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구소는 효심만 있을 뿐 공회 노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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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구소는 효심만 있을 뿐 공회 노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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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태영 목사님은
백영희 목사님 평생에 제2인자이며 최측근이며 친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백태영 목사님은 백영희 신앙노선을 제일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일반 교인들은 몰라도 두 분을 가까이 접해 본 사람은 모두가 아는 상식이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동생의 문제를 알고 평생 고치려 했으나 백태영 목사님은 이 노선에서 얻을 것을 다 얻은 다음, 이후 자유롭게 제 길로 갔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도적으로 막지는 않습니다. 최측근이어서 백영희 목사님의 이런 성향을 파악했고 결국 백태영 목사님은 자기 길을 1983년부터 표면화 했고 1989년 백영희 목사님의 생전 마지막 순간에는 막 가는 정도였습니다.

2. 부산연구소는
대표가 백영희 목사님의 장녀입니다. 1984년 여수연구소의 중심 인물인 연구 부장이 백영희 목사님의 파송으로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부터 부산연구소의 훗날 대표와 친가족처럼 지냈고 가족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모두가 둘 사이를 백 목사님의 7남매 20명 손주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대표는 미국에서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신앙 자체를 거부하던 시절이 적지 않았고, 또 부친의 부탁 때문에 효도 차원에서 공회 교회를 출발 시켰지만 공회의 노선을 수 없이 반대했고 매섭게 비판했었습니다.

1987년 3월, 한국으로 돌아 와서 새 출발을 하는 순간에 한국으로 돌아 오는 조건으로 부친의 신앙노선을 반대하거나 벗어 나는 100가지 넘는 조건을 적어 대구 서성교회에서 그렇게 목회를 하겠다고 공언을 했었습니다. 방송설교를 하겠다, 교회 내에 유아원을 운영하겠다, 학교 학부형협의회를 잡겠다... 당시 백 목사님이 공석에서 타 교단의 잘못 된 목회라며 비판했던 내용들입니다.

백 목사님의 신앙노선은 기본적으로 극단적이며 그 과정에 가까운 가족들의 고난이 상상을 넘었습니다. 그 과정에 겪은 아픔 때문에 대표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더 뜨거워 졌으나 신앙은 부친을 이해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출 된 것이 부친에 대한 효도는 더 뜨거워 지면서 부친의 신앙 노선에 대하여서는 비판적이 되어 갔습니다. 결혼을 빨리 시키는 것도 비판했고, 남녀반을 나누는 것도 강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중간반 제도에 대한 비판은 도를 넘기도 했습니다. 탈퇴한 송용조 목사님에게 대하여도 부친을 배반한 사실만 빼고는 송 목사님의 반총공회적 행위 대부분을 미국에서부터 동조해 왔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백태영 목사님이 백 목사님의 신앙노선과 달랐지만 끝까지 동생을 사랑함으로 이 노선으로 돌아 설 기회를 제공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동생은 형의 사랑과 배려와 신앙 지도를 받으면서 동생 자기의 딴 길을 걷기 위해 혜택만 고스란히 담아 냈고 머리가 굵어 지고 제 갈 길을 가야 할 때가 되고 역량이 쌓였다고 생각하던 시점에는 공석에서 스승이었던 백 목사님을 비판하며 맞섰습니다. 그 사후에는 잠실동교회의 이름은 한국 교회 내에서도 잘 나가는 일반 교회가 됩니다. 장녀의 길도 그러했습니다. 부친이 바른 길로 돌아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성장 과정에 백 목사님의 외길 목회에 희생한 자녀들에게 신앙의 회개와 재기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했으나 그 기회를 가지고 자신의 방법으로 살아 갈 기회와 유무형의 자산을 모았고 부친의 장례가 끝나자 그 순간부터 대표는 부친의 길과 상관 없이 자신의 길을 막내 삼촌인 백태영 목사님처럼 걸어 갔습니다.

비록, 백태영 목사님과 대표의 길은 극단적으로 반대였던 것처럼 보였으나 그 것은 백영희 목사님의 생전에 각자 걸어 오고 준비한 자신들의 배경과 쌓여진 자산 때문이었지 신앙의 본성이 달라서는 아니었습니다. 부산연구소의 슬픔은 대표에게 주어진 회개와 재기의 기회를 대표가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로 걸어 간 그 분의 선택 때문입니다. 대표는 한국에 돌아 온 후 불과 2년 반만에 부친이 돌아 가시는데 그 짧은 기간에 대표가 공회 내에서 활동의 배경을 마련할 수 있는 제일 빠른 방법은 '아버지가 하셨던 그대로'를 내세운 것입니다. 사실 대표는 가장 극단적으로 부친과 달랐고 심지어 비판을 서슴치 않았음에도 삼촌인 백태영 목사님은 오랜 세월을 통해 자기 것을 준비할 수 있었으나 대표는 너무 짧은 시간만 주어졌기 때문에 서부교회와 총공회 전체를 통해 '백영희 목사님 그대로'만이 방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대표의 유일 또는 최고의 측근이 되어 주었던 여수연구소의 연구부장이 이 노선을 벗어 나면 협조를 전혀 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대치가 되어야 할 상황이어서 그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했어야 했습니다. 또 인간적으로는 원래부터 효녀였으니 일단 부친 그대로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표의 체질과 배경은 反부친 노선이었지만, 부친 사후에 부친 세계의 교권을 잡아 나가기 위해 '부친 그대로'를 외쳤는데 그 부친 그대로를 위해 설교를 재독하고 흉내를 내다 보면 그리고 그 세월이 공회 내의 분쟁 때문에 원치 않아도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하다 보니까 대표의 신앙 세계가 점점 공회 내의 보수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또한 연세로 봐도 인생을 통해 보수화가 될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모습은 이제 백태영 목사님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마치 공회 내 최고 보수적인 성향처럼 보이나 부산연구소의 일부는 공회의 보수성을 가지고 있으나 일부는 백 목사님 생전부터 가졌던 반 공회노선적 성향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부친의 소망이 있고, 의인인 부친의 이 노선 걸음에 희생한 가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으로 주시는 은혜가 특별하여, 부산연구소는 여수연구소와 '보수성'을 두고 마치 쌍벽을 이루는 것처럼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일입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왜 이 노선이라야 하느냐는 원인과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세월 속에 이 노선으로 물이 들어 이 노선을 보수하는 듯한 단체이므로 부산연구소의 보수성이 보일 때는 반갑기 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산연구소의 내용에 그럴 역량이 없기 때문에 뿌리 없는 나무처럼 겉만 무성할 뿐이지 산들바람만 불어도 금방 바뀔 단체여서 늘 걱정입니다.

'젊은 세대를 위하여 불가피하게 바꾼다'는 공지가 나왔다면 이는 1984년부터 들어 온, 그리고 강하게 외쳐온, 부산연구소 대표의 소신이며 밑바탕입니다. 그리고 지난 날 부산연구소와 그 소속의 부산공회1 단체의 경력을 살펴 보면 이들은 교권 단체일 뿐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효도 때문에 이 노선의 곳곳을 마치 유지하는 듯이 보이는 점입니다. 없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1992년부터 설교록 출간을 금지시키고, 1997년에는 설교록 금지를 비판하고 설교록을 출간했다 하여 관련 직원 전부를 제명하고, 1998년 이후 본 연구소가 장남의 도움을 받아 '성경연구소' 시절을 2년 거치며 설교록을 출간하자 더 이상 막을 수 없음을 알고 부산연구소도 설교록을 출간한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이미 본 연구소가 출간한 책을 그 내용 그대로 5년 10년 뒤에 출간하는 방식으로 유지한 것은 부친의 설교를 모르는 이들에게 전한다는 생각은 없다고 보입니다.

부친 목사님의 지도로 오늘에 이른 본 연구소는 부산연구소에 대한 입장을 최대한 조심해 왔지만 이 노선의 앞 날을 두고 이 길을 걸어 가되 자신들의 인생을 바칠 교인들에게 이 노선을 걸어 갈 때 어디에서 안내를 받고 어떤 면으로 살펴야 할지를 안내할 책임이 있어 최소한의 내용으로 안내합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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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 생전 그대로'를 외치며 28년간 총공회 내부의 수많은 투쟁에 나섰던 부산연구소가 공지를 통해 '젊은 세대들'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바꾼다고 공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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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사이트에 보면 '세대를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라는 말씀에 따라 이제 웹사이트가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라고 안내문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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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연구소는 무조건 백 목사님 생전 그대로를 외쳤는데 이제는 방향을 전환하는 것일까요? 바뀌었다면 그 주요 동기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 더 여쭙니다. 그 동안 대구공회나 부산공회의 타 공회들이 바꾼다고 테러를 해 온 것에 대한 입장이 따로 나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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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연구소의 안내문 참고 -
: 전통적인 성경 형태는 세로글씨이지만 많은 성도님들의 의견을 수렴해 가로글씨의 형태로 출간하였습니다. 전통적인 세로글씨 성경이 아니라고 구입을 꺼려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줄 압니다만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성경을 더 보게 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가로글씨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 세로글씨 성경을 고집하시는 분들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며 모든 의견을 다 수용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계속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찾고 고치는 목회연구소가 되겠습니다.
부산연구소의 방향 전환이 궁금합니다.
'백 목사님 생전 그대로'를 외치며 28년간 총공회 내부의 수많은 투쟁에 나섰던 부산연구소가 공지를 통해 '젊은 세대들'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바꾼다고 공지를 하고 있습니다.

또 사이트에 보면 '세대를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라는 말씀에 따라 이제 웹사이트가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라고 안내문을 냈습니다.

부산연구소는 무조건 백 목사님 생전 그대로를 외쳤는데 이제는 방향을 전환하는 것일까요? 바뀌었다면 그 주요 동기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 더 여쭙니다. 그 동안 대구공회나 부산공회의 타 공회들이 바꾼다고 테러를 해 온 것에 대한 입장이 따로 나왔을까요?


- 부산연구소의 안내문 참고 -
전통적인 성경 형태는 세로글씨이지만 많은 성도님들의 의견을 수렴해 가로글씨의 형태로 출간하였습니다. 전통적인 세로글씨 성경이 아니라고 구입을 꺼려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줄 압니다만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성경을 더 보게 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가로글씨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세로글씨 성경을 고집하시는 분들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며 모든 의견을 다 수용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계속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찾고 고치는 목회연구소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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