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세상 지혜, 공회의 신앙 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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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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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4 18:08
1. 공회는 최고의 항일 단체
공회는 한국 교회사적으로, 일본 경찰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도 한 교회의 전체 교인이 집단으로 6년간 신사참배를 모두 거부한 유일의 기록을 가졌습니다. 숨어서 그렇게 한 경우는 있고, 일부만 승리한 기록은 있어도 공회처럼 경찰의 매일 관찰 속에서 교회 단위로 이렇게 승리한 기록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면을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가 평가한다면 공회는 최고의 항일 단체일 것입니다.
2. 공회는 신앙 외길의 단체
공회는 이런 역사를 보훈처에 알리려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란 세상 나라에 하룻밤 신세 지는 것이 전부여서 그럴 수 없다는 교리 때문입니다. 공회는 가장 극단적으로 그리고 가장 혹독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철저한 반일 항일적 모습을 가졌기 때문에,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본에 대해 일본의 장점을 표현할 때도 그냥 있는 대로 또 아는 대로 그대로 발표합니다.
3. 아무리 억울해도
일본 식민지 때와 조선 시대를 비교해 보면, 식민지 때가 전반적으로 좀 나았습니다. 식민지 말기에 미국과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고통이 있었지만 그 때 일본은 그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숫자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전쟁에 우리를 내모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 질 것으로 보이자 식민지를 마음껏 수탈했습니다. 36년 전체를 놓고, 세계사적 눈으로 객관적으로 본다면, 조선의 임금은 자기 백성을 식민지 총독과 비교할 때 문화 교육 경제 산업 등의 여러 면에서 잘 하지 못했습니다.
친일파 시각인가? 한국에 친일파 아닌 사람이 있습니까? 김구와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는 자기 나라를 버리고 외국으로 망명을 가야 했습니다. 정상적이면 왜놈 몇 있는 1개 군에 군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 1개 군을 회복합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 되지만 임진왜란 때 임금이 먼저 도망을 가듯이 일제 때는 이순신 같은 인물조차 없어서 우리는 모두가 그들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다행히 기독교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이 이겼고, 이후 한국은 오늘의 발전이 증명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4. 사람이 잘 먹는 것이 전부인가?
반대로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왜 일본이 고종보다 잘 먹여 준다 해서 우리 나라에 독립 운동을 위해 몸 바친 사람이 이다지도 없습니까? 왜 6.25 때 미군의 지원을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왜 북한의 인민들이 남한으로 피난을 하고, 왜 남한 백성이 북한으로 보따리 이고 대로를 따라 줄줄이 피난을 가지 않았습니까?
사람이란 목숨 보존이 1차고, 먹고 사는 것이 2차고, 그리고 나서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소리는 다음에 나오는 소리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나라를 우리가 독립운동을 통해 되찾을 수도 없고 되찾을 리도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되찾아 줬으니 우리는 고마운 것이고, 6.25 때 지켜 줬으니 고마운 것이고, 세계 제일의 나라가 되었으니 그렇게 만들 때 지도자들은 그 누구라도 일단 고마운 법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인간적 실수는 그 공적과 잘못을 잘 따져서 역사가 평가하면 됩니다.
이런 인식을 반대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조상이 친일파가 아니었음을 창씨개명 거부로 입증하면 됩니다. 고국과 민족을 버리고 해외로 가지 않았음을 입증하면 됩니다. 6.25 때 미군 개입을 그 때 적극 반대했다면 말이라도 됩니다. 우리 나라가 군사독재를 통해 경제 발전을 할 때, 그 더러운 돈과 그 때 학교와 사회적 혜택을 받지 않고 산 속으로 들어 가서 백이 숙제처럼 살았다면 그런 분들은 지금 오늘의 한국 사회를 향해 자존심 없는 인간이라고 야단 치면 됩니다. 지난 날 우리 스스로 더럽게 살아 온 시절을 더럽게 살도록 한 우리 조상과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은 사람이, 남을 욕한다면 양심은 아닐 듯합니다.
5. 공회는
해방 전에 이미 미국이 일본을 이기고 한국에 들어 오게 되면 신앙의 자유는 있지만 한국의 신앙과 세상은 돈 때문에 아주 타락할 것이라고 크게 걱정을 했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오늘까지 가난하고 못난 교인들로 살아 가고 있습니다. 공회는 6.25 전쟁 때도 인민군 점령 치하에서 정상적으로 모든 예배를 다 드렸습니다. 또 군사독재 시기에 공회는 정보부의 뒷조사를 따로 받았고 남 모르는 고초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미국과 군부 독재와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아마 유일한 교회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공회이기 때문에 공회는 일본과 미국과 군사독재가 잘한 것은 원수라 해도 잘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회의 어린 신앙들에게는 그들을 통해 신앙을 준비할 기회를 받거나 다른 면으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에 고마운 것은 고맙다 하는 것입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집회교재 89년 5월에 화요일 오전 'p94, 9줄'부터 보면 요즘과 시국관이 아주 다릅니다. 설명을 부탁합니다.
: 지금은 그걸 몰라요. 우리가 클 때도 그 때 일본나라와 합병 전과 합변 후가 달랐습니다. 일본 나라를 모두 뭐 적이라고 이래 쌓지만 일본 나라하고 합병된 그로 인해서 우리가 훨씬 숨을 쉬고 나아졌습니다. 그 사람들 백지 욕하고 지금 뭐 정권자들이 말하고 있지만 그분들이 와 가지고 철로 놔줬지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많이 가르쳐 줬고 많은 선물을 줘서 그때에 우리가 일차적으로 숨을 쉬었어.
: 그전에는 무명은 입을 수가 없고 찍해야 삼베인데 겨울이 되면 다 수서져버리고 여자들도 궁둥이 살이나와요....
:
: 해방후도 곤고했어요. 미국하고 손잡은 뒤에 좀 숨을 쉬웠어. 그리고 난 다음에 1차 군정 박 정권 때 우리가 허기를 좀 면하고 밥을 먹었어. 전 정권 때 우리가 막 배가 불러서 요새는 밥이 썩어 남아 나갑니다. 이랬는데 요새 '군정 이놈들' 막 군정을 욕을 하는데 잘못한 거야 있기야 있지만 나는 그 사람 전 정권 잘했다고 말합니다. 공산주의가 밀려고 했지만 못 들어오게 반공을 하는 국방했기 때문에 잘했고 치안이 얼마나 잘됐든지 삼청교육대가 불량한 놈들 다 끌고 들어가서 얼마나 평안하게 살았는지. 그놈들도 가서 뚜드려 맞으니까 회개하고 올 때 돈을 한 주먹씩 가지고 나왔어.
:
: 그런데 요새는 신문에 안 나 그렇지 암살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골목마다 암살이오. 대낮에 봉고차로 한 여남은씩 와서 묶어 가지고 돈 떨어 가지고 가고 추행하고 오만 거 다 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누가 막소? 데모하는 사람은 하나 죽으면 마흔 몇번을 위령제라고 하지만 경관 그까짓 거야 뭐 백명 죽으면 말이나 합니까? 행정에서 할 일이지만 이렇습니다.
:
: 국방 잘했고 치안 잘했고 배부르게 밥을 먹고 세계에서 모두 놀랄 만한 초일반적인 경제 성정아 되어 부국이 되었습니다. ....
공회는 한국 교회사적으로, 일본 경찰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도 한 교회의 전체 교인이 집단으로 6년간 신사참배를 모두 거부한 유일의 기록을 가졌습니다. 숨어서 그렇게 한 경우는 있고, 일부만 승리한 기록은 있어도 공회처럼 경찰의 매일 관찰 속에서 교회 단위로 이렇게 승리한 기록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면을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가 평가한다면 공회는 최고의 항일 단체일 것입니다.
2. 공회는 신앙 외길의 단체
공회는 이런 역사를 보훈처에 알리려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란 세상 나라에 하룻밤 신세 지는 것이 전부여서 그럴 수 없다는 교리 때문입니다. 공회는 가장 극단적으로 그리고 가장 혹독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철저한 반일 항일적 모습을 가졌기 때문에,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본에 대해 일본의 장점을 표현할 때도 그냥 있는 대로 또 아는 대로 그대로 발표합니다.
3. 아무리 억울해도
일본 식민지 때와 조선 시대를 비교해 보면, 식민지 때가 전반적으로 좀 나았습니다. 식민지 말기에 미국과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고통이 있었지만 그 때 일본은 그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숫자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전쟁에 우리를 내모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 질 것으로 보이자 식민지를 마음껏 수탈했습니다. 36년 전체를 놓고, 세계사적 눈으로 객관적으로 본다면, 조선의 임금은 자기 백성을 식민지 총독과 비교할 때 문화 교육 경제 산업 등의 여러 면에서 잘 하지 못했습니다.
친일파 시각인가? 한국에 친일파 아닌 사람이 있습니까? 김구와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는 자기 나라를 버리고 외국으로 망명을 가야 했습니다. 정상적이면 왜놈 몇 있는 1개 군에 군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 1개 군을 회복합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 되지만 임진왜란 때 임금이 먼저 도망을 가듯이 일제 때는 이순신 같은 인물조차 없어서 우리는 모두가 그들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다행히 기독교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이 이겼고, 이후 한국은 오늘의 발전이 증명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4. 사람이 잘 먹는 것이 전부인가?
반대로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왜 일본이 고종보다 잘 먹여 준다 해서 우리 나라에 독립 운동을 위해 몸 바친 사람이 이다지도 없습니까? 왜 6.25 때 미군의 지원을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왜 북한의 인민들이 남한으로 피난을 하고, 왜 남한 백성이 북한으로 보따리 이고 대로를 따라 줄줄이 피난을 가지 않았습니까?
사람이란 목숨 보존이 1차고, 먹고 사는 것이 2차고, 그리고 나서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소리는 다음에 나오는 소리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나라를 우리가 독립운동을 통해 되찾을 수도 없고 되찾을 리도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되찾아 줬으니 우리는 고마운 것이고, 6.25 때 지켜 줬으니 고마운 것이고, 세계 제일의 나라가 되었으니 그렇게 만들 때 지도자들은 그 누구라도 일단 고마운 법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인간적 실수는 그 공적과 잘못을 잘 따져서 역사가 평가하면 됩니다.
이런 인식을 반대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조상이 친일파가 아니었음을 창씨개명 거부로 입증하면 됩니다. 고국과 민족을 버리고 해외로 가지 않았음을 입증하면 됩니다. 6.25 때 미군 개입을 그 때 적극 반대했다면 말이라도 됩니다. 우리 나라가 군사독재를 통해 경제 발전을 할 때, 그 더러운 돈과 그 때 학교와 사회적 혜택을 받지 않고 산 속으로 들어 가서 백이 숙제처럼 살았다면 그런 분들은 지금 오늘의 한국 사회를 향해 자존심 없는 인간이라고 야단 치면 됩니다. 지난 날 우리 스스로 더럽게 살아 온 시절을 더럽게 살도록 한 우리 조상과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은 사람이, 남을 욕한다면 양심은 아닐 듯합니다.
5. 공회는
해방 전에 이미 미국이 일본을 이기고 한국에 들어 오게 되면 신앙의 자유는 있지만 한국의 신앙과 세상은 돈 때문에 아주 타락할 것이라고 크게 걱정을 했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오늘까지 가난하고 못난 교인들로 살아 가고 있습니다. 공회는 6.25 전쟁 때도 인민군 점령 치하에서 정상적으로 모든 예배를 다 드렸습니다. 또 군사독재 시기에 공회는 정보부의 뒷조사를 따로 받았고 남 모르는 고초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미국과 군부 독재와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아마 유일한 교회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공회이기 때문에 공회는 일본과 미국과 군사독재가 잘한 것은 원수라 해도 잘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회의 어린 신앙들에게는 그들을 통해 신앙을 준비할 기회를 받거나 다른 면으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에 고마운 것은 고맙다 하는 것입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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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교재 89년 5월에 화요일 오전 'p94, 9줄'부터 보면 요즘과 시국관이 아주 다릅니다. 설명을 부탁합니다.
: 지금은 그걸 몰라요. 우리가 클 때도 그 때 일본나라와 합병 전과 합변 후가 달랐습니다. 일본 나라를 모두 뭐 적이라고 이래 쌓지만 일본 나라하고 합병된 그로 인해서 우리가 훨씬 숨을 쉬고 나아졌습니다. 그 사람들 백지 욕하고 지금 뭐 정권자들이 말하고 있지만 그분들이 와 가지고 철로 놔줬지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많이 가르쳐 줬고 많은 선물을 줘서 그때에 우리가 일차적으로 숨을 쉬었어.
: 그전에는 무명은 입을 수가 없고 찍해야 삼베인데 겨울이 되면 다 수서져버리고 여자들도 궁둥이 살이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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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후도 곤고했어요. 미국하고 손잡은 뒤에 좀 숨을 쉬웠어. 그리고 난 다음에 1차 군정 박 정권 때 우리가 허기를 좀 면하고 밥을 먹었어. 전 정권 때 우리가 막 배가 불러서 요새는 밥이 썩어 남아 나갑니다. 이랬는데 요새 '군정 이놈들' 막 군정을 욕을 하는데 잘못한 거야 있기야 있지만 나는 그 사람 전 정권 잘했다고 말합니다. 공산주의가 밀려고 했지만 못 들어오게 반공을 하는 국방했기 때문에 잘했고 치안이 얼마나 잘됐든지 삼청교육대가 불량한 놈들 다 끌고 들어가서 얼마나 평안하게 살았는지. 그놈들도 가서 뚜드려 맞으니까 회개하고 올 때 돈을 한 주먹씩 가지고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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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요새는 신문에 안 나 그렇지 암살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골목마다 암살이오. 대낮에 봉고차로 한 여남은씩 와서 묶어 가지고 돈 떨어 가지고 가고 추행하고 오만 거 다 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누가 막소? 데모하는 사람은 하나 죽으면 마흔 몇번을 위령제라고 하지만 경관 그까짓 거야 뭐 백명 죽으면 말이나 합니까? 행정에서 할 일이지만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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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 잘했고 치안 잘했고 배부르게 밥을 먹고 세계에서 모두 놀랄 만한 초일반적인 경제 성정아 되어 부국이 되었습니다. ....
백목사님의 일본관, 정치관
집회교재 89년 5월에 화요일 오전 'p94, 9줄'부터 보면 요즘과 시국관이 아주 다릅니다. 설명을 부탁합니다.
지금은 그걸 몰라요. 우리가 클 때도 그 때 일본나라와 합병 전과 합변 후가 달랐습니다. 일본 나라를 모두 뭐 적이라고 이래 쌓지만 일본 나라하고 합병된 그로 인해서 우리가 훨씬 숨을 쉬고 나아졌습니다. 그 사람들 백지 욕하고 지금 뭐 정권자들이 말하고 있지만 그분들이 와 가지고 철로 놔줬지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많이 가르쳐 줬고 많은 선물을 줘서 그때에 우리가 일차적으로 숨을 쉬었어.
그전에는 무명은 입을 수가 없고 찍해야 삼베인데 겨울이 되면 다 수서져버리고 여자들도 궁둥이 살이나와요....
해방후도 곤고했어요. 미국하고 손잡은 뒤에 좀 숨을 쉬웠어. 그리고 난 다음에 1차 군정 박 정권 때 우리가 허기를 좀 면하고 밥을 먹었어. 전 정권 때 우리가 막 배가 불러서 요새는 밥이 썩어 남아 나갑니다. 이랬는데 요새 '군정 이놈들' 막 군정을 욕을 하는데 잘못한 거야 있기야 있지만 나는 그 사람 전 정권 잘했다고 말합니다. 공산주의가 밀려고 했지만 못 들어오게 반공을 하는 국방했기 때문에 잘했고 치안이 얼마나 잘됐든지 삼청교육대가 불량한 놈들 다 끌고 들어가서 얼마나 평안하게 살았는지. 그놈들도 가서 뚜드려 맞으니까 회개하고 올 때 돈을 한 주먹씩 가지고 나왔어.
그런데 요새는 신문에 안 나 그렇지 암살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골목마다 암살이오. 대낮에 봉고차로 한 여남은씩 와서 묶어 가지고 돈 떨어 가지고 가고 추행하고 오만 거 다 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누가 막소? 데모하는 사람은 하나 죽으면 마흔 몇번을 위령제라고 하지만 경관 그까짓 거야 뭐 백명 죽으면 말이나 합니까? 행정에서 할 일이지만 이렇습니다.
국방 잘했고 치안 잘했고 배부르게 밥을 먹고 세계에서 모두 놀랄 만한 초일반적인 경제 성정아 되어 부국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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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교재 89년 5월에 화요일 오전 'p94, 9줄'부터 보면 요즘과 시국관이 아주 다릅니다. 설명을 부탁합니다.
지금은 그걸 몰라요. 우리가 클 때도 그 때 일본나라와 합병 전과 합변 후가 달랐습니다. 일본 나라를 모두 뭐 적이라고 이래 쌓지만 일본 나라하고 합병된 그로 인해서 우리가 훨씬 숨을 쉬고 나아졌습니다. 그 사람들 백지 욕하고 지금 뭐 정권자들이 말하고 있지만 그분들이 와 가지고 철로 놔줬지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많이 가르쳐 줬고 많은 선물을 줘서 그때에 우리가 일차적으로 숨을 쉬었어.
그전에는 무명은 입을 수가 없고 찍해야 삼베인데 겨울이 되면 다 수서져버리고 여자들도 궁둥이 살이나와요....
해방후도 곤고했어요. 미국하고 손잡은 뒤에 좀 숨을 쉬웠어. 그리고 난 다음에 1차 군정 박 정권 때 우리가 허기를 좀 면하고 밥을 먹었어. 전 정권 때 우리가 막 배가 불러서 요새는 밥이 썩어 남아 나갑니다. 이랬는데 요새 '군정 이놈들' 막 군정을 욕을 하는데 잘못한 거야 있기야 있지만 나는 그 사람 전 정권 잘했다고 말합니다. 공산주의가 밀려고 했지만 못 들어오게 반공을 하는 국방했기 때문에 잘했고 치안이 얼마나 잘됐든지 삼청교육대가 불량한 놈들 다 끌고 들어가서 얼마나 평안하게 살았는지. 그놈들도 가서 뚜드려 맞으니까 회개하고 올 때 돈을 한 주먹씩 가지고 나왔어.
그런데 요새는 신문에 안 나 그렇지 암살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골목마다 암살이오. 대낮에 봉고차로 한 여남은씩 와서 묶어 가지고 돈 떨어 가지고 가고 추행하고 오만 거 다 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누가 막소? 데모하는 사람은 하나 죽으면 마흔 몇번을 위령제라고 하지만 경관 그까짓 거야 뭐 백명 죽으면 말이나 합니까? 행정에서 할 일이지만 이렇습니다.
국방 잘했고 치안 잘했고 배부르게 밥을 먹고 세계에서 모두 놀랄 만한 초일반적인 경제 성정아 되어 부국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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