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 결국 반성문이 될 수밖에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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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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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3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인물-홈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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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가 신원을 상세히 공개하고 또 답변의 구체적 과거를 요구하시기 때문에 본 질문을 피할 수 없다면, 결국 답변자의 반성문 또는 자서전으로 내용이 전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구구한 개인사적 내용이오니 답변자 개인사에 별 관심이 없을 일반 열람인들께서는 읽으실 내용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질문을 이렇게 요약해 보았습니다.
1.부산공회의 신앙본질과 본인 소속 공회의 신앙본질
2.분리과정의 성격, '탈퇴'냐 '제명'이냐
3.본인이 소속한 신풍교회의 교인들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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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예를 원하시니 실례를 주로 들어보겠습니다.
1.부산공회 절대다수 교역자들의 신앙본질, 그와 다른 우리 공회의 신앙본질
1)하나를 보아 열을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예가 서부교회 건입니다.
①공회 다수측의 서부교회 투쟁은 개교회주의 초보도 모르는 행동입니다.
공회가 공회 가입 교회인 서부교회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면 우선 전원일치의 의견이 필요하고 그다음 취할 수 있는 조처는 의견 발표 정도입니다. 더 나아가 꼭 이렇게 하는 것이 옳겠다고 권고할 수도 있습니다. 전원일치가 되지 않으면 공회원이 자기 개인 신앙양심이 이러하다고 발표를 하던지 권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회가 서부교인이 교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하고 나선다면 이는 개교회주의의 근본도 초보도 모르는 일입니다.
개교회가 부탁하거나 맡긴 일도 아닌데 개교회가 정할 일과 시행할 일을 공회가 대신 나선다면, 그 공회는 스스로 총공회에서 탈퇴하게 됩니다. 일반교단은 불법행위와 교단탈퇴가 별개로 진행됩니다. 총공회는 총공회 신앙노선을 이탈하면 바로 총공회 탈퇴가 되어져 버립니다. 그 존재형태와 존속의 모습이 아주 다른 독특한 교회입니다.
②서부교인 다수측의 중간반 처리 행위는 개교회주의를 스스로 버린 행동입니다.
서부교회 10년 갈등의 초기, 공회적으로는 친서목사님측이 현저하게 열세였습니다. 공회적 모임이 있을 때마다 서목사님측 서부교인들은 공회 차원에서는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는 예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친서 경향의 교인들과 교역자들은 '개교회주의'에 잘못된 처사라며 그렇게 억울하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내부로 돌아오면 친서 경향의 교인들이 많았고 또 교회운영의 주요직책을 거의 맡고 있었던 바, 공회에서 당한 그대로 소수였던 반대측 교인들에게 꼭같은 일을 했었습니다. 물론 소수측이 일방적으로 당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회에서도 소수측이었던 친서 경향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힘껏 해 보았지만 역부족으로 당한 것입니다. 어쨌던 큰 범위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개교회주의란, 개교회는 개교회가 모든 결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공회가 그 개교회의 뜻에 상관없이 개입하면 안된다는 것을 당연히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말한다면 친서 경향의 분들이 맞다고 대찬성을 하고 나섭니다. 그러나 개교회주의란 개인신앙주의가 먼저 존재했고 그 연장선에서 좀 더 넓은 교회 범위에 적용되었을 때 '개교회주의'로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신앙주의를 모르는 개교회주의는 사생아이며, 개교회주의를 모르는 개교단주의 역시 출생이 확인되지 않은 외계인입니다.
서부교회와 공회 내부에서 다수측이 소수측을 상대로 또는 소수측이 다수측을 상대로 지난 10여년 주고받았던 모든 언행은 전부가 총공회적이지 않았고, 총공회적인 노선을 없애버렸으며, 총공회 이름하에서 총공회 알맹이를 완전히 없애버린 경우였습니다.
2)서부교회건을 두고 친서와 반서 경향의 양측이 도와달라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①반서를 주도하던 측에서 요구하던 서목사님 매장작업,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본 답변자는 공사석을 막론하고, 또 해당되는 본인 면전 공사석에서도 분명하게 신앙노선을 밝혀왔습니다. 본 답변자는 총공회 내부에서 가장 신앙으로 먼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서목사님이며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신앙노선이 정반대라는 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 그분을 청빙한 서부교회의 결정은 정상적이었고, 서부교회 담임목회자가 된 목사님을 두고 발생한 문제는 총공회노선, 즉 개교회주의를 벗어나는 공회의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는 것이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소위 공회교권을 쥐고 있던 쪽에서는 모든 회의를 할 때마다 서부교회 건을 진압하기 위해 발언할 사람들, 발언할 내용들, 반대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들, 기계적 문제들까지 전부 계획해 두고 그대로 밀어 부칠 때였습니다. 지시에 거부하면 교회에서 쫓아내기 위해 그 교회 교인들에게 집중적으로 작업이 벌어지고 젊은 교역자 어깨들이 사택으로 몰려가서 툭툭치는 등 다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서목사님 반대에 앞장 서 달라는 것을 딱 거절해 버렸던 것은 서목사님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서목사님과는 정반대 노선에 있지만 그 처리 방법은 총공회신앙노선을 없애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노선을 제일 중요한 가치 판단으로 보는 본인으로서는 그 뒤에 올 여러 가지 손해를 생각하면서도 당연히 그러했던 것입니다.
②반서측에게 많은 손해를 받기 시작할 때, 친서쪽에서 꼭 같은 부탁이 있었습니다.
친서측에 지휘부를 구성하는 분들이 본인이 반서 노선 부탁을 거절하여 많은 불편을 겪는다고 들었다면서 교역자회의에 출석하여 반서 노선의 교권측의 불법을 공격해 주시라는 부탁을 여러 분들에게 장시간 들어야 했습니다.
딱 부러지게 드린 말씀은, 본인은 서목사님과는 신앙노선이 가장 멀고 가장 반대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서목사님 지지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이 아닌 서목사님을 총공회 신앙노선이 아닌 방법으로 반대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고, 어느 한 개인의 잘못된 것보다 노선이 잘못되면 단체 속화 단체 타락이 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3)부산공회는 그 신앙노선을 잡았던 1990년 이후 오늘까지 이런 싸움만 해 왔습니다.
①지난 1990년대 10년간 부산공회가 어느 형태의 회의든 그 회의에서 했던 일은 오직 서목사님측과 반서목사님측의 싸움이었습니다. 서목사님측 교역자는 서목사님에 대한 모든 것이 옳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어떤 면을 지적해도 서목사님에 대한 지적에는 전부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정작 서목사님 본인은 소탈한 분이고 그렇게 권위적이려고 신경 쓰는 분이 아닌 평범한 분입니다.
반대로 반서목사님 측에서는 서목사님에 속한 것은 전부가 틀렸다고 단정을 했으며, 따라서 모든 총공회의 방향은 서목사님 제거라는 목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후배 목사, 목사 만들지 않기 위한 목사회' 문제도 있었고 덕분에 수년간 공회에는 단 한 명의 목사도 배출되지 않는 때가 있었으며, 대구공회와는 소송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회 내부의 주류 역사는 '서목사님'을 두고 제거냐 지킴이냐는 투쟁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별반 반대가 없을 것입니다.
②이렇게 나가는 공회, 이렇게 나가는 모임은 '총공회'가 아닙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에서는 있을 수도 있을 필요도 없는 일만 했던 10여년입니다. 1990년 9월 교역자회의부터 1992년 초반까지 공회의 공식 회의, 즉 총공회나 교역자회의에 거의 참석치 않았습니다. 총공회는 일반 교단과 달라서 존재형식과 존재확인의 기준이 판연히 다릅니다. 서목사님 건이 본격화 되기 전부터 이미 '전원일치' '총공회장 비상존' '성경법' 등 3대 공회 출발 원칙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총공회는 아니며 명찰만 가진 교단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떤 때는 총공회의 본 모습이 돌아올 때도 더러 있었고, 또 아직까지 문서적으로는 본인이 총공회에 소속되어 있던 때였습니다. 제명시키지 않는다면 스스로 탈퇴하지는 않는 것이 우리의 신앙노선입니다. 요약하자면, 공회의 내부는 이미 달라졌고 우려는 하지만 행동으로 나설 필요도 없을 정도로 급속히 타락되고 있었으며 단지 문서적 명의만 공회에 걸려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2년 초, 대구공회와 공회적으로 소송이 있었고 부산공회가 공식적으로 소송의 당사자가 되었으며, 1992년 말에는 서목사님 문제가 완전히 표출되어 무한 혈육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총공회에 대하여 그 잘못됨을 힘껏 외쳤고, 그 결과 가장 먼저 돌아왔던 것이 '양성원 교수직 제명'이었습니다. 서영호목사님과 이재순목사님 측이 그렇게 생사결단하고 싸우다가 일단 본인 제명에는 뜻을 함께 모았습니다. 이재순 서영호 송종섭 송종관 목사님 등 4분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물론 그 절차는 '강의 보류' '강의 중단' '교수직 제명' 등으로 이어졌겠지만 그런 지엽적인 것에는 별반 상관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목사님 측과 반 서목사님 측이 함께 제명시켰다는 것입니다. 그후 서목사님은 저를 처리하던 그 방식 그 기준 그 식대로 그대로 또 제거되어졌습니다. 그때는 지지하는 교역자들이 많아서 수년을 두고 '불법행위 무효'라는 구호들이 많았고 양측 투쟁에 기름을 얹었던 정도였습니다.
2.제명의 순서와 절차는 밟아 본 적도 없고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①어느 날 교역자 명단에서 이름을 그냥 빼버렸습니다.
총공회의 여러 면을 비교적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 본인을 제명시킨다는 것은 최소한 절차와 형식을 갖추려면 불가능합니다. 그냥 없애버리면 간단한 것입니다. 본인은 그런 불법행위를 두고 법정으로 나간다든지 아니면 다른 방어조처를 취하지 않을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대구공회와 해를 넘기면서 법정에서 싸우던 부산공회, 내부적으로 서목사님을 두고 찬반으로 해를 넘기면서 끝을 보는 투쟁을 하던 중, 공회 소속 교역자 명단에서 본인 이름이 삭제되었고 곧 이어 신풍교회 이름도 소속 교회에서 빠져 버렸습니다. 본인에게 단 한번 통고도 없이, 그렇게 나가면 재미없다는 말이 몇 번 스쳐지나간 다음, 어느 날 지우개로 명단에서 지워버리고 끝이 났습니다. 제명이 되려면 최소한의 의견절차를 밟아야 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노원 소원 위원회, 행정실 등 여러 곳에 일단 문의를 했습니다.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총공회장이 싫어 하는 것 알지 않느냐'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반대측이었던 서목사님 측 교역자 몇 분에게 '서목사님만을 위해서는 싸워도 총공회 원칙과 절차가 무시되는 것은 상관치 않는 것이 서목사님 측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뒤에 서목사님측 교역자들이 차례로 당할 때도 이와 꼭같았습니다.
②간접으로 들은 말은, 이런 몇가지였습니다.
공회부담금을 내지 않았던 것이 원인 중에 하나라고 했습니다. 공회부담금은 그 회계를 맡고 있는 측이 개인 돈으로 사용할 수 있고 또 이전에도 공회공금을 통째로 다른 곳에 넘겨 줬던 예가 있어 공회공금이 옳게 쓰일 수 없다는 심정이 이렇게 확고한 이상 부담금을 낼 수 없고 우선 회계원칙이 바로 서는 것이 순서일 것이며, 부담금은 그 납부여부에 공회소속 문제를 거론할 수 없는 것이 총공회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소송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소송 중에도 교회나 공회가 절대로 해서 안될 사안이 있는 바, 현 공회간 소송은 '어느 공회가 옳으냐'는 것에서 승패가 걸리기 때문에 소송을 한다면 공회 출발노선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단정을 또 해 주었습니다.
교역자회 참석을 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교역자회의가 모일 때마다 욕설, 주먹, 맞고함으로만 수년을 계속하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험악한 이 사람이 회의를 참석하면 자타 구원에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③실은 당시 총공회의 단체 속화 타락이라는 현실에서 제명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제명된 순서나 절차 등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김영환목사님 한 분일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관련은 되었으나 그 순서가 복잡하여 기억도 못할 것입니다. 또한 총공회 제명 절차가 있다면 그 절차에 따라 되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위에서 눈 끔뻑 했고, 아래에서는 지우개로 이름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단 항의하는 지원세력, 주먹을 들고 회의장에 난입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또 깊은 마음 속으로는 잘려졌으면 좋겠다는 소원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인 제명은 어느 개인 수첩에는 메모가 있을지라도 공회적으로는 어떤 문서형식 또는 절차형식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황한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처신을 했다면 벌써 제명이 되었을 일이나 어쩐 일인지 그렇게 오래 걸렸습니다. 사실 부산공회 우리 소속 교역자와 교인들의 인내심과 사랑이 결코 적지 않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일 것입니다.
④그렇다고 교역자 뿐 아니라 교회까지 제명시킨 행위는 어떻게 설명도 못하겠습니다.
교역자의 행동은 너무도 뚜렷했습니다. 당연히 처리되어져야 할 실체가 있었으니 그 절차야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신풍교회라는 교회는 교역자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교회야 의례 그 목사를 지지할 것이니.....'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처리하고 또 그리 당할 때 반항치 않으면 그리 끝나는 것이 바로 현 총공회 간판 아래 있는 부산공회입니다. 파출소 소장이 괘씸하면 파출소까지 파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교역자 처리와 교회 자체 처리는 전혀 다른 것이지만, 교리와 신앙노선은 두고라도 사리조차 따질 정도가 아닌 분들이기 때문에 그냥 웃고 마는 것입니다.
3.신풍교회의 형편은 이러합니다.
①누구보다 답변자를 12년간 시골에서 함께 지켜 본 교회입니다.
저는 신풍교회의 담임목사라는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중심도 활동도 거의가 다 백영희목사님 교훈 교리 관련 연구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예배 10분전이 될 때까지도 그럴 때가 있는 정도이며 그 일에 필요하면 어느 기간이라도 교회를 비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싫은 분들에게는 항상 반대할 수 있는 기회가 매 2년마다 비밀 시무 신임투표가 있기 때문에 그때 하시라는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10여년 무효표도 없이 찬성만 받아 왔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대단히 문제가 많다고 즉각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100% 찬성이란 정상적인 교회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라면, 30여건 넘는 초상을 시골식으로 치르고 15건이 넘는 결혼을 성사시켰으니, 시골 인심, 이곳 분위기로서는 밉고 보내고 싶어도 차마 그러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인정 사정에 매이지 말고 교인은 교회의 유익만을 보고 투표하시라는 광고를 하였지만 유교를 믿는 분들인지 성경을 믿는 분들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정도로 인간적인 면에 연연하는 것이라는 면은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일단 인간으로서는 또 드러나고 나타나는 면으로서는 수년에 한 두분씩 반대하는 발언이나 표시가 있는 정도이며 평소에는 거의 제 입장에 대하여 찬성하는 외형이 있는 교회입니다.
②다행히 1998년 시무투표에는 처음으로 반대표가 6표가 있었습니다.
반대 3표, 무효 3표였습니다. 발표할 때는 반대 6표로 계산했습니다. 교인 중 중심활동을 하는 분들이 올해는 발표를 갑자기 하는 바람에 노인들이나 신앙생활을 처음하는 분들에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반대와 무효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본인 몰래 시무투표를 100%로 만드려고 운동을 했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시무투표에서는 과거보다 좀 더 운동을 하겠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2000년 시무투표에는 각 교회들에게 지금까지 거의 100%에 가까운 찬성이 나온 것이 이런 모순 때문일 수 있으니 이번 시무투표는 각 교회가 투표설명은 철저히 하되 시무투표하는 날을 교인들이 미리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행하여 다른 사람 눈치 때문에 찬성하는 경우가 없도록 해 보자는 의논이 있었습니다. 신풍교회는 반대 3표 무효 1표였습니다. 여전히 본인의 목회활동과는 달리 찬성이 지나치게 많습니다만 그래도 찬성운동이 없도록 했던 분위기에서 보다 실상에 가까운 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시무투표의 기준은 25% 반대로 이동이 전제됩니다. 본인은 25%가 아니라 교회가 정상적인 경우라면 10% 정도만 반대를 해도 도시나 다른 교회가 50% 반대하는 정도로 계산을 해야 한다는 내적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풍교회의 인정과 인심은 다른 곳에 비하여 특별히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③신풍교회 교인들의 신앙노선은 거의 본 답변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인이 제안해서 못했던 사안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열린 사회입니다. 산속으로 들어가서 정보를 차단한다든지 목회자 개인의 신비화를 추구하지 않고는 개인이 좌지우지 하기가 곤란한 경우입니다. 이런 시대에 개인의 사생활을 교회 내 사택에서 사택의 출입문을 완전 공개한 상태에서 교역자가 원하는 신앙노선으로 목회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본인이 배운 것은 보다 옳은 것을 먼저 배워서 내놓으면 결국 여러 비교 비판 토론을 다 겪어도 옳은 주장이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백목사님을 가까이 하면서 배울 수 있었고 또 느낄 수 있었던 것 중에서 목회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입니다. 더 옳고 더 좋고 더 성경적인 것만 잡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신풍교인들은 총공회의 역사나 교리에 대하여 거의 아는 것이 없는 분들입니다. 자연스럽게 본인의 안내를 받아 들이고 있지만, 그 아는 것이 진정 자신들 속에 얼마나 있겠는가? 1-2명 있을는지. 이것이 신풍교회입니다.
어쨌던 본인이 신풍교인들에게 부산공회가 이런 시각에서 잘못되었고 우리가 갈 길이 현재까지 왔던 이 길이라고 설명했을 때, 반대한 분은 한 분도 없었으며 본인은 공회의 여러 사건이나 구체적인 사안들을 권찰회 때 비교적 소상하게 전달하는 편입니다. 지금 올리는 이 글을 정상적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분조차 몇 사람되지 않다고 한다면, 신풍교회의 분위기를 대체로 소개받음으로 그간의 과정을 짐작하시는 편이 더 나으리라고 봅니다.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인물-홈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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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가 신원을 상세히 공개하고 또 답변의 구체적 과거를 요구하시기 때문에 본 질문을 피할 수 없다면, 결국 답변자의 반성문 또는 자서전으로 내용이 전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구구한 개인사적 내용이오니 답변자 개인사에 별 관심이 없을 일반 열람인들께서는 읽으실 내용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질문을 이렇게 요약해 보았습니다.
1.부산공회의 신앙본질과 본인 소속 공회의 신앙본질
2.분리과정의 성격, '탈퇴'냐 '제명'이냐
3.본인이 소속한 신풍교회의 교인들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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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예를 원하시니 실례를 주로 들어보겠습니다.
1.부산공회 절대다수 교역자들의 신앙본질, 그와 다른 우리 공회의 신앙본질
1)하나를 보아 열을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예가 서부교회 건입니다.
①공회 다수측의 서부교회 투쟁은 개교회주의 초보도 모르는 행동입니다.
공회가 공회 가입 교회인 서부교회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면 우선 전원일치의 의견이 필요하고 그다음 취할 수 있는 조처는 의견 발표 정도입니다. 더 나아가 꼭 이렇게 하는 것이 옳겠다고 권고할 수도 있습니다. 전원일치가 되지 않으면 공회원이 자기 개인 신앙양심이 이러하다고 발표를 하던지 권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회가 서부교인이 교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하고 나선다면 이는 개교회주의의 근본도 초보도 모르는 일입니다.
개교회가 부탁하거나 맡긴 일도 아닌데 개교회가 정할 일과 시행할 일을 공회가 대신 나선다면, 그 공회는 스스로 총공회에서 탈퇴하게 됩니다. 일반교단은 불법행위와 교단탈퇴가 별개로 진행됩니다. 총공회는 총공회 신앙노선을 이탈하면 바로 총공회 탈퇴가 되어져 버립니다. 그 존재형태와 존속의 모습이 아주 다른 독특한 교회입니다.
②서부교인 다수측의 중간반 처리 행위는 개교회주의를 스스로 버린 행동입니다.
서부교회 10년 갈등의 초기, 공회적으로는 친서목사님측이 현저하게 열세였습니다. 공회적 모임이 있을 때마다 서목사님측 서부교인들은 공회 차원에서는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는 예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친서 경향의 교인들과 교역자들은 '개교회주의'에 잘못된 처사라며 그렇게 억울하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내부로 돌아오면 친서 경향의 교인들이 많았고 또 교회운영의 주요직책을 거의 맡고 있었던 바, 공회에서 당한 그대로 소수였던 반대측 교인들에게 꼭같은 일을 했었습니다. 물론 소수측이 일방적으로 당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회에서도 소수측이었던 친서 경향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힘껏 해 보았지만 역부족으로 당한 것입니다. 어쨌던 큰 범위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개교회주의란, 개교회는 개교회가 모든 결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공회가 그 개교회의 뜻에 상관없이 개입하면 안된다는 것을 당연히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말한다면 친서 경향의 분들이 맞다고 대찬성을 하고 나섭니다. 그러나 개교회주의란 개인신앙주의가 먼저 존재했고 그 연장선에서 좀 더 넓은 교회 범위에 적용되었을 때 '개교회주의'로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신앙주의를 모르는 개교회주의는 사생아이며, 개교회주의를 모르는 개교단주의 역시 출생이 확인되지 않은 외계인입니다.
서부교회와 공회 내부에서 다수측이 소수측을 상대로 또는 소수측이 다수측을 상대로 지난 10여년 주고받았던 모든 언행은 전부가 총공회적이지 않았고, 총공회적인 노선을 없애버렸으며, 총공회 이름하에서 총공회 알맹이를 완전히 없애버린 경우였습니다.
2)서부교회건을 두고 친서와 반서 경향의 양측이 도와달라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①반서를 주도하던 측에서 요구하던 서목사님 매장작업,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본 답변자는 공사석을 막론하고, 또 해당되는 본인 면전 공사석에서도 분명하게 신앙노선을 밝혀왔습니다. 본 답변자는 총공회 내부에서 가장 신앙으로 먼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서목사님이며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신앙노선이 정반대라는 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 그분을 청빙한 서부교회의 결정은 정상적이었고, 서부교회 담임목회자가 된 목사님을 두고 발생한 문제는 총공회노선, 즉 개교회주의를 벗어나는 공회의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는 것이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소위 공회교권을 쥐고 있던 쪽에서는 모든 회의를 할 때마다 서부교회 건을 진압하기 위해 발언할 사람들, 발언할 내용들, 반대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들, 기계적 문제들까지 전부 계획해 두고 그대로 밀어 부칠 때였습니다. 지시에 거부하면 교회에서 쫓아내기 위해 그 교회 교인들에게 집중적으로 작업이 벌어지고 젊은 교역자 어깨들이 사택으로 몰려가서 툭툭치는 등 다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서목사님 반대에 앞장 서 달라는 것을 딱 거절해 버렸던 것은 서목사님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서목사님과는 정반대 노선에 있지만 그 처리 방법은 총공회신앙노선을 없애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노선을 제일 중요한 가치 판단으로 보는 본인으로서는 그 뒤에 올 여러 가지 손해를 생각하면서도 당연히 그러했던 것입니다.
②반서측에게 많은 손해를 받기 시작할 때, 친서쪽에서 꼭 같은 부탁이 있었습니다.
친서측에 지휘부를 구성하는 분들이 본인이 반서 노선 부탁을 거절하여 많은 불편을 겪는다고 들었다면서 교역자회의에 출석하여 반서 노선의 교권측의 불법을 공격해 주시라는 부탁을 여러 분들에게 장시간 들어야 했습니다.
딱 부러지게 드린 말씀은, 본인은 서목사님과는 신앙노선이 가장 멀고 가장 반대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서목사님 지지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이 아닌 서목사님을 총공회 신앙노선이 아닌 방법으로 반대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고, 어느 한 개인의 잘못된 것보다 노선이 잘못되면 단체 속화 단체 타락이 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3)부산공회는 그 신앙노선을 잡았던 1990년 이후 오늘까지 이런 싸움만 해 왔습니다.
①지난 1990년대 10년간 부산공회가 어느 형태의 회의든 그 회의에서 했던 일은 오직 서목사님측과 반서목사님측의 싸움이었습니다. 서목사님측 교역자는 서목사님에 대한 모든 것이 옳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어떤 면을 지적해도 서목사님에 대한 지적에는 전부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정작 서목사님 본인은 소탈한 분이고 그렇게 권위적이려고 신경 쓰는 분이 아닌 평범한 분입니다.
반대로 반서목사님 측에서는 서목사님에 속한 것은 전부가 틀렸다고 단정을 했으며, 따라서 모든 총공회의 방향은 서목사님 제거라는 목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후배 목사, 목사 만들지 않기 위한 목사회' 문제도 있었고 덕분에 수년간 공회에는 단 한 명의 목사도 배출되지 않는 때가 있었으며, 대구공회와는 소송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회 내부의 주류 역사는 '서목사님'을 두고 제거냐 지킴이냐는 투쟁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별반 반대가 없을 것입니다.
②이렇게 나가는 공회, 이렇게 나가는 모임은 '총공회'가 아닙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에서는 있을 수도 있을 필요도 없는 일만 했던 10여년입니다. 1990년 9월 교역자회의부터 1992년 초반까지 공회의 공식 회의, 즉 총공회나 교역자회의에 거의 참석치 않았습니다. 총공회는 일반 교단과 달라서 존재형식과 존재확인의 기준이 판연히 다릅니다. 서목사님 건이 본격화 되기 전부터 이미 '전원일치' '총공회장 비상존' '성경법' 등 3대 공회 출발 원칙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총공회는 아니며 명찰만 가진 교단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떤 때는 총공회의 본 모습이 돌아올 때도 더러 있었고, 또 아직까지 문서적으로는 본인이 총공회에 소속되어 있던 때였습니다. 제명시키지 않는다면 스스로 탈퇴하지는 않는 것이 우리의 신앙노선입니다. 요약하자면, 공회의 내부는 이미 달라졌고 우려는 하지만 행동으로 나설 필요도 없을 정도로 급속히 타락되고 있었으며 단지 문서적 명의만 공회에 걸려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2년 초, 대구공회와 공회적으로 소송이 있었고 부산공회가 공식적으로 소송의 당사자가 되었으며, 1992년 말에는 서목사님 문제가 완전히 표출되어 무한 혈육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총공회에 대하여 그 잘못됨을 힘껏 외쳤고, 그 결과 가장 먼저 돌아왔던 것이 '양성원 교수직 제명'이었습니다. 서영호목사님과 이재순목사님 측이 그렇게 생사결단하고 싸우다가 일단 본인 제명에는 뜻을 함께 모았습니다. 이재순 서영호 송종섭 송종관 목사님 등 4분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물론 그 절차는 '강의 보류' '강의 중단' '교수직 제명' 등으로 이어졌겠지만 그런 지엽적인 것에는 별반 상관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목사님 측과 반 서목사님 측이 함께 제명시켰다는 것입니다. 그후 서목사님은 저를 처리하던 그 방식 그 기준 그 식대로 그대로 또 제거되어졌습니다. 그때는 지지하는 교역자들이 많아서 수년을 두고 '불법행위 무효'라는 구호들이 많았고 양측 투쟁에 기름을 얹었던 정도였습니다.
2.제명의 순서와 절차는 밟아 본 적도 없고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①어느 날 교역자 명단에서 이름을 그냥 빼버렸습니다.
총공회의 여러 면을 비교적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 본인을 제명시킨다는 것은 최소한 절차와 형식을 갖추려면 불가능합니다. 그냥 없애버리면 간단한 것입니다. 본인은 그런 불법행위를 두고 법정으로 나간다든지 아니면 다른 방어조처를 취하지 않을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대구공회와 해를 넘기면서 법정에서 싸우던 부산공회, 내부적으로 서목사님을 두고 찬반으로 해를 넘기면서 끝을 보는 투쟁을 하던 중, 공회 소속 교역자 명단에서 본인 이름이 삭제되었고 곧 이어 신풍교회 이름도 소속 교회에서 빠져 버렸습니다. 본인에게 단 한번 통고도 없이, 그렇게 나가면 재미없다는 말이 몇 번 스쳐지나간 다음, 어느 날 지우개로 명단에서 지워버리고 끝이 났습니다. 제명이 되려면 최소한의 의견절차를 밟아야 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노원 소원 위원회, 행정실 등 여러 곳에 일단 문의를 했습니다.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총공회장이 싫어 하는 것 알지 않느냐'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반대측이었던 서목사님 측 교역자 몇 분에게 '서목사님만을 위해서는 싸워도 총공회 원칙과 절차가 무시되는 것은 상관치 않는 것이 서목사님 측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뒤에 서목사님측 교역자들이 차례로 당할 때도 이와 꼭같았습니다.
②간접으로 들은 말은, 이런 몇가지였습니다.
공회부담금을 내지 않았던 것이 원인 중에 하나라고 했습니다. 공회부담금은 그 회계를 맡고 있는 측이 개인 돈으로 사용할 수 있고 또 이전에도 공회공금을 통째로 다른 곳에 넘겨 줬던 예가 있어 공회공금이 옳게 쓰일 수 없다는 심정이 이렇게 확고한 이상 부담금을 낼 수 없고 우선 회계원칙이 바로 서는 것이 순서일 것이며, 부담금은 그 납부여부에 공회소속 문제를 거론할 수 없는 것이 총공회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소송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소송 중에도 교회나 공회가 절대로 해서 안될 사안이 있는 바, 현 공회간 소송은 '어느 공회가 옳으냐'는 것에서 승패가 걸리기 때문에 소송을 한다면 공회 출발노선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단정을 또 해 주었습니다.
교역자회 참석을 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교역자회의가 모일 때마다 욕설, 주먹, 맞고함으로만 수년을 계속하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험악한 이 사람이 회의를 참석하면 자타 구원에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③실은 당시 총공회의 단체 속화 타락이라는 현실에서 제명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제명된 순서나 절차 등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김영환목사님 한 분일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관련은 되었으나 그 순서가 복잡하여 기억도 못할 것입니다. 또한 총공회 제명 절차가 있다면 그 절차에 따라 되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위에서 눈 끔뻑 했고, 아래에서는 지우개로 이름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단 항의하는 지원세력, 주먹을 들고 회의장에 난입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또 깊은 마음 속으로는 잘려졌으면 좋겠다는 소원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인 제명은 어느 개인 수첩에는 메모가 있을지라도 공회적으로는 어떤 문서형식 또는 절차형식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황한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처신을 했다면 벌써 제명이 되었을 일이나 어쩐 일인지 그렇게 오래 걸렸습니다. 사실 부산공회 우리 소속 교역자와 교인들의 인내심과 사랑이 결코 적지 않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일 것입니다.
④그렇다고 교역자 뿐 아니라 교회까지 제명시킨 행위는 어떻게 설명도 못하겠습니다.
교역자의 행동은 너무도 뚜렷했습니다. 당연히 처리되어져야 할 실체가 있었으니 그 절차야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신풍교회라는 교회는 교역자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교회야 의례 그 목사를 지지할 것이니.....'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처리하고 또 그리 당할 때 반항치 않으면 그리 끝나는 것이 바로 현 총공회 간판 아래 있는 부산공회입니다. 파출소 소장이 괘씸하면 파출소까지 파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교역자 처리와 교회 자체 처리는 전혀 다른 것이지만, 교리와 신앙노선은 두고라도 사리조차 따질 정도가 아닌 분들이기 때문에 그냥 웃고 마는 것입니다.
3.신풍교회의 형편은 이러합니다.
①누구보다 답변자를 12년간 시골에서 함께 지켜 본 교회입니다.
저는 신풍교회의 담임목사라는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중심도 활동도 거의가 다 백영희목사님 교훈 교리 관련 연구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예배 10분전이 될 때까지도 그럴 때가 있는 정도이며 그 일에 필요하면 어느 기간이라도 교회를 비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싫은 분들에게는 항상 반대할 수 있는 기회가 매 2년마다 비밀 시무 신임투표가 있기 때문에 그때 하시라는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10여년 무효표도 없이 찬성만 받아 왔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대단히 문제가 많다고 즉각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100% 찬성이란 정상적인 교회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라면, 30여건 넘는 초상을 시골식으로 치르고 15건이 넘는 결혼을 성사시켰으니, 시골 인심, 이곳 분위기로서는 밉고 보내고 싶어도 차마 그러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인정 사정에 매이지 말고 교인은 교회의 유익만을 보고 투표하시라는 광고를 하였지만 유교를 믿는 분들인지 성경을 믿는 분들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정도로 인간적인 면에 연연하는 것이라는 면은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일단 인간으로서는 또 드러나고 나타나는 면으로서는 수년에 한 두분씩 반대하는 발언이나 표시가 있는 정도이며 평소에는 거의 제 입장에 대하여 찬성하는 외형이 있는 교회입니다.
②다행히 1998년 시무투표에는 처음으로 반대표가 6표가 있었습니다.
반대 3표, 무효 3표였습니다. 발표할 때는 반대 6표로 계산했습니다. 교인 중 중심활동을 하는 분들이 올해는 발표를 갑자기 하는 바람에 노인들이나 신앙생활을 처음하는 분들에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반대와 무효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본인 몰래 시무투표를 100%로 만드려고 운동을 했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시무투표에서는 과거보다 좀 더 운동을 하겠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2000년 시무투표에는 각 교회들에게 지금까지 거의 100%에 가까운 찬성이 나온 것이 이런 모순 때문일 수 있으니 이번 시무투표는 각 교회가 투표설명은 철저히 하되 시무투표하는 날을 교인들이 미리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행하여 다른 사람 눈치 때문에 찬성하는 경우가 없도록 해 보자는 의논이 있었습니다. 신풍교회는 반대 3표 무효 1표였습니다. 여전히 본인의 목회활동과는 달리 찬성이 지나치게 많습니다만 그래도 찬성운동이 없도록 했던 분위기에서 보다 실상에 가까운 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시무투표의 기준은 25% 반대로 이동이 전제됩니다. 본인은 25%가 아니라 교회가 정상적인 경우라면 10% 정도만 반대를 해도 도시나 다른 교회가 50% 반대하는 정도로 계산을 해야 한다는 내적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풍교회의 인정과 인심은 다른 곳에 비하여 특별히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③신풍교회 교인들의 신앙노선은 거의 본 답변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인이 제안해서 못했던 사안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열린 사회입니다. 산속으로 들어가서 정보를 차단한다든지 목회자 개인의 신비화를 추구하지 않고는 개인이 좌지우지 하기가 곤란한 경우입니다. 이런 시대에 개인의 사생활을 교회 내 사택에서 사택의 출입문을 완전 공개한 상태에서 교역자가 원하는 신앙노선으로 목회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본인이 배운 것은 보다 옳은 것을 먼저 배워서 내놓으면 결국 여러 비교 비판 토론을 다 겪어도 옳은 주장이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백목사님을 가까이 하면서 배울 수 있었고 또 느낄 수 있었던 것 중에서 목회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입니다. 더 옳고 더 좋고 더 성경적인 것만 잡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신풍교인들은 총공회의 역사나 교리에 대하여 거의 아는 것이 없는 분들입니다. 자연스럽게 본인의 안내를 받아 들이고 있지만, 그 아는 것이 진정 자신들 속에 얼마나 있겠는가? 1-2명 있을는지. 이것이 신풍교회입니다.
어쨌던 본인이 신풍교인들에게 부산공회가 이런 시각에서 잘못되었고 우리가 갈 길이 현재까지 왔던 이 길이라고 설명했을 때, 반대한 분은 한 분도 없었으며 본인은 공회의 여러 사건이나 구체적인 사안들을 권찰회 때 비교적 소상하게 전달하는 편입니다. 지금 올리는 이 글을 정상적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분조차 몇 사람되지 않다고 한다면, 신풍교회의 분위기를 대체로 소개받음으로 그간의 과정을 짐작하시는 편이 더 나으리라고 봅니다.
[공회노선/인물] 질문-1 이곳 운영자의 신앙노선에 대한 문의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인물-홈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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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12. 13.(Re - 1)
본인은 귀하를 중심으로 개척된 모 교회의 교인으로서 알고 싶어서 질문을
합니다.
귀하는 예수장로회 한국총공회에서 목사안수 받고 신풍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
하던중 여러가지의 사정으로 인하여 동교단을 탈퇴하여(?) 현재로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고 본인은 알고 있는데 그렇게 하게된 동기와 목적에 대해서
알고 싶어 문의를 합니다. 상세하게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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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인물-홈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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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12. 13.(Re - 1)
본인은 귀하를 중심으로 개척된 모 교회의 교인으로서 알고 싶어서 질문을
합니다.
귀하는 예수장로회 한국총공회에서 목사안수 받고 신풍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
하던중 여러가지의 사정으로 인하여 동교단을 탈퇴하여(?) 현재로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고 본인은 알고 있는데 그렇게 하게된 동기와 목적에 대해서
알고 싶어 문의를 합니다. 상세하게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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