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때문에 세상이 막힐 때, 그 때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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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때문에 세상이 막힐 때, 그 때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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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 주신 동기와 진심을 잘 이해하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신앙의 첫 기쁨은 교회를 출석하게 되면서 세상에 보이는 복을 받고 자기 마음에 원하던 것이 두루두루 잘 되어 져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좀 자라고 보면 자기가 잘못 알고 잘못 소원한 것이 이루어 짐으로 기쁜 것이 많으니 신앙이 장성하게 되면 과거 좋아하고 원하던 것을 뿌리째 바꾸어 버리는 상황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잘 기어 다니던 시절을 십대가 되어 다시 그 때를 생각하면 잘 기어 다니던 것도 필요하기는 했으나 걷는 사람이 되고 나서 다시 그 때를 본다면 잘 기어 다니는 것은 조기에 졸업을 해야 할 어릴 때 몰라서 잘못 생각하고 가졌던 오도의 소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제대로 자라고 나면 말씀 때문에 세상이 막힐 때 어렵고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맹종하면서 괴로움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날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을 하게 되면서 하늘의 위로가 쏟아 지고 그 위로를 받고 나면 천하를 버리고 자기 인생 전부를 내 버리고 자기 목숨까지 바칠 기회를 사모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윗 글을 읽어 보면서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윗 글을 적은 분이 속한 교회의 초기 지도자들은 그런 걸음을 걸었다고 유추합니다. 영의 세계를 알게 되면서 육에 속한 것은 자학할 수는 없다 해도 영의 세계를 향해 가다가 자기 심신의 육을 떠날 수 있고 버릴 수 있고 죽일 수 있다면 한량 없이 감사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답변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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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이와 비슷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읽어 보았는데
: 주일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답변을 보면서 좀 답답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질문자가 스스로 주님께 가서 물어본다면 사람에게서 답을 구하지 말고
: 주님 자신께 답을 구하는 그 행위가 더욱 귀하고 질문하신 분의 영적인 추구도 주님
: 자신께로 더욱 집중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 어떤 믿는이가 율법 하나를 지키기 시작하면 율법 전체를 행해야할 의무가 생기고(갈5:3)
: 결국 이것은 어떤 규정을 지켜서 자신을 위롭게 되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 은혜에서 끊어져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갈5:4)
:
: 우리 믿는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고 의문에 속한 규례를 지켜 행한다면
: 영원히 주님과 생명의 관계를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리고 구약이나 신약의 문자를 지켜
: 행하려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
: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해 온 것이
: 헛될까 두렵습니다(갈4:10~11)
:
: 물론 우리가 주일에 함께 모여야 하고 함께 예배해야하지만 이것이 어떤 규례가 되어
: 이 규례에 잡혀 모인다면
: 우리가 안식일에 모여야 하고 안식일에 일을하지 말아야하는 규례를 지키는 것과 뭐가
: 다르겠습니까?
:
: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의 첫번 째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 4장에서 주님께서 사마리아
: 여인에게 가르치신대로 예루살렘 산에서도 그림신 산에서도가 아닌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
: 우리가 주일날 시험을 볼 때도 어떤이는 영안에서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어떤이는 주일날 함께 모였어도 육체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
: 우리가 마땅히 주일날 모이는 것을 중요시하고 또 중요한 일이지만 이것은 어떤 교회가
: 규례로 정하여 한 믿는이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얼마나 무서운
: 일이겠습니까?
:
: 로마 교황의 말은 천주교회의 법칙이 되어 천주교인들이 지켜야 되는 것 처럼
: 어떤 교회의 교리가 사람을 그 안에 가두게 될 정도가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그 교회가
: 이미 신부의 위치가 아닌 왕의 위치가 되어버린 것이라 생각됩니다.
:
: 교회는 모든 믿는이들을 그리스도 자신께로 인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정한
: 교리가 인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율법이 이러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신약시대에도
: 율법대신 그리스도를 제쳐두고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을 주의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
: 제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먼저번의 답변이 개인적으로 매우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 총공회 신자들은 주일날 시험을 보면 신자로서 믿음이 작고 실패한 것처럼 되어버려
: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올려 보았습니다.
:
: 주님께서 보배로운 피로 저를 덮어주시고, 또 읽는 모든 분들을 덮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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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 : 주님의 인도는,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는, 생명의 인도는 `성경말씀의 인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 마음의 감동이 주님의 인도일 가능성도 있으나,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자기 주관의 감동이 될 가능성도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 :
: :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인도를 따를때는 성경말씀안에서 기준을 찾는것이 바른 방향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신앙의 수준과 자기현실을 보고 기준이되는 말씀에 대하여, 자기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순종을 하도록 하는것이 옳은 방향이라 믿습니다.(제가 이러한 말을 할 자격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는 말씀도 순종치 못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 :
: : 그리고 상기질문은 충분히 질문할 수 있는, 우리시대에 주일성수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이라 생각을 합니다. 성경말씀에서 주일에 직장일을 해야 하는지? 학교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격증이나 영어평가시험을 쳐야하는지? 법학도님처럼 주일에 시험을 안치면 법조인의 길을 포기해야 하니 주일에 LEET 시험을 쳐야 하는지 충분히 고민할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
: : 덧붙여 내가 보기에 아무리 바보같은 질문이라도, 상대방에게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질문일
: :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쉽게 남의 질문을 수준낮게 보면 안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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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답변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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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법학도님이 믿는이라면 법학도님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십니까? 생명이 없으십니까?
: : : 왜 이런 인도를 주님께 묻고 주님의 인도를 구해야지
: : : 천주교처럼 어떤 인간이 만든 신조에 묻는 것인지요?
: : : 어느 누구도 이것을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 : : 규정한다면 또 다른 율법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 : :
: : : >> 법학도 님이 쓰신 내용 <<
: : : :
: : : : 사법시험이 현재 법령으로는 이번 2016년 2월 27일 시험으로 끝이 났습니다. 현재 존치 문제로 머리를 맞대고 있으나 이해관계가 첨예한 분야여서 살려 내는 것이 어렵다고 보이며 혹시 존치 조처가 나온다 해도 그 과정에서 타협안이 나온다면 합격 정원은 극단적으로 줄여 버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로스쿨은 2009년 시행 때부터 입학의 절대 조건인 LEET 시험이 주일입니다.
: : : :
: : : : 실력도 시원치 않지만 사법시험은 일제 때 고시처럼 특수인만 합격하고 로스쿨은 입학이 쉽지만 시험이 주일이어서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회 신앙은 법조인의 길을 포기해야 할까요? 다른 길은 없을지요?
사법시험 마지막 시험이 끝났습니다.
사법시험이 현재 법령으로는 이번 2016년 2월 27일 시험으로 끝이 났습니다. 현재 존치 문제로 머리를 맞대고 있으나 이해관계가 첨예한 분야여서 살려 내는 것이 어렵다고 보이며 혹시 존치 조처가 나온다 해도 그 과정에서 타협안이 나온다면 합격 정원은 극단적으로 줄여 버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로스쿨은 2009년 시행 때부터 입학의 절대 조건인 LEET 시험이 주일입니다.

실력도 시원치 않지만 사법시험은 일제 때 고시처럼 특수인만 합격하고 로스쿨은 입학이 쉽지만 시험이 주일이어서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회 신앙은 법조인의 길을 포기해야 할까요? 다른 길은 없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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