다.
인터넷을 보면 종말의 때를 알리는 사역자들 가운데도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부수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서로 다투고 분열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사도신경’에 관한 문제, ‘휴거의 시점’에 관한 것들이 아마도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음식에 관한 문제처럼 사도신경에 관한 문제도 이를 고백서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또 더 열심히 고백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나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을 멈추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도 신경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은 고백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지 말자는 겁니다.
휴거의 시점에 관한 문제도 저는 분명히 환난 전 휴거가 성경적으로 맞다고 믿지만 교회가 환난을 통과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면 해결을 보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비판을 멈추고 지금은 서로가 힘을 합해 지금이 마지막 때인 것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음식과 절기 문제로 분열된 로마교회를 향해 “한마음이 되도록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교회가 사소한 일로 분열되면 안되고 보다 더 중요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 서로가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III. 결 론
먹든지 마시든지 살던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하십니다. 먹고 마시는 사소한 일부터 살고 죽는 심각한 일까지 내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구원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성도들은 각자가 가진 생각들을 존중하고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분열된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로마서 16 - 먹든지 마시든지 |작성자 예레미야
제 질문의 요지는 당연히 안먹긴 하는데 왜 그게 믿음이 약한걸로 분류가 되냐는 요지였습니다..제 생각엔 안먹는것이 믿음이 강한걸로 생각한다입니다..
그래서 아래 다른분 목사님의 설교내용을 있는그대로 퍼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저희교회 목사님이랑 설교내용이 일치하기에 모든교회가 다 이런 관점인지도 궁금합니다...
문제시에는 삭제 하셔도 됩니다..제가 줄이고 편집해서 질문하려했는데 원글 그대로 흐름이 있어서 전문을 게재하오니, 읽어보시고 제가 궁금한사항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로마서 14장 1절 - 5장 6절
오늘 본문은 이방 문화 속에서 섞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겪을 수 있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사도바울의 답변입니다. 유대인이 중심이 되던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오자 이곳에 있던 성도들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흩어져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이방 문화가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고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겪지 않았던 실질적인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성애’에 관한 문제였고, 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음식, 특별히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다가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이중에 동성애에 관한 문제는 지금도 한참 교회 안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동성애자들’에 대해 정죄하는 장면이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교회가 예수님처럼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의 배경을 모르는 궤변입니다.
유대인을 중심으로 사역했던 예수님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교훈을 남기지 않은 것은 적어도 그 당시 유대 땅에는 동성애라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에 물든 유대교였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동성애자들은 반드시 죽이라’(레위기 20:13)하신 구약의 말씀을 따라 철저히 동성애를 배격했습니다. 그래서 동성애라는 사악한 문화가 유대 땅에 뿌리내리지 못한 겁니다.
이처럼 동성애라는 죄 자체가 없었던 유대 땅과는 달리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이방 땅에는 동성애가 만연해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동성애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사실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서에는 없는 동성애에 관한 기록이 사도 바울의 서신(롬 1:27, 고전 6:9)에는 등장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요즘 어떤 이상한 목사가 설교와 언론을 통해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이니 교회가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되는 겁니다. 구약의 율법으로 교육받았던 이스라엘 땅에는 동성애라는 죄 자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이방 땅에는 동성애가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릇된 문화에 영향을 받아 동성애라는 죄에 빠진 것입니다. 한 때 동성애 청정국가로 불리던 우리나라에도 최근 동성애자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도 언론과 대중매체를 통해 이 사악한 문화가 퍼져나갔기 때문에 나타난 학습의 결과인 것입니다.
여하튼 동성애 문제는 이방 땅에 세워진 교회들 속에선 다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도 사도 바울이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한 것입니다(롬 1:27).
이처럼 이방 문화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동성애 문제’와 함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기를 먹는 문제’, 구체적으로는 “성도들이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서서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헬라문명이 지배하던 당시에는 헬라의 여러 신들을 숭배하는 우상과 제단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들에게는 매일같이 여러 짐승들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드려졌는데, 이 때 바쳐진 제물들은 대부분은 시장으로 다시 나와 서민들에게 유통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은 우상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들이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과연 성도들이 이런 고기들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과 고린도전서 8장과 10장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I.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대한 성경적 교훈
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17) 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우리를 더럽게 하거나 정결하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구약시대에는 결례, 정결의 예식이라고 해서 음식 가운데서도 먹어야 할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이 있었습니다.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 하는 것은 먹되”(레위기 11:3) 그렇지 않은 것은 부정하다 했고, 물고기 중에도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먹되”(레위기 11:9) 그렇지 않은 것은 먹지 못할 부정한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정결한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에 대한 구분은 신약시대에 와서는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렇게 보는 첫 번째 근거가 사도행전 10장에 등장합니다. 욥바 지역에서 사역하던 사도 베드로가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보았는데,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규정한 음식들이 가득담긴 바구니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잡아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하늘에서 다시금 음성이 들려오는데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9-15)하십니다. 이 환상을 본 직후 베드로는 이방인인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 자신을 청하여 복음을 듣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구약시대 당시에는 부정하게 여겨지던 음식들을 이제 하나님께서 정결한 음식으로 받아주셨으며, 구약시대 당시에는 부정하게 여겨졌던 이방인들을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신다는 의미를 담은 환상인 것입니다. 부정한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을 허무셨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친히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모든 식물은 깨끗하다.”(막 7:18,19)하셨습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이 매일 시장에서 접하는 고기들도 그렇다는 겁니다. 이것을 먹음으로 우리가 더러워지는 것도 또 이것을 먹지 않음으로 우리가 정결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8장 4절에서는 특별히 “비록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었다 할지라도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을 먹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음식에 대한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로마 교회 안에는 이 교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 먹는 일 자체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식물은 깨끗하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자유롭게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믿음이 연약하여 아예 고기 먹는 것 자체를 꺼려하고 채소만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
이 문제로 인해 로마 교회 안에서도 서로를 비판하며 다투는 일이 생겨났는데,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는다. 그러니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먹고 마시는 일로 서로를 정죄하지 말라”(1-3)는 겁니다.
믿음의 정도와 생각에 따라 자유롭게 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고, 이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기를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과 믿음의 차이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고기 먹는 일로 서로를 비방하거나 다투지 말고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구원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며칠 전에 쓴 힐송 처치 찬양 사역자였던 ‘달린 첵’에 관한 글 때문에 블로그에서 CCM에 관한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현대적인 음악이나 현대적인 악기들이 사용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쉽게 결론을 내기 힘든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타나 심지어 피아노도 한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합당치 않다는 이유로 거부된 적이 있었습니다. 초창기에 기타나 피아노는 클럽이나 술집에서 사용되었던 악기였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 찬송가 삽입된 곡들 가운데는 군대에서 사용하던 행진곡이나 유행가에 가사를 붙인 것들도 있습니다. 통합찬송가 545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라는 찬송은 스코틀랜드의 노래 ‘애니로리’라는 유행가에 가사를 붙인 겁니다. 이런 기준에서 따지면 현대 음악이나 현대 악기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적합지 않다는 주장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엔 현대 음악 특히 팝 음악에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여하튼 이 모든 것들은 각자의 믿음이나 생각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과 기준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로 서로를 정죄하지 말라”는 교훈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II. 신앙생활의 3가지 원칙
이처럼 음식과 절기에 관한 실질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된 사도 바울의 교훈은 신앙생활에 중요한 3가지 원칙을 제시함으로 교훈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살펴봅니다.
1. 먼저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6-8)하십니다.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는 것이니”(6) 먹든지 마시든지 주를 위하여 하라 하십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8)하십니다. 먹고 마시는 사소한 일로부터, 살고 죽는 심각한 일에 이르기 까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즉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그 기준점으로 삼으라는 겁니다.
지금 내가 먹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겁니다. 또 내가 삶으로 영광이 되면 살고, 이 순간 죽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흔쾌히 죽음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2. “강한 자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15:1,2)하십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 할지라도 이를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를 거리껴하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고기를 먹는 일이 내게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혹여 이 일로 인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실족하는 일이 생겨난다면, 그들을 위해서 고기 먹는 것을 삼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강한 자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1)하십니다. 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라”(2)하십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함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것”(롬 13:8)입니다. 자신이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하려는 태도가 사랑입니다. 무엇을 먹어도 되냐, 안되냐를 따지는 율법적인 규례가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사랑의 법’을 앞설 수 없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사랑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3. “한 마음이 되도록 힘쓰라”(5,6)하십니다.
음식에 관한 일로 교회가 분열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구원에 관계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이로 인해 다투고 분열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6)합니다.
인터넷을 보면 종말의 때를 알리는 사역자들 가운데도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부수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서로 다투고 분열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사도신경’에 관한 문제, ‘휴거의 시점’에 관한 것들이 아마도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음식에 관한 문제처럼 사도신경에 관한 문제도 이를 고백서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또 더 열심히 고백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나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을 멈추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도 신경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은 고백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지 말자는 겁니다.
휴거의 시점에 관한 문제도 저는 분명히 환난 전 휴거가 성경적으로 맞다고 믿지만 교회가 환난을 통과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면 해결을 보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비판을 멈추고 지금은 서로가 힘을 합해 지금이 마지막 때인 것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음식과 절기 문제로 분열된 로마교회를 향해 “한마음이 되도록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교회가 사소한 일로 분열되면 안되고 보다 더 중요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 서로가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III. 결 론
먹든지 마시든지 살던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하십니다. 먹고 마시는 사소한 일부터 살고 죽는 심각한 일까지 내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구원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성도들은 각자가 가진 생각들을 존중하고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분열된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로마서 16 - 먹든지 마시든지 |작성자 예레미야
우상의 제물
목사님 늘 주안에서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글솜씨가 너무 없어서 두서없이 적더라도 큰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최근 로마서 설교를 듣고 음식문제로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질문드린다면,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을 먹는것이 가한지요?
제신앙으로는 우상의 제물로 보기에 먹지를 않았는데.이번에 설교말씀에서
다 먹어도 된다고...꺼리낌없이 다 먹는게 장성한분량의 신앙심이고,
안먹는것이 어린아이의 신앙이란말에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릴때부터 서부교회에서 배웠기에,직장에서도 이웃에서 개업했다고 팥시루떡을 가져다줘도
양심상 고사지낸떡이라는게 확신이 들면 먹지않았구요...그런데,그런행위들이 모두다
채소만 먹으려는 어린신앙이라는 지적에 적잖이 충격이 되더군요...(딱히 평소에 제가 신앙이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고간 자료중에 검색도 열심히 해보았지만 제가 원하는 답을 아직 찾질못해 다시 질문드리게 되네요..
요점은,
음식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신약에 와서 다 폐해졌다 해도,행15:20 행21:25절 말씀대로
우상의 제물부분이니 엄연히 이 신약시대에도 지켜야 할것이 아닌지요?
제사상에 올려진음식은 우상의 제물이 아닌지요?
이걸,계속 안먹겠다는 저는 계속해서 어린신앙으로 머무르게 되는지요?
남을 실족케 할까 염려되어 먹지않는 덕의 문제말고 자세한 설명 부탁드릴께요..
감사합니다^^
ps;참고로 저는, 서부교회에서 나고 자랐으며 현재는 타교단으로 떠난지 한 10여년
다되어가는 부족한 성도입니다. 쉬운문답란의 글에 대한 재질문임을 또한 밝힙니다..
---------------------------
목사님 늘 주안에서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글솜씨가 너무 없어서 두서없이 적더라도 큰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최근 로마서 설교를 듣고 음식문제로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질문드린다면,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을 먹는것이 가한지요?
제신앙으로는 우상의 제물로 보기에 먹지를 않았는데.이번에 설교말씀에서
다 먹어도 된다고...꺼리낌없이 다 먹는게 장성한분량의 신앙심이고,
안먹는것이 어린아이의 신앙이란말에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릴때부터 서부교회에서 배웠기에,직장에서도 이웃에서 개업했다고 팥시루떡을 가져다줘도
양심상 고사지낸떡이라는게 확신이 들면 먹지않았구요...그런데,그런행위들이 모두다
채소만 먹으려는 어린신앙이라는 지적에 적잖이 충격이 되더군요...(딱히 평소에 제가 신앙이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고간 자료중에 검색도 열심히 해보았지만 제가 원하는 답을 아직 찾질못해 다시 질문드리게 되네요..
요점은,
음식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신약에 와서 다 폐해졌다 해도,행15:20 행21:25절 말씀대로
우상의 제물부분이니 엄연히 이 신약시대에도 지켜야 할것이 아닌지요?
제사상에 올려진음식은 우상의 제물이 아닌지요?
이걸,계속 안먹겠다는 저는 계속해서 어린신앙으로 머무르게 되는지요?
남을 실족케 할까 염려되어 먹지않는 덕의 문제말고 자세한 설명 부탁드릴께요..
감사합니다^^
ps;참고로 저는, 서부교회에서 나고 자랐으며 현재는 타교단으로 떠난지 한 10여년
다되어가는 부족한 성도입니다. 쉬운문답란의 글에 대한 재질문임을 또한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