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이고, 당연한 그 시대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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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이고, 당연한 그 시대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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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상황
▪자의와 타의
막대기로 사람을 쳤을 때 사람은 처벌해도 막대기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치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남을 친 행위에 대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막대기는 단순히 도구였기 때문에 처벌이 없습니다. 성경의 원리도 그렇고, 자연 상태의 인간도 그 면을 알고 있습니다. 의식 없는 행위는 책임이 없습니다.

해방 후 북한에서 태어 난 사람들이 김일성을 우르러 보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북한의 교육 제도의 문제입니다. 마찬 가지로 일제 때 교육 제도가 당시 사람들을 만들고자 한 것은 항일이나 반일의 감정을 없애고 객관적인 입장을 가지게 했고, 더 나아가 친일 핵일을 만들 수 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교육제도의 빈 틈 속에서 뭔가를 발견했어야 하고, 모순과 잘못을 발견했거나 더 나은 것을 알게 되면 이후의 책임은 무거워 집니다. 일반 도구와 달리 인간은 특수한 존재여서 교육제도가 사람을 100% 장악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책임은 일괄적으로 계량화를 하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살펴 보고 판단할 문제입니다.


▪ 일제의 경우
천왕을 신으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린 시기를 거쳐 10대가 되면 눈치를 챌 수가 있습니다. 호랑이 담배 물고 다닌 이야기가 유치원생에게는 실제 이야기가 되나 10대라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이야기도 마찬 가지입니다. 더 강하고 센 이야기일수록 허구는 쉽게 드러 납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의 카미카제식 행동은 집단 최면이며 그 행동에 나선 이들은 면책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을 원래 한 조상의 한 뿌리라는 식으로 설명을 하는 역사적 접근은 천왕을 신으로 모시라는 교육보다 미지근하지만 그 대신 객관적으로 먹히기는 더 낫습니다. 실제도 그렇고 또 그런 논리를 써 먹는 상황으로 봐도 식민지 교육법으로서는 현장에서 상당히 실효적인 방법입니다. 여기에다 일본의 발전상과 서구의 동양 침략, 그리고 중국의 붕괴와 한국의 암울한 상황을 잘 설명하면 예외적인 몇 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조선 사람을 세뇌 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 박희천 목사님의 경우
일제 치하에 태어 났고 가난한 가정이니 먹고 살기에 힘든 상황에서 민족의식이 따로 솟구치거나 독립운동에 뛰어 들 상황이 없다면 그냥 유신 시기에 우리가 가졌던 생각처럼, 또 지금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세들이 우리와 다른 것처럼, 당연히 일본의 2등 국민 정도로 생각하고 행동을 했을 듯합니다. 문제는 해방이 되고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해방 조국의 지도자가 되어 지난 날을 다시 교육을 시키게 되자 모두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혼자 속으로 가졌던 자기의 친일적 생각을 남에게 공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선교사들이 세우고 발전을 시켜 놓은 상태에서 일본의 천왕 숭배와 신사참배 문제를 겪게 됩니다. 따라서 일본에 대한 기본 인식과 신앙의 기본 방향을 알고 있는 지도자들이 항일이나 반일적이 되지 않을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첫 교인들을 교육 시키면, 비록 힘이 없어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항일 반일적 사람이 되지 않을 리는 없습니다. 박 목사님의 기록을 보면 첫 신앙은 뜨겁지 않고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가 그런 학생들까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가면서 또 후환을 각오하면서 열심히 세뇌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것이 일제 때 한국 교회의 대부분 현장 상황일 것입니다. 문제는 다른 분들도 그런 시기를 보내놓고도 해방 후에는 마치 일제 때 의분이 있었던 것처럼 자기를 선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반공사상의 경우
박 목사님이 해방 후에 신앙이 제대로 들어 가던 시기에 북한의 일반 주민은 들어 본 적이 없는 공산주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민주주의와 비교할 때 지극히 급진적이며 이미 20대가 되었고 신앙도 제대로 들어 가는 시기이므로 공산주의가 어떻게 교육을 해도 이제는 자기 기본 사상이 확실하여 냉정히 비판하게 됩니다. 따라서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일제와 달리 객관적 기억과 판단이 확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박 목사님은 일반 교인을 기준으로 본다면 확고한 신앙이 들어 갔지만 여전히 기독교 전체의 지도자급이라 할 정도의 위치는 아닙니다. 북한 교회의 일반 기준에서 보면 희망 있게 제대로 출발하는 단단한 신앙인이었으나 고위 지도자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북한을 점령한 소련이 북한을 공산화 시키는 과정에 무장 세력이 아닌 북한의 교회를 상대할 때 밑뿌리를 뽑을 시기가 아니며 기독교의 최고 지도자들만 은근히 압박하고 회유하는 단계가 먼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북한에 있었다면 공산당의 직접 위협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양신학교가 건물을 뺏기게 되고, 이후 학교가 폐쇄 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공산당의 독재 상황이 어느 정도로 치명적인지 알게 됩니다. 이후 산에 가서 굴을 파고 숨어 살아야 할 정도가 되었을 때는 생사의 고난을 직접 겪습니다.


■ 결론적으로
박 목사님은 일제 때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일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반일 항일의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한 나라가 어려워 지다가 망하게 되고 원수의 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면서 일등국민인 일본인들이 비참하게 돌아 가는 모습을 보고 안 됐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고, 오늘처럼 반일 운동에 극에 달한 상황에서 교계의 지도자 위치에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한다는 것은 대단한 신앙인입니다. 바로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백영희'라는 이름만 나오면 벌떼처럼 이단 소리가 나올 때도 그는 공석에서조차 백영희 설교 예찬론을 활짝 펼쳐 놓고 살았습니다.

해방 후에 사용할 한국교회 인재들은 일제 때 고난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해방 후가 아니라 해방 후의 다시 훗날에 쓰시려고 일제 고난을 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백 목사님의 경우는 양면으로 다 사용한 경우입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일반적으로 북한교회 출신으로 남한에 온 기독교 지도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또 북한 공산주의에 저항했다는 기록이 흔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부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남단2에 올린 박희천 목사님의 자서전에는 반일적인 내용이 없고 오히려 친일적으로 보입니다. 아마 출판 때문에 그 정도만 적었지 실제로는 아주 친일적인 인물이 아닐까요? 6.25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적 이분법은 가지면서 왜 반일적 이분법은 볼 수가 없는지 의아합니다.
:
: 일본의 나쁜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당한 이야기만 있습니다. 또 북한의 기독교 탄압에 대해서도 사실 일제 말기와 비교하면 무슨 탄압이라 할 정도도 아닌 듯합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일본제국의 교회 탄압을 잘 알고 있는데. .
박희천 목사님의 친일적? 반공적? 이분법
일반적으로 북한교회 출신으로 남한에 온 기독교 지도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또 북한 공산주의에 저항했다는 기록이 흔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부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남단2에 올린 박희천 목사님의 자서전에는 반일적인 내용이 없고 오히려 친일적으로 보입니다. 아마 출판 때문에 그 정도만 적었지 실제로는 아주 친일적인 인물이 아닐까요? 6.25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적 이분법은 가지면서 왜 반일적 이분법은 볼 수가 없는지 의아합니다.

일본의 나쁜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당한 이야기만 있습니다. 또 북한의 기독교 탄압에 대해서도 사실 일제 말기와 비교하면 무슨 탄압이라 할 정도도 아닌 듯합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일본제국의 교회 탄압을 잘 알고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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