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13-27 말씀을 중심으로 답변을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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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13-27 말씀을 중심으로 답변을 찾겠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성경~주해~마태복음~]

내용분류 : [-성경-주해-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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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관과 객관신앙을 두고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구는 마7:21-23입니다.


①21절에서, 자기로서는 분명히 '주여! 주여!'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주관신앙이었습니다.


22절에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고 또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 뜻대로 행한 객관신앙이 아니어서 비록 주님으로 살았다고 주관적으로 기억하고 또 확신을 하였지만 결과는 평생 신앙생활이 전부 허사였습니다. 교계에 흔치 않는 권위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선지자 노릇과 많은 권능을 행하였으나 이것조차 주관신앙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는 해당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②23절에서, 신앙의 본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이라고 하신 것과 우리가 '신앙'이라고 부른 것이 다르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우리 평생의 신앙행위는 버리고 들어가야 합니다. 본문이 가르치는 대로 정말로 큰 '불법'이란, 하나님이 세워두신 '신앙'의 법과 다른 신앙의 법, 즉 자기 주관으로 만들어 놓은 주관적 신앙입니다


2.이제 주관신앙과 객관신앙을 정의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문제는 구별하는 법입니다.


우선 주관신앙과 객관신앙을 구별하고 정의한다면, 하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의 뜻, 그 뜻대로 사는 것이 객관신앙입니다. 그 반대가 주관신앙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아닌 생활,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한 생활이 주관생활입니다.


주관신앙과 객관신앙을 정의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구별하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살펴보셔도 주관신앙으로 실패한 이들이 객관신앙을 몰라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생활이 객관신앙이었을 것으로 착오했고 착각했습니다. 실수였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안타깝고 그러기에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 본문은 심판 날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서 있을 일을 말합니다. 주관신앙으로 살았던 이들이 주님 앞에 반갑게 나타나서 당연히 큰상을 받을 줄로 알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객관신앙이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뜻, 그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반대가 주관신앙입니다. 본문에서 주관신앙으로 실패한 이들도 주관신앙이기 때문에 실패할 줄 알고 한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생각할 때는 분명히 주님이 인정하실 객관신앙으로 알았습니다. 주관신앙과 객관신앙을 구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랐습니다. 또는 그 구별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본문을 주신 것은 객관과 주관신앙을 구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어떻게 구별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3.주관과 객관신앙은 하나님의 3가지 인도를 가지고 구별할 수 있습니다.


①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하나님의 뜻은 없습니다.


객관과 주관신앙을 구별하려면 우선 하나님 말씀으로 그 첫째 기준을 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순종하는 것이 객관신앙이니 진리에 틀린 일, 진리에 잘못 된 일은 전부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말씀에 벗어난 행동은 전부가 주관신앙은 될지언정 객관신앙은 아닙니다. 객관신앙을 구별하는 그 첫째 기준이 말씀이기 때문에 적어도 객관신앙에 관심이 있다면, 또는 객관신앙으로 살려고 한다면 적어도 가장 쉬운 '말씀 순종 생활'만은 철저해야겠습니다. 백목사님은 이런 점에서 성경을 다 알고 다 외우고 다 통달하기를 평생에 애를 썼고 그 결과 성경에 관한 한 백목사님 만한 인물이 역사에 없었다고 평가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일단 말씀을 아는 사람이 객관신앙을 알 수 있는 첫 단계를 통과하는 사람이며 말씀을 보다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객관신앙에 보다 정확하게 접근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해놓고 훗날에 착오나 착각으로 후회할 일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②객관신앙을 구별하는 두 번째 기준은 영감입니다. 객관과 주관을 혼동하는 주 이유입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간단하고 확실하게 몇 가지로 간추려 글로 적어놓은 명백한 하나님의 뜻인 반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자기 생활에 세밀한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 각자의 마음 속에서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모든 하나님의 뜻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오셔서 감동시키는 영감,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대한 큰 하나님의 뜻인 성경 안에서 각자에게 대한 세밀한 하나님의 뜻인 이 영감대로 행한 것이 객관신앙인데 이 영감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려운 것이 달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 마음을 감동시켜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영감인데 이 영감이 내 마음을 통하여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다 보니 내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내 마음 스스로 추측한 것과 하나님이 가르쳐 줘서 전달한 것이 섞여 버립니다. 비서실장이 늘 대통령의 명령을 전달하게 되는데 한번씩 대통령이 하지 않은 말을 해버리면 다른 사람들은 깜박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특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면 가장 크게 조심할 것이 자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은 성령의 감동이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속단하는 일입니다. 교회 일을 하게 되면 특히 자기 주관이 그냥 주님의 뜻이라고 단정을 해 버립니다. 교회 일도 주님이 원하는 교회 일을 해야 객관신앙이지 비록 교회일일지라도 자기 주관이 고려하고 주관이 결정하여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주님의 일을 했으니 그날에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남북통일에 교회가 앞서는 것이 주님 기뻐한다고 하여 거의 모든 한국교회가 나서고 있습니다. 군사독재를 종식시키는 주님 뜻이라고 날만 새면 데모하던 한신대학과 문익환계열의 신앙도 있습니다. 오늘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종을 잘 섬겨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라 하지만 우리는 거의 전부가 주관신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③영감인도의 객관신앙과 영감 아닌 주관신앙을 구별해 주는 것이 바로 현실 인도입니다.


성경은 명확하나 간단하고 영감은 세밀하나 애매하여 구별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감인도에 실패하고는 객관신앙에 나갈 수 없습니다. 실은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영감인도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영감인도가 과연 객관신앙의 참된 영감인지 아니면 주관의 착각인지를 구별해 주는 것이 바로 현실인도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부모 형제를 원망치 않고 노예생활을 하던 것이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나 혹시 형들에게 당하기 전 먼저 형들을 제거하는 것이 혹시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겠는가 라는 의심도 가져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잡혀가는 노중에서, 또 보디발의 집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증거가 변화되는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될 때에는 남들이 볼 때에도 형들에게 팔려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인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나 그 이전 감옥에서 또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현실에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소돔 고모라를 양보한 것이 영감의 인도였지만 아브라함의 주관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황무지에 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잡혀간 롯을 구하러 가게 된 아브라함의 재력과 무력은 그 이전 아브라함의 결정이 객관신앙이었음을 증명했습니다. 결국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비에 잿더미가 되면서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인도를 많이 겪어보게 되면 조카 롯과 서로 나뉘는 그 당시 결정하던 순간 주님이 기뻐하는 인도를 따라 황무지 가나안으로 결정을 하게 될 때 자기 마음 속에 주관에서 느끼지 못하던 객관의 기쁨, 하나님의 감동으로 충만한 증거를 보게 됩니다. 눈이 밝을수록 빨리 또 정확하고 세밀하게 알게 됩니다. 아무리 그 당시 진리와 영감으로 판단한 것이 혼동되었다 해도 세월이 지나가면 하나님의 현실 인도가 겹치게 되고 그때는 불신자까지 환하게 알도록 하나님이 하십니다.


4.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성경으로 또 영감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찾는 것이 신앙입니다. 자기 주관의 착각이 아니라 진정 말씀대로 또 영감대로 바른 인도를 찾아 순종했다면 객관신앙입니다. 그러나 영감으로 각자가 행할 자세하고 세밀한 행동을 할 때 이를 객관신앙이라고 하는데 이 영감이 마음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영감이 없었는데도 마음이 착각하여 영감의 인도로 오해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따라서 알면서 스스로 양심을 어기는 정도의 신앙은 이곳에서 논의하지 않으니 이를 제외합니다만 자기 스스로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옳다고 느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서기 전 과연 누가 진정으로 객관신앙이었다고 단정하겠습니까?


이 면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최후 심판날에 확정을 하기 전 이미 모의고사에서 대강 자신의 실력 정도를 알 수 있도록 하시니 매번 주시는 모든 현실은 자신의 신앙이 하나님의 인도를 진정으로 따라간 객관신앙이었는지, 아니면 착각하고 실수한 주관 신앙이었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과거 하나님의 인도를 내가 바로 따라 왔는지를 새로 닥친 현실에서 살펴볼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 주신 이 현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살라고 이런 현실을 주셨는지 말씀과 영감으로 비추어 총 3가지를 종합하여 결정하게 되면 앞날을 살아보기 전 이미 객관신앙 여부를 어느정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연습과 경험이 반복하게 되면서 특히 객관신앙이었다는 경험이 많아지게 되면 가속도로 영안이 밝아지게 되면서 닥치기 전에 이미 닥칠 미래를 거의 현재와 같이 보게 되어 집니다. 닥칠 미래를 오늘 현재와 얼마나 비슷하게 보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영안이며 객관신앙화된 양이니 이곳에서 연구집중하는 백목사님은 닥칠 미래를 오늘 현재에서 그의 그대로 보고 살았던 분이며 그런 분을 오랫동안 가까이 보았던 기억은 이곳으로 하여금 비교 평가적으로 이곳의 신앙노선이 아직까지는 가장 정확한 신앙걸음이겠다고 확신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5.이제 본문을 요약하겠습니다.


①13절로 14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했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할 줄 너무도 환하게 알지만 그 길이 어렵고 힘들어 결국 말씀을 어기는 넓은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인물이 거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객관신앙이라야 하는 줄 알면서 그 객관신앙의 1차 기준은 말씀이기 때문에 너무도 쉽지만 결국 힘들고 어려워서 알면서 포기하는 경우입니다.


②15절로 20절에서


그러나 알든 모르든 교회는 객관신앙과 주관신앙의 두 길이 있고 진리와 영감의 인도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이들이 있으니 거짓선지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거짓인도를 하는지 누가 참된 길로 인도하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에게 어떤 영감을 주셨는지 증명이 가능하겠습니까?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아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현실인도를 살펴보면 보이지 않는 내막과 그 사람의 심리까지도 결국 다 읽을 수가 있습니다.


③21절로 27절에서


세상에서 이렇게 길을 주셨는데도 다 놓쳐버리고, 열심히 믿기만 하면 되지 꼭 구별을 해야 하고 따져야 하느냐고 한다면 주여 주여 하는 자들과 선지자 노릇에 기사와 이적을 행한 자까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거하는 마지막 날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오늘은 따져야 하고 오늘은 구별해야 함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래 위에 지은 건설은 높이 올라갈수록 그 무너짐의 파괴만 클 뿐이기 때문입니다.
[주해] '주관의 신앙'과 '객관의 신앙'에 대해서
제목분류 : [~성경~주해~마태복음~]

내용분류 : [-성경-주해-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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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의 신앙'에 대해서 질문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질문자는 '주관의 신앙'이라는 정의를 정확히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사 믿는 자들에게 각각 다른 현실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현실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자신의 현실에서 하나님 뜻을 발견할 수도 있고 자기 현실을 믿음의 눈으로 잘 살펴도 하나님 뜻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믿음이 연약한 사람인지라 성경을 통해 자기의 현실을 깨달으려 할 때도 자기의 '주관'이 들어가는 것 같고, 현실을 살필 때도 자기의 '주관'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주관이라는 말은 꼭 자기 이익을 위함이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무지인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성경의 감동, 영감을 쫓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백영희 목사님께서도 현실에서 하나님 뜻을 깨닫는 것이 어렵다고 하시면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는 베드로후서 말씀을 소개해 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질문자는 '주관의 신앙'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주시고 왜 나쁘고 어떻게 나쁜지 알려주시며 그렇다면 '객관의 신앙'이라는 단어도 정의될 수 있는 지 궁금하고, 주관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바뀔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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