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의 공무 출장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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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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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0 17:15
일요일을 끼고 해외 출장 계획이 잡혀 있어서 안 된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요즘은 공직 분위기도 이런 면이 좀 반영 됩니다.
제가 꼭 가야 하는 출장이다 보니 사업 주무 부서에서 월요일에 출발하고 토요일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조정해 주셨습니다.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출발일이 닥쳤고 이제 와서는 여권 비자 및 현지 일정까지 조율이 된 상황이어서 변경이 안 됩니다.
티케팅을 살펴 보니 주일 새벽 도착으로 찍혀 있어서 담당자께 확인했고 담당자는 수정 처리를 했는데 착오가 되었다 합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즘은 공직 분위기도 이런 면이 좀 반영 됩니다.
제가 꼭 가야 하는 출장이다 보니 사업 주무 부서에서 월요일에 출발하고 토요일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조정해 주셨습니다.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출발일이 닥쳤고 이제 와서는 여권 비자 및 현지 일정까지 조율이 된 상황이어서 변경이 안 됩니다.
티케팅을 살펴 보니 주일 새벽 도착으로 찍혀 있어서 담당자께 확인했고 담당자는 수정 처리를 했는데 착오가 되었다 합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백 목사님 생전
양성원에서 어느 목사님이 백 목사님께 주일과 관련된 질문을 했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믿는 사람인데 주일날 적군이 쳐들어오면 나가서 지휘를 해야 되는지, 교회서 주일을 지켜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백 목사님 대답은
그 사람은 전쟁터에 나가서 지휘를 해야 된다, 믿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면, 그 사람이 평소에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준비했으면 적어도 주일에 적군이 쳐들어오는 일은 없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실 것인데 그러지 못했으니 그는 주일을 지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 대답을 듣고 감탄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질문하신 일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위에서 예를 든 국방부 장관처럼 평소 주일을 온전하게 바로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출장을 가는 것입니다. 평소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주일에 이런 업무가 오지 않도록 기도했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이 꼬이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담당자 말대로 착오든지,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해 놓고 착오라고 핑계를 대든 결과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해고를 포함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가지 않고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일을 지켰을 때 소속기관과 상대방이 보는 손해에 대한 도의적인 간접 책임은 하나님 앞에서 져야 하는 일이 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선택은 본인이 하셔야 하고, 이 길이든 저 길이든 질문자 본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결과와 책임 역시 본인이 감당할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에게 당면한 현실이고, 현실의 당면은 본인의 걸어온 걸음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지금까지 주일을 정말 잘 지켰는데도 이런 일이 닥쳤다면 해고를 포함한 불이익을 감수하고 지금까지처럼 주일을 지켜보면 압니다. 정말 잘 지켰다면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건지시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 불에서 건지신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고, 해고나 어떤 불이익을 당하면 그것을 통해서 더 높은 차원의 길로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 나라로 망명 갔을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때 블레셋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함께 전쟁에 나가서 싸우라고 했고 다윗은 당연히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블레셋 나라에 망명 간 상황이라 전쟁을 피할 수 없고, 전쟁을 하게 되면 동족인 이스라엘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원수 편에 서서 이스라엘과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전쟁에 나서려고 하니까 블레셋 방백들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이 다윗이 전쟁에서 우리 뒤통수를 치면 어떻게 하려고 데리고 가느냐고. 하여 블레셋 왕 아기스가 다윗을 간곡하게 말려서 전쟁에 나서지 못하게 했고, 다윗은 신세 진 블레셋에 할 도리도 다하고 동족과의 전쟁도 피하는 신묘한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다윗의 진심과 충성을 보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쉽지는 않으나 믿는 사람의 신앙 걸음은 이런 것이고, 주일을 두고도 이런 일은 예외일 수 없습니다.
양성원에서 어느 목사님이 백 목사님께 주일과 관련된 질문을 했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믿는 사람인데 주일날 적군이 쳐들어오면 나가서 지휘를 해야 되는지, 교회서 주일을 지켜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백 목사님 대답은
그 사람은 전쟁터에 나가서 지휘를 해야 된다, 믿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면, 그 사람이 평소에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준비했으면 적어도 주일에 적군이 쳐들어오는 일은 없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실 것인데 그러지 못했으니 그는 주일을 지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 대답을 듣고 감탄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질문하신 일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위에서 예를 든 국방부 장관처럼 평소 주일을 온전하게 바로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출장을 가는 것입니다. 평소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주일에 이런 업무가 오지 않도록 기도했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이 꼬이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담당자 말대로 착오든지,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해 놓고 착오라고 핑계를 대든 결과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해고를 포함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가지 않고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일을 지켰을 때 소속기관과 상대방이 보는 손해에 대한 도의적인 간접 책임은 하나님 앞에서 져야 하는 일이 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선택은 본인이 하셔야 하고, 이 길이든 저 길이든 질문자 본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결과와 책임 역시 본인이 감당할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에게 당면한 현실이고, 현실의 당면은 본인의 걸어온 걸음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지금까지 주일을 정말 잘 지켰는데도 이런 일이 닥쳤다면 해고를 포함한 불이익을 감수하고 지금까지처럼 주일을 지켜보면 압니다. 정말 잘 지켰다면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건지시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 불에서 건지신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고, 해고나 어떤 불이익을 당하면 그것을 통해서 더 높은 차원의 길로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 나라로 망명 갔을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때 블레셋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함께 전쟁에 나가서 싸우라고 했고 다윗은 당연히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블레셋 나라에 망명 간 상황이라 전쟁을 피할 수 없고, 전쟁을 하게 되면 동족인 이스라엘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원수 편에 서서 이스라엘과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전쟁에 나서려고 하니까 블레셋 방백들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이 다윗이 전쟁에서 우리 뒤통수를 치면 어떻게 하려고 데리고 가느냐고. 하여 블레셋 왕 아기스가 다윗을 간곡하게 말려서 전쟁에 나서지 못하게 했고, 다윗은 신세 진 블레셋에 할 도리도 다하고 동족과의 전쟁도 피하는 신묘한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다윗의 진심과 충성을 보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쉽지는 않으나 믿는 사람의 신앙 걸음은 이런 것이고, 주일을 두고도 이런 일은 예외일 수 없습니다.
(윗글이 원칙론입니다.)
신앙의 원론적이면서도 너무 당연한 원칙을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이제 조금 범위를 넓혀 보충해 보겠습니다.
(추가로 살펴야 할 사안)
1. 나의 주일과 타인의 평일
주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은 각자 자유입니다. 내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자유이듯이 내가 타인에게 주일을 지키라고 강제하지 못합니다. 공직자로서 해외 출장을 가되 주일을 지키려고 했는데 타 부처가 나의 일정에 주일을 포함했다면 그 것은 그 부처가 할 일이고 나는 공직을 걸고라도 주일은 지켜야 합니다.
2. 내가 살폈어야 할 범위
우리 나라에서 해외 출장은 무조건 항공편입니다. 월요일 출발은 앞당겨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요일 도착은 여러 사정으로 연착이 예상됩니다. 2009년 10월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연구소 직원이 토요일 저녁에 도착하는 일정이 하루 늦어 져 일본에서 2박을 하고 돌아 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사전에 준비를 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므로 주일 문제에 해당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직의 해외 출장은 연차 또는 분기 등의 일정으로 미리 살필 수 있었습니다. 일정을 맡은 부서에 주일에 입출국이 되면 직을 걸고라도 나는 가지 못한다고 했어야 하고, 또 담당자의 실수를 막기 위해 미리 알아 봤어야 합니다.
토요일 저녁에 차량의 연료를 확인하지 못하여 먼 거리 예배당에 다른 차량을 사용하게 된다면, 토요일에 이미 이 사람은 주일 계명을 어긴 사람입니다. 주유소에 가지 않는다면 주일에 돈을 사용하는 죄는 피하지만 예배당에 가지 않게 되면서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공직자의 해외 출장에 주일이 염려 될 때 사전에 준비하지 않은 것은 이미 주일의 죄를 지은 것이나, 내가 사직을 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3. 출장 거부로 끼치는 영향
공직의 해외 출장은 업무에 관련 된 다른 사람들의입장도 있고 해당 부서의 업무에도 영향이 있습니다. 주일은 나의 주일을 내가 지키는 것이지 내가 출근하는 부서와 기관과 업무에 내가 갑자기 출장을 거부하여 차질이 생기면 나를 위해 남에게 십자가를 메게 하는 것이 됩니다. 나만 손해 보면 아무 다른 문제가 없으면 그렇게 하고, 나와 상관 없이 다른 사람이 대신 가야 하거나 업무의 차질이 있다면 거부하지 못합니다. 이미 저질러 놓은 일입니다.
(다니엘의 기도 문제)
1. 성경의 사례들
총리가 셋인데 다니엘이 죽어 주면 남들은 모두 좋아 합니다. 또 기도 금지령을 만든 것은 다니엘이 막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문제는 다니엘이 죽으면 왕에게 큰 손해가 되는데 이는 왕이 아첨에 속은 죄값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다른 총리와 함께 기도 금지법을 만들거나 그렇게 하도록 도장을 맡겨 둔 상태에서 법령이 발표 되었다면, 그리고 왕이 다니엘 아니면 손해를 본다고 저지하고 나선다면 다니엘은 자기가 자기 기도를 이미 자기가 막은 것이니 죄를 지어 버린 셈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이 시작했고 진행 시켰습니다. 압살롬은 불행하게 사용되고 갔을 뿐이나 압살롬의 모든 죄는 전부 다윗에게 떨어 집니다. 이럴 때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통해 다시는 실수조차 하지 않도록 더 원만해 져야 합니다.
2. 이 건의 회개란
일정을 맡은 담당자의 말만 듣고 승락을 했고, 일정 맡은 사람이 실수를 했으며, 내가 가지 않으면 업무에 지장이 발생하게 되었다면 이 번 출장을 두고 나는 가지 않을 자유가 없습니다. 이미 주일을 범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는 회개가 남았는데 주일에 항공편을 타면서 그 비행기가 나 때문에 사고 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또 주일에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3. 한 편으로
선교 초기의 미개하던 시절은 주일을 지키려고 주인에게, 불신 가족에게, 마을에게, 나라에게 생사를 걸고 고초를 겪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이제 노동법이 주일을 보호해 주고 사회의 모든 분위기가 주일을 자유롭게 지키게 되자 주일이란 예배를 드리러 갈까 놀러 갈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행복한 고민의 불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공회는 70년대 들어 서면서 이런 문제가 상류층 교인 한둘에게 발생했고 타 교단은 세상적으로 훨씬 앞서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60년대부터 이미 이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신앙 좋은 장로님이 국가적 출장을 가야 하는데 이런 애매한 문제가 생길 때 '불가피'하다는 핑계로 한두 번 다녀 왔고, 훌륭한 목회자의 성공한 사택 자녀들이 출세를 하면서 이런 일들이 먼저 생겼습니다. 주일의 원칙은 앞에서 설명한 '담당4'의 글처럼 명확했으나 이제 설명하는 이 글처럼 따지고 들다 보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그리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미 저질러 놓은 일의 수습이기 때문에 고위직 교인들이 먼저 주일에 예배를 빠지기도 하고 또 해외 출입을 하면서 주일에 출발하고 도착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례가 한두 번 반복이 되면서 갑자기 '잘난 사람은 주일에 그렇게 얽히지 않더라'는 학습 효과를 남깁니다. 이후 줄줄이 그렇게 확대 해석을 통해 가정 일 때문에 직장 일 때문에 구멍 가게 손님과 약속 때문에 계속 확대 일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번 10.27 광화문 대회를 주일에 진행하며 주일을 아예 밟고 다니면서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곳에 질문을 할 정도면 주변에서는 잘 믿는다고 보일 터인데, 이런 분이 어느 날 갑자기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잘 믿어 보려고 했는데 하루 아침에 주일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고신이고 재건교회처럼 자칭 정통 교파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한번 두번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는 거둬 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노선이 고마운 것은 아직도 주일을 예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죄를 지었으나 그 것을 표시를 내면, 여기 설명하는 자세로 다녀 오면서 다음에는 더 철저히 주일을 고수하는 사람이 되겠지만 그 내면을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따라 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내면을 광고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불은 사방으로 튀어 갑니다. 소리 없이 다녀 오시고, 속으로 두 번 이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실제 그렇게 실수 하나를 곱씹으면 갈수록 더 주일을 성수하게 됩니다. 동시에 모를 수가 없는 분들이나 가족에게는 이런 내용을 세세히 설명을 해서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이후에 주일을 더 엄하게 지키게 된다면, 세상은 주일에 더더욱 풀어 지는 가운데 우리는 더더욱 주일에 엄할 수 있습니다.
이 곳을 가장 아꼈고 소개했고 주일을 철저히 지킨 분도, 해외 출장 한 번에 주일을 끼고 다녀 오고 그 것이 반복 되다가 이제는 주일을 지키는 것은 천주교 잔재며 로마 제국의 태양신 놀음이라고 맹비판을 하는 데까지 간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의 심리적 변화가 왕상13장의 젊은 선지자와 같습니다. 신앙 세계에 흔하게 보는 사례입니다. 주변을 따라 편하게 넓어 지는 것도 탈, 구약교회가 율법을 고수하듯 무조건 대처하는 것도 탈, 상황 따라 적당히 흘러 가는 것도 탈. 우리는 잘 따지고 살펴서 변하지 않는 주일의 원칙을 먼저 파악하고, 그리고 나서 대처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앙의 원론적이면서도 너무 당연한 원칙을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이제 조금 범위를 넓혀 보충해 보겠습니다.
(추가로 살펴야 할 사안)
1. 나의 주일과 타인의 평일
주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은 각자 자유입니다. 내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자유이듯이 내가 타인에게 주일을 지키라고 강제하지 못합니다. 공직자로서 해외 출장을 가되 주일을 지키려고 했는데 타 부처가 나의 일정에 주일을 포함했다면 그 것은 그 부처가 할 일이고 나는 공직을 걸고라도 주일은 지켜야 합니다.
2. 내가 살폈어야 할 범위
우리 나라에서 해외 출장은 무조건 항공편입니다. 월요일 출발은 앞당겨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요일 도착은 여러 사정으로 연착이 예상됩니다. 2009년 10월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연구소 직원이 토요일 저녁에 도착하는 일정이 하루 늦어 져 일본에서 2박을 하고 돌아 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사전에 준비를 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므로 주일 문제에 해당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직의 해외 출장은 연차 또는 분기 등의 일정으로 미리 살필 수 있었습니다. 일정을 맡은 부서에 주일에 입출국이 되면 직을 걸고라도 나는 가지 못한다고 했어야 하고, 또 담당자의 실수를 막기 위해 미리 알아 봤어야 합니다.
토요일 저녁에 차량의 연료를 확인하지 못하여 먼 거리 예배당에 다른 차량을 사용하게 된다면, 토요일에 이미 이 사람은 주일 계명을 어긴 사람입니다. 주유소에 가지 않는다면 주일에 돈을 사용하는 죄는 피하지만 예배당에 가지 않게 되면서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공직자의 해외 출장에 주일이 염려 될 때 사전에 준비하지 않은 것은 이미 주일의 죄를 지은 것이나, 내가 사직을 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3. 출장 거부로 끼치는 영향
공직의 해외 출장은 업무에 관련 된 다른 사람들의입장도 있고 해당 부서의 업무에도 영향이 있습니다. 주일은 나의 주일을 내가 지키는 것이지 내가 출근하는 부서와 기관과 업무에 내가 갑자기 출장을 거부하여 차질이 생기면 나를 위해 남에게 십자가를 메게 하는 것이 됩니다. 나만 손해 보면 아무 다른 문제가 없으면 그렇게 하고, 나와 상관 없이 다른 사람이 대신 가야 하거나 업무의 차질이 있다면 거부하지 못합니다. 이미 저질러 놓은 일입니다.
(다니엘의 기도 문제)
1. 성경의 사례들
총리가 셋인데 다니엘이 죽어 주면 남들은 모두 좋아 합니다. 또 기도 금지령을 만든 것은 다니엘이 막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문제는 다니엘이 죽으면 왕에게 큰 손해가 되는데 이는 왕이 아첨에 속은 죄값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다른 총리와 함께 기도 금지법을 만들거나 그렇게 하도록 도장을 맡겨 둔 상태에서 법령이 발표 되었다면, 그리고 왕이 다니엘 아니면 손해를 본다고 저지하고 나선다면 다니엘은 자기가 자기 기도를 이미 자기가 막은 것이니 죄를 지어 버린 셈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이 시작했고 진행 시켰습니다. 압살롬은 불행하게 사용되고 갔을 뿐이나 압살롬의 모든 죄는 전부 다윗에게 떨어 집니다. 이럴 때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통해 다시는 실수조차 하지 않도록 더 원만해 져야 합니다.
2. 이 건의 회개란
일정을 맡은 담당자의 말만 듣고 승락을 했고, 일정 맡은 사람이 실수를 했으며, 내가 가지 않으면 업무에 지장이 발생하게 되었다면 이 번 출장을 두고 나는 가지 않을 자유가 없습니다. 이미 주일을 범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는 회개가 남았는데 주일에 항공편을 타면서 그 비행기가 나 때문에 사고 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또 주일에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3. 한 편으로
선교 초기의 미개하던 시절은 주일을 지키려고 주인에게, 불신 가족에게, 마을에게, 나라에게 생사를 걸고 고초를 겪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이제 노동법이 주일을 보호해 주고 사회의 모든 분위기가 주일을 자유롭게 지키게 되자 주일이란 예배를 드리러 갈까 놀러 갈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행복한 고민의 불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공회는 70년대 들어 서면서 이런 문제가 상류층 교인 한둘에게 발생했고 타 교단은 세상적으로 훨씬 앞서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60년대부터 이미 이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신앙 좋은 장로님이 국가적 출장을 가야 하는데 이런 애매한 문제가 생길 때 '불가피'하다는 핑계로 한두 번 다녀 왔고, 훌륭한 목회자의 성공한 사택 자녀들이 출세를 하면서 이런 일들이 먼저 생겼습니다. 주일의 원칙은 앞에서 설명한 '담당4'의 글처럼 명확했으나 이제 설명하는 이 글처럼 따지고 들다 보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그리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미 저질러 놓은 일의 수습이기 때문에 고위직 교인들이 먼저 주일에 예배를 빠지기도 하고 또 해외 출입을 하면서 주일에 출발하고 도착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례가 한두 번 반복이 되면서 갑자기 '잘난 사람은 주일에 그렇게 얽히지 않더라'는 학습 효과를 남깁니다. 이후 줄줄이 그렇게 확대 해석을 통해 가정 일 때문에 직장 일 때문에 구멍 가게 손님과 약속 때문에 계속 확대 일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번 10.27 광화문 대회를 주일에 진행하며 주일을 아예 밟고 다니면서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곳에 질문을 할 정도면 주변에서는 잘 믿는다고 보일 터인데, 이런 분이 어느 날 갑자기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잘 믿어 보려고 했는데 하루 아침에 주일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고신이고 재건교회처럼 자칭 정통 교파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한번 두번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는 거둬 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노선이 고마운 것은 아직도 주일을 예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죄를 지었으나 그 것을 표시를 내면, 여기 설명하는 자세로 다녀 오면서 다음에는 더 철저히 주일을 고수하는 사람이 되겠지만 그 내면을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따라 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내면을 광고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불은 사방으로 튀어 갑니다. 소리 없이 다녀 오시고, 속으로 두 번 이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실제 그렇게 실수 하나를 곱씹으면 갈수록 더 주일을 성수하게 됩니다. 동시에 모를 수가 없는 분들이나 가족에게는 이런 내용을 세세히 설명을 해서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이후에 주일을 더 엄하게 지키게 된다면, 세상은 주일에 더더욱 풀어 지는 가운데 우리는 더더욱 주일에 엄할 수 있습니다.
이 곳을 가장 아꼈고 소개했고 주일을 철저히 지킨 분도, 해외 출장 한 번에 주일을 끼고 다녀 오고 그 것이 반복 되다가 이제는 주일을 지키는 것은 천주교 잔재며 로마 제국의 태양신 놀음이라고 맹비판을 하는 데까지 간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의 심리적 변화가 왕상13장의 젊은 선지자와 같습니다. 신앙 세계에 흔하게 보는 사례입니다. 주변을 따라 편하게 넓어 지는 것도 탈, 구약교회가 율법을 고수하듯 무조건 대처하는 것도 탈, 상황 따라 적당히 흘러 가는 것도 탈. 우리는 잘 따지고 살펴서 변하지 않는 주일의 원칙을 먼저 파악하고, 그리고 나서 대처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