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1.)'원어 등 신학 사용'의 모습으로 나누어 본 백목사님의 족적

문의답변      


(답변1.)'원어 등 신학 사용'의 모습으로 나누어 본 백목사님의 족적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학~]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학-]/[-인물-백영희-]


--------------------------------------------------------------------------------------------


원어 등 신학을 대하는 모습으로 나누어 본 백영희목사님의 신앙 걸음


1.신학을 전혀 몰랐던 초기 신앙시절


초기성경이었던 구역성경을 읽고 읽은 대로 힘껏 살았던 초기 신앙에는 엉덩이가 파여 방석을 4-5개씩 겹쳐 드려야 했다는 것이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 그 사모님의 생생한 기억입니다. 완전히 성경에만 미쳤고, 읽은 대로 다 행하였습니다. 신학과 원어에 대한 기록은 이 시기에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첫 출석했던 다음 주간에 안식교인들이 설득을 하여 사람의 힘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냐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냐는 문제로 2주간 흔들렸던 면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때 '이신득의(以信得義:믿음으로 구원얻음)'라는 용어가 한 차례 나옵니다만 신학이 아니라 신앙적 좌우노선을 만난 것이며 예수만 믿고 구원받는 것인가, 이전처럼 본인이 구도를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 주시는 것인가라는 문제로 흔들렸던 것입니다.


2.신앙적 신학을 조금 접했던 진주성경학교 시절


예수를 믿자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바로 진주성경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신학보다 성경을 주로 가르쳤던 곳입니다. 권임함목사님 최상림목사님 등 성경 한 말씀 앞에 죽은 듯 벌벌 떨던 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의 학문으로 강의하듯 전하는 오늘 모든 신학자들과는 별 세계에서 살던 신앙의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조차도 그리 오래 다니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자료는 다시 보아야겠으나 불과 2회 정도 가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3.신학이 전혀 없던 신사참배 환란기


처음 믿던 1936에서 해방이었던 1945년 기간에 여러 가지 개인적 깨달음에 대하여 기록한 내용들이 비교적 소상하게 남아 있습니다. 적지 않은 기록들이지만 신학에 대한 언급이나 사용은 없습니다. 단, 처음 믿을 때부터 이 기간까지 백목사님이 성경 외에 접했던 서적들은 거의 순교집, 전기집들이었으며 이런 독서는 적지 않았습니다.


4.오직 기도와 말씀뿐이었던 해방 후에서 1949년 위천교회 부임직전까지 개명시절


해방 후 고려신학교의 출발이었던 '진해 성경학교' 학생모집 소식을 듣고 이재순, 최재현 등 두 청년을 보내게 됩니다. 보낸 직후, '나도 가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여기 대한 죄송감으로 많은 회개를 하게 됩니다. 목사가 되어 인간에게 인정받으려느냐는 자책감이었습니다. 항상 자기가 번돈으로 자립하면서 4교회를 전임하였으며, 그 이상 바란 것이 없었으니 주남선목사님이 그를 유급목회자로 또 신학공부를 하도록 권하였으나 이마저도 딱 거절하였습니다. 광야에 세례요한 같았다고나 할까요.


5.신학에 상상외로 정통했던 1949년에서 1959년까지 고려파 목회자시절


위천교회로 부임할 때는 전임목회자로서 첫 출발이었으며, 부임 직후 고려신학교에 정식으로 입학을 하게 되고 1954년 졸업을 하게 됩니다. 이 기간 1952년 서부교회로 부임하였기 때문에 고려파의 중심이었던 고려신학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이 기간 박윤선목사님의 성경강의, 한부선선교사 등의 강의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 기간에만 원어사용 등 신학 소개 사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6.목회자에게만 최소 상식수준의 신학을 사용하던, 1960-1987년 시절


대한신학교에 강의를 나간 적이 있었고, 당시 명 강의로 장안에 화제가 되었으며, 박윤선목사님이 고려신학교에서 사직한 다음 서울에서 신학강의를 재개하려던 때라 백목사님께 함께 신학교를 해보자고 권하던 때입니다. 그러나 이 기간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던 것은 신학에 대한 근본 시각이 일반 신학자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1975년 총공회 자체적으로 목회자 과정을 개설하였고 고전어 3개(헬라, 히브리어, 라틴어) 과정이 있었고 교회사 조직신학 등 일반 신학과목들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총공회 교역자들도 신학서적들을 대량 구입 사용하던 때입니다. 따르던 교역자들에게 목사 과정의 필수 또는 최소 과정으로서 신학을 권할 때입니다.


7.1987-1989년, 신학에 대한 대단한 우려


목사님 목회의 마지막 3개여 년에는 신학 자체를 거의 무시 또는 경계할 정도로 그 입장이 단호하였습니다.


백목사님은 평생이 성경과 기도, 그리고 실행으로만 걸어간 신앙이었습니다. 신학에 대한 신뢰, 또는 신앙의 본질에 꼭 필요한 신학이라는 시각은 가져 본 적이 없었던 분입니다. 사실 예수 믿던 처음부터 한번도 그 기본 입장이 변해 본 적이 없었으나 목사 안수를 받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신학을 신앙어린 사람들, 신학절대주의에 찌던 교계에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 신학의 사용을 어느 정도로 해야겠는가' 라는 문제로 여러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단 전체적 기간을 먼저 살폈으니 다음 글에서는 전 기간을 수평비교해 보겠습니다.
[신학/인물] 백목사님의 신학과 원어관, 본 홈페이지의 입장에 의문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학~]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학-]/[-인물-백영희-]


--------------------------------------------------------------------------------------------


백목사님의 신학과 원어관, 그에 대한 본 홈페이지의 입장에 의문이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성경 해석은 원어와 일반 신학을 거의 인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성경 해석과 원어'와 관련된 질문에 대하여 '원어는 중요하지만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답변을 보았습니다. 아멘이 되었고, 과연 총공회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는 감탄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신학생들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으리라는 주관적인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많이 공개된 백목사님의 과거 설교(특히 "계시록 주석")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원어와 일반 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는지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213
    "
    2001.01.25목
  • 212
    "
    2001.01.20토
  • 211
    yilee
    2001.01.20토
  • 210
    소원영
    2001.01.09화
  • 209
    yilee
    2001.01.10수
  • 208
    신학생
    2001.01.05금
  • 207
    "
    2001.01.06토
  • 206
    yilee
    2001.01.06토
  • 205
    공회원
    2000.12.28목
  • 204
    yilee
    2000.12.29금
  • 203
    (관리자)
    2000.12.27수
  • 202
    yilee
    2000.12.27수
  • 201
    yilee
    2000.12.21목
  • 200
    (관리자)
    2000.12.18월
  • 199
    yilee
    2000.12.20수
  • 198
    관리인
    2000.12.22금
  • 197
    yilee
    2000.12.20수
  • 196
    김 정수
    2000.12.16토
  • 195
    yilee
    2000.12.18월
  • 194
    yilee
    2000.12.18월
  • 193
    무명
    2000.12.18월
  • 192
    yilee
    2000.12.18월
  • 191
    무명
    2000.12.13수
  • 190
    yilee
    2000.12.15금
  • 189
    류상선
    2000.12.0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