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값] 1.회개한 흔적은 죄의 흔적과 함께 천국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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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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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29 00:00
제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
내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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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내용은 조직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포함하기 때문에 질문 방향에서 더 나아가 교리적 연구에 우선 충실하고자 합니다.)
1.죄와 죄의 흔적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속은 한편으로는 지옥 갈 죄를 해결하시고 다른 편으로는 천국을 준비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습니다. 지옥 갈 죄는 해결해 주셨으나 천국 준비할 일에 대하여 삐뚤어진 죄가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지옥 갈 죄는 일단 이 문제에서 제외 하셨으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어떤 죄라도 죄는 하나님과 연결을 끊어버리고 우리를 지옥으로 가게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이 죄값을 당신이 다 받으시고 바로 이 문제를 대신 해결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고 난 이후, 그리고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삐뚤어짐 때문에 우리는 지옥을 가야 할 이 모든 문제가 완전 해결되었음은 상식입니다. 우선 이 질문은 이 지옥갈 문제가 해결된 다음 천국에 갈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다시 짓는 죄로 인하여 천국에서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되느냐는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천국을 준비하도록 다시 기회 주신 대속을 버리는 것이 성도의 범죄입니다.
꼭같은 살인죄를 지어도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받았으므로, 그 살인죄로 인하여 지옥 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살인죄로 인하여 천국 갈 준비의 그 시간 그 정력 그 기회를 없애버린 것도 삐뚤어 진 것이며 삐뚤어진 모든 것은 죄가 됩니다. 이 죄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며 이 죄는 천국 간 우리 믿는 사람끼리 비교할 때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3.매 현실에서 천국준비를 바로 한 것과 준비에 삐뚤어진 것이 천국의 차이입니다.
천국에 간 우리의 모습은 영과 심신으로 온전히 하나된 모습이며 이런 외모는 모든 사람이 꼭같습니다. 그러나 꼭같은 사람끼리 그들이 가진 실력, 그들의 인격, 그들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정도는 각각 다 다릅니다. 100점 만점이라고 했을 때 팔의 기능이 영원히 50%만 활동 가능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예수 믿고 나서도 늘 절반은 주 뜻대로 절반은 자기 마음대로 팔을 사용하고 살았다면, 예컨데 50%의 기능만 세상에서 천국 준비에 사용한 것이고 제 마음대로 사용했던 그 기간은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합니다. 천국에서 사용되는 그 기능이 다른 사람만 못한 그 만큼이 바로 세상에서 준비에 삐뚤어진 흔적입니다.
튼튼한 두 다리를 엄연히 가진 사람이 천국에서 전혀 걷지는 못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믿은 이후 세상에서 죽는 날까지 그 두 다리로 천국 준비는 한번도 하지 않고 삐뚤어진 곳으로만 발을 움직였던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움직이는 그 사람의 발의 동작이 바로 삐뚤어진 흔적, 즉 죄의 흔적입니다.
4.마음으로 지은 죄, 남 몰래 가졌던 단점들의 흔적
마음으로 몰래 지은 죄도 천국에서는 다 표시가 납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듯 그곳에서는 과거도 마음 속에 있는 것도 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남 몰래 가진 과거가 다 공개되는 그런 창피가 있는 곳이 천국의 모습일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던 천국과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각한 천국은 흔히 자기 좋은 자기대로의 이상향이기 쉽습니다. 객관의 천국 성경이 말한 천국을 찾아야겠습니다. 지옥 갈 그 마음의 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대신 그 남모르는 죄의 형벌까지를 받고 천국으로 날 데리고 오셨는데 자기 낯이 붉어지는 것만 생각하고 그 죄로 인한 영벌을 받으신 주님 얼굴은 어찌 되던 상관이 없겠습니까? 자기 낯이 어찌 되던 자기 명예가 어찌 되던 모든 것이 다 밝혀지는 그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주님 앞에 그 분이 못난 내 허물 때문에 당한 것을 다 알게 되는 때, 그 분 앞에 엎드러져 그 분 앞에 죄송해 죽은 듯 쓰러질 모습이 진정한 천국의 첫 모습일 것이며 그 여진이 천국에서 영원토록 늘 우리 마음에 배어 있을 것입니다. 늘 예수님을 죽인 십자가의 흔적을 천국에서 영원토록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 프란시스는 천국에서도 십자가를 찾겠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사울왕이 비록 죄는 지었으나 그러나 백성들 앞에 내 안면 내 체면은 일단 세워 주시라고 사무엘에게 부탁한 것이 이 땅 위에 우리의 사고방식입니다. 그 인식을 가진 인격이 그대로 천국으로 간다면 창피한 내 과거가 기억조차 없이 되기 위해 날 대신 죽은 주님의 수고까지 함께 잊어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손잡고 춤만 추고 웃기만 하는 곳이 천국이리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백목사님이 살아간 평생, 그리고 그가 간 천국은 구원의 기쁨이야 어찌 말로 하겠으며 또 달리 표시 해야 아는 것이 아니니 두말할 것도 없고 우선 날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그 고난과 못난 내 행위를 먼저 비교하며 그 앞에서 세상에서 한번도 진정으로 알만큼 알도록 가져보지 못했던 죄송함을 먼저 느끼는 것이 천국일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흔적은 세상에서 말하는 대로 폭로되었을 때 창피함이라든지 혼자 알고 묻어 둔 것이 밝혀졌을 때 느끼는 괴로움의 차원과 달리 나타납니다. 그 부끄러움의 과거는 꼭같지만 세상에서는 나도 남도 아는 것이 달랐고 천국에서는 나도 모든 사람도 세상에서 가졌던 과거를 보는 시각이 그리고 그 인식과 느낌이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5.이런 예가 있습니다.
원래 잘난 사람이 예수믿고 잘난 사람이 되었을지라도 두 종류입니다. 잘난 나를 골라낸 주님이 재수가 좋았다는 식, 못난 이 놈을 택하여 주님 고생이 많았으니 고개도 들지 못하겠다는 식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못났던 목동시절을 볼 때마다 그런 자기를 대왕 다윗으로 만든 하나님께 늘 죄송하며 감사했을 것이며, 잘난 사울은 자기를 버린 하나님 앞에 늘 원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잔인했던 과거가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 잔인을 영원히 길러가며 스스로 찌르는 고난에 연기를 지옥에서 영원히 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내가 스데반을 때려 죽인 바로 놈이라며 스스로 죄인 괴수임을 발표하고 다녔습니다. 바울은 이미 세상에서 천국을 그대로 느낀 사람입니다. 흔히들 성공한 사람이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듯 드러내며 또 다른 장신구로 삼는 이중과 다릅니다. 스스로 자살을 해서라도 되갚을 수 있다면 바로 죽어버릴 수 있는 그 고통과 죄송함, 자신에 대해 죽여 없애고 싶은 그 분노를 마음 가득 품고 내뱉은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천하에 가장 앞서 죽일 천하의 원수로 알고 마지막까지 걸어 갔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와 그 내용을 진정으로 분석하고 평가하여 단죄하고 십자가로 자신을 죽여 없애고야 말겠다는 심정이 보통 사람이 볼 때는 자학이겠는데 천국에서는 그 사람을 가르쳐 예수님의 대속의 첫걸음을 걷는 사람으로 봅니다. 백목사님의 일기적 설교준비서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내용이 정확히 이런 심정입니다. 실은 그분만큼 기쁨으로 산 사람이 없었으니 바로 이런 옛사람 자기를 연구하고 십자가를 연구한 것이 그런 기쁨을 가지고 오는 땔감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 믿고 그냥 기쁨 기쁨, 평강 평강, 행복 행복 만 반복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도바울의 과정을 통과한 다음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아 그러한지, 아니면 죽은 부모 보상금으로 자가용 타고 다니면 철없이 웃고 사는 짐승같은 인간인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 교회의 성도끼리 그렇게 기쁘고 찬양하고 즐겁기가 그지 없이 살며 이것을 성도의 교제요 그리스도 안에 기쁨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나 진정 살아 있던 초대교회, 칼빈의 교회, 손양원목사님의 교회는 교인의 기쁨과 즐거움이 철없고 속없는 가벼운 세상 기쁨이 아니라 무거워 짓눌려 죄인들처럼 보였으니 늘 회개요 자복이며 애통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속에는 늘 기쁨과 감사가 깊은 속에서 동시에 우러 나오던 이상한 세계를 가졌습니다. 백목사님만큼 또 서부교인들만큼 이 시대에 기쁨에 충천했던 교회가 드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너무도 경건했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식이 아니었고 가진 실체가 그대로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내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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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내용은 조직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포함하기 때문에 질문 방향에서 더 나아가 교리적 연구에 우선 충실하고자 합니다.)
1.죄와 죄의 흔적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속은 한편으로는 지옥 갈 죄를 해결하시고 다른 편으로는 천국을 준비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습니다. 지옥 갈 죄는 해결해 주셨으나 천국 준비할 일에 대하여 삐뚤어진 죄가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지옥 갈 죄는 일단 이 문제에서 제외 하셨으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어떤 죄라도 죄는 하나님과 연결을 끊어버리고 우리를 지옥으로 가게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이 죄값을 당신이 다 받으시고 바로 이 문제를 대신 해결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고 난 이후, 그리고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삐뚤어짐 때문에 우리는 지옥을 가야 할 이 모든 문제가 완전 해결되었음은 상식입니다. 우선 이 질문은 이 지옥갈 문제가 해결된 다음 천국에 갈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다시 짓는 죄로 인하여 천국에서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되느냐는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천국을 준비하도록 다시 기회 주신 대속을 버리는 것이 성도의 범죄입니다.
꼭같은 살인죄를 지어도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받았으므로, 그 살인죄로 인하여 지옥 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살인죄로 인하여 천국 갈 준비의 그 시간 그 정력 그 기회를 없애버린 것도 삐뚤어 진 것이며 삐뚤어진 모든 것은 죄가 됩니다. 이 죄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며 이 죄는 천국 간 우리 믿는 사람끼리 비교할 때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3.매 현실에서 천국준비를 바로 한 것과 준비에 삐뚤어진 것이 천국의 차이입니다.
천국에 간 우리의 모습은 영과 심신으로 온전히 하나된 모습이며 이런 외모는 모든 사람이 꼭같습니다. 그러나 꼭같은 사람끼리 그들이 가진 실력, 그들의 인격, 그들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정도는 각각 다 다릅니다. 100점 만점이라고 했을 때 팔의 기능이 영원히 50%만 활동 가능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예수 믿고 나서도 늘 절반은 주 뜻대로 절반은 자기 마음대로 팔을 사용하고 살았다면, 예컨데 50%의 기능만 세상에서 천국 준비에 사용한 것이고 제 마음대로 사용했던 그 기간은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합니다. 천국에서 사용되는 그 기능이 다른 사람만 못한 그 만큼이 바로 세상에서 준비에 삐뚤어진 흔적입니다.
튼튼한 두 다리를 엄연히 가진 사람이 천국에서 전혀 걷지는 못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믿은 이후 세상에서 죽는 날까지 그 두 다리로 천국 준비는 한번도 하지 않고 삐뚤어진 곳으로만 발을 움직였던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움직이는 그 사람의 발의 동작이 바로 삐뚤어진 흔적, 즉 죄의 흔적입니다.
4.마음으로 지은 죄, 남 몰래 가졌던 단점들의 흔적
마음으로 몰래 지은 죄도 천국에서는 다 표시가 납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듯 그곳에서는 과거도 마음 속에 있는 것도 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남 몰래 가진 과거가 다 공개되는 그런 창피가 있는 곳이 천국의 모습일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던 천국과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각한 천국은 흔히 자기 좋은 자기대로의 이상향이기 쉽습니다. 객관의 천국 성경이 말한 천국을 찾아야겠습니다. 지옥 갈 그 마음의 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대신 그 남모르는 죄의 형벌까지를 받고 천국으로 날 데리고 오셨는데 자기 낯이 붉어지는 것만 생각하고 그 죄로 인한 영벌을 받으신 주님 얼굴은 어찌 되던 상관이 없겠습니까? 자기 낯이 어찌 되던 자기 명예가 어찌 되던 모든 것이 다 밝혀지는 그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주님 앞에 그 분이 못난 내 허물 때문에 당한 것을 다 알게 되는 때, 그 분 앞에 엎드러져 그 분 앞에 죄송해 죽은 듯 쓰러질 모습이 진정한 천국의 첫 모습일 것이며 그 여진이 천국에서 영원토록 늘 우리 마음에 배어 있을 것입니다. 늘 예수님을 죽인 십자가의 흔적을 천국에서 영원토록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 프란시스는 천국에서도 십자가를 찾겠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사울왕이 비록 죄는 지었으나 그러나 백성들 앞에 내 안면 내 체면은 일단 세워 주시라고 사무엘에게 부탁한 것이 이 땅 위에 우리의 사고방식입니다. 그 인식을 가진 인격이 그대로 천국으로 간다면 창피한 내 과거가 기억조차 없이 되기 위해 날 대신 죽은 주님의 수고까지 함께 잊어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손잡고 춤만 추고 웃기만 하는 곳이 천국이리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백목사님이 살아간 평생, 그리고 그가 간 천국은 구원의 기쁨이야 어찌 말로 하겠으며 또 달리 표시 해야 아는 것이 아니니 두말할 것도 없고 우선 날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그 고난과 못난 내 행위를 먼저 비교하며 그 앞에서 세상에서 한번도 진정으로 알만큼 알도록 가져보지 못했던 죄송함을 먼저 느끼는 것이 천국일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흔적은 세상에서 말하는 대로 폭로되었을 때 창피함이라든지 혼자 알고 묻어 둔 것이 밝혀졌을 때 느끼는 괴로움의 차원과 달리 나타납니다. 그 부끄러움의 과거는 꼭같지만 세상에서는 나도 남도 아는 것이 달랐고 천국에서는 나도 모든 사람도 세상에서 가졌던 과거를 보는 시각이 그리고 그 인식과 느낌이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5.이런 예가 있습니다.
원래 잘난 사람이 예수믿고 잘난 사람이 되었을지라도 두 종류입니다. 잘난 나를 골라낸 주님이 재수가 좋았다는 식, 못난 이 놈을 택하여 주님 고생이 많았으니 고개도 들지 못하겠다는 식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못났던 목동시절을 볼 때마다 그런 자기를 대왕 다윗으로 만든 하나님께 늘 죄송하며 감사했을 것이며, 잘난 사울은 자기를 버린 하나님 앞에 늘 원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잔인했던 과거가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 잔인을 영원히 길러가며 스스로 찌르는 고난에 연기를 지옥에서 영원히 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내가 스데반을 때려 죽인 바로 놈이라며 스스로 죄인 괴수임을 발표하고 다녔습니다. 바울은 이미 세상에서 천국을 그대로 느낀 사람입니다. 흔히들 성공한 사람이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듯 드러내며 또 다른 장신구로 삼는 이중과 다릅니다. 스스로 자살을 해서라도 되갚을 수 있다면 바로 죽어버릴 수 있는 그 고통과 죄송함, 자신에 대해 죽여 없애고 싶은 그 분노를 마음 가득 품고 내뱉은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천하에 가장 앞서 죽일 천하의 원수로 알고 마지막까지 걸어 갔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와 그 내용을 진정으로 분석하고 평가하여 단죄하고 십자가로 자신을 죽여 없애고야 말겠다는 심정이 보통 사람이 볼 때는 자학이겠는데 천국에서는 그 사람을 가르쳐 예수님의 대속의 첫걸음을 걷는 사람으로 봅니다. 백목사님의 일기적 설교준비서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내용이 정확히 이런 심정입니다. 실은 그분만큼 기쁨으로 산 사람이 없었으니 바로 이런 옛사람 자기를 연구하고 십자가를 연구한 것이 그런 기쁨을 가지고 오는 땔감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 믿고 그냥 기쁨 기쁨, 평강 평강, 행복 행복 만 반복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도바울의 과정을 통과한 다음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아 그러한지, 아니면 죽은 부모 보상금으로 자가용 타고 다니면 철없이 웃고 사는 짐승같은 인간인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 교회의 성도끼리 그렇게 기쁘고 찬양하고 즐겁기가 그지 없이 살며 이것을 성도의 교제요 그리스도 안에 기쁨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나 진정 살아 있던 초대교회, 칼빈의 교회, 손양원목사님의 교회는 교인의 기쁨과 즐거움이 철없고 속없는 가벼운 세상 기쁨이 아니라 무거워 짓눌려 죄인들처럼 보였으니 늘 회개요 자복이며 애통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속에는 늘 기쁨과 감사가 깊은 속에서 동시에 우러 나오던 이상한 세계를 가졌습니다. 백목사님만큼 또 서부교인들만큼 이 시대에 기쁨에 충천했던 교회가 드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너무도 경건했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식이 아니었고 가진 실체가 그대로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죄론/구원론/말세론] 죄, 기능구원, 사심판에 대한 질문
제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
내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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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메일로 들어온 질문이며 문의답변방에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 yilee)
1. '죄', '죄의 흔적'에 대해서
- 모든 죄도 구원에 필요한 요소이며 순서입니까?
2. '기능들의 영멸'에 대해서
- '영감과 진리로 행하지 않은 죄들은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히 호소하게 된다'는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3. '사심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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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
내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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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메일로 들어온 질문이며 문의답변방에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 yilee)
1. '죄', '죄의 흔적'에 대해서
- 모든 죄도 구원에 필요한 요소이며 순서입니까?
2. '기능들의 영멸'에 대해서
- '영감과 진리로 행하지 않은 죄들은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히 호소하게 된다'는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3. '사심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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