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부는 특수반 교실 밖에 있는 더 위험한 정신장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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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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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22 00:0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교회론-신앙생활-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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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자의 영, 신앙 등의 구원문제
1)일반적인 경우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①일반장애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 지체 장애는 그 장애 때문에 큰 좌절로 낭패되는 경우가 많으나, 그 장애 때문에 더 큰 복을 가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불임도 넓은 개념의 큰 장애였습니다. 이스라엘도 메시야 출생이 자기 가족 계통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들 선호사상이 대단했습니다. 한나는 불임의 장애가 있었고 그 때문에 받은 복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②정신장애는 믿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중생되는 것이 영입니다. 이 영을 중생시키는 데까지는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전적 하나님이 객관의 역사로 중생을 시켜 놓습니다. 따라서 정신장애에 상관없이 그들의 영은 중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중생된 이후입니다. 믿는 우리가 평생 노력하는 것이 마음을 말씀으로 바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이 일을 위해 영이 노력하고 또 몸은 마음이 성화된 것만큼 그 뒤를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마음의 성화 정도가 천국의 영원한 우리 모습으로 보면 되는 정도인데 마음에 장애가 발생이 된다면. 말씀을 받아 지식으로 인정으로 나아가야 되는 건설구원의 기본 요소, 출발에 필수 과정이 전부 마비가 되거나 큰 불편을 가지게 되니 그 신앙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의 결정이며 예정이니 받아 들여야 한다지만,
이런 점에서 정신장애만큼 큰 장애가 없고, 그 장애에 견줄 불행이 없다 할 정도입니다. 특수하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예외적인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그 마음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믿음의 성장이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입을 막아버린다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러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장애자로 출생이 되던, 머리를 다쳐 장애가 되던 이런 아이들을 처음 마주치게 된 가족이나 교사는 사명감이나 동정심으로 각오도 해 보고 노력도 해 보지만, 인간이기에 피로와 반복이 누적되면 결국 죽일 수 없고 죽을 수 없어 체념적 생활이 될 뿐입니다.
정신장애아, 너무도 가혹하며 평생의 족쇄라는 점에서 어떤 위로나 어떤 표현도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말장난으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2)그러나, 이런 점을 혹시 생각해 보셨습니까?
①잘 쓰면 큰 선물이나 잘 쓰는 사람이 적습니다.
'정신기능'을 하나의 좋은 선물 또는 도구라고 한다면, 정신지체 장애자는 가장 좋은 도구 가장 좋은 선물을 받지 못한 거지입니다. 그들을 애처롭게 보는 우리는 '정상적인 정신'을 가졌고 이 점에서 정신장애자와는 모든 면에서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탁월한 도구, 이 최상의 선물로 정신장애자보다 나은 결과를 만드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TV라는 탁월한 도구, 좋은 선물이 패륜을 조장하는지 인륜을 고취시키는지, 좋은 시력이 남의 여자 남의 남자를 잘 보게 하는지 소중한 자기 남자 자기 여자를 더 잘 보게 하는지, 건강함으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한 세월이 많았는지 건강함으로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때가 더 많았는지.
②가장 귀한 선물, 도구. 정신기능은 어떻게 쓰이고 있습니까?
정신기능을 정상으로 가진 사람이 그 정신으로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대학 4학년까지가 16년 세월이며, 이 연령층에 해당되는 숫자가 대략 1,000만명입니다. 가방 들고 학교가는 학생치고 정신이 바로 박힌 학생과 정신기능은 정상인데 정신을 잘못 쓰고 있는 학생과 숫자 비율이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볼 때, 마음씨를 참으로 곱게 쓰고 좋게 쓰고 또 잘 쓰는 학생이 한반 40명 중에 몇 명입니까? 곱게 쓴다면 심성이 착하다 말이며 좋게 쓴다면 처신이 바르다는 말이며 잘 쓴다면 공부나 기타 실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어려서 그렇다면 이번에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에서 40까지 15-6년 연령층을 살펴보면 됩니다. 회사 초년생으로 과장 정도까지의 남자들, 한참 잘 나가는 아가씨로부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1-2 가진 주부들, 이들이 사용하는 정신 기능을 분석해 보셨는지요? 남자라면 그 머리 속에 자기 수준 이상의 여자를 찾아 직장에서 다른 사람을 누르고 올라가는 이 방향에 자신의 정신기능이 전부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자라면 자기 수준이상의 남자를 찾아 자기가 가진 가정이 자기를 편하고 즐겁게 하도록 방향을 잡고 여기에 자기의 정신기능을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정신기능이 곱게 사용된다면 시부모를 내 부모같이 기쁨으로 모실 것이고 남자라면 자기 희생을 찾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정신기능이 좋게 쓰였다면 그들을 존경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부러움을 주위에서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정신기능이 잘 쓰였다면 실력까지 갖춘 여성이며 사회 지도적 입장에 설 남성입니다.
③교회 내부를 정신기능 측면에서 조사한다면
목회자를 상대로 이 3가지 항목에 점수를 매기라고 한다면, 익명으로 여론 조사를 한다면, 3가지에 합격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음이 고우면 무능해서 교인들이 답답합니다. 병신인지 착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교인들의 불평, 교인들끼리 모였을 때 내놓는 말을 무작정 눌러만 둘 일도 아닙니다. 실력있는 목회자면 교만과 독선이 있어 특수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변해 버립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다 죽어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말을 교회 내부 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꾸하기가 심히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교인들을 두고 목회자들이 점수를 주라면 목회자 눈에, 착한 교인, 실력있는 교인, 충성하는 교인의 3가지를 다 갖춘 사람이 몇 %,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가장 정신기능을 바로 잡고 바로 사용한다는 교회 내부가 이 정도라면 세상은 굳이 조사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멀리서 보고 물건너 불구경으로 보면 좋아 보일찌 모르나 들여다 보면 그러합니다.
3)정신장애란 가능성이 차단된 점은 불행이나 결과만 가지고 본다면 밑져야 본전입니다.
①평균적 인간을 보아 '정상적인' 정신기능을 정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1%가 채 안됩니다.
정신기능을 가지고 한 개인이 평생에 바로 사용한 것이 1%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계산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세상계산법은 1% 바로 사용한 것만 가지고 선전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기 단점은 잊어버리고 장점만 크게 보이는 인간 심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산은 심판으로 나타나며 여기서는 지공 지성의 진리 심판이 적용됩니다. 1% 사용 생애는 우리가 천국으로 갈 때 가지고 가며 여기 대한 보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99% 잘못 사용한 나머지 생애는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심령이 밝아진 천국에서 영원토록 99% 낭비로 살았던 자기 세상 생활은 자기가 알고 느끼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천국은 갔지만, 죄송함은 말할 수 없이 크며, 비관적 후회는 없으나 죄송한 미안은 영원토록 가져야 합니다.
정신장애자는 바울처럼, 백목사님처럼 자기 정신기능을 잘 사용하여 큰 성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지 못했다는 기대지수에서는 대단히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신기능을 잘못 사용하여 손해배상을 하고 그 결과 밑지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99%라고 한다면 이 점에서 정신장애자는 본전 장사는 하는 사람입니다.
②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기대지수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은 아쉽지 않습니까?
만일 세상에서 학자가 되고 정치가가 되어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정신장애자들은 기대지수가 제로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실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순간의 세상이 지난 다음 우리가 살 영원한 나라를 주 목표로 삼는다면, 그리고 그 나라의 준비가 오늘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다면, 정신장애자는 노력할 경우이지 불가할 경우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능이 있으며 말씀에는 창조력 개조력 개선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없는 데서 아인슈타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면, 만들어놓은 정신장애자 뇌속에 위치가 잘못된 회로 수리가 휠씬 쉽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으로 살아가는 그 순간만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인 순간은 신앙이 아닌 세상에 두고갈 생애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감기를 낫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기약을 먹고 감기를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넣어주셔서 과학으로 치료하는 길도 기도 중에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감기약을 먹고 치료하도록 감동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요 역사라고 간증을 한다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동네 약사들도 그 정도 하나님 노릇은 할 수 있다고. 기도로 감기가 나으면 사람들이 '아, 그랬어!' 듣고 지나치는 정도입니다. '기도로 정신장애자가 정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 주변 여러 종류 많은 사람들이 진동할 일입니다. 하나님께는 과학의 치료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나, 감기를 직접 낫게 하시는 것이나, 정신장애를 복구시키는 것이나 꼭같은 힘으로 할 수 있는데, 사람이 자기 기준에서 앞에 두가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뒤에 한 경우는 대단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고려치 않은 불신자들의 행동입니다.
③정신장애라는 병을, 정신장애자라는 사람을 왜 우리에게 보내셨을까?
인간이 자기가 겪는 아픔, 고통은 큰 관심사가 되고 물건너 불구경은 소식듣는 정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아를 상대하시다 보니 그 면이 부각되었고, 물론 어떤 불행보다 큰 불행임은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환경이 바뀌면 간사한 우리의 입맛이 그냥 변해 버립니다. 그리고 딴 소리를 하지요.
교사 이기주의를 마구 욕하다가 자기 아들이 사범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갑자기 그 사람의 단어와 표정은 바뀌어버립니다. 신기할 만큼. 표시가 뚜렷하게 난 장애가 정신장애입니다. 표시가 전혀 나지 않았으나 이 나라 이 백성 이 말세 모든 인간의 정신장애는 심각한 정도입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나만 운없이 걸려든 것이 '정신장애자' 본인이며 가족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로 상대하는 정신박약아들은 답답하기 그지 없으나 공격성은 없습니다. 정신박약이 아니고 정신분열이나 과대망상 착란증으로 나가면 순간에 한 가족을 몰살 시켜버릴 수 있습니다. 히틀러 한 사람이 가졌던 정신분열증의 정신장애, 그에게 충동받아 함께 넘어갔던 게르만 민족 전체의 정신박약, 일본 군국주의를 주도한 몇 사람이 가졌던 과대망상이라는 정신장애와 일본인 전체의 착란증은 수천만명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들 전부는 차라리 특수학교를 다니는 수준의 정신장애자였다면 자기 하나의 불편에서 그쳤을 불행인데, 일본과 독일에서 보였던 히스테리는 비교못할 큰 장애였으나 아무도 그들을 정신장애로 분류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그렇게 분류하면 우리 세상을 사는 모두가 다 그 종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 잘하는 진짜 미친사람들이 우리들인데, 덜 미치고 휠씬 증세가 약하고 또 공격적이지 않은 수줍은 미친사람들이 말을 못한다고 그들만 미친사람으로 분류를 하고 있음도 계산해 볼 대목일 것입니다.
김일성 사망에 북한 주민이 보였던 국가적 발악은 집단 히스테리입니다. 이런 예는 너무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것일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대통령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미쳤던 이 지역 사람들, 저 지역 사람들, 우리들이 많이 보고 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끼리도 열을 내 가면서 난리들이었습니다. 제 부모를 위해 그렇게 해 보았는지, 전주이씨 족보만 섬기고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조선 왕조의 소위 충신 열사 유생들이나, 제 부모 모시기 싫어 머리 돌리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나, 사람이라고 생겨먹은 대로 안 미친 사람이 사실 없습니다.
제 부모 죽은 자리에서 장남들 대개 남자들의 눈물은 그렇게 인색합니다. 한몸을 약속한 여자가 제 시부모 죽은 자리에서 눈물은 더 인색합니다. 그러나 옆집 애완견 죽었다고 우는 새댁, 그 새댁이 우는 눈물에는 이웃 새댁들이 함께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완전히 미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4)이 정도에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가집니다.
①불쌍해 보이는 것이 '정신장애아'이고, 실제 불쌍한 이들은 '정신건강자'들입니다.
정신장애아들을 건강한 아이로 바꿔 달라는 기도는 그냥 해보는 기도요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개선시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개인 경험으로 정신장애아를 세 명 정도 주일학교 반사로 있을 때 데리고 있었습니다. 교회 다닌지 1-2년 만에 너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부모가 놀랄 정도였고, 목회 나온 후 5-6년 뒤에 들어보니까 여고를 다닌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말을 듣고 정말 믿어지지 않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입니다. 일반 설교 모든 성경 말씀이 정신박약아를 위해서도 그를 책임진 또 관련있는 사람의 꾸준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②기도는 내 소원을 허락하라는 것이 아니라, 왜 이 현실을 주셨느냐고 여쭤야 합니다.
왜 나면서 앉은뱅이 되고 왜 나면서 한번도 눈을 떠 보지 못하는 이런 장애아를 주셨느냐고 주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들을 고쳤으니 내 자식도 고쳐 내라고 요구나 항의를 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능치 못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다 고치겠다고 기도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해당된 길과 과정이 다 다릅니다. 몇 번 기도하다 결국 포기하는 것이 '정신장애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기도의 방향을 '왜 주셨습니까?' '왜 하필이면 정신장애입니까?' 이런 기도는 분풀이나 한풀이로 고함지르며 기도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이런 기도는 기일을 정한 작정기도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요한 묵상, 고요한 명상이라야 합니다. 조용히 냉정히 그러면서 주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인간으로는 절대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데 창조주가 왜 전지자가 알면서 일부러 나에게 이 현실, 이 '장애아'를 주셨느냐는 질문을 그 장애를 만든 책임자, 원인자, 제작자 하나님께 문의를 드려야 합니다. 그는 예정하신 본인이시고 그대로 진행시키는 책임자십니다.
의문은 좋지 않습니다. 의문이 없어져야 문의가 있고 답변이 있게 됩니다. 의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문의는 얼마든지 좋습니다. 문의의 자세로 질문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후히 주사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자라는 지혜를 보충하여 알려 주십니다. 여기까지는 기도로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대목입니다. 수개월, 적어도 수년은 마음 속에 묻어둔 혼자만의 숙제로 꾸준히 살펴보아야 비로소 무릎을 치며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현실은 전부가 선한 것이었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이 이런 이유였다는데 반드시 도달할 것입니다.
③장애를 주신 이유를 알았으면, 이제 해결은 되었습니다.
그런 계획, 그런 예정이 계셨으니, 즐겁게 이제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 됩니다. 껌파는 아이는 자기하는 일이 싫고 또 땀은 자기가 흘리는데 돈을 가져가는 사람은 폭력배니까 처참한 꼭두각시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탈랜트들은 잠깐 수고하여 유명한 스타가 되고 적은 돈 투자해서 거금을 끌어 모으게 되니까, 1달 고생, 1년 고생도 참아가며 감독이 시키는 일은 별별 일을 다 하지 않습니까? 한 겨울 얼음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울어야 하고 웃어야 하고, 별별 고생을 다 하는 이유가 '나은 소망' '다음 생활'이 있기 때문이며 잘만 되면 많이 나아질 것을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땅 위의 '정신장애', 그 가족과 관련된 사람이 기도하여 고쳐주시려고 주신 것인가, 아니면 잠깐의 십자가를 주셔서 천국의 영원을 특별하게 마련하시려고 그러는가? 계산은 자신들이 할 일이며 그 계산에 따라 어떻게 마음을 먹고 행동을 해야겠는가 하는 문제는 장애가족 자신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남의 일이니까 하기 좋은 말로 해 보시라고 한다면, 제가 드릴 말씀은 '정신장애' 당신은 그래도 본전 장사는 하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은 줄줄이 다 망하는 사업을 해서 본전도 못 찾고 빚만 지고 갈 사람들이요, 또 당신은 '정신장애'에 장애지만 그 장애 이상의 정신장애자들 '위험스럽기 한없는 정신장애'들이 꽉 찬 세상이니 이 면을 생각해도 창조주를 크게 원망할 것이 없으며, 더구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전능이 계시니 감기 하나 낫는 것과 정신장애 바로 잡는 것과 하나님께는 같은 수준의 치료이니 그분께 기도해 볼 일이고, 그보다는 왜 이런 사람을 주셨느냐고 그 장애자 때문에 고생할 가족, 그들의 기도 제목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믿는 우리에게 예정된 모든 예정은 각자에게 알맞은 그리고 가장 좋은 예정으로 예정해두셨습니다. 자식들은 상대적 비교로 나는 부모 덕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섭섭하다 하며 이말 저말들을 하지만 한 분 하나님 아버지는 분명히 사랑으로 좋게 주셨습니다. 즐겁게 기쁘게 그리고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는 꼭두각시 노릇을 해보라고 각자에게 적절한 다른 역할을 맡겼습니다. 세상 배역은 역량이 부족해서 재촬영도 해야 하고, 또 시키는 대로 다 따라 했는데도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이 각본 감독하시고 진행시키는 오늘 현실은 당신의 전능이 각본대로 되도록까지 하십니다.
여기까지 알게 되면 굴러가도 뒤집혀도 복된 길, 영생의 길, 참된 길만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계를 넘어가 본 경험이 롬8:34-39 에 있습니다. 바울의 간증입니다. 그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이렇게 좋아서 환장할 때는 바울이 로마 감옥 안에 있을 때 일입니다.
*정신장애로 일단 외부와 대화가 차단되는 경우는 '치매'도 마찬가지이며 '치매환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둘 몇가지를 문의답변방 초기에 올려 둔 것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교회론-신앙생활-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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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자의 영, 신앙 등의 구원문제
1)일반적인 경우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①일반장애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 지체 장애는 그 장애 때문에 큰 좌절로 낭패되는 경우가 많으나, 그 장애 때문에 더 큰 복을 가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불임도 넓은 개념의 큰 장애였습니다. 이스라엘도 메시야 출생이 자기 가족 계통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들 선호사상이 대단했습니다. 한나는 불임의 장애가 있었고 그 때문에 받은 복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②정신장애는 믿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중생되는 것이 영입니다. 이 영을 중생시키는 데까지는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전적 하나님이 객관의 역사로 중생을 시켜 놓습니다. 따라서 정신장애에 상관없이 그들의 영은 중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중생된 이후입니다. 믿는 우리가 평생 노력하는 것이 마음을 말씀으로 바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이 일을 위해 영이 노력하고 또 몸은 마음이 성화된 것만큼 그 뒤를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마음의 성화 정도가 천국의 영원한 우리 모습으로 보면 되는 정도인데 마음에 장애가 발생이 된다면. 말씀을 받아 지식으로 인정으로 나아가야 되는 건설구원의 기본 요소, 출발에 필수 과정이 전부 마비가 되거나 큰 불편을 가지게 되니 그 신앙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의 결정이며 예정이니 받아 들여야 한다지만,
이런 점에서 정신장애만큼 큰 장애가 없고, 그 장애에 견줄 불행이 없다 할 정도입니다. 특수하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예외적인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그 마음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믿음의 성장이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입을 막아버린다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러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장애자로 출생이 되던, 머리를 다쳐 장애가 되던 이런 아이들을 처음 마주치게 된 가족이나 교사는 사명감이나 동정심으로 각오도 해 보고 노력도 해 보지만, 인간이기에 피로와 반복이 누적되면 결국 죽일 수 없고 죽을 수 없어 체념적 생활이 될 뿐입니다.
정신장애아, 너무도 가혹하며 평생의 족쇄라는 점에서 어떤 위로나 어떤 표현도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말장난으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2)그러나, 이런 점을 혹시 생각해 보셨습니까?
①잘 쓰면 큰 선물이나 잘 쓰는 사람이 적습니다.
'정신기능'을 하나의 좋은 선물 또는 도구라고 한다면, 정신지체 장애자는 가장 좋은 도구 가장 좋은 선물을 받지 못한 거지입니다. 그들을 애처롭게 보는 우리는 '정상적인 정신'을 가졌고 이 점에서 정신장애자와는 모든 면에서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탁월한 도구, 이 최상의 선물로 정신장애자보다 나은 결과를 만드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TV라는 탁월한 도구, 좋은 선물이 패륜을 조장하는지 인륜을 고취시키는지, 좋은 시력이 남의 여자 남의 남자를 잘 보게 하는지 소중한 자기 남자 자기 여자를 더 잘 보게 하는지, 건강함으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한 세월이 많았는지 건강함으로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때가 더 많았는지.
②가장 귀한 선물, 도구. 정신기능은 어떻게 쓰이고 있습니까?
정신기능을 정상으로 가진 사람이 그 정신으로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대학 4학년까지가 16년 세월이며, 이 연령층에 해당되는 숫자가 대략 1,000만명입니다. 가방 들고 학교가는 학생치고 정신이 바로 박힌 학생과 정신기능은 정상인데 정신을 잘못 쓰고 있는 학생과 숫자 비율이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볼 때, 마음씨를 참으로 곱게 쓰고 좋게 쓰고 또 잘 쓰는 학생이 한반 40명 중에 몇 명입니까? 곱게 쓴다면 심성이 착하다 말이며 좋게 쓴다면 처신이 바르다는 말이며 잘 쓴다면 공부나 기타 실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어려서 그렇다면 이번에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에서 40까지 15-6년 연령층을 살펴보면 됩니다. 회사 초년생으로 과장 정도까지의 남자들, 한참 잘 나가는 아가씨로부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1-2 가진 주부들, 이들이 사용하는 정신 기능을 분석해 보셨는지요? 남자라면 그 머리 속에 자기 수준 이상의 여자를 찾아 직장에서 다른 사람을 누르고 올라가는 이 방향에 자신의 정신기능이 전부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자라면 자기 수준이상의 남자를 찾아 자기가 가진 가정이 자기를 편하고 즐겁게 하도록 방향을 잡고 여기에 자기의 정신기능을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정신기능이 곱게 사용된다면 시부모를 내 부모같이 기쁨으로 모실 것이고 남자라면 자기 희생을 찾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정신기능이 좋게 쓰였다면 그들을 존경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부러움을 주위에서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정신기능이 잘 쓰였다면 실력까지 갖춘 여성이며 사회 지도적 입장에 설 남성입니다.
③교회 내부를 정신기능 측면에서 조사한다면
목회자를 상대로 이 3가지 항목에 점수를 매기라고 한다면, 익명으로 여론 조사를 한다면, 3가지에 합격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음이 고우면 무능해서 교인들이 답답합니다. 병신인지 착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교인들의 불평, 교인들끼리 모였을 때 내놓는 말을 무작정 눌러만 둘 일도 아닙니다. 실력있는 목회자면 교만과 독선이 있어 특수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변해 버립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다 죽어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말을 교회 내부 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꾸하기가 심히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교인들을 두고 목회자들이 점수를 주라면 목회자 눈에, 착한 교인, 실력있는 교인, 충성하는 교인의 3가지를 다 갖춘 사람이 몇 %,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가장 정신기능을 바로 잡고 바로 사용한다는 교회 내부가 이 정도라면 세상은 굳이 조사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멀리서 보고 물건너 불구경으로 보면 좋아 보일찌 모르나 들여다 보면 그러합니다.
3)정신장애란 가능성이 차단된 점은 불행이나 결과만 가지고 본다면 밑져야 본전입니다.
①평균적 인간을 보아 '정상적인' 정신기능을 정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1%가 채 안됩니다.
정신기능을 가지고 한 개인이 평생에 바로 사용한 것이 1%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계산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세상계산법은 1% 바로 사용한 것만 가지고 선전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기 단점은 잊어버리고 장점만 크게 보이는 인간 심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산은 심판으로 나타나며 여기서는 지공 지성의 진리 심판이 적용됩니다. 1% 사용 생애는 우리가 천국으로 갈 때 가지고 가며 여기 대한 보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99% 잘못 사용한 나머지 생애는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심령이 밝아진 천국에서 영원토록 99% 낭비로 살았던 자기 세상 생활은 자기가 알고 느끼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천국은 갔지만, 죄송함은 말할 수 없이 크며, 비관적 후회는 없으나 죄송한 미안은 영원토록 가져야 합니다.
정신장애자는 바울처럼, 백목사님처럼 자기 정신기능을 잘 사용하여 큰 성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지 못했다는 기대지수에서는 대단히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신기능을 잘못 사용하여 손해배상을 하고 그 결과 밑지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99%라고 한다면 이 점에서 정신장애자는 본전 장사는 하는 사람입니다.
②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기대지수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은 아쉽지 않습니까?
만일 세상에서 학자가 되고 정치가가 되어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정신장애자들은 기대지수가 제로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실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순간의 세상이 지난 다음 우리가 살 영원한 나라를 주 목표로 삼는다면, 그리고 그 나라의 준비가 오늘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다면, 정신장애자는 노력할 경우이지 불가할 경우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능이 있으며 말씀에는 창조력 개조력 개선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없는 데서 아인슈타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면, 만들어놓은 정신장애자 뇌속에 위치가 잘못된 회로 수리가 휠씬 쉽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으로 살아가는 그 순간만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인 순간은 신앙이 아닌 세상에 두고갈 생애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감기를 낫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기약을 먹고 감기를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넣어주셔서 과학으로 치료하는 길도 기도 중에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감기약을 먹고 치료하도록 감동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요 역사라고 간증을 한다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동네 약사들도 그 정도 하나님 노릇은 할 수 있다고. 기도로 감기가 나으면 사람들이 '아, 그랬어!' 듣고 지나치는 정도입니다. '기도로 정신장애자가 정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 주변 여러 종류 많은 사람들이 진동할 일입니다. 하나님께는 과학의 치료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나, 감기를 직접 낫게 하시는 것이나, 정신장애를 복구시키는 것이나 꼭같은 힘으로 할 수 있는데, 사람이 자기 기준에서 앞에 두가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뒤에 한 경우는 대단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고려치 않은 불신자들의 행동입니다.
③정신장애라는 병을, 정신장애자라는 사람을 왜 우리에게 보내셨을까?
인간이 자기가 겪는 아픔, 고통은 큰 관심사가 되고 물건너 불구경은 소식듣는 정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아를 상대하시다 보니 그 면이 부각되었고, 물론 어떤 불행보다 큰 불행임은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환경이 바뀌면 간사한 우리의 입맛이 그냥 변해 버립니다. 그리고 딴 소리를 하지요.
교사 이기주의를 마구 욕하다가 자기 아들이 사범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갑자기 그 사람의 단어와 표정은 바뀌어버립니다. 신기할 만큼. 표시가 뚜렷하게 난 장애가 정신장애입니다. 표시가 전혀 나지 않았으나 이 나라 이 백성 이 말세 모든 인간의 정신장애는 심각한 정도입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나만 운없이 걸려든 것이 '정신장애자' 본인이며 가족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로 상대하는 정신박약아들은 답답하기 그지 없으나 공격성은 없습니다. 정신박약이 아니고 정신분열이나 과대망상 착란증으로 나가면 순간에 한 가족을 몰살 시켜버릴 수 있습니다. 히틀러 한 사람이 가졌던 정신분열증의 정신장애, 그에게 충동받아 함께 넘어갔던 게르만 민족 전체의 정신박약, 일본 군국주의를 주도한 몇 사람이 가졌던 과대망상이라는 정신장애와 일본인 전체의 착란증은 수천만명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들 전부는 차라리 특수학교를 다니는 수준의 정신장애자였다면 자기 하나의 불편에서 그쳤을 불행인데, 일본과 독일에서 보였던 히스테리는 비교못할 큰 장애였으나 아무도 그들을 정신장애로 분류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그렇게 분류하면 우리 세상을 사는 모두가 다 그 종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 잘하는 진짜 미친사람들이 우리들인데, 덜 미치고 휠씬 증세가 약하고 또 공격적이지 않은 수줍은 미친사람들이 말을 못한다고 그들만 미친사람으로 분류를 하고 있음도 계산해 볼 대목일 것입니다.
김일성 사망에 북한 주민이 보였던 국가적 발악은 집단 히스테리입니다. 이런 예는 너무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것일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대통령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미쳤던 이 지역 사람들, 저 지역 사람들, 우리들이 많이 보고 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끼리도 열을 내 가면서 난리들이었습니다. 제 부모를 위해 그렇게 해 보았는지, 전주이씨 족보만 섬기고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조선 왕조의 소위 충신 열사 유생들이나, 제 부모 모시기 싫어 머리 돌리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나, 사람이라고 생겨먹은 대로 안 미친 사람이 사실 없습니다.
제 부모 죽은 자리에서 장남들 대개 남자들의 눈물은 그렇게 인색합니다. 한몸을 약속한 여자가 제 시부모 죽은 자리에서 눈물은 더 인색합니다. 그러나 옆집 애완견 죽었다고 우는 새댁, 그 새댁이 우는 눈물에는 이웃 새댁들이 함께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완전히 미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4)이 정도에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가집니다.
①불쌍해 보이는 것이 '정신장애아'이고, 실제 불쌍한 이들은 '정신건강자'들입니다.
정신장애아들을 건강한 아이로 바꿔 달라는 기도는 그냥 해보는 기도요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개선시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개인 경험으로 정신장애아를 세 명 정도 주일학교 반사로 있을 때 데리고 있었습니다. 교회 다닌지 1-2년 만에 너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부모가 놀랄 정도였고, 목회 나온 후 5-6년 뒤에 들어보니까 여고를 다닌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말을 듣고 정말 믿어지지 않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입니다. 일반 설교 모든 성경 말씀이 정신박약아를 위해서도 그를 책임진 또 관련있는 사람의 꾸준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②기도는 내 소원을 허락하라는 것이 아니라, 왜 이 현실을 주셨느냐고 여쭤야 합니다.
왜 나면서 앉은뱅이 되고 왜 나면서 한번도 눈을 떠 보지 못하는 이런 장애아를 주셨느냐고 주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들을 고쳤으니 내 자식도 고쳐 내라고 요구나 항의를 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능치 못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다 고치겠다고 기도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해당된 길과 과정이 다 다릅니다. 몇 번 기도하다 결국 포기하는 것이 '정신장애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기도의 방향을 '왜 주셨습니까?' '왜 하필이면 정신장애입니까?' 이런 기도는 분풀이나 한풀이로 고함지르며 기도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이런 기도는 기일을 정한 작정기도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요한 묵상, 고요한 명상이라야 합니다. 조용히 냉정히 그러면서 주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인간으로는 절대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데 창조주가 왜 전지자가 알면서 일부러 나에게 이 현실, 이 '장애아'를 주셨느냐는 질문을 그 장애를 만든 책임자, 원인자, 제작자 하나님께 문의를 드려야 합니다. 그는 예정하신 본인이시고 그대로 진행시키는 책임자십니다.
의문은 좋지 않습니다. 의문이 없어져야 문의가 있고 답변이 있게 됩니다. 의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문의는 얼마든지 좋습니다. 문의의 자세로 질문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후히 주사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자라는 지혜를 보충하여 알려 주십니다. 여기까지는 기도로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대목입니다. 수개월, 적어도 수년은 마음 속에 묻어둔 혼자만의 숙제로 꾸준히 살펴보아야 비로소 무릎을 치며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현실은 전부가 선한 것이었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이 이런 이유였다는데 반드시 도달할 것입니다.
③장애를 주신 이유를 알았으면, 이제 해결은 되었습니다.
그런 계획, 그런 예정이 계셨으니, 즐겁게 이제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 됩니다. 껌파는 아이는 자기하는 일이 싫고 또 땀은 자기가 흘리는데 돈을 가져가는 사람은 폭력배니까 처참한 꼭두각시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탈랜트들은 잠깐 수고하여 유명한 스타가 되고 적은 돈 투자해서 거금을 끌어 모으게 되니까, 1달 고생, 1년 고생도 참아가며 감독이 시키는 일은 별별 일을 다 하지 않습니까? 한 겨울 얼음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울어야 하고 웃어야 하고, 별별 고생을 다 하는 이유가 '나은 소망' '다음 생활'이 있기 때문이며 잘만 되면 많이 나아질 것을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땅 위의 '정신장애', 그 가족과 관련된 사람이 기도하여 고쳐주시려고 주신 것인가, 아니면 잠깐의 십자가를 주셔서 천국의 영원을 특별하게 마련하시려고 그러는가? 계산은 자신들이 할 일이며 그 계산에 따라 어떻게 마음을 먹고 행동을 해야겠는가 하는 문제는 장애가족 자신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남의 일이니까 하기 좋은 말로 해 보시라고 한다면, 제가 드릴 말씀은 '정신장애' 당신은 그래도 본전 장사는 하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은 줄줄이 다 망하는 사업을 해서 본전도 못 찾고 빚만 지고 갈 사람들이요, 또 당신은 '정신장애'에 장애지만 그 장애 이상의 정신장애자들 '위험스럽기 한없는 정신장애'들이 꽉 찬 세상이니 이 면을 생각해도 창조주를 크게 원망할 것이 없으며, 더구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전능이 계시니 감기 하나 낫는 것과 정신장애 바로 잡는 것과 하나님께는 같은 수준의 치료이니 그분께 기도해 볼 일이고, 그보다는 왜 이런 사람을 주셨느냐고 그 장애자 때문에 고생할 가족, 그들의 기도 제목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믿는 우리에게 예정된 모든 예정은 각자에게 알맞은 그리고 가장 좋은 예정으로 예정해두셨습니다. 자식들은 상대적 비교로 나는 부모 덕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섭섭하다 하며 이말 저말들을 하지만 한 분 하나님 아버지는 분명히 사랑으로 좋게 주셨습니다. 즐겁게 기쁘게 그리고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는 꼭두각시 노릇을 해보라고 각자에게 적절한 다른 역할을 맡겼습니다. 세상 배역은 역량이 부족해서 재촬영도 해야 하고, 또 시키는 대로 다 따라 했는데도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이 각본 감독하시고 진행시키는 오늘 현실은 당신의 전능이 각본대로 되도록까지 하십니다.
여기까지 알게 되면 굴러가도 뒤집혀도 복된 길, 영생의 길, 참된 길만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계를 넘어가 본 경험이 롬8:34-39 에 있습니다. 바울의 간증입니다. 그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이렇게 좋아서 환장할 때는 바울이 로마 감옥 안에 있을 때 일입니다.
*정신장애로 일단 외부와 대화가 차단되는 경우는 '치매'도 마찬가지이며 '치매환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둘 몇가지를 문의답변방 초기에 올려 둔 것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기본구원/장애] 정신장애인의 구원, 예정은?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교회론-신앙생활-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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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애아동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입니다.
지능지수 측정 자체가 불가능한 자폐아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말도 못하고 앞뒤 분간도 못하는(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의 구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아이들 역시 영과 육과 혼을 가진 인격체입니다. 이 아이들의 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폐아들이야말로 스스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하시며 너무나 힘들어하시는 부모님들을 가까이서 볼 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하나님께선 장애아를 주실만한 가정에 주신다', '장애인이 없으면 이 세상에 사랑과 배려와 보살핌이 없는 훨씬 삭막한 세상이 될 것이다'하고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너무 잔인하신 거 아니냐'고 하시는 학부형님 앞에서(좀더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원망을 벗어나서 체념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 아픔의 백분의 일도 느끼지 못하는 저로서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완전예정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면(맹목적으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매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게 될 거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개인메일이었으나, 본인요청이 있어 게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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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교회론-신앙생활-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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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애아동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입니다.
지능지수 측정 자체가 불가능한 자폐아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말도 못하고 앞뒤 분간도 못하는(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의 구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아이들 역시 영과 육과 혼을 가진 인격체입니다. 이 아이들의 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폐아들이야말로 스스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하시며 너무나 힘들어하시는 부모님들을 가까이서 볼 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하나님께선 장애아를 주실만한 가정에 주신다', '장애인이 없으면 이 세상에 사랑과 배려와 보살핌이 없는 훨씬 삭막한 세상이 될 것이다'하고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너무 잔인하신 거 아니냐'고 하시는 학부형님 앞에서(좀더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원망을 벗어나서 체념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 아픔의 백분의 일도 느끼지 못하는 저로서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완전예정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면(맹목적으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매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게 될 거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개인메일이었으나, 본인요청이 있어 게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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