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세상의 소금'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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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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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1 00:00
본문: 마태복음 5장 13절
제목: 세상의 소금
원문: 84.10.31.금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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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서 론: 세상의 소금
(소금의 성분)
(우리는 세상의 소금)
본 론
1. 기독자의 소금 생활
(소금의 본질과 본성)
(기독자의 본질 피와 성령과 진리)
(기독자의 본성 녹아지는 희생)
2. 소금 생활의 능력
(소금 생활의 능력)
(소금 생활의 방편은 자기희생)
3. 소금 생활의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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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세상의 소금
(소금의 성분)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것은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소금은 짠 맛의 본질과 녹아지는 본성을 가지고 식물을 상하지 않게 하고 음식의 맛을 내게 하는 것이 소금입니다. 세상에는 자체가 녹아짐으로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고 음식들을 맛있게 하는 소금 같은 것이 있는 반면 박테리아 같이 음식물을 상하게 하는 세균들도 있고, 깊은 밀림 같은 곳에는 곤충 같은 것들이 가까이 오면 끌어당겨 잡아먹는 식물들도 있습니다.
소금을 가지고 비유하신 것은 식물을 말하려 함이 아니고 사람을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소금의 성분과는 반대로 사람을 접촉하면 사람을 썩고 상하게 하여 못 쓸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자체가 녹아짐으로 다른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과는 반대로 다른 사람을 끌어다가 자기 사다리를 삼거나 자기 유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다 타락한 사망의 방편이지만 하나님 없는 타락한 인생들은 이렇게 사는 것을 실력으로 알고 처세로 알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신 것은 세상은 이렇게 썩은 것이 가득 찬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썩었다는 말은 생명이 없어 부패되었다는 말입니다. 생명은 하나님만이 생명이니 하나님 없는 세상은 개인이든 가정이든 사회든,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 없는 곳이면 다 썩은 것이고 썩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는 영감도 없고 진리도 없으니 그러므로 거기는 살아 있는 생명 역사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소금이라 하신 것은, 소금이 짠 간의 본질과 녹아지는 본성으로 다른 음식을 썩지 않게 하고 맛있게 하는 것처럼, 썩은 세상, 타락한 세상, 하나님 없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이 가진 본질과 녹아지는 본성의 희생으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썩지 않게 하고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들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썩지 않게 하는 것은 사람을 생명이신 하나님을 알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쓸모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 소금이 되어 녹아짐으로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듯이 나를 접촉하는 그들 또한 그런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활은 반드시 내가 먼저 소금처럼 녹아져야 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그 생활의 모습이 배어 들어가는 것은 필연입니다.
타락 후 하나님 없는 세상은 타락의 방편으로만 살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인 악령에게 미혹 받아 자기 중심이 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함으로 타락한 인생이기 때문에 타락한 인생의 모든 생활은 나면서부터 자기 중심의 생활이며 평생을 통하여 사는 모든 생활은 전부 자기 중심으로 모든 존재를 상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곤충이 가까이 오기만 하면 끌어당겨 잡아먹는 밀림에 있는 식물처럼, 상대하는 사람은 전부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한 사다리로 삼고 이용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없는 타락한 인생들의 모든 생활입니다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것은 우리는 자기를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 기독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모든 부요와 권세와 존귀 영광을 다 내어놓고 낮고 천한 사람이 되어 오셨고, 자신을 온전히 다 들여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희생으로 멸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앞서 가시고 우리가 따라가야 되는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생활은 타락한 세상의 방편과는 정반대입니다. 세상은 자기 중심이지만 우리는 하나과 다른 사람 구원 중심이며, 세상은 자기를 위해서만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다 바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다가 지옥 끝까지 떨어진 것이 세상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다가 물 한 방울도 없게 된 것이 타락한 세상입니다. 평안하려고 하다가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 것이 타락한 인생입니다. 살려 하다가 영원히 사망하게 된 것이 타락한 세상이며 인생입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자기는 소금이 되어 녹아지기만 하고 희생만 하는데 그 결과는 하나님과 모든 존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말 필요하고 요긴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심으로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주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녹아지는 소금의 방편으로 사는 길뿐입니다. 이 생활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도라고 합니다.
본 론
1. 기독자의 소금 생활
(소금의 본질과 본성)
소금은 다른 물질과 달리 그 가치가 본질인 짠 맛과 녹아지는 성분 이 두 가지에 있습니다. 소금에 짠 맛이 없거나 있어도 녹아지지 않으면 소금으로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정말 그 어디에도 쓸데없는 것이 맛 잃은 소금입니다. 이것 역시 비유입니다. 소금 비유를 통해서 우리 기독자의 본질과 본성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질 피와 성령과 진리)
기독자의 본질은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대단히 알기 어려운 말이고 실감은 더 어렵지만 우리 본질은 그러합니다. 피는 예수님의 대속을 말합니다. 성령은 영감을 말하고 진리는 참된 이치이며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기독자의 본질이 피와 성령과 진리라는 말은 기독자는 이 셋으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는데 심신은 소유격이고 주격은 영입니다. ‘사람’이라고 표현할 때의 주체는 영을 말합니다. 영이 없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주격인 영이 심신의 범죄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중생이라 하며, 중생이 되어야 비로소 예수님을 믿는 기독자가 되는 것인데, 이 주격인 영이 살아날 때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것입니다.
본질이라는 말은 그 존재의 본바탕이라는 뜻입니다. 그 존재를 이루고 있는 기본 요소라는 뜻이겠습니다. 그 본바탕이 없으면 그 존재는 없는 것이고, 본바탕이 그러하면 그 존재는 그대로 작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돌맹이는 단단하고 물은 출렁출렁합니다. 원래 본바탕이 그리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은 단단한 것이 필요할 때 쓰이고, 물은 물로 쓰이는 것입니다. 돌맹이가 물렁해지면 돌로서의 본질이 변한 것입니다. 그것은 단단한 돌이 필요할 때는 쓰지 못합니다. 물이 단단하게 굳었으면 물이 아닙니다. 물이 얼어 단단해 지면 얼음으로서 쓸모는 있어도 마시는 물로서는 사용하지 못합니다. 마시려면 다시 물로 녹여야 합니다. 물이 단단해 지면 일단 물이 변질된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질은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따라서 기독자의 생활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만 사는 것이 정상적인 생활입니다. 이 3가지를 떠난 생활은 우리 생활이 아닙니다. 기독자가 3가지를 떠나서 사는 생활은 변질된 것입니다. 그 본바탕이 변한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바탕은 기본적으로는 변하지 못하는데 사는 생활에 있어서 본바탕을 버리고 달리 사니까 변질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정상적인 생활은 3가지 본질로 사는 생활입니다. 대속 입은 사람으로 살아 죄 없는 사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 모신 사람으로, 하늘의 소망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신앙 양심을 통한 영감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말씀으로 나타내시는 진리로 사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본질 생활입니다. 이 생활의 실제는 자기 모든 현실 생활 전체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이 생활에서 떠나면 기독자로서는 변질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성 녹아지는 희생)
기독자의 본질이 피와 성령과 진리이면 기독자의 본성은 희생입니다. 녹아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소금이 자체가 녹아짐으로 다른 물질을 방부하고 맛을 내게 하는 것처럼, 기독자는 자기가 희생하여 녹아짐으로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붙이고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소금이 녹지 않으면 소금의 본질인 짠 간은 김치에도 생선에도 배어 들어가지 않습니다. 소금이 녹으면 소금은 줄어들고 소금의 본질인 짠 간은 김치에, 생선에, 여러 가지 음식물에 배어들어 방부를 하고 맛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성은 녹아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 없이는 기독자의 본질인 피와 성령과 진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인간 구원은 십자가의 희생 없이는 되는 길이 없습니다. 반드시 희생이 들어가야 합니다. 녹아야 합니다. 주일학생 한 명을 한 주일 교회로 인도하는 데도 반사 선생님의 많은 기도와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희생이며 녹아지는 것입니다. 자기 시간과 물질과 노력이 녹아야 합니다. 이런 희새이 없이는 인간 구원이 되지 않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의 생명의 구원 역사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기독자가 녹아지는 것은 반드시 3가지 본질로 녹아져야 합니다. 3가지와 상관없이 녹아지는 것은 기독자의 희생이 아닙니다. 3가지가 있어도 녹아지지 않으면 기독자의 생활은 아니고, 녹아져도 3가지가 없이, 3가지 아닌 다른 것으로 녹아지는 것은 기독자로서의 생활은 아닙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겉보기에는 불교나 유교나 다른 이종교와 비슷한 도덕적인 면이 많이 있지만 그 속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은 이종교에도 다 있고 세상 도덕에도 있지만 성경이 말씀하신 5계명은 그 근본이 하나님이고 세상 모든 부모 공경은 그 근본이 부모인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 근본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녹아지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3가지 기독자의 본질을 가지고 그로써 녹아지지 않으면 십자가는 아닙니다. 3가지 본질을 가지고, 그리고 녹아지는 것이 기독자의 십자가의 생활입니다. 3가지 본질과 녹아지는 본성 이 두 가지를 잃으면 기독자는 맛 잃은 소금과 같이 아무 데도 쓸데없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도 버림받고 세상에서도 천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2. 소금 생활의 능력
(소금 생활의 능력)
기독자의 본질인 피와 성령과 진리는 인적 요소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피는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대속은 첫째가 사죄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다 멸해 주신 대형의 사죄의 역사입니다. 칭의는 우리 대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다 이행하신 대행의 역사입니다. 화친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영원히 죽은 우리를 대신 죽기까지 하심으로 하나님과 화친하여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신 새생명의 역사입니다. 소망은 하나님이 영원히 사람의 몸을 입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은혜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감화 감동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진리로 우리 양심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진리는 참된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자체적인 창조의 능력을 가진 진리입니다.
우리의 주격인 영을 살린 것은 이 3가지가 살렸습니다. 영을 살린 피와 성령과 진리가 이제는 우리 심신의 기능을 살리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설구원은 우리 심신의 기능을 살리는 것인데,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은 현실에서 이 3가지로 사는 생활로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현실에서 대속을 입은 자로 살아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면 그때 관련된 심신의 기능은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의의 생활을 하면 심신의 기능이 살아납니다. 하나님 모시고 사는 생활 하면 심신의 기능은 살아납니다. 신앙양심을 통한 영감으로 살면 심신의 기능은 살아납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살면 심신의 기능이 살아납니다. 나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렇게 살면 나의 그 생활을 통하여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3가지 기독자의 본질은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고 영생하게 하는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사람의 요소가 아닌 무한하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소금 생활의 방편은 자기희생)
소금이 짠 본질을 가졌어도 녹아지지 않으면 소금으로서의 가치가 없듯이, 기독자는 3가지로 살아난 본질을 가졌지만 녹아지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3가지 본질을 가지고, 녹아져야 하는데, 중생된 사람은 이미 3가지 본질을 가진 사람이니 그 본질로 녹아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3가지로 사는 생활 그 자체가 녹아지는 생활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마귀 악령이고 세상의 모든 사람, 제도 조직 정치 문화 등 모든 것들은 악령의 것들입니다. 악령와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기독자의 본질인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생활은 애초에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라는 말은 십자가로 이루어진 도이며, 십자가로만 걸어갈 수 있고 십자가로만 성공의 결실을 할 수 있는 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자이십니다. 죄도 마귀도 사망도 전부 하나님이 만드셨고 내놓으신 것들입니다. 이런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는 당신이 친히 사람이 되어 오셔야 했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형벌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습니다.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만약에 주님이 십자가의 길 외에 그보다 쉽고 수월한 길이 있었다면 그 길을 가셨을 것입니다. 굳이 어렵고 힘든 길을 일부러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한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주님도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자의 본성의 생활은 자기가 낮아지고 천해지고 죽어지는 희생의 십자가의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피하는 사람, 고난을 싫어하는 사람은 신앙의 걸음을 끝까지 걸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고난을 많이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 이 3가지로 자기가 살고 다른 사람에게 이 3가지를 전하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되는 십자가의 길 이것만이 세상에 사는 성도의 재세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3. 소금 생활의 자본
소금의 본성은 녹는 것인데 녹으면 그 자체가 없어져 버립니다. 따라서 크고 많은 소금은 많이 녹을 수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소금이 한 알뿐이면 녹아 봐야 별로 크게 효력도 없습니다. 소금 그 자체의 부피나 양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의 분량이 달라집니다. 이는 물질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기독자가 3가지 본질로 녹아지는 생활은 겉으로는 사람이 하는 생활이지만 그 뿌리는 하나님이십니다. 3가지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3가지로 사는 생활은 겉은 사람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이기 때문에 이 일은 전지며 전능이며 완전이며 동시에 무한입니다. 하나님이 근거되고 하나님과 연결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 이 일은 그 자본이 끝이 없는 무한입니다. 나는 무지 무능하지만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나는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신 분량만큼만 다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결되는 기독자 외에는 이 생활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이 나오게 되는 까닭이다.
제목: 세상의 소금
원문: 84.10.31.금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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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서 론: 세상의 소금
(소금의 성분)
(우리는 세상의 소금)
본 론
1. 기독자의 소금 생활
(소금의 본질과 본성)
(기독자의 본질 피와 성령과 진리)
(기독자의 본성 녹아지는 희생)
2. 소금 생활의 능력
(소금 생활의 능력)
(소금 생활의 방편은 자기희생)
3. 소금 생활의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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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세상의 소금
(소금의 성분)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것은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소금은 짠 맛의 본질과 녹아지는 본성을 가지고 식물을 상하지 않게 하고 음식의 맛을 내게 하는 것이 소금입니다. 세상에는 자체가 녹아짐으로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고 음식들을 맛있게 하는 소금 같은 것이 있는 반면 박테리아 같이 음식물을 상하게 하는 세균들도 있고, 깊은 밀림 같은 곳에는 곤충 같은 것들이 가까이 오면 끌어당겨 잡아먹는 식물들도 있습니다.
소금을 가지고 비유하신 것은 식물을 말하려 함이 아니고 사람을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소금의 성분과는 반대로 사람을 접촉하면 사람을 썩고 상하게 하여 못 쓸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자체가 녹아짐으로 다른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과는 반대로 다른 사람을 끌어다가 자기 사다리를 삼거나 자기 유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다 타락한 사망의 방편이지만 하나님 없는 타락한 인생들은 이렇게 사는 것을 실력으로 알고 처세로 알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신 것은 세상은 이렇게 썩은 것이 가득 찬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썩었다는 말은 생명이 없어 부패되었다는 말입니다. 생명은 하나님만이 생명이니 하나님 없는 세상은 개인이든 가정이든 사회든,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 없는 곳이면 다 썩은 것이고 썩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는 영감도 없고 진리도 없으니 그러므로 거기는 살아 있는 생명 역사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소금이라 하신 것은, 소금이 짠 간의 본질과 녹아지는 본성으로 다른 음식을 썩지 않게 하고 맛있게 하는 것처럼, 썩은 세상, 타락한 세상, 하나님 없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이 가진 본질과 녹아지는 본성의 희생으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썩지 않게 하고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들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썩지 않게 하는 것은 사람을 생명이신 하나님을 알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쓸모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 소금이 되어 녹아짐으로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듯이 나를 접촉하는 그들 또한 그런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활은 반드시 내가 먼저 소금처럼 녹아져야 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그 생활의 모습이 배어 들어가는 것은 필연입니다.
타락 후 하나님 없는 세상은 타락의 방편으로만 살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인 악령에게 미혹 받아 자기 중심이 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함으로 타락한 인생이기 때문에 타락한 인생의 모든 생활은 나면서부터 자기 중심의 생활이며 평생을 통하여 사는 모든 생활은 전부 자기 중심으로 모든 존재를 상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곤충이 가까이 오기만 하면 끌어당겨 잡아먹는 밀림에 있는 식물처럼, 상대하는 사람은 전부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한 사다리로 삼고 이용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없는 타락한 인생들의 모든 생활입니다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것은 우리는 자기를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 기독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모든 부요와 권세와 존귀 영광을 다 내어놓고 낮고 천한 사람이 되어 오셨고, 자신을 온전히 다 들여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희생으로 멸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앞서 가시고 우리가 따라가야 되는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생활은 타락한 세상의 방편과는 정반대입니다. 세상은 자기 중심이지만 우리는 하나과 다른 사람 구원 중심이며, 세상은 자기를 위해서만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다 바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다가 지옥 끝까지 떨어진 것이 세상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다가 물 한 방울도 없게 된 것이 타락한 세상입니다. 평안하려고 하다가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 것이 타락한 인생입니다. 살려 하다가 영원히 사망하게 된 것이 타락한 세상이며 인생입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자기는 소금이 되어 녹아지기만 하고 희생만 하는데 그 결과는 하나님과 모든 존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말 필요하고 요긴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심으로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주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녹아지는 소금의 방편으로 사는 길뿐입니다. 이 생활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도라고 합니다.
본 론
1. 기독자의 소금 생활
(소금의 본질과 본성)
소금은 다른 물질과 달리 그 가치가 본질인 짠 맛과 녹아지는 성분 이 두 가지에 있습니다. 소금에 짠 맛이 없거나 있어도 녹아지지 않으면 소금으로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정말 그 어디에도 쓸데없는 것이 맛 잃은 소금입니다. 이것 역시 비유입니다. 소금 비유를 통해서 우리 기독자의 본질과 본성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질 피와 성령과 진리)
기독자의 본질은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대단히 알기 어려운 말이고 실감은 더 어렵지만 우리 본질은 그러합니다. 피는 예수님의 대속을 말합니다. 성령은 영감을 말하고 진리는 참된 이치이며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기독자의 본질이 피와 성령과 진리라는 말은 기독자는 이 셋으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는데 심신은 소유격이고 주격은 영입니다. ‘사람’이라고 표현할 때의 주체는 영을 말합니다. 영이 없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주격인 영이 심신의 범죄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중생이라 하며, 중생이 되어야 비로소 예수님을 믿는 기독자가 되는 것인데, 이 주격인 영이 살아날 때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것입니다.
본질이라는 말은 그 존재의 본바탕이라는 뜻입니다. 그 존재를 이루고 있는 기본 요소라는 뜻이겠습니다. 그 본바탕이 없으면 그 존재는 없는 것이고, 본바탕이 그러하면 그 존재는 그대로 작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돌맹이는 단단하고 물은 출렁출렁합니다. 원래 본바탕이 그리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은 단단한 것이 필요할 때 쓰이고, 물은 물로 쓰이는 것입니다. 돌맹이가 물렁해지면 돌로서의 본질이 변한 것입니다. 그것은 단단한 돌이 필요할 때는 쓰지 못합니다. 물이 단단하게 굳었으면 물이 아닙니다. 물이 얼어 단단해 지면 얼음으로서 쓸모는 있어도 마시는 물로서는 사용하지 못합니다. 마시려면 다시 물로 녹여야 합니다. 물이 단단해 지면 일단 물이 변질된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질은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따라서 기독자의 생활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만 사는 것이 정상적인 생활입니다. 이 3가지를 떠난 생활은 우리 생활이 아닙니다. 기독자가 3가지를 떠나서 사는 생활은 변질된 것입니다. 그 본바탕이 변한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바탕은 기본적으로는 변하지 못하는데 사는 생활에 있어서 본바탕을 버리고 달리 사니까 변질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정상적인 생활은 3가지 본질로 사는 생활입니다. 대속 입은 사람으로 살아 죄 없는 사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 모신 사람으로, 하늘의 소망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신앙 양심을 통한 영감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말씀으로 나타내시는 진리로 사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본질 생활입니다. 이 생활의 실제는 자기 모든 현실 생활 전체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이 생활에서 떠나면 기독자로서는 변질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성 녹아지는 희생)
기독자의 본질이 피와 성령과 진리이면 기독자의 본성은 희생입니다. 녹아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소금이 자체가 녹아짐으로 다른 물질을 방부하고 맛을 내게 하는 것처럼, 기독자는 자기가 희생하여 녹아짐으로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붙이고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소금이 녹지 않으면 소금의 본질인 짠 간은 김치에도 생선에도 배어 들어가지 않습니다. 소금이 녹으면 소금은 줄어들고 소금의 본질인 짠 간은 김치에, 생선에, 여러 가지 음식물에 배어들어 방부를 하고 맛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성은 녹아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 없이는 기독자의 본질인 피와 성령과 진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인간 구원은 십자가의 희생 없이는 되는 길이 없습니다. 반드시 희생이 들어가야 합니다. 녹아야 합니다. 주일학생 한 명을 한 주일 교회로 인도하는 데도 반사 선생님의 많은 기도와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희생이며 녹아지는 것입니다. 자기 시간과 물질과 노력이 녹아야 합니다. 이런 희새이 없이는 인간 구원이 되지 않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의 생명의 구원 역사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기독자가 녹아지는 것은 반드시 3가지 본질로 녹아져야 합니다. 3가지와 상관없이 녹아지는 것은 기독자의 희생이 아닙니다. 3가지가 있어도 녹아지지 않으면 기독자의 생활은 아니고, 녹아져도 3가지가 없이, 3가지 아닌 다른 것으로 녹아지는 것은 기독자로서의 생활은 아닙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겉보기에는 불교나 유교나 다른 이종교와 비슷한 도덕적인 면이 많이 있지만 그 속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은 이종교에도 다 있고 세상 도덕에도 있지만 성경이 말씀하신 5계명은 그 근본이 하나님이고 세상 모든 부모 공경은 그 근본이 부모인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 근본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녹아지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3가지 기독자의 본질을 가지고 그로써 녹아지지 않으면 십자가는 아닙니다. 3가지 본질을 가지고, 그리고 녹아지는 것이 기독자의 십자가의 생활입니다. 3가지 본질과 녹아지는 본성 이 두 가지를 잃으면 기독자는 맛 잃은 소금과 같이 아무 데도 쓸데없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도 버림받고 세상에서도 천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2. 소금 생활의 능력
(소금 생활의 능력)
기독자의 본질인 피와 성령과 진리는 인적 요소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피는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대속은 첫째가 사죄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다 멸해 주신 대형의 사죄의 역사입니다. 칭의는 우리 대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다 이행하신 대행의 역사입니다. 화친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영원히 죽은 우리를 대신 죽기까지 하심으로 하나님과 화친하여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신 새생명의 역사입니다. 소망은 하나님이 영원히 사람의 몸을 입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은혜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감화 감동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진리로 우리 양심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진리는 참된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자체적인 창조의 능력을 가진 진리입니다.
우리의 주격인 영을 살린 것은 이 3가지가 살렸습니다. 영을 살린 피와 성령과 진리가 이제는 우리 심신의 기능을 살리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설구원은 우리 심신의 기능을 살리는 것인데,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은 현실에서 이 3가지로 사는 생활로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현실에서 대속을 입은 자로 살아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면 그때 관련된 심신의 기능은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의의 생활을 하면 심신의 기능이 살아납니다. 하나님 모시고 사는 생활 하면 심신의 기능은 살아납니다. 신앙양심을 통한 영감으로 살면 심신의 기능은 살아납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살면 심신의 기능이 살아납니다. 나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렇게 살면 나의 그 생활을 통하여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3가지 기독자의 본질은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고 영생하게 하는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사람의 요소가 아닌 무한하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소금 생활의 방편은 자기희생)
소금이 짠 본질을 가졌어도 녹아지지 않으면 소금으로서의 가치가 없듯이, 기독자는 3가지로 살아난 본질을 가졌지만 녹아지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3가지 본질을 가지고, 녹아져야 하는데, 중생된 사람은 이미 3가지 본질을 가진 사람이니 그 본질로 녹아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3가지로 사는 생활 그 자체가 녹아지는 생활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마귀 악령이고 세상의 모든 사람, 제도 조직 정치 문화 등 모든 것들은 악령의 것들입니다. 악령와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기독자의 본질인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생활은 애초에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라는 말은 십자가로 이루어진 도이며, 십자가로만 걸어갈 수 있고 십자가로만 성공의 결실을 할 수 있는 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자이십니다. 죄도 마귀도 사망도 전부 하나님이 만드셨고 내놓으신 것들입니다. 이런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는 당신이 친히 사람이 되어 오셔야 했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형벌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습니다.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만약에 주님이 십자가의 길 외에 그보다 쉽고 수월한 길이 있었다면 그 길을 가셨을 것입니다. 굳이 어렵고 힘든 길을 일부러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한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주님도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자의 본성의 생활은 자기가 낮아지고 천해지고 죽어지는 희생의 십자가의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피하는 사람, 고난을 싫어하는 사람은 신앙의 걸음을 끝까지 걸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고난을 많이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 이 3가지로 자기가 살고 다른 사람에게 이 3가지를 전하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되는 십자가의 길 이것만이 세상에 사는 성도의 재세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3. 소금 생활의 자본
소금의 본성은 녹는 것인데 녹으면 그 자체가 없어져 버립니다. 따라서 크고 많은 소금은 많이 녹을 수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소금이 한 알뿐이면 녹아 봐야 별로 크게 효력도 없습니다. 소금 그 자체의 부피나 양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의 분량이 달라집니다. 이는 물질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기독자가 3가지 본질로 녹아지는 생활은 겉으로는 사람이 하는 생활이지만 그 뿌리는 하나님이십니다. 3가지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3가지로 사는 생활은 겉은 사람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이기 때문에 이 일은 전지며 전능이며 완전이며 동시에 무한입니다. 하나님이 근거되고 하나님과 연결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 이 일은 그 자본이 끝이 없는 무한입니다. 나는 무지 무능하지만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나는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신 분량만큼만 다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결되는 기독자 외에는 이 생활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이 나오게 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