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사님의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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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0
17
2014.08.25 00:00
평생 백목사님을 존경하고 따르던 선배 목사님이 1985년에 백목사님이 신유활동에 나서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섰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파는 달라도 진심으로 백목사님을 존경했던 분입니다.
백목사님의 기록을 보면 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방언이나 신유활동을 크게 비판했습니다. 순 마귀운동이라고 지칭한 정도입니다. 그런데 83년경부터 신유에 대한 입장을 바꾸시고 84년부터는 적극적으로 권장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노선의 신유활동에 대한 입장을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백목사님의 기록을 보면 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방언이나 신유활동을 크게 비판했습니다. 순 마귀운동이라고 지칭한 정도입니다. 그런데 83년경부터 신유에 대한 입장을 바꾸시고 84년부터는 적극적으로 권장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노선의 신유활동에 대한 입장을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길 - 신유를 중심으로
이미 다른 답변자께서 설명했던 내용이나 간추리면서 다시 소개합니다.
신유라는 것은 성경의 이적이나 표적을 말하며 세상에서는 기적이라고 합니다.
신앙에 기적이 없다면 그 것은 신앙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기적뿐이라면 세상을 자연스런 일반 이치에 따라 살아가게 만들어 놓은 것도 모순입니다.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우심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사는 것이 신앙의 일반 생활이라면 초자연적인 도우심은 이적이며 표적입니다. 이적에만 치우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되고 이적을 무시하고 진리만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을 무능하게 만듭니다.
공회는 백 목사님의 신앙 초기 1945년 전까지는 환란을 이기는 단련의 시기였고, 해방 후 5년 정도는 초자연으로만 살았다 할 만큼 기적이 허다했습니다. 1952년에 부산으로 이동한 후 이 노선은 말씀 연구 중심으로 전환합니다. 물론 어느 시기든 한 가지만 가지고 살지 않았으나 단련과 기적과 말씀이 각 시대에 더 강조된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유지하던 이 말씀 중심의 기간에 공회는 교리사적으로 중대한 발전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1982년에 백 목사님이 임종할 뻔했고 1983년에 다시 건강을 되찾자 자신의 갈 날을 준비합니다. 바로 이 1983년부터 89년 가실 때까지 기간에는 '환란' 설교도 그토록 많이 했고 기적으로 사는 신유도 강조했고 한 편으로 말씀 연구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도록 높았습니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는 그 분의 생애가 모든 면으로 완성의 단계였고 원만했는데 1952년부터 30여년간 마치 금지 시킨 듯했던 신유의 기적적인 현상을 원래대로 가르치게 되자 1952년 이후만을 아는 분들이 마치 공회 신앙이 순복음을 좇아 변질된다고 우려합니다.
순복음교회를 비롯하여 신유를 주장하는 교회들은 거의 전부 손으로 이마나 가슴을 치는 기력술 기압술 차력술적인 술법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나타날 수도 있으나 거의 전부는 박태선의 전도관도 해왔던 심리술에 기압술을 더한 술수들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백 목사님은 과거 그대로 설교를 했을 뿐인데 그 설교를 들을 때에 깨닫고 회개하고 각오하는 이들에게 각자 마음 속에 오셨던 성령이 그들에게 여러 증거를 주셨고 그 증거가 그 어떤 교파의 이적과 신유보다 크고 많았을 뿐입니다. 백 목사님은 안수하지 않습니다. 아주 특수한 경우는 손을 잡고 기도하거나 또는 안수라고 오해할 정도가 있었지만 거의 전부는 그냥 설교하고 그냥 일반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 중에 나아서 좋을 교인에게는 치료의 은혜를 주시도록 부탁하는 정도였습니다.
고대사까지는 몰라도 아마 근현대에 안수 없이 일반 예배만 인도하는데 이처럼 많은 신유가 나타난 경우는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것이 귀한 이유는 말씀만 증거했고 그 말씀은 교리적 성경해석적 강의였을 뿐이라는 점입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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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백목사님을 존경하고 따르던 선배 목사님이 1985년에 백목사님이 신유활동에 나서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섰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파는 달라도 진심으로 백목사님을 존경했던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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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목사님의 기록을 보면 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방언이나 신유활동을 크게 비판했습니다. 순 마귀운동이라고 지칭한 정도입니다. 그런데 83년경부터 신유에 대한 입장을 바꾸시고 84년부터는 적극적으로 권장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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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노선의 신유활동에 대한 입장을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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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답변자께서 설명했던 내용이나 간추리면서 다시 소개합니다.
신유라는 것은 성경의 이적이나 표적을 말하며 세상에서는 기적이라고 합니다.
신앙에 기적이 없다면 그 것은 신앙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기적뿐이라면 세상을 자연스런 일반 이치에 따라 살아가게 만들어 놓은 것도 모순입니다.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우심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사는 것이 신앙의 일반 생활이라면 초자연적인 도우심은 이적이며 표적입니다. 이적에만 치우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되고 이적을 무시하고 진리만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을 무능하게 만듭니다.
공회는 백 목사님의 신앙 초기 1945년 전까지는 환란을 이기는 단련의 시기였고, 해방 후 5년 정도는 초자연으로만 살았다 할 만큼 기적이 허다했습니다. 1952년에 부산으로 이동한 후 이 노선은 말씀 연구 중심으로 전환합니다. 물론 어느 시기든 한 가지만 가지고 살지 않았으나 단련과 기적과 말씀이 각 시대에 더 강조된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유지하던 이 말씀 중심의 기간에 공회는 교리사적으로 중대한 발전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1982년에 백 목사님이 임종할 뻔했고 1983년에 다시 건강을 되찾자 자신의 갈 날을 준비합니다. 바로 이 1983년부터 89년 가실 때까지 기간에는 '환란' 설교도 그토록 많이 했고 기적으로 사는 신유도 강조했고 한 편으로 말씀 연구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도록 높았습니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는 그 분의 생애가 모든 면으로 완성의 단계였고 원만했는데 1952년부터 30여년간 마치 금지 시킨 듯했던 신유의 기적적인 현상을 원래대로 가르치게 되자 1952년 이후만을 아는 분들이 마치 공회 신앙이 순복음을 좇아 변질된다고 우려합니다.
순복음교회를 비롯하여 신유를 주장하는 교회들은 거의 전부 손으로 이마나 가슴을 치는 기력술 기압술 차력술적인 술법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나타날 수도 있으나 거의 전부는 박태선의 전도관도 해왔던 심리술에 기압술을 더한 술수들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백 목사님은 과거 그대로 설교를 했을 뿐인데 그 설교를 들을 때에 깨닫고 회개하고 각오하는 이들에게 각자 마음 속에 오셨던 성령이 그들에게 여러 증거를 주셨고 그 증거가 그 어떤 교파의 이적과 신유보다 크고 많았을 뿐입니다. 백 목사님은 안수하지 않습니다. 아주 특수한 경우는 손을 잡고 기도하거나 또는 안수라고 오해할 정도가 있었지만 거의 전부는 그냥 설교하고 그냥 일반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 중에 나아서 좋을 교인에게는 치료의 은혜를 주시도록 부탁하는 정도였습니다.
고대사까지는 몰라도 아마 근현대에 안수 없이 일반 예배만 인도하는데 이처럼 많은 신유가 나타난 경우는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것이 귀한 이유는 말씀만 증거했고 그 말씀은 교리적 성경해석적 강의였을 뿐이라는 점입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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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백목사님을 존경하고 따르던 선배 목사님이 1985년에 백목사님이 신유활동에 나서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섰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파는 달라도 진심으로 백목사님을 존경했던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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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목사님의 기록을 보면 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방언이나 신유활동을 크게 비판했습니다. 순 마귀운동이라고 지칭한 정도입니다. 그런데 83년경부터 신유에 대한 입장을 바꾸시고 84년부터는 적극적으로 권장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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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노선의 신유활동에 대한 입장을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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