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집회의 흐름
| 분류 |
|---|
연구부
0
2016.05.01 18:00
1. 백 목사님의 평생 집회를 큰 흐름으로 살펴 본다면
83년 전: 신앙의 기본을 증거했고
84~86년: 말세 미혹을 경고했고
87~89년: 사후를 두고 유언을 했습니다.
* 1983년 이전
1983년까지의 설교는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통해 신앙의 근본을 가르쳤습니다.
원래 평생의 백 목사님 설교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한 분 모시고 말씀의 길로 걸어 가는 신앙의 전반을 하나님의 목적으로부터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연결된 영원 영생을 가르치며 성경의 해석과 교리의 정리와 현실의 지도에 이르기까지 빠진 것이 없도록 가르쳤습니다.
* 1984년 당시
미국에 있는 자녀들을 통해 목사님은 미국 생활의 전반을 마치 청진기로 진단하듯 읽었고 그 자녀들의 경우가 일부의 특별한 경우일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소식을 통해 전체를 살폈습니다. 고생하던 시절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세상까지 열어 주시자 세상에 빠져 스스로 신앙을 팔아 버린 것이 미국의 교회사입니다. 당시 미국의 그런 탈선 상황을 사례로 들었지만 1984년부터 1986년의 집회를 면밀히 들여다 보면 이미 한국 교회도 그런 조짐이 보였고 가차 없이 경고를 하고 나섰습니다.
신앙에 도움 되도록 세상을 주셨는데 그 세상에 팔려 주님을 잊어 버리는 면을 계시록과 호세아서를 중심으로 질타했습니다. 당시는 백 목사님의 설교 표현과 사례가 너무 극단적이거나 피해망상적인 면으로 받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 날의 말씀을 오늘에 재독을 하다 보면 시대를 넘어 선 상황을 미리 읽었음이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예언이 되었습니다. 84년에서 86년 설교를 30년이 지난 오늘에 읽으면서 매 순간 숨이 멎습니다. 이런 것이 설교구나. 설교는 이러해야 하는구나. 인간의 노력과 강의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님이 열어 주실 때 그대로 전해 놓으면 그 증거가 생명을 가진 씨가 되어 그 증거가 필요한 상황이 될 때 움을 띄웁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84~86년의 미국보다 더 심한 상황입니다. 박해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좋아 스스로 모두 믿음을 버리고 있습니다.
1984년 백 목사님 자녀 중에는 미국 어느 사회에서 제일 잘 나가는 상황에서 파탄이 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들고 한국으로 들어 와서 다시 신앙을 배우고 새 출발을 하게 되며 이 것을 계기로 미국에서 부러움 없이 잘 사는 모든 자녀들에게 매년 집회를 참석하도록 했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갑자기 미주의 공회 교인들이 8월집회를 참석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또 앞으로 그들처럼 될 우리를 향해, 시대의 선지자는 할 수 있는 권고를 84-86년 집회에 모두 담았습니다.
* 1987 ~ 89년
백 목사님은 1989년 8월 집회를 인도한 지 2주 후에 돌아 가십니다. 87년부터는, 평생 신앙을 가르쳤던 전국의 교회와 제자들과 교인들에게 이제는 어느 지도자에게 이끌려 따라 가는 어린 신앙을 벗고 각자 자기 길을 선택하라고 유언을 합니다.
머리가 굵은 자녀들이 부모와 맞서 제 인생을 찾는 것처럼, 어린 아이들은 형들의 그런 모습에 분개하지만 어려서 그런 것이고 그들도 때가 되어 머리가 굵어 지면 제 인생을 향해 분가를 하고 분화를 하게 됩니다. 3세 아이가 10세로 자라면서 옷이 작아서 큰 옷을 입는 상황이 아니라 몸을 가리는 것이 옷이라고 가르친 부모에게 요즘은 다 벗고 사는 시대라면서 가출을 해 버리는 상황입니다. 죽을 날이 임박한 부모로서는 옷을 그렇게 벗고 살면 반드시 네 인생을 망치고 세상이 쑥대밭이 된다고 유언을 남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987년, 백 목사님의 눈과 귀가 시퍼렇게 날카롭게 기울이고 있는데도 공회 내에는 일반 교계의 별별 탈선 행위가 시작되고 신학자들은 백 목사님 면전에서 공회 교리가 서툴고 조잡하다며 일반 교리가 유구하며 엄청난 세계라고 외쳐 대었고 공회의 핵심들인 양성원 학생들은 줄줄이 신학자들의 학벌에 위압을 받아 그 밑으로 들어 가 버렸습니다. 백 목사님으로서는 이렇게 되면 목사님 사후에 공회 교회는 예전을 유지하는 극소수와 일반 교회를 향할 거의 모든 교회로 이분화가 될 것을 봤습니다.
자연스럽게, 신앙의 노선과 선택 그리고 자기 선택에 대한 진실을 가르치며 '교회론'으로 평생의 집회 사명을 마쳤습니다. 신학에 눌려 이 길을 가지 못할 사람들은 일찍 가는 것이 양심이며 진실이며 헛 세월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 눈치를 보거나 목회하는 교회의 형편 때문에 있는 것이라면 교회를 구멍가게로 삼은 삯꾼이라,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며 교회가 변치 않고 붙들 길은 이러하다며 오늘 우리를 향해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필요한 말을 뺀 것이 없다 할 정도였습니다.
2. 질문 내용을 집중한다면
* 부공1과 2의 '85년집회'와 부공3의 '88집회'의 내용과 상황은 이미 설명했습니다.
* 양 쪽의 공회들을 각각 재독하는 말씀 앞에 세운다면
(부공1,2)
최근에 1989년에서부터 1987년 재독은 막 마쳤습니다. 그 말씀 앞에 회개할 것이 무척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은 알지 못하고 또 한 번의 은혜로운 복습에 그쳤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흑암 속에서 출구를 찾을 수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번에 재독할 85년 5월집회의 경우는 말세 세상에 빠져 사는 설교들 중에서 '인간병' 치료에 대한 말씀인데 85년 5월만 집중하면 전체 흐름을 볼 수 없을 듯합니다. 84년부터 86년을 나란히 또는 차순대로 봐야 하는데 현재 부공1,2는 역순으로 복습을 하기 때문에 아쉽습니다. 원래 역순이란 순차적 공부가 탄탄한 뒤에 하는 것입니다.
85년 5월 집회는 인간병에 대한 말씀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 선 일입니다. 부공1과2는 28년간 성전 문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 집회 기간을 통해 83년까지 그 이전에 늘 배운 방식으로 85년 5월을 접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한 것이 됩니다. 부공1과 2의 안타까움입니다. 앉은뱅이 설교는 공회 모든 사람이 외우다시피하는 말씀입니다. 이 번에 또 들으면 또 은혜로울 것입니다. 그 은혜는 기본이고, 그 은혜 위에 집회의 흐름을 통해 부공1과 2가 공회적으로 가진 공회병을 고쳤으면 합니다. 원칙이 없고 교리가 없고 치료 불능의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지난 날의 역사를 조금만 짚어 본다면 그렇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형편이 조금 숨 쉴만 하면 갑자기 공회의 본류가 된 줄 알고 훌륭한 줄 압니다.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해체하고 새로 조립해야 하는 제2의 종교개혁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부공3)
부공3은 적어도 공회적으로는 이런 면을 한 걸음 먼저 아는 곳입니다. 연구소 공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는 원래 수준이 낮고 그릇이 작아서 '병아리' 모습입니다. 소리를 내 봐야 삐약! 정도이고 뛰어 봐야 한 뼘입니다. 그런데 현재 87년 집회에 이어 올해는 88년 설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88년 2월에 탈퇴한 사직동교회 사건이 종료가 되지 않고 진행이 되던 시점입니다.
부공3에 소속을 둔 교회들과 교인들, 이들은 몇 명이 되지 않고 연구소 공회로 걸어왔기 때문에 모두가 볼 때 적지만 내적으로는 똘똘 뭉쳐 하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사직동교회의 탈퇴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고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부공3의 양론은 당연히 서로가 자신들이 백 목사님 당시의 입장이고 상대방은 사직동교회 송용조 목사님의 빗나간 길이라고 할 듯합니다. 그런데 88년 5월 집회를 복습해 보면 고양이와 호랑이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ㄸ과 된장을 구별하지 못해서 논쟁을 해야 할 상황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일이 필요 없다거나 삼분설을 전면 비판하거나 좌익이 신앙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몰려 있는 곳, 그 곳에 가까운 곳이 있다면 아마 돌아 서야 할 분들일 듯합니다. 그 반대 편에 있는 분들이 비판을 받는 상황들은 아직까지는 인간적인 부족으로 인한 것 이상은 아닌 듯합니다. 알아 주지를 않더라,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 혼자 잘 난 줄 알더라, 돈을 사랑하더라, 돈을 아주 사랑하더라, 아주 돈밖에 모르더라, 사이가 좋아지지 않게 된 그 날부터 갑자기 나온 이런 표현은 화가 나서 하는 말로 들립니다.
88년 5월집회의 내용은 이 노선 그대로 갈 것인가, 더 좋은 곳이 있으면 가야 하나 먹고 살기 위해서 대충 앉아 있다면 양심도 없고 진실이 없는 사람이라, 나와 내 집은 이 노선을 제일로 알고 끝까지 걸어 가리라, 다만 그 어려움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현재 오해의 세월이 2년 3년이 지나가고 있으며 이미 다 판정이 된 듯합니다. 뒤엉켜 있는 넝쿨의 밑줄기를 낫으로 쳐 놓고 위쪽을 쳐다 보면 끊어진 줄기에 달려 있는 잔가지와 잎들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팔꼿처럼 빠른 것은 하루, 담쟁이처럼 좀 늦은 것도 3일이 지나고 나면 시들어 져 있어 그냥 표시가 납니다. 등나무처럼 아주 끊질긴 나무라도 2주일이 지나면 보듬어 주고 가루어 준다고 가려지지를 않습니다.
문제는 한 몸에 이 쪽 팔과 저 쪽 팔은 서로 논쟁을 하다가 그 끝이 서로 좋아져야 서로 성공을 하지 한 쪽이 상처를 입고 회복이 되지 않으면 멀쩡한 팔도 장애인 등록증을 받아야 합니다.
>> 교역자 님이 쓰신 내용 <<
:
: 총공회 내에서도 부산공회1과 2는 85년 5월 집회를 재독하고 부공3은 88년 5월을 재독합니다. 양 집회의 말씀을 비교해 주십시오. 그리고 집회 말씀이 나온 당시의 상황도 부탁을 드립니다. 또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르게 집회 내용을 복습하는데 이번 집회의 복습이 양쪽 참석 공회들에게 오늘 상황에서 어떤 말씀이 되는지도 설명을 부탁합니다.
83년 전: 신앙의 기본을 증거했고
84~86년: 말세 미혹을 경고했고
87~89년: 사후를 두고 유언을 했습니다.
* 1983년 이전
1983년까지의 설교는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통해 신앙의 근본을 가르쳤습니다.
원래 평생의 백 목사님 설교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한 분 모시고 말씀의 길로 걸어 가는 신앙의 전반을 하나님의 목적으로부터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연결된 영원 영생을 가르치며 성경의 해석과 교리의 정리와 현실의 지도에 이르기까지 빠진 것이 없도록 가르쳤습니다.
* 1984년 당시
미국에 있는 자녀들을 통해 목사님은 미국 생활의 전반을 마치 청진기로 진단하듯 읽었고 그 자녀들의 경우가 일부의 특별한 경우일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소식을 통해 전체를 살폈습니다. 고생하던 시절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세상까지 열어 주시자 세상에 빠져 스스로 신앙을 팔아 버린 것이 미국의 교회사입니다. 당시 미국의 그런 탈선 상황을 사례로 들었지만 1984년부터 1986년의 집회를 면밀히 들여다 보면 이미 한국 교회도 그런 조짐이 보였고 가차 없이 경고를 하고 나섰습니다.
신앙에 도움 되도록 세상을 주셨는데 그 세상에 팔려 주님을 잊어 버리는 면을 계시록과 호세아서를 중심으로 질타했습니다. 당시는 백 목사님의 설교 표현과 사례가 너무 극단적이거나 피해망상적인 면으로 받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 날의 말씀을 오늘에 재독을 하다 보면 시대를 넘어 선 상황을 미리 읽었음이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예언이 되었습니다. 84년에서 86년 설교를 30년이 지난 오늘에 읽으면서 매 순간 숨이 멎습니다. 이런 것이 설교구나. 설교는 이러해야 하는구나. 인간의 노력과 강의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님이 열어 주실 때 그대로 전해 놓으면 그 증거가 생명을 가진 씨가 되어 그 증거가 필요한 상황이 될 때 움을 띄웁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84~86년의 미국보다 더 심한 상황입니다. 박해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좋아 스스로 모두 믿음을 버리고 있습니다.
1984년 백 목사님 자녀 중에는 미국 어느 사회에서 제일 잘 나가는 상황에서 파탄이 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들고 한국으로 들어 와서 다시 신앙을 배우고 새 출발을 하게 되며 이 것을 계기로 미국에서 부러움 없이 잘 사는 모든 자녀들에게 매년 집회를 참석하도록 했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갑자기 미주의 공회 교인들이 8월집회를 참석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또 앞으로 그들처럼 될 우리를 향해, 시대의 선지자는 할 수 있는 권고를 84-86년 집회에 모두 담았습니다.
* 1987 ~ 89년
백 목사님은 1989년 8월 집회를 인도한 지 2주 후에 돌아 가십니다. 87년부터는, 평생 신앙을 가르쳤던 전국의 교회와 제자들과 교인들에게 이제는 어느 지도자에게 이끌려 따라 가는 어린 신앙을 벗고 각자 자기 길을 선택하라고 유언을 합니다.
머리가 굵은 자녀들이 부모와 맞서 제 인생을 찾는 것처럼, 어린 아이들은 형들의 그런 모습에 분개하지만 어려서 그런 것이고 그들도 때가 되어 머리가 굵어 지면 제 인생을 향해 분가를 하고 분화를 하게 됩니다. 3세 아이가 10세로 자라면서 옷이 작아서 큰 옷을 입는 상황이 아니라 몸을 가리는 것이 옷이라고 가르친 부모에게 요즘은 다 벗고 사는 시대라면서 가출을 해 버리는 상황입니다. 죽을 날이 임박한 부모로서는 옷을 그렇게 벗고 살면 반드시 네 인생을 망치고 세상이 쑥대밭이 된다고 유언을 남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987년, 백 목사님의 눈과 귀가 시퍼렇게 날카롭게 기울이고 있는데도 공회 내에는 일반 교계의 별별 탈선 행위가 시작되고 신학자들은 백 목사님 면전에서 공회 교리가 서툴고 조잡하다며 일반 교리가 유구하며 엄청난 세계라고 외쳐 대었고 공회의 핵심들인 양성원 학생들은 줄줄이 신학자들의 학벌에 위압을 받아 그 밑으로 들어 가 버렸습니다. 백 목사님으로서는 이렇게 되면 목사님 사후에 공회 교회는 예전을 유지하는 극소수와 일반 교회를 향할 거의 모든 교회로 이분화가 될 것을 봤습니다.
자연스럽게, 신앙의 노선과 선택 그리고 자기 선택에 대한 진실을 가르치며 '교회론'으로 평생의 집회 사명을 마쳤습니다. 신학에 눌려 이 길을 가지 못할 사람들은 일찍 가는 것이 양심이며 진실이며 헛 세월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 눈치를 보거나 목회하는 교회의 형편 때문에 있는 것이라면 교회를 구멍가게로 삼은 삯꾼이라,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며 교회가 변치 않고 붙들 길은 이러하다며 오늘 우리를 향해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필요한 말을 뺀 것이 없다 할 정도였습니다.
2. 질문 내용을 집중한다면
* 부공1과 2의 '85년집회'와 부공3의 '88집회'의 내용과 상황은 이미 설명했습니다.
* 양 쪽의 공회들을 각각 재독하는 말씀 앞에 세운다면
(부공1,2)
최근에 1989년에서부터 1987년 재독은 막 마쳤습니다. 그 말씀 앞에 회개할 것이 무척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은 알지 못하고 또 한 번의 은혜로운 복습에 그쳤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흑암 속에서 출구를 찾을 수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번에 재독할 85년 5월집회의 경우는 말세 세상에 빠져 사는 설교들 중에서 '인간병' 치료에 대한 말씀인데 85년 5월만 집중하면 전체 흐름을 볼 수 없을 듯합니다. 84년부터 86년을 나란히 또는 차순대로 봐야 하는데 현재 부공1,2는 역순으로 복습을 하기 때문에 아쉽습니다. 원래 역순이란 순차적 공부가 탄탄한 뒤에 하는 것입니다.
85년 5월 집회는 인간병에 대한 말씀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 선 일입니다. 부공1과2는 28년간 성전 문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 집회 기간을 통해 83년까지 그 이전에 늘 배운 방식으로 85년 5월을 접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한 것이 됩니다. 부공1과 2의 안타까움입니다. 앉은뱅이 설교는 공회 모든 사람이 외우다시피하는 말씀입니다. 이 번에 또 들으면 또 은혜로울 것입니다. 그 은혜는 기본이고, 그 은혜 위에 집회의 흐름을 통해 부공1과 2가 공회적으로 가진 공회병을 고쳤으면 합니다. 원칙이 없고 교리가 없고 치료 불능의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지난 날의 역사를 조금만 짚어 본다면 그렇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형편이 조금 숨 쉴만 하면 갑자기 공회의 본류가 된 줄 알고 훌륭한 줄 압니다.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해체하고 새로 조립해야 하는 제2의 종교개혁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부공3)
부공3은 적어도 공회적으로는 이런 면을 한 걸음 먼저 아는 곳입니다. 연구소 공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는 원래 수준이 낮고 그릇이 작아서 '병아리' 모습입니다. 소리를 내 봐야 삐약! 정도이고 뛰어 봐야 한 뼘입니다. 그런데 현재 87년 집회에 이어 올해는 88년 설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88년 2월에 탈퇴한 사직동교회 사건이 종료가 되지 않고 진행이 되던 시점입니다.
부공3에 소속을 둔 교회들과 교인들, 이들은 몇 명이 되지 않고 연구소 공회로 걸어왔기 때문에 모두가 볼 때 적지만 내적으로는 똘똘 뭉쳐 하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사직동교회의 탈퇴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고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부공3의 양론은 당연히 서로가 자신들이 백 목사님 당시의 입장이고 상대방은 사직동교회 송용조 목사님의 빗나간 길이라고 할 듯합니다. 그런데 88년 5월 집회를 복습해 보면 고양이와 호랑이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ㄸ과 된장을 구별하지 못해서 논쟁을 해야 할 상황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일이 필요 없다거나 삼분설을 전면 비판하거나 좌익이 신앙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몰려 있는 곳, 그 곳에 가까운 곳이 있다면 아마 돌아 서야 할 분들일 듯합니다. 그 반대 편에 있는 분들이 비판을 받는 상황들은 아직까지는 인간적인 부족으로 인한 것 이상은 아닌 듯합니다. 알아 주지를 않더라,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 혼자 잘 난 줄 알더라, 돈을 사랑하더라, 돈을 아주 사랑하더라, 아주 돈밖에 모르더라, 사이가 좋아지지 않게 된 그 날부터 갑자기 나온 이런 표현은 화가 나서 하는 말로 들립니다.
88년 5월집회의 내용은 이 노선 그대로 갈 것인가, 더 좋은 곳이 있으면 가야 하나 먹고 살기 위해서 대충 앉아 있다면 양심도 없고 진실이 없는 사람이라, 나와 내 집은 이 노선을 제일로 알고 끝까지 걸어 가리라, 다만 그 어려움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현재 오해의 세월이 2년 3년이 지나가고 있으며 이미 다 판정이 된 듯합니다. 뒤엉켜 있는 넝쿨의 밑줄기를 낫으로 쳐 놓고 위쪽을 쳐다 보면 끊어진 줄기에 달려 있는 잔가지와 잎들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팔꼿처럼 빠른 것은 하루, 담쟁이처럼 좀 늦은 것도 3일이 지나고 나면 시들어 져 있어 그냥 표시가 납니다. 등나무처럼 아주 끊질긴 나무라도 2주일이 지나면 보듬어 주고 가루어 준다고 가려지지를 않습니다.
문제는 한 몸에 이 쪽 팔과 저 쪽 팔은 서로 논쟁을 하다가 그 끝이 서로 좋아져야 서로 성공을 하지 한 쪽이 상처를 입고 회복이 되지 않으면 멀쩡한 팔도 장애인 등록증을 받아야 합니다.
>> 교역자 님이 쓰신 내용 <<
:
: 총공회 내에서도 부산공회1과 2는 85년 5월 집회를 재독하고 부공3은 88년 5월을 재독합니다. 양 집회의 말씀을 비교해 주십시오. 그리고 집회 말씀이 나온 당시의 상황도 부탁을 드립니다. 또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르게 집회 내용을 복습하는데 이번 집회의 복습이 양쪽 참석 공회들에게 오늘 상황에서 어떤 말씀이 되는지도 설명을 부탁합니다.
85년과 88년의 집회를 비교하며
총공회 내에서도 부산공회1과 2는 85년 5월 집회를 재독하고 부공3은 88년 5월을 재독합니다. 양 집회의 말씀을 비교해 주십시오. 그리고 집회 말씀이 나온 당시의 상황도 부탁을 드립니다. 또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르게 집회 내용을 복습하는데 이번 집회의 복습이 양쪽 참석 공회들에게 오늘 상황에서 어떤 말씀이 되는지도 설명을 부탁합니다.
---------------------------
총공회 내에서도 부산공회1과 2는 85년 5월 집회를 재독하고 부공3은 88년 5월을 재독합니다. 양 집회의 말씀을 비교해 주십시오. 그리고 집회 말씀이 나온 당시의 상황도 부탁을 드립니다. 또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르게 집회 내용을 복습하는데 이번 집회의 복습이 양쪽 참석 공회들에게 오늘 상황에서 어떤 말씀이 되는지도 설명을 부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