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1.)옳은 길이 무엇인지를 소리 높혀 외칠 때라는 심정입니다.
|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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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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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30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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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답변)
이곳의 분위기와 이 문답방의 표현이 늘 무겁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방문하는 분들에게 죄송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정확한 표현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운 표현으로 점잖게 제안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게 하는 일이 서툴기 때문에 질문자께서 지적하는 바와 같은 글을 대할 때는 그냥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렇게 표현의 형식과 모습에 대하여는 죄송하지만 그 글에 담고 있는 내용만은 전혀 반대의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명을 많이 늘어 놓는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으나 연구실에서는 그 글과 주장이 많으면 '성의있는 답변'이 될 수 있고 그 내용 전체가 핵심을 잘 요약하고 또 담고 있다면 '역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옳고 바른 길을 찾으려는 노력만이 이곳의 목적이며 이곳을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뜻을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뜻을 감안해 주시고, 이제 말씀하신 통합측의 용어 변경은 우리 공회적 입장에서 볼 때는 용어 회귀라는 인식을 확실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통탄할 교계의 행동들은 수십 수백의 신사참배 죄를 지을 수 있는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개탄치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속화되고 타락하여 가는 교계를 향하여 우리 공회들은 오히려 합류하고 또 닮으려고 안달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 답변자의 지적입니다. 이런 비판을 '조롱만 일삼는다'고 하기 전에 그렇게 하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것이라고 주장을 해 주시든지 아니면 우리 공회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여 답변자가 착각한 점을 지적해 주셨으면 합니다.
좋기는 답변자의 지적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통렬히 비판해 줄 수 있는 글들을 내심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쳐 줄 이가 있다면 그는 바로 이곳의 스승일 것입니다. 현 시대는 스승이 없고 선지가 없는 암흑기로 급격히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가장 아쉬운 것 중에 하나가 안면 체면 가릴 것 없이 가르쳐 줄 스승이 계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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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답변)
1.이곳에 올리는 자료는 크게 두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세계와 역사 앞에 우리 말세 교회가 다 함께 가야 할 진정한 길, 그 한 길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자료입니다. 바로 그 길은 우리 총공회 신앙노선 상에 있는 이 교리와 교회 행정 원리가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자료는 총공회 내부에 있는 분들과 소속 공회들을 향해 우리가 걸어온 총공회 신앙노선이 옳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의 걸음은 무엇이 옳겠는가를 연구하는 자료입니다. 바로 그 길은 이곳이 주장하며 제시하는 길이겠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이곳에 올리는 자료의 성격은 참으로 걸어갈 길이냐 라는 문제를 연구합니다.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옳다면 참으로 따를 수 있겠느냐 틀린 길이라면 참으로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라도 버릴 수 있겠느냐 라는 무거운 주제 진지한 자세 실은 우리 모든 것을 다 걸고 알아보는 생과 사를 나눌 사거리에서 갈 길을 정해 보자는 곳입니다.
3.자연히 이곳은 점잖할 수가 없으며 양보적일 수가 없는 연구실입니다.
이곳은 불교는 돌을 믿는다더라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더라 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불교가 돌을 믿는 것은 왜 틀렸으며 무슨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가 발생된 역사와 그 과정이 어떠함을 낱낱이 자료와 근거 그리고 시각을 가지고 이를 비판하는 곳입니다. 왜 기독교만이라야 하는지, 그 역사가 어떠하며 그 유래와 앞날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설명한다음, 이러니 불교는 없애야 하고 교회는 절대 유일로 붙들어야 하겠다고 하는 곳입니다. 이렇게 투쟁적이며 저돌적인 곳인데도 그 이름을 '연구실'로 붙인 것은
이 모든 주장에 대한 자료와 분석, 연구와 확신, 비판과 주장은 생사와 평생을 걸고 옳은 길을 찾겠지만 다만 그 과정은 반드시 '근거'가 있고 '이치'가 있으며 '필연의 과정'을 '연구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입니다.
4.얼른 듣기에
질문자께서는 각 공회별로 장점도 많을 것이고 특별한 사명도 따로 있을 것인데 '비판 일변도'의 자세로 이곳의 분위기를 몰고 가는가 라고 염려를 하시는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전체와 세부적인 것을 동시에 보는 곳이며 그 전체면을 두고 말한다면 이곳의 연구와 확신으로는 현 우리 공회 전체의 문제점은 너무도 크기 때문에 이것을 분명히 알리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언급할 때는 대단히 많은 연구와 자료 그리고 이유를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목적은 만의 하나라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곳은 그 잘못을 모르는 체 그 길로 계속 생명과 평생을 투자할 것이니 그 잘못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지적을 하여 고쳐 주시라는 초청인 것입니다.
반면 이곳의 강한 주장에 이론이 없고 반론이 없다면 그리고 그 주장이 맞는 말이라면 이곳의 주장이 비록 체질에 맞지 않고 그 인물 됨에 거부감이 아무리 많많다 해도 따라 나서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일 수도 있고 남의 허물만 지적하는 비평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가 말해도 아무리 어린 아이가 말을 해도 옳은 것은 들어야 한다는 중심이 이 연구실의 공개 발표 공개 토론 공개 연구의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5.통합측의 용어 선회와 공회의 용어 회귀를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기로 용어 하나이지, 사실 신앙 전반에 흐르는 모든 면을 함축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학생회를 40년 전에 폐지했었는데 그 당시 이유와 신앙적 필연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거의 모든 대구공회와 서울공회 교회들이 지나간 10여년 되찾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악기 사용, 각종 모임, 남녀 교제 등등 그 숫자는 그곳에 계신 분들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거의 다 위험하고 문제가 있어 벌써 연구 비판 평가를 통해 폐기를 했는데 소련과 중공이 버린 공산주의를 남한의 운동권과 재야가 사회주의라는 미명하에 이 나라에 오늘에야 창대를 시키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 이곳의 판단입니다.
만일 이 주장이 옳다면, 꺾을 주장이 아니며 대충 버무릴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도입한 대구공회 교회가 복음의 보배를 새로 가진 선택을 했다면 부산공회를 비롯 모든 공회 교회들이 마구 선례를 삼아 따라 가야 할 것이고, 만일 위에서 표현한 대로 굶겨죽이는 사회주의를 들고 나온 것이라면 이는 6.25 재발을 막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전시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염려와 근심은 답변자가 불러 주는 대로 따라 오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바로 '연구실'이라는 이름입니다. 얼마든지 반론이 있으면 마땅히 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이곳의 논리가 맞다면 '숙련된 말장난'이라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곳도 반론의 근거와 지적이 옳을 때는 이곳에 크다랗게 틀린 내용과 이유 돌이켜야 할 이곳의 사명을 알릴 것입니다. 옳은 것은 이곳이 먼저 따라갈 것이며 또한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에게도 적극 알리려는 것입니다.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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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답변)
이곳의 분위기와 이 문답방의 표현이 늘 무겁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방문하는 분들에게 죄송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정확한 표현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운 표현으로 점잖게 제안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게 하는 일이 서툴기 때문에 질문자께서 지적하는 바와 같은 글을 대할 때는 그냥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렇게 표현의 형식과 모습에 대하여는 죄송하지만 그 글에 담고 있는 내용만은 전혀 반대의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명을 많이 늘어 놓는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으나 연구실에서는 그 글과 주장이 많으면 '성의있는 답변'이 될 수 있고 그 내용 전체가 핵심을 잘 요약하고 또 담고 있다면 '역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옳고 바른 길을 찾으려는 노력만이 이곳의 목적이며 이곳을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뜻을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뜻을 감안해 주시고, 이제 말씀하신 통합측의 용어 변경은 우리 공회적 입장에서 볼 때는 용어 회귀라는 인식을 확실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통탄할 교계의 행동들은 수십 수백의 신사참배 죄를 지을 수 있는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개탄치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속화되고 타락하여 가는 교계를 향하여 우리 공회들은 오히려 합류하고 또 닮으려고 안달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 답변자의 지적입니다. 이런 비판을 '조롱만 일삼는다'고 하기 전에 그렇게 하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것이라고 주장을 해 주시든지 아니면 우리 공회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여 답변자가 착각한 점을 지적해 주셨으면 합니다.
좋기는 답변자의 지적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통렬히 비판해 줄 수 있는 글들을 내심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쳐 줄 이가 있다면 그는 바로 이곳의 스승일 것입니다. 현 시대는 스승이 없고 선지가 없는 암흑기로 급격히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가장 아쉬운 것 중에 하나가 안면 체면 가릴 것 없이 가르쳐 줄 스승이 계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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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답변)
1.이곳에 올리는 자료는 크게 두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세계와 역사 앞에 우리 말세 교회가 다 함께 가야 할 진정한 길, 그 한 길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자료입니다. 바로 그 길은 우리 총공회 신앙노선 상에 있는 이 교리와 교회 행정 원리가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자료는 총공회 내부에 있는 분들과 소속 공회들을 향해 우리가 걸어온 총공회 신앙노선이 옳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의 걸음은 무엇이 옳겠는가를 연구하는 자료입니다. 바로 그 길은 이곳이 주장하며 제시하는 길이겠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이곳에 올리는 자료의 성격은 참으로 걸어갈 길이냐 라는 문제를 연구합니다.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옳다면 참으로 따를 수 있겠느냐 틀린 길이라면 참으로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라도 버릴 수 있겠느냐 라는 무거운 주제 진지한 자세 실은 우리 모든 것을 다 걸고 알아보는 생과 사를 나눌 사거리에서 갈 길을 정해 보자는 곳입니다.
3.자연히 이곳은 점잖할 수가 없으며 양보적일 수가 없는 연구실입니다.
이곳은 불교는 돌을 믿는다더라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더라 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불교가 돌을 믿는 것은 왜 틀렸으며 무슨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가 발생된 역사와 그 과정이 어떠함을 낱낱이 자료와 근거 그리고 시각을 가지고 이를 비판하는 곳입니다. 왜 기독교만이라야 하는지, 그 역사가 어떠하며 그 유래와 앞날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설명한다음, 이러니 불교는 없애야 하고 교회는 절대 유일로 붙들어야 하겠다고 하는 곳입니다. 이렇게 투쟁적이며 저돌적인 곳인데도 그 이름을 '연구실'로 붙인 것은
이 모든 주장에 대한 자료와 분석, 연구와 확신, 비판과 주장은 생사와 평생을 걸고 옳은 길을 찾겠지만 다만 그 과정은 반드시 '근거'가 있고 '이치'가 있으며 '필연의 과정'을 '연구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입니다.
4.얼른 듣기에
질문자께서는 각 공회별로 장점도 많을 것이고 특별한 사명도 따로 있을 것인데 '비판 일변도'의 자세로 이곳의 분위기를 몰고 가는가 라고 염려를 하시는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전체와 세부적인 것을 동시에 보는 곳이며 그 전체면을 두고 말한다면 이곳의 연구와 확신으로는 현 우리 공회 전체의 문제점은 너무도 크기 때문에 이것을 분명히 알리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언급할 때는 대단히 많은 연구와 자료 그리고 이유를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목적은 만의 하나라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곳은 그 잘못을 모르는 체 그 길로 계속 생명과 평생을 투자할 것이니 그 잘못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지적을 하여 고쳐 주시라는 초청인 것입니다.
반면 이곳의 강한 주장에 이론이 없고 반론이 없다면 그리고 그 주장이 맞는 말이라면 이곳의 주장이 비록 체질에 맞지 않고 그 인물 됨에 거부감이 아무리 많많다 해도 따라 나서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일 수도 있고 남의 허물만 지적하는 비평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가 말해도 아무리 어린 아이가 말을 해도 옳은 것은 들어야 한다는 중심이 이 연구실의 공개 발표 공개 토론 공개 연구의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5.통합측의 용어 선회와 공회의 용어 회귀를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기로 용어 하나이지, 사실 신앙 전반에 흐르는 모든 면을 함축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학생회를 40년 전에 폐지했었는데 그 당시 이유와 신앙적 필연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거의 모든 대구공회와 서울공회 교회들이 지나간 10여년 되찾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악기 사용, 각종 모임, 남녀 교제 등등 그 숫자는 그곳에 계신 분들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거의 다 위험하고 문제가 있어 벌써 연구 비판 평가를 통해 폐기를 했는데 소련과 중공이 버린 공산주의를 남한의 운동권과 재야가 사회주의라는 미명하에 이 나라에 오늘에야 창대를 시키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 이곳의 판단입니다.
만일 이 주장이 옳다면, 꺾을 주장이 아니며 대충 버무릴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도입한 대구공회 교회가 복음의 보배를 새로 가진 선택을 했다면 부산공회를 비롯 모든 공회 교회들이 마구 선례를 삼아 따라 가야 할 것이고, 만일 위에서 표현한 대로 굶겨죽이는 사회주의를 들고 나온 것이라면 이는 6.25 재발을 막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전시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염려와 근심은 답변자가 불러 주는 대로 따라 오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바로 '연구실'이라는 이름입니다. 얼마든지 반론이 있으면 마땅히 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이곳의 논리가 맞다면 '숙련된 말장난'이라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곳도 반론의 근거와 지적이 옳을 때는 이곳에 크다랗게 틀린 내용과 이유 돌이켜야 할 이곳의 사명을 알릴 것입니다. 옳은 것은 이곳이 먼저 따라갈 것이며 또한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에게도 적극 알리려는 것입니다.
[노선] 궁금합니다....어떤 심정으로 쓰셨는지....^^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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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측과 함께 교계 최대 교단인 통합측이 기독교 용어를 다음과 같이 바꾸기로 하였다고 발표가 되었습니다. 통합측은 한국교회의 외부 분위기를 가장 앞서 주도하며 교계 속화에 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용어 변경에서는 놀랍게도 그 변경이 세상을 따라 가던 데에서 돌이켜 옛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즉, 옛날 용어를 지금까지 그대로 지켜오던 우리 총공회 용어로 돌아오는 조처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교계의 보수화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오히려 찬송가 가사를 바꾸듯이 그냥 바꾸는 체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교계의 변덕과 우스꽝스런 모습을 한번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현재 총공회 많은 목회자들은 그들이 흥미없다며 버리는 그 용어들을 익히느라고 한참입니다.
(통합측)
잘못된기독교용어이렇게바꾸자/
(1)기도부문
1. 당신→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세우신 이 교회를…"과 같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직접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이다. 우리말 2인칭 '당신'은 결코 존대어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3인칭에서는 극존대어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3인칭이 될 수 없고 우리 간구를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에 해당되므로 '당신'이란 호칭은 안 된다.
2. 기도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기도 드립니다(기도합니다)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와 같이 동사 '기도하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써야 하는데 요즈음 이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드렸습니다'와 같이 과거형을 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기도(祈禱)는 글자 그대로 그 핵심이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의 간구다. 간구의 내용은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소원을, 즉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였습니다'로 끝낼 수는 없다. 기도의 핵심인 간구의 내용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영원한 현재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끝내는 것이 옳다.
3.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주님. 하나님 아버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라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법상의 문제가 있다. 즉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지 못한다. 2인칭에는 존칭이 아닌 경우에 한하여 호격 조사 '-아'나 '-야'가 붙을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존칭의 2인칭이 되기 때문에 이미 사어가 된 '-이여', '-이시여'를 붙여서는 안되고 그저 '주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로 해야 옳다.
4. 우리 성도님들이→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등등
국어 존대법에서는 청자(聽者)가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를 쓸 수 없다. 공중기도에서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일한 입장,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즉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격이다. 그러므로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회중을 가리켜 '우리 성도님들'이라 존대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저희들', '교회의 권속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5. 대표 기도→기도 인도
예배 순서 가운데 기도 시간이 되면 예배 인도자가 "우리를 대표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못된다. 온 회중이 머리를 숙여 무언의 기도를 할 때 한 사람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를 '기도 인도'라 부르는 것이 좋다.
기도 인도자는 기도의 대표자가 아니다. 그는 대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며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온 회중의 생각을, 즉 그들의 소원을 보다 깊게, 보다 하나님 뜻에 맞게 그 절차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기도 인도자가 기도할 때 회중은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없다. 만인제사장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사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기도에 있어서 '대표', '대신'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대신하여 기도…'는 '기도 인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사랑의 예수님→사랑의 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 대신에 '사랑의 예수님', '고마우신 예수님' 등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예수님을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끝낼 때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아뢴 후 다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기도는 일차적으로 성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성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아뢰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 서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다. 역시 이 속에도 성부 하나님의 개념이 내포돼 있다.
7. 참 좋으신 하나님→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요즈음 '참 좋으신'과 같은 말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재고를 요하는 말이라 하겠다.
즉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쓰인 말들을 보면 '거룩하신', '만유의', '생명의', '신실하신', '의로우신', '자비하신', '영원하신', '위에 계신', '능력이신', '진실하신', '구원하시는', '하늘에 계신', '사유하시는', '은혜로우신', '보수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홀로 하나이신', '천지를 지으신'… 등과 같이 대부분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들이 수식어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참 좋으신'은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수식어가 된다. 즉 '참 좋으신'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의 주관적인 감정, 정서로 느끼는 바대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얄팍한 주관적인 감정으로 그 속성을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과장하여 발전시킨다면 '사랑스러운 하나님'('사랑의 하나님'과는 판이한 뜻이 된다.), '미운 하나님', '야속한 하나님', '귀찮은 하나님'…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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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이곳에 들를때마다 은혜가 되네요~
근데 목사님께서 쓰신 글들중에 좀 개운치 못한부분이 있음을 감히 지적하고 싶네요...
아무리 상대방이 실수를 하거나 해도 비판-정죄(?)-하기전에 그 사람,혹은 단체를 위해 진심어린 기도를 하신적이 있으신지요~~~~~!?
여러 글들을 읽어오던중에 위글을 접하는 순간 또 목사님께서 실수를 범하신거 같아 말씀드립니다.....
전 그렇게 하시는 목회자님을 한분도 못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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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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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측과 함께 교계 최대 교단인 통합측이 기독교 용어를 다음과 같이 바꾸기로 하였다고 발표가 되었습니다. 통합측은 한국교회의 외부 분위기를 가장 앞서 주도하며 교계 속화에 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용어 변경에서는 놀랍게도 그 변경이 세상을 따라 가던 데에서 돌이켜 옛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즉, 옛날 용어를 지금까지 그대로 지켜오던 우리 총공회 용어로 돌아오는 조처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교계의 보수화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오히려 찬송가 가사를 바꾸듯이 그냥 바꾸는 체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교계의 변덕과 우스꽝스런 모습을 한번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현재 총공회 많은 목회자들은 그들이 흥미없다며 버리는 그 용어들을 익히느라고 한참입니다.
(통합측)
잘못된기독교용어이렇게바꾸자/
(1)기도부문
1. 당신→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세우신 이 교회를…"과 같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직접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이다. 우리말 2인칭 '당신'은 결코 존대어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3인칭에서는 극존대어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3인칭이 될 수 없고 우리 간구를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에 해당되므로 '당신'이란 호칭은 안 된다.
2. 기도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기도 드립니다(기도합니다)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와 같이 동사 '기도하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써야 하는데 요즈음 이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드렸습니다'와 같이 과거형을 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기도(祈禱)는 글자 그대로 그 핵심이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의 간구다. 간구의 내용은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소원을, 즉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였습니다'로 끝낼 수는 없다. 기도의 핵심인 간구의 내용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영원한 현재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끝내는 것이 옳다.
3.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주님. 하나님 아버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라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법상의 문제가 있다. 즉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지 못한다. 2인칭에는 존칭이 아닌 경우에 한하여 호격 조사 '-아'나 '-야'가 붙을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존칭의 2인칭이 되기 때문에 이미 사어가 된 '-이여', '-이시여'를 붙여서는 안되고 그저 '주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로 해야 옳다.
4. 우리 성도님들이→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등등
국어 존대법에서는 청자(聽者)가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를 쓸 수 없다. 공중기도에서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일한 입장,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즉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격이다. 그러므로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회중을 가리켜 '우리 성도님들'이라 존대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저희들', '교회의 권속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5. 대표 기도→기도 인도
예배 순서 가운데 기도 시간이 되면 예배 인도자가 "우리를 대표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못된다. 온 회중이 머리를 숙여 무언의 기도를 할 때 한 사람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를 '기도 인도'라 부르는 것이 좋다.
기도 인도자는 기도의 대표자가 아니다. 그는 대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며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온 회중의 생각을, 즉 그들의 소원을 보다 깊게, 보다 하나님 뜻에 맞게 그 절차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기도 인도자가 기도할 때 회중은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없다. 만인제사장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사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기도에 있어서 '대표', '대신'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대신하여 기도…'는 '기도 인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사랑의 예수님→사랑의 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 대신에 '사랑의 예수님', '고마우신 예수님' 등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예수님을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끝낼 때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아뢴 후 다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기도는 일차적으로 성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성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아뢰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 서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다. 역시 이 속에도 성부 하나님의 개념이 내포돼 있다.
7. 참 좋으신 하나님→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요즈음 '참 좋으신'과 같은 말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재고를 요하는 말이라 하겠다.
즉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쓰인 말들을 보면 '거룩하신', '만유의', '생명의', '신실하신', '의로우신', '자비하신', '영원하신', '위에 계신', '능력이신', '진실하신', '구원하시는', '하늘에 계신', '사유하시는', '은혜로우신', '보수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홀로 하나이신', '천지를 지으신'… 등과 같이 대부분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들이 수식어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참 좋으신'은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수식어가 된다. 즉 '참 좋으신'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의 주관적인 감정, 정서로 느끼는 바대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얄팍한 주관적인 감정으로 그 속성을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과장하여 발전시킨다면 '사랑스러운 하나님'('사랑의 하나님'과는 판이한 뜻이 된다.), '미운 하나님', '야속한 하나님', '귀찮은 하나님'…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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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이곳에 들를때마다 은혜가 되네요~
근데 목사님께서 쓰신 글들중에 좀 개운치 못한부분이 있음을 감히 지적하고 싶네요...
아무리 상대방이 실수를 하거나 해도 비판-정죄(?)-하기전에 그 사람,혹은 단체를 위해 진심어린 기도를 하신적이 있으신지요~~~~~!?
여러 글들을 읽어오던중에 위글을 접하는 순간 또 목사님께서 실수를 범하신거 같아 말씀드립니다.....
전 그렇게 하시는 목회자님을 한분도 못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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