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지정의라면 동물도 혼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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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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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8 10:44
웨인그루뎀 교수의 조직신학(개정증보판) 책에서 "혼을 지정의로 정의한다면 동물도 혼이 있다" 라고 기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위의 내용에서 그루뎀교수는 인간의 혼은 하나님을 알고 교제할 수 있는 영적능력이 있는 혼(비물질)이기에 동물의 혼과는 다르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공회의 교리 입장에서 평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위의 내용에서 그루뎀교수는 인간의 혼은 하나님을 알고 교제할 수 있는 영적능력이 있는 혼(비물질)이기에 동물의 혼과는 다르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공회의 교리 입장에서 평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지정의로 파악하는 것은 세상 모두가 일반입니다. 알고 따지고 살피는 지성, 느끼고 반응하는 정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의지를 빼면 마음이 될 수도 없지만 그 어떤 마음의 표현도 이 3가지 정도로 요약하면 다 포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라고 할 때 엔진, 바퀴, 핸들이 전부가 아닐까요? 동력 전달의 shaft는? 엔진과 바퀴의 연장선일 것이고, 범퍼와 라디오는 있으면 좋고 빼도 될 듯합니다.
동물에게 지식과 지혜가 없다 하면 웃을 일이고, 동물이 화를 내고 좋아 하고 노래 부르는 것이 없다 해도 말이 되지 않을 것이며, 동물에게 계획이 있고 인내와 판단이 없다 해도 곤란할 듯합니다. 고대 사회로부터 그 누구든 다 아는 일인데 학문의 최고봉 위에 최고를 자처하는 신학이 이런 초보적 문제를 이런 말세가 되어서야 진지하게 살펴 보게 된 것은, 신앙의 성장 과정에서 더 중요하게 밟아 온 역사 때문에 미뤄 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나라 전체가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는가, 부부는 남녀가 맞지 않는가 이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광화문에 1백 만 기독교인이 총궐기를 하는 것은 시대의 유치화가 막판에 몰린 상황이지 그렇게 고난도 문제여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시각 문제요 삐뚤어진 심성 문제일 뿐입니다. 그렇다 해도 신학의 모든 난마를 해결하는 단초이니 이 문제를 공회 외부의 역사와 현황을 살피며 공회 교리와 비교하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동물에게 지식과 지혜가 없다 하면 웃을 일이고, 동물이 화를 내고 좋아 하고 노래 부르는 것이 없다 해도 말이 되지 않을 것이며, 동물에게 계획이 있고 인내와 판단이 없다 해도 곤란할 듯합니다. 고대 사회로부터 그 누구든 다 아는 일인데 학문의 최고봉 위에 최고를 자처하는 신학이 이런 초보적 문제를 이런 말세가 되어서야 진지하게 살펴 보게 된 것은, 신앙의 성장 과정에서 더 중요하게 밟아 온 역사 때문에 미뤄 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나라 전체가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는가, 부부는 남녀가 맞지 않는가 이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광화문에 1백 만 기독교인이 총궐기를 하는 것은 시대의 유치화가 막판에 몰린 상황이지 그렇게 고난도 문제여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시각 문제요 삐뚤어진 심성 문제일 뿐입니다. 그렇다 해도 신학의 모든 난마를 해결하는 단초이니 이 문제를 공회 외부의 역사와 현황을 살피며 공회 교리와 비교하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킹제임스 등 영어성경)을 읽어보면, 분명 동물도 "영(spirit)"이 있습니다. 다만 동물의 영은 땅으로 가고 인간의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영이 독자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는 생명의 부활을 해서 거룩한 몸을 입게 될 것이고, 구원받지 않은 자는 사망의 부활을 해서 미천한 몸을 입어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인간의 영이 독자적인 존재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지 않아요. 성경적으로 인간은 몸과 혼과 영이 결합된 일체적인 존재입니다.
흔히 영과 혼을 같은(註. 쓴이 정정: 2.10) 것이라고 보는데, 인간이 구원받기 전에는 역시 영과 혼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영과 혼의 존재상 혹은 기능성 차이가 분명 존재합니다. 보통 혼은 옛사람이라고 표현되고, 영은 새사람이라고 표현됩니다.
흔히 영과 혼을 같은(註. 쓴이 정정: 2.10) 것이라고 보는데, 인간이 구원받기 전에는 역시 영과 혼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영과 혼의 존재상 혹은 기능성 차이가 분명 존재합니다. 보통 혼은 옛사람이라고 표현되고, 영은 새사람이라고 표현됩니다.
인간 3분설이나 인간 2분설이라든지 하는 주장은 신앙의 핵심적인 관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성경은 인간의 영과 혼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몇몇 구절에서는 분명히 구분하고 있어요. 영은 대체적으로 잠재의식적인 측면으로 나타나고, 혼은 의식적인 측면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이 구원을 받았더라도 잘 인식하지 못하고 그 구원의 결과를 의식적으로 끌어올려야만 구원에 대해 오성 또는 감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분명 구원을 받았다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났어요. 새로운 영은 이미 활동하고 있어요. 성령의 말씀을 귀 기울이고 성경을 열심히 읽어 우리 옛사람(지금도 남아 있는 육적인 못된 습성)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