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7:50-53, 죽으실 때와 부활하실 때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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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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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1 00:00
1. 주님 돌아 가실 때
50절에서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일단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었습니다.
51절에서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히10:20에서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하셨으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아 놓은 것은 원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걸머 지셨으니 예수님의 육체가 히10:20에서 휘장이며 이 육체가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 완전히 죽을 때 하나님과 우리를 막아 놓았던 죄 문제를 완전히 찢어 내 버리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바로 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1절에서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원래 이 세상은 악령이 거머 쥐고 지옥만 만들던 곳이었는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제는 성령이 우리를 붙들고 천국을 마련하는 곳이 되었으니 땅이 통째로 흔들린 것이며, 깨어 질 리가 없고 깰 수가 없었으며 하나님과 맞섰던 하나님의 원수 자기라는 바위도 예수님의 죽음으로 버쩍 깨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52절에서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무덤은 사망이나 사망의 값으로 예수님이 죽어 버리게 되자 이제 사망도 더 이상 성도를 붙들어 둘 수가 없고 사망의 세계로부터 성도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미 죽은 몸이 예수님이 죄의 값을 치르게 되자 이제 그 몸도 일어 나게 되었습니다.
2. 주님의 부활 때
그런데 53절에서 예수님의 죽으실 때 무덤에서 일어 난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 때에는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들어 갔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고 죽으신 희생은 죄에게 붙들려 있고 사망에게 잡혀 있는 우리를 해방한 것까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희생으로 우리는 생명의 나라 영광의 나라 의와 거룩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 영원히 살게 됨을 가르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라 하지 않고 거룩한 성이라 했는데 계21:2 등 많은 곳에서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이라도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 세상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중동 지방의 이스라엘 지명이나 거룩한 성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이며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세계니 우리의 영원한 나라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사람 되어 우리 대신 죽으신 수고로 우리는 지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또 다시 사람을 입으신 수고로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나누어 가르치고 있으니 당연히 사활의 대속을 말하는 것이고, 이 둘을 나눌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또 다른 희생입니다. 사실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는 죽음만 보통 예수님의 희생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의 부활은 이제 성공하고 잘 되었다고 박수를 치지만 사람 되어 죽으신 수고는 총 33 년이지만 부활하여 사람 되심으로 수고하시는 이 수고는 부활 후 영원 무궁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치려고 해 보면 많은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바른 일을 하게 해 보려면 또 다른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 교역 님이 쓰신 내용 <<
:
: 백 목사님의 성경 분석이 깊고 설교의 세계가 굉장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가끔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굳이 그렇게 구별해야 할 실익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
: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했다는 것이 일반 신학입니다. 부활은 필연적으로 따라 오는 승리의 결과이며 영광이라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은 부활의 희생을 강조하고 부활로 인해 주는 대속이 있다고 합니다. 모두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꼭 나눌 만큼 되는가?
:
: 이런 면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부활절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 중에도 삼대절기는 제일 유명한 설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료를 받아본 동역자들은 모두 놀랍니다. 너무 간결하고 너무 깊고 너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의 깊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은혜를 받으면서도 꼭 그렇게 3가지를 신약과 구약으로 나란히 맞추어야 하는가, 어떤 근거일까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50절에서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일단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었습니다.
51절에서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히10:20에서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하셨으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아 놓은 것은 원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걸머 지셨으니 예수님의 육체가 히10:20에서 휘장이며 이 육체가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 완전히 죽을 때 하나님과 우리를 막아 놓았던 죄 문제를 완전히 찢어 내 버리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바로 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1절에서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원래 이 세상은 악령이 거머 쥐고 지옥만 만들던 곳이었는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제는 성령이 우리를 붙들고 천국을 마련하는 곳이 되었으니 땅이 통째로 흔들린 것이며, 깨어 질 리가 없고 깰 수가 없었으며 하나님과 맞섰던 하나님의 원수 자기라는 바위도 예수님의 죽음으로 버쩍 깨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52절에서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무덤은 사망이나 사망의 값으로 예수님이 죽어 버리게 되자 이제 사망도 더 이상 성도를 붙들어 둘 수가 없고 사망의 세계로부터 성도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미 죽은 몸이 예수님이 죄의 값을 치르게 되자 이제 그 몸도 일어 나게 되었습니다.
2. 주님의 부활 때
그런데 53절에서 예수님의 죽으실 때 무덤에서 일어 난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 때에는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들어 갔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고 죽으신 희생은 죄에게 붙들려 있고 사망에게 잡혀 있는 우리를 해방한 것까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희생으로 우리는 생명의 나라 영광의 나라 의와 거룩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 영원히 살게 됨을 가르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라 하지 않고 거룩한 성이라 했는데 계21:2 등 많은 곳에서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이라도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 세상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중동 지방의 이스라엘 지명이나 거룩한 성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이며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세계니 우리의 영원한 나라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사람 되어 우리 대신 죽으신 수고로 우리는 지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또 다시 사람을 입으신 수고로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나누어 가르치고 있으니 당연히 사활의 대속을 말하는 것이고, 이 둘을 나눌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또 다른 희생입니다. 사실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는 죽음만 보통 예수님의 희생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의 부활은 이제 성공하고 잘 되었다고 박수를 치지만 사람 되어 죽으신 수고는 총 33 년이지만 부활하여 사람 되심으로 수고하시는 이 수고는 부활 후 영원 무궁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치려고 해 보면 많은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바른 일을 하게 해 보려면 또 다른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 교역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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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의 성경 분석이 깊고 설교의 세계가 굉장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가끔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굳이 그렇게 구별해야 할 실익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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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했다는 것이 일반 신학입니다. 부활은 필연적으로 따라 오는 승리의 결과이며 영광이라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은 부활의 희생을 강조하고 부활로 인해 주는 대속이 있다고 합니다. 모두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꼭 나눌 만큼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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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면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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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절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 중에도 삼대절기는 제일 유명한 설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료를 받아본 동역자들은 모두 놀랍니다. 너무 간결하고 너무 깊고 너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의 깊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은혜를 받으면서도 꼭 그렇게 3가지를 신약과 구약으로 나란히 맞추어야 하는가, 어떤 근거일까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