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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2. 마태의 답변: 마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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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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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2. '백영희'신앙연구가 백영희 개인의 의미, 또는 '교조주의'로 걱정된다

는 지적에 대하여


답변2. '마태복음' 이름 때문에 '교만'이 되거나 '교조주의'가 되지 않습니다.


귀하의 지적은 주로 총공회 서울공회나 대구공회를 중심으로 수도 없이 반복이 되었던 주장입니다. 칼빈주의가 칼빈이 가르친 천주교를 닮아 버렸듯이, 백목사님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백목사님이 주의시키던 '칼빈지상주의'를 닮아 버린 '백목사주의자'를 귀하께서는 경계하고 있다고 본인이 이해합니다.


귀한 종들에 대한 시대의 평가는 다음과 같이 3단계를 거친다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1시기: 정통의 귀한 교훈이 당대에는 이단으로 제압을 당하되, 적반하장으로 당

하고


2시기: 다음 시대가 되면 그 교훈의 가치성을 비로소 깨달아 후회하며, 정확히

알아가기 위한 대단한 노력이 경주되어 교훈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게 되고


3시기: 1시기의 모순을 바로 잡은 2시기의 반동심리가 정도를 넘어서며 교조주

의 또는 우상으로까지 가게 되면, 그 교훈이 그 시대를 전임으로 맡은

역할이 끝나가고 다음 시대를 맡을 다음 교훈의 밑거름 내지는 근간의

위치로 바뀌는 것인가?


본인은 이렇게 보기 때문에 현재 백영희목사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교훈의 가치성은 제1시기를 막 벗어나는 때라고 보며, 따라서 지금의 노력은 아무리 가속이 되어도 교훈의 가치에 일부분을 찾는데도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시기의 구분은 기계적으로 명확히 토막낼 성질은 아닙니다만 더러는 섞여가며 순서를 바꿔가지만 대체의 흐름은 역사요 통계라고 보며, 백영희목사님의 교훈에도 해당이 된다고 보는 것이 본 홈페이지 운영 주관인의 신앙역사관입니다.

따라서, 아직은 우상과 교조주의의 폐해가 교회사에서 어떻게 많은 교회들을 어지럽게 했는지 그 위험성을 생생히 눈 앞에 두고 그러나 묻혀진 보배를 찾는 노력을 동시에 경주하는 바, 이 교훈이 우상이 되고 교조주의가 될 훗날에는 그 폐해의 책임은 선배가 보배를 발견함에 있지 않고 훗시대가 보배로 주신 선물을 우상으로 바꿔 가진 자기 시대의 불행이며 불신앙이라 봅니다. 천주교가 우상으로까지 만든 마리아는 마리아가 우상이 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천주교가 마리아를 우상으로 취급을 한 것이니, 그들 때문에 마리아의 성령잉태에 충성한 그 신앙을 덜 연구한다던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덧붙혀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제 입장을 첨부합니다.


①본인은 백목사님이 주의시킨 '칼빈지상주의'를 귀하와 같이 경계합니다.


백목사님의 장점 중에 장점이 칼빈의 귀한 교리 하나가 세계 교회를 살렸다는 점을 누구보다 확고히 붙들면서 동시에, 후대가 '칼빈지상주의'를 만든 것을 극도로 경계시킨 점입니다. 폭넓게 백영희신앙을 살피지 않았다면, 성경만 보고 있었더라면, 본인의 경우 심안이 어두워 자칫 칼빈 지상주의, 또는 백영희 지상주의에 접근할 뻔했다는 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물로 주신 자식도 정도 이상으로 감싸면 우상이 됩니다. 그러나 그 자식 자체가 우상일 수는 없습니다. 신앙이 어리석어 선물을 우상으로 만든 자신의 잘못입니다.

백목사님은 교조주의의 대상이 되거나 백목사주의의 객체가 될 만한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지 않다고 본인은 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현실이 그러합니다. 오히려 총공회 안에서부터, 그와 제일 가까웠던 분들부터 '백목사반대 지상주의'의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총공회'라는 간판이 백영희 신앙노선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교회의 공식 명칭, 교단의 정식 명칭인 '총공회'라는 글자를 지워버리고 타 교단의 이름으로 교회의 대외적 표식을 한 교회가 총공회 안에는 최소한 2/3이 넘고 있습니다.


고신은 고신의 설립이 특수한 어려움에서 발족되었다고 하여 그 수고한 한상동, 주남선 목사님에 대한 기념과 소개가 끝이 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교조나 우상주의로 보지 않습니다. 일반 세상 어느 학교나 단체도 그 정도를 하면서 그렇게 위험스럽게 빠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 정도라면 총공회 소속 교회들은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이란 교조주의가 될까봐 주의할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은망덕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 가깝다고 보며, 따라서 백목사님과의 관계를 그렇게까지 숨길 필요까지 있겠느냐는 반론에 오히려 시달려야 한다고 봅니다.


②백목사님의 신앙 노선은 너무도 버려졌고 너무도 무시되어져 왔습니다.


백목사님의 출생연도, 세례, 교역자 출발, 고신 입학 및 졸업 연도, 강도사 인허 및 목사 안수, 서부교회 부임, 총공회 발족, 총공회 발족의 3대 원칙 등 어떤 것 하나도 본인이 공개하기 전까지는 이를 아는 사람이 총공회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총공회는 이런 회의록이 있었느냐는 것도 몰라서 회의록의 존재 여부부터 확인하는 데까지 나갔던 일이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이 중에 한 두 가지만 따로 아는 한 두 사람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장례식에 그의 간단한 소개를 위한 최소한의 상기 항목에 해당되는 연도를 물어봐도 문서를 살펴보아도 연도 자체를 알고 답한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리 교조주의를 반대하고 인간적 교만이 가미가 될까 조심을 한다고 하더라도, 설사 본인은 그렇게 할찌라도 그 밑에 있었던 교단과 교회 교역자 전체가 이렇게까지 모르고 있다면 이는 무식과 배은에 가깝다고 본인은 보았던 것입니다.

다른 교역자, 다른 교회들, 심지어 타 교단의 기록들은 알아야 되고, 또 알고 있고, 유독 백목사님에 대한 기록과 역사는 그 연구 그 접근 자체가 '교조주의의 위험'이 있어 금해야 되는 정도인가를 생각해 볼 때, 현재 본인이 접근 연구하는 정도의 '백영희 신앙 노선'의 연구는 정도를 벗어났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③마태가 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지 않고 '마태복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을 두고 우리는 '자랑'이나 '명예'의 차원에서 보지 않고 하나님이 붙들었던 '기관의 의미와 그 성격'으로 보며, '칼빈'의 예정론을 우리가 말할 때는 칼빈의 '사제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발언에 '책임'과 '심판'을 둔 조심과 겸손의 의미라고 봅니다. 이 정도의 신앙인들이면 이미 우리 정도의 수준 '자랑'이나 '명예' 차원을 아득히 초월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교세에 연연하고 교세에 신경이 쓰이는 우리의 수준에서는 '명예'를 위해 책을 쓰며, 역사에 남을 '이름'을 고려하여 경력관리를 한다고 남들이 보겠습니다만, 최소한 백목사님 정도의 신앙만 되어도 그 정도의 수준은 너무도 넘어 선지가 오래입니다. 본인이 그를 연구해 보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면이 좋고 배우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신앙이기 때문에 눈에 가깝게 보였던 목회자가 참고될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④실은, 한 신앙 인물을 연구, 기념하는 일은 세계 교회가 환영하는 일입니다.


훌륭했던 한 신앙가를 여러 면에서 연구해 보는 것은 신학의 기본이며 교계의 상식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 건물의 이름, 학교의 이름까지 짓고 아예 태어나는 자기 아들의 이름도 그 사람을 닮으라고 그 사람 이름을 붙혀 버립니다. 칼빈신학교, 루터교단, 조다윗목사님, 존 칼빈, 토마스 칼빈, 탐 칼빈..... 등등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선진국의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총공회 소속의 많은 교역자들이 특히 귀하와 같은 지적을 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일반 신학교를 다시 다니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그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바로 인간의 학문을 배우고 있습니다. 신학교의 정의는 성경을 배우지 않습니다. 신학을 배우는 곳입니다. 신에 대한 학자들의 학설을 배우는 곳인데,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신학교를 늘 정죄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⑤백영희 개인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 자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영희, 그는 초등 5학년에 영어 알파벳을 모르는 무식한 이였습니다. 손자뻘 되는 본인이 가르쳐 드려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던 촌로였습니다. 그가 걸어온 생애는 그가 다 바쳤던 하나님이 역사했던 역사였습니다. 그 역사 속에 움직인 하나님을 살펴, 내 속에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찾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상식에 속할 일일 것인데 왜 재론이 되어야 하는지 이 글을 적으면서 중단을 할까 하다가,

순수한 동기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한번 정리해 두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정리 안 된 표현으로 설명이 반복 또는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양해하시길 바랍니다.


기독교 선진국은 성경이 기자들의 이름으로 표시되고, 교단이나 학교, 심지어 교회까지 그 사람의 수고한 은혜를 그 사람 스스로가 아니라 후배로서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사상을 새기자는 뜻으로 자연인의 실명을 많이 사용하여 왔습니다. 본인들이 밝힐 때는 '책임'과 '심판'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양의 유교문화권에 있는 우리는 이런 유교 사상을 다 털쳐 버리지 못해서 실명에 대한 거부감이 많으며 이로 인하여 성경적 겸손이 아니라 유교적 겸손의 모습 속에 다른 소원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현실은 유교적 문화이며 우리가 전도하고 가르칠 분들의 어린 입장을 생각해서 사람의 이름으로 표제에 붙이는 것을 조심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라기 보다 어린 신앙을 구원적 입장에서 배려하는 구원의 방편으로 조심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훌륭한 신앙의 인물을 연구하는 것은 신학의 한 분야이며, 이런 경우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면을 사실을 기초로 대단히 폭넓게 다각적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이런 연구는 그 범위가 넓고 깊고 자세할수록 학적인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백영희라는 뚜렷한 신앙인을 두고 이런 접근을 하게 된다면 무작정 백영희목사님을 좋아하고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외부의 오해가 전혀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되며, 총공회에 대한 외부 인식이 신학의 차원이 높은 쪽일수록 사실적 자료를 근거로 신학적 인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본인을 지적하신 분은 백영희라는 분을 두고 집중 연구하는 면을 먼저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우려는 귀하나 본인과 같은 총공회 내부인들이 백영희목사님에게 배워서 가지게 된 사상입니다. 일반 신학에서는 성경을 연구하지 왜 신학자의 신학을 연구하냐고 지적한다면 무지의 소치라고 웃어 버릴 것입니다.
[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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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착오로 재복구 되었음>
저도 총공회원입니다.

총공회 홈페이지가 있다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제작하신 분들의 수고가 보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조심되는 면이 있어서 제안을 해 봅니다. 이 홈페이지 사역이 과연 하나님 중심의 홈페이지가 되고,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 확장 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인터넷의 위력을 알고 계신 분들이 이 일을 하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첫째, 순수히 연구하는 방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총공회가 세워지기도 전에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에 대한 이단시비가 있었던 것은 어떤 면에서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고, 연구할 가치가 있을 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교단에서 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이지만, 아직 이단이 뭔지도 알지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자세히 이단시비를 받았고 지금도 교게에서 받고 있는데 대하여 광고할 필요가 있습니까?

변증적으로 교훈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방법은 좋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우리 목회 일선에서는 이단이라는 이름 때문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희는 이 홈페이지를 만든 측과는 다른 측이지만, 이름을 같이 쓰기 때문에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갑니다. 이단으로 정죄했던 사람들이 잘 못 말했고, 그분들과는 화해를 했다. 또 이러 이러한 점들이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라 좋게 들리지만, 어떤 이단이라도 그런 말로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믿음의 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이 복음을 받기도 전에 겁을 먹고 달아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지금도 이단시비를 받고 있는데, 어떤 이유이든지 한번 교계에서 이단시비를 받은 것은 영광이 될 수는 없고 그 영향력은 무서운 것입니다. 뭐 어떠냐 하겠지만, 시골에 계신 분이나, 기존총공회 교인들로 질적인 성장만하면 된다는 분들은 상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개척교회를 해 보시면 실감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나가는 교회들가운데는 변명한번 못하고 이단이라는 오명 때문에 문을 닫은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교리가 깊고 밝은 것이라도 그것만 가르쳐서 믿고 순종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지 이렇게 드러내놓고 "우리들은 이단이었다!" 떠들 필요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 칼빈의 깨달음은 한 시대를 바꾸어 놓을 만한 귀한 것이지만, 그도 하나님께서 그를 쓰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칼빈주의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표현은 실은 칼빈을 미워하는 자들이 비난하는 말로 쓴 것입니다. 저들은 모든 판단을 성경으로 기준하는 것 보다는 "그건 칼빈이 말했다. 그러므로 옳다. 그것은 칼빈이 말하지 않은 것이다" 하는 교조주의를 비웃은 것입니다. 오늘에는 칼빈의 가르침에 따르는 사람들이 영예롭게 쓰기도 합니다. 실로 킬빈주의자들 그들에게서 칼빈이나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은 성경의 권위를 뛰어 넘는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칼빈이 주장하지도 않았던,오히려 개혁의 대상이되덨던 카톨릭화 되어 나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교황주의와 다른 것이 없지 않습니까?


오늘 이 홈페이지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교단에 속한 모든 교회와 교역자, 교인들이 이 교조주의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 같은 분도 자신을 높이지 않고 오직 약한 것을 자랑하며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알고 자랑하며 전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 홈페이지에서는 백영희 목사님을 자랑하고 높이는지, 감히 오늘 시대는 누가 감당할 것인지...칼빈시대는 칼빈이 감당했다면 오늘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붙들고 시대를 감당하도록 하신다는 백목사님의 가르침과도 배치된 백목사주의는 지양되어야합니다. 어떤 위대한 인물도 하나님께서 그분을 쓰신 것입니다. 고전1장에 말씀한대로 바울이나 아볼로나 하나님의 집의 일군으로서 쓰임을 받은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충성할 것 뿐이라 했습니다. 일군은 이름도 없이 자기 영광도 없이 수입이나 대우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쇠하므로 주님은 흥하여야하는 것을 알고 무익한 종으로 사는 자입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이렇게 사셨다고 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을 부끄럽게하는 일을 하지 맙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종들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기고 존중히 여겨야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오늘날 주시는 말씀을 받는 우리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전을 감당했던 분들의 교훈을 살피고 그분들의 생애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 이외에 더 이상 그분들을 올려놓지 맙시다. 우상을 우리같이 잘 배운 사람들 있습니까? 로마 교황이 왜 가장 무서운 이단입니까? 천주교의 가장 위험한 교리가 무엇입니까? 교황무오입니다.


셋째, 너무 한분의 주장으로 총공회라는 교단을 알게될까 두렵습니다. 이 홈페이지에 질문에 답변하는 분의 주장은 꼭 총공회의 대표되는 주장도 아니요, 그분이 알고 계신 '백영희 목사님'은 단편적입니다. 백영희 목사님과 총공회에 대하여 알려고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답변하는 분이 겸손하지 못하고 너무 자신에 넘쳐 있습니다. 마치 총공회의 역사와 교리와 행정과 또한 백목사님에 관한한 노하우가 있고 자신 만이 아는 것 같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물론 백목사님께서 가르쳤다고 다 성경적인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백목사님의 가르침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면서 사견을 총공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이 말하면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 못질 위헝이 있습니다. 누가 말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질문에 답하시는 분이 무슨 자격이나, 실력이나 영성이 있는 것 같이 많은 글로써 자신있게 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은 위력이 있으나 폐단도 심합니다. 편견을 가지기 쉬운 주장들을 삼가하시고, 겸손한 자세로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귀한 깨달음이니 이를 전하고 또 연구하여 발전시킬 책임으로 이 일을 하면 좋겠습니다.


넷째. 이영인 목사님께서는 목회는 안하시는지? 이일이 목회입니까? 아주 하나님께서 목회 잘 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신 것 같은데, 목회일선에 양들을 돌보는 일들을 힘써 하시기를 권합니다. 설교나 깨달음이나 모든 면에 남보다 나은 은사를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이런 변론이나하고 한 분의 생애와 교단을 연구하는 일에 전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다른 곳에 쓰는 것 아닐까요? 아무런 갈등이 없습니까? 없다면 더 큰일입니다.

그저 우리는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기쁘시게하고,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하고 갈 따름입니다. 우리들에게 감사할 것이 있다면 바른 교훈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고 그러나 더 확실한 예언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이 시대를 감당하고 남음이 있는 성령의 감화하심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로 자랑하라! 우리가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백목사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엘리사와 같이 갑절의 영감을 받은 자들이 사명 감당해야합니다.


익명으로 쓰는 것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저를 알며 고치는 것 보다 오해가 더 많이 있을 것 같아 아직 밝히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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