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의 차이

문의답변      


시야의 차이

분류
연구부 0
1. 일반적으로
눈 앞을 보면 먼 곳이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장만 보고 결정합니다. 이럴 때를 우리는 맹목적이라 합니다. 보이는 대로 달려 갑니다. 그 뒤의 절벽을 볼 수 없고, 절벽으로 헛디딜 때 그 몸이 허공에 뜬 다음의 상황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용감해 집니다. 사람이 진보가 되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그 뒤를 보고, 또 그 뒤를 계산하고, 또 그 뒤를 조사하게 되면 사람은 당장에 보이는 것을 조심하게 됩니다. 신중해 집니다. 현재 볼 수 없는 것을 미리 보게 되면 당장의 행동을 조심합니다. 보수가 되는 이유입니다. 시야의 차이입니다.

칼빈은 나이가 젊었던 20대에 천주교를 통째로 개혁합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극단적 급진적 진보주의자였습니다. 그 것은 천주교 기준이었습니다. 천주교가 가려 놓은 성경, 그 성경은 영원 전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가 당시 기준으로 1500년에서 3000년 전에 기록되어 진 것이고, 그 성경에 기준을 잡고 당시를 봤기 때문에 철저하게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아니 되었습니다. 즉, 칼빈은 당대만 기준으로 보면 진보였지만 기준 시점을 폭넓게 늘려 놓으면 극단적 보수였습니다. 디모데의 경우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모세는 80세에 나섰지만, 원래 그 출발은 모세가 태어날 때부터 모세에게 주어진 80년 전의 사명이었습니다. 모세의 행동은 진보였으나 그 행동의 바탕은 오래 된, 아주 캐캐묵은 고품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바로 창12장의 그 옛날 500여년 전에 약속된 것을 뒷늦게 이행하는 것이니 모세도 극보수였습니다. 그 길을 가로 막는 바로를 제거하는 그 순간만 보면 급진적 극단적 진보처럼 보입니다.


2. 중요한 것은
세상은 진보로 발전하고, 보수로 지킬 것을 지켜 낸다고 하는데 양 쪽 다 거짓말입니다. 진보는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명예 자기의 소질 자기 속에 자기다운 그 어떤 것을 고려할 때 자기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진보를 내세웠을 뿐이고, 보수도 정확히 같은 동기로 보수를 말할 뿐입니다.

신앙 세계의 진보와 보수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주신 것은 6천년이 지나고 영원무궁 천국에 가서도 지켜 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라 가라고 하시는 것은 어제까지 차고 있던 기저귀를 오늘부터 대소변을 가릴 줄 알게 되면 바로 내던져야 합니다.


3. 신앙과 세상이 같아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에 참고하라고 세상을 실물 교재로 펼쳐 놓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이라 해도 천국을 향하는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구성을 해 놓았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면 엉망이지만 그 이치 그 작동 원리를 잘 지켜 보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므로 세상과 신앙은 같아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세상과 교회가 본질적으로 그 내용까지 정말 같아 져 버리는 상황입니다. 이를 교회의 속화라고 합니다. 이 때 '속'은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이용하고 참고하여 천국만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속속들이 닮아 버리고 세상을 이용한다고 하다가 아예 세상이 되어 버리는 경우입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
: 진리는 변치 않기 때문에 천주교에 있든 사회 어느 계층에 있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난하고 어려우면 진보가 되고, 기득권을 갖게 되면 보수가 되는 것으로 아는데.. 진보는 젊을 때나 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칼빈이 종교개혁을 한 것은 진보 중에도 진보여서 혁신을 넘어서고 혁명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칼빈의 나이 20대였습니다. 디모데는 연소함을 업신 여기지 못하게 하라 했는데 그는 어린 나이에 벌써 기득권층에 편입된 지도자입니다. 평생 파수하며 지켜냈다는 점에서 보수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
: 모세는 80세에 나섰지만 초강대국 애굽을 상대로 진보의 제일 앞에 섰습니다. 모든 것은 그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닐까요. 자기 속한 환경이 어렵고 넉넉한 차이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
: 또 세상 보수와 교회의 보수, 세상의 진보와 교회의 진보는 왜 그렇게 짝을 이루어 꼭같은 소리를 할까요?
젊을 때는 왜 진보, 늙으면 왜 보수
진리는 변치 않기 때문에 천주교에 있든 사회 어느 계층에 있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난하고 어려우면 진보가 되고, 기득권을 갖게 되면 보수가 되는 것으로 아는데.. 진보는 젊을 때나 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칼빈이 종교개혁을 한 것은 진보 중에도 진보여서 혁신을 넘어서고 혁명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칼빈의 나이 20대였습니다. 디모데는 연소함을 업신 여기지 못하게 하라 했는데 그는 어린 나이에 벌써 기득권층에 편입된 지도자입니다. 평생 파수하며 지켜냈다는 점에서 보수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세는 80세에 나섰지만 초강대국 애굽을 상대로 진보의 제일 앞에 섰습니다. 모든 것은 그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닐까요. 자기 속한 환경이 어렵고 넉넉한 차이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또 세상 보수와 교회의 보수, 세상의 진보와 교회의 진보는 왜 그렇게 짝을 이루어 꼭같은 소리를 할까요?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2334
    신학
    2017.01.11수
  • 12333
    연구부
    2017.01.12목
  • 12332
    경기
    2017.01.08일
  • 12331
    연구부
    2017.01.08일
  • 12330
    궁금이
    2017.01.07토
  • 12329
    행정실
    2017.01.07토
  • 12328
    궁금이
    2017.01.05목
  • 12327
    서기
    2017.01.05목
  • 12326
    경기
    2017.01.05목
  • 12325
    연구부
    2017.01.06금
  • 12324
    김바울 [ E-mail ]
    2017.01.05목
  • 12323
    연구부
    2017.01.06금
  • 12322
    김바울 [ E-mail ]
    2017.01.06금
  • 12321
    연구부
    2017.01.08일
  • 12320
    실시간
    2017.01.02월
  • 12319
    연구부
    2017.01.03화
  • 12318
    공회인
    2017.01.01일
  • 12317
    연구부
    2017.01.02월
  • 12316
    교역자
    2016.12.30금
  • 12315
    연구부
    2016.12.31토
  • 12314
    선교사
    2016.12.30금
  • 12313
    연구부
    2016.12.31토
  • 12312
    집회때들었던
    2016.12.29목
  • 12311
    연구부
    2016.12.30금
  • 12310
    경기
    2016.12.28수
State
  • 현재 접속자 184(1) 명
  • 오늘 방문자 6,586 명
  • 어제 방문자 6,972 명
  • 최대 방문자 7,646 명
  • 전체 방문자 3,254,268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