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회개는 참으로 희귀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갓난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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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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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9.19 00:00
제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내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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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같이 진정한 회개란, 질문하신 대로 참으로 희귀한 경우입니다.
1.다윗의 회개는 우리의 목표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출발은 걸음마 연습부터입니다.
①아무리 어려워도 다윗의 회개 수준, 그곳에 우리의 목표는 있어야 됩니다.
다윗과 같은 진정한 회개가 희귀한 것은 다윗과 같은 성자가 역사에 희귀하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은 성자가 희귀하기 때문에 그런 진정한 회개도 희귀한 것입니다. 전부가 다윗일 수는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목표는 다윗과 같은 회개, 다윗과 같은 성자가 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그렇게 되라고 하지만 이런 말을 되새길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크게 눌립니다. 말은 맞고 현실 속에 내 모습은 너무도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면 자포자기로 결론 나기 십상입니다. 다윗은 너무 위대하고 나는 수 없는 평범한 교인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자위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②다행히, 주신 그 목표를 향해 출발시킨 우리에게 먼저 걸음마를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윗의 회개 수준에 이르라고 분명한 예를 들었고 그 목표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와 동시에 주신 우리의 출발점은 갓난 어린 아이라고 했습니다. 첫걸음 하나를 배우기 위해 수없는 반복을 하고 있는 우리는 아직 갓난 아이입니다. 하루에 70번씩 7번, 즉 490번까지도 반복하면서, 그러나 목표는 다윗의 회개와 같은 수준에 두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각자의 평생을 '생애기간'으로 주신 것은 그 시간이 다 소비되고 소모되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며 그러나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평생을 투자하여 '회개'라는 과목 하나를 달성한다면, 회개 보다 한 단위 높은 수준인 '의로운 행위'는 또 처음부터 배우고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까? '의' 연습이 끝나면 '하나님과 동행' 연습을 또 처음부터 시작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고 알아가려면 '회개' 한 가지 과목에 들어가는 기간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평생 '회개'라는 과목 하나에 매달릴 것이고 그것마저도 그렇게 시원하게 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③신앙은, 한 가지가 자라면서 그 한 가지에 관련된 모든 면이 동시에 자라버립니다.
한 아이가 자유롭게 발을 움직이기까지, 서는 연습, 걷는 연습에 엉덩이를 찧었던 것이 수 천 번으로는 안됩니다. 수 만 번은 반복을 해야 비로소 걸음마를 배운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 한 가지를 가지고 노력하다보면, 회개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신앙이 동시에 자라게 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 사람의 전반적 신앙 수준에 따라 그 사람의 회개 '정도'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회개에 전력했는데 기도실력이 늘었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회개의 실력이 늘고 기도의 실력이 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다른 면은 어리고 서툰 것이 많은데 회개만 그렇게 높은 차원에서 했던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다른 면에 신앙은 그렇게 출중했는데 '회개'라는 한 과목이 낙제가 되어 하나님께 그렇게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면 평범한 의를 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려운 의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면 대단히 힘든 회개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대단히 힘든 회개를 그렇게까지 진정으로 했던 다윗은 많은 면에 있어서 이미 대단한 의인이었습니다.
④그렇다면, 다윗은 회개와 모든 면에 성자였고, 우리는 회개와 모든 면에 어린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떤 한 실수를 두고 어떤 차원의 '회개'를 했는지 또는 할 수 있겠는지를 살펴보기 이전에, 신앙에 많은 면을 두고 나는 어느 수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지를 살펴야겠습니다. 사람이라 다 실수가 많다고 하셨으니 여러 종류의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어느 정도의 회개로 회개할 사람인지도 우리는 우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 죄는 회개할 수 있겠다 싶다면, 그 사람은 '그 정도의 신앙'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회개라는 행위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자존심' 상해서 못하겠다고 스스로 생각되는 분이라면 자신의 신앙은 전반적으로 '지극히 어린 수준'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기준으로 한다면 갓난 신앙일 것입니다. 어리니까 자라 갈 앞날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진정 바로 믿기 위해 자신이 힘썼던 과거를 계산해 본다면, 우리는 대학을 목표로 공부한 정도로 믿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취직을 위해 애쓴 정도도 아닐 것 같습니다. 연애하는 상대방을 표적으로 미쳐 날뛰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집념에 비한다면 우리는 너무도 신앙에 집념이 없었다는 결산을 스스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다윗과 같은 신앙이 되도록 모든 면으로 힘을 써야 하고, 그렇다면 대학, 직장, 결혼 등을 목표로 애를 쓰는 이상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리다고 봐야 하고 우리의 '회개수준' 역시 어릴 것이 분명합니다. 평생이라는 세월을 두고 우리를 길러 가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채워나갈 빈 공간이 많겠으며 이것을 '소망'이라고도 하며 '성장과정'이라고도 합니다.
내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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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같이 진정한 회개란, 질문하신 대로 참으로 희귀한 경우입니다.
1.다윗의 회개는 우리의 목표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출발은 걸음마 연습부터입니다.
①아무리 어려워도 다윗의 회개 수준, 그곳에 우리의 목표는 있어야 됩니다.
다윗과 같은 진정한 회개가 희귀한 것은 다윗과 같은 성자가 역사에 희귀하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은 성자가 희귀하기 때문에 그런 진정한 회개도 희귀한 것입니다. 전부가 다윗일 수는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목표는 다윗과 같은 회개, 다윗과 같은 성자가 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그렇게 되라고 하지만 이런 말을 되새길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크게 눌립니다. 말은 맞고 현실 속에 내 모습은 너무도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면 자포자기로 결론 나기 십상입니다. 다윗은 너무 위대하고 나는 수 없는 평범한 교인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자위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②다행히, 주신 그 목표를 향해 출발시킨 우리에게 먼저 걸음마를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윗의 회개 수준에 이르라고 분명한 예를 들었고 그 목표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와 동시에 주신 우리의 출발점은 갓난 어린 아이라고 했습니다. 첫걸음 하나를 배우기 위해 수없는 반복을 하고 있는 우리는 아직 갓난 아이입니다. 하루에 70번씩 7번, 즉 490번까지도 반복하면서, 그러나 목표는 다윗의 회개와 같은 수준에 두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각자의 평생을 '생애기간'으로 주신 것은 그 시간이 다 소비되고 소모되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며 그러나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평생을 투자하여 '회개'라는 과목 하나를 달성한다면, 회개 보다 한 단위 높은 수준인 '의로운 행위'는 또 처음부터 배우고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까? '의' 연습이 끝나면 '하나님과 동행' 연습을 또 처음부터 시작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고 알아가려면 '회개' 한 가지 과목에 들어가는 기간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평생 '회개'라는 과목 하나에 매달릴 것이고 그것마저도 그렇게 시원하게 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③신앙은, 한 가지가 자라면서 그 한 가지에 관련된 모든 면이 동시에 자라버립니다.
한 아이가 자유롭게 발을 움직이기까지, 서는 연습, 걷는 연습에 엉덩이를 찧었던 것이 수 천 번으로는 안됩니다. 수 만 번은 반복을 해야 비로소 걸음마를 배운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 한 가지를 가지고 노력하다보면, 회개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신앙이 동시에 자라게 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 사람의 전반적 신앙 수준에 따라 그 사람의 회개 '정도'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회개에 전력했는데 기도실력이 늘었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회개의 실력이 늘고 기도의 실력이 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다른 면은 어리고 서툰 것이 많은데 회개만 그렇게 높은 차원에서 했던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다른 면에 신앙은 그렇게 출중했는데 '회개'라는 한 과목이 낙제가 되어 하나님께 그렇게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면 평범한 의를 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려운 의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면 대단히 힘든 회개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대단히 힘든 회개를 그렇게까지 진정으로 했던 다윗은 많은 면에 있어서 이미 대단한 의인이었습니다.
④그렇다면, 다윗은 회개와 모든 면에 성자였고, 우리는 회개와 모든 면에 어린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떤 한 실수를 두고 어떤 차원의 '회개'를 했는지 또는 할 수 있겠는지를 살펴보기 이전에, 신앙에 많은 면을 두고 나는 어느 수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지를 살펴야겠습니다. 사람이라 다 실수가 많다고 하셨으니 여러 종류의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어느 정도의 회개로 회개할 사람인지도 우리는 우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 죄는 회개할 수 있겠다 싶다면, 그 사람은 '그 정도의 신앙'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회개라는 행위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자존심' 상해서 못하겠다고 스스로 생각되는 분이라면 자신의 신앙은 전반적으로 '지극히 어린 수준'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기준으로 한다면 갓난 신앙일 것입니다. 어리니까 자라 갈 앞날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진정 바로 믿기 위해 자신이 힘썼던 과거를 계산해 본다면, 우리는 대학을 목표로 공부한 정도로 믿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취직을 위해 애쓴 정도도 아닐 것 같습니다. 연애하는 상대방을 표적으로 미쳐 날뛰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집념에 비한다면 우리는 너무도 신앙에 집념이 없었다는 결산을 스스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다윗과 같은 신앙이 되도록 모든 면으로 힘을 써야 하고, 그렇다면 대학, 직장, 결혼 등을 목표로 애를 쓰는 이상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리다고 봐야 하고 우리의 '회개수준' 역시 어릴 것이 분명합니다. 평생이라는 세월을 두고 우리를 길러 가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채워나갈 빈 공간이 많겠으며 이것을 '소망'이라고도 하며 '성장과정'이라고도 합니다.
[주해] 7천명의 의인이 있는데도 멸망? 궁금합니다.
제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내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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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회개...'에 대한 답변 내용을 읽어보면서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다윗의 회개와 관련된 내용에서는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과연 그러한 정도까지의 회개에 이르는 사람이 기독교 역사에 몇 사람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연상으로 엘리야 시대의 '나만 남았나이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천명을 남겨두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창 18: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성의 롯을 생각하고 기도할 때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되고 말았고, 또
((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진리와 공의를 찾는 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예루살렘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을 보면 한 사람의 의인을 심히 귀하게 여기시며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혜택을 입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미래사?-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과거사?- 자니라))
이세벨과 아합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극도로 타락하여 하나님이 멸망시키기에 이르렀고 엘리야만이 외롭게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 7천인을 남겨두었다고 했습니다. 성구의 내용을 보면 '남기리니'는 미래사이나 그 뒤에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는 과거사입니다. 따라서 의인이 7천명이나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신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1. 명문되어진 대로 7천명이 실존해 있었다면 7천명이라는 많은 의인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는지?
2.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사람이 7천명이나 있었다면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까지 타락이 되어졌는지?
3. 그 7천명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 당시 시대 상황을 유추해 보건대 이세벨과 아합의 서슬이 시퍼런 세력 앞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정도라면 순교의 신앙이 아니고는 불가능이라 생각됩니다. 순교적인 신앙의 사람이 7천명이나 있는데... 물론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에 원인이 없을 수 없겠고 이유가 없을 수 없겠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어서 문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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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내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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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회개...'에 대한 답변 내용을 읽어보면서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다윗의 회개와 관련된 내용에서는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과연 그러한 정도까지의 회개에 이르는 사람이 기독교 역사에 몇 사람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연상으로 엘리야 시대의 '나만 남았나이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천명을 남겨두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창 18: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성의 롯을 생각하고 기도할 때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되고 말았고, 또
((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진리와 공의를 찾는 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예루살렘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을 보면 한 사람의 의인을 심히 귀하게 여기시며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혜택을 입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미래사?-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과거사?- 자니라))
이세벨과 아합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극도로 타락하여 하나님이 멸망시키기에 이르렀고 엘리야만이 외롭게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 7천인을 남겨두었다고 했습니다. 성구의 내용을 보면 '남기리니'는 미래사이나 그 뒤에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는 과거사입니다. 따라서 의인이 7천명이나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신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1. 명문되어진 대로 7천명이 실존해 있었다면 7천명이라는 많은 의인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는지?
2.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사람이 7천명이나 있었다면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까지 타락이 되어졌는지?
3. 그 7천명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 당시 시대 상황을 유추해 보건대 이세벨과 아합의 서슬이 시퍼런 세력 앞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정도라면 순교의 신앙이 아니고는 불가능이라 생각됩니다. 순교적인 신앙의 사람이 7천명이나 있는데... 물론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에 원인이 없을 수 없겠고 이유가 없을 수 없겠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어서 문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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