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설교록을 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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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1 00:00
제목분류 : [~성경~성경일반~]
내용분류 : [-성경-성경일반-]/[-설교록-]/[-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앙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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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설교록도 성경을 읽을 때와 꼭같이 하시면 됩니다.
설교록을 읽을 때도 앞에서 말씀드린 성경 읽을 때와 같은 자세로 하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상식 수준에서 아시겠지만, 설교록은 성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설교록을 대해도 성경을 대하는 자세로 대하라고 권할 책은 칼빈의 설교록 외에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이는 설교자의 기본 자세가 신학적 또는 도덕 교양 상식을 전달하는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설교록은 그 설교를 전하는 설교자의 기본 자세가 성경을 대하는 가장 모범적인 자세, 즉 앞에서 말씀드린 성경 연구자세 이상으로 늘 살아왔고 전했던 경우이기 때문에 일반 신학서적이나 설교록을 대하는 자세와는 기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2.설교록을 대하면서 주의할 점 하나입니다.
외부로 발표하기에는 대단히 위험스런 표현이지만, 누구든 설교록을 진지하게 꾸준하게 읽어보았다면 성경보다 더 은혜롭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흠만 잡고 토만 다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하지 말라고 해 보는 소리일 뿐입니다. 어느 교회 어느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다 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특히 너무도 은혜가 되고 또 특별하기 때문에 한 마디 덧붙이는 것입니다.
설교는 성경을 풀어 증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신앙이 어리고 무지하기 때문에 더 은혜되는 성경은 덜 은혜롭게 읽고 덜 은혜되는 설교는 더 은혜롭게 느끼는 것입니다. 설교가 성경보다 더 은혜롭다는 것은 절대치로 말한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체감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일 설교보다 성경이 더 은혜로운 정도의 사람이라면 성경 하나만으로 설교할 사람이고 그는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들어서는 안되는 특수 은혜의 사도 바울이나 백목사님 같은 신앙의 사람일 것입니다.
설교록을 대할 때,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은혜롭고 또 마음에 와 닿기 때문에 설교록에서 만족하고 성경으로까지 직접 나아가는 일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실제 총공회 내부 교역자와 교인 중 설교 은혜를 강하게 받은 분들 중에는 많은 분들이 의외로 설교록에 막혀 성경에 나아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록을 바로 읽는 자세는 설교록에서 성경이 보이고 성경으로 안내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록을 대하면서 성경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또 실제 성경을 대하게 되고, 또 성경을 많이 알아갈수록 설교록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들리게 되면 그가 설교록에서 얻은 수입은 성경 이외에는 설교록 한권만 가지면 충분하겠다고 느낄 정도에 이를 것입니다. 설교록의 설교는 백목사님의 성경중심 성경유일 성경대로의 설교를 한 기록이기 때문에 가능한 세계입니다.
성경을 늘 마음에 두고 설교록을 읽으시라는 권면으로 요약하겠습니다.
3.설교록을 읽으실 때 가장 은혜받고 또 파악하시는데 빠른 길은 설교록 교정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연구하면서는 안 될 법이지만, 설교록은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펜을 들고 감히 교정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의 잘못 발언한 것도 있고, 설교자가 혹 착각한 것도 있습니다. 또한 설교록 편집 직원들의 오자는 그 수를 다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설교록 출간에 관련한 편집 직원 전체의 수준이 그 책임의 위치에 있었던 답변자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세상 수준이 낮았으며 이곳에 답변하는 국문 표기법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교록은 원본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얼마든지 교정할 수 있는 책입니다.
헤드폰을 착용하시고, 설교록을 쭉 따라 보면서 틀린 곳, 바로 고쳐야 할 부분, 또는 이렇게 편집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편집 직원의 위치와 근무 자세'로 설교록을 직접 첨삭해가며 교정을 해본다면, 백목사님 설교에 정통할 수 있는 가장 지름길이며 어느 누구라도 다 이곳의 답변자와 같은 심정에 이를 수 있다고 봅니다.
이유는, 설교록에 자신의 마음을 가장 집중 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중만 하게 되면 설교 때에 설교자를 붙들었던 그 영감의 역사가 다시 읽는 이들에게 또한 역사하는 영감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 설교록 관련 모든 출간물을 1982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만 20년간 전담한 이곳의 모든 연구회 직원들, 또 그동안 이 출간 과정에 잠깐동안씩 거쳐 갔던 모든 분들 전부가 일치 통과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방법으로 권하여 드린 분 중에 그 설교록의 세계를 이전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겪어보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부산공회(3)으로 함께 하는 이곳 관련 교회들은 5월과 8월의 집회를 지금도 설교록을 들고 테이프를 들으면서 설교록을 그냥 읽는 것보다 오자나 탈자, 또는 편집자의 편집 내용 자체를 변경해야 할 곳을 찾는 마음으로 설교록을 재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회 전체 참석 인원의 1/3에 해당하는 주일학생들이 장시간의 집회 설교를 다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 분위기만 가지고는 다른 어느 집회와는 아주 눈으로 확인되는 특별한 말씀 은혜가 있다는 것도 설교록 출간 과정에서 가진 전 직원들의 경험입니다. 백목사님 사후 집회 방향을 결정할 때도 이곳 직원들의 요청으로 부산공회는 일반화 되어 있는 방법입니다.
현 부산공회 집회는 설교록 은혜 받는데 가장 좋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공회 간 노선 갈등이 집회 장소까지 따라 가기 때문에 현재 재독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연장선에서 반발세력으로 분류되는 분들이 일반 목회자들의 설교로 대신하고 있으나 크게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이곳의 주장입니다. 설교가 잘못이 아니며 설교자의 노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듣는 귀를 어떻게 열어 어떻게 길러가야 하는지를 전혀 반대로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4.설교록을 여러 면으로 분해하고 또 요약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 설교는 제목을 붙이자면 어떻게 요약을 할 수 있겠는가? 이 과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들어보시면 아주 달리 들릴 것입니다. 설교 중 어느 부분까지가 서론에 해당되겠는가, 어느 라인에서 내용 상 구분을 할까, 본론이라고 한다면 본론 중에서 몇 가지를 가르친 설교라고 대지를 잡아 볼까, 그리고 그 대지를 잡을 때 분류 기준을 어떻게 해 볼까 하는 등으로 설교 내용 자체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내용을 설교 전체 차원에서 분석을 해 보시면, 대개 10-15페이지의 설교 한 개 분량을 10줄 정도의 요약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그 10줄 정도를 다시 한 문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몇 개의 단어로 된 제목으로 함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제목 하나만 가지고 줄거리를, 줄거리를 가지고 설교 내용의 전반적인 윤곽 정리를 하면서 설교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채살을 오므렸다 펴는 것처럼, 설교 내용 전체를 간단하게 요약하고 요약된 내용으로 다시 전체 설교를 설교록을 보지 않고 그대로 펴낼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이미 일반 교계에서 보기 드문 설교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볼 것입니다.
총공회 내부에는 그 신앙노선이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성경으로 설교하는 면에 있어서는 대단히 탁월한 분들이 적지 않으며 그분들은 대개 이런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십년 설교를 연구한 분이나 몇 개월 이렇게 집중해서 연구한 분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비교되고 또 드러나기도 합니다.
부산공회(2)에 현재 소속한 이진헌목사님의 경우 일반 교계에서 가장 정평있는 설교가로 이름이 있으며, 김명재목사님은 공회 내부에서, 또한 정경수목사님 등 많은 분들이 여러 면에서 그런 세계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소개드리는 방법이면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다 그런 분들을 능가할 수 있겠다는 주관적인 자신감이 심겨질 정도로 누구나 설교록을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일반 교계 목회자들은 대예배 설교거리를 찾지 못해 남모르는 고통으로 수없는 신학 서적과 주석들을 뒤적이지만 늘 같은 소리밖에 없어 결국 세상 여러 뉴스나 예화를 사용하며 애를 먹고 있습니다. 공회 안에서는 일반 주일학교 반사일지라도 설교록을 통해 어느 정도 말씀을 파악한 이들은 다른 실력이 없어 목회를 못하지 설교가 부족하고 설교에 낭패를 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이 다 설교록을 통해 쌓은 실력입니다. 일반 교인들은 설교를 이렇게 연구해볼 기회는 거의 없지만, 목회자들이 없을 때 강단을 맡게 되는데 그런 경우 설교록으로 설교를 준비하게 되면서 앞에서 소개받은 설교록 접촉의 집중력이 순간 높아지게 되면서 습득케 되는 훈련이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5.설교록을 읽는 순서 등
설교록을 읽는 순서는 제일 앞에서부터 차근 차근 읽으셨으면 합니다. 단, 설교록에 붙인 홋수는 100호부터 182호로 출간하고 그후 99호부터 밑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연대별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는 1982년을 전후로 하여 대단히 수준과 그 깊이에 차이가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1979년 7월부터 백목사님 자신이 자신 설교 전체를 녹음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녹음 등 기록에 대하여는 극단적으로 금지하던 분이기 때문에 이 의미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1979년 7월에서부터 뒤로 읽어가시면 좋겠다고 권합니다. 흔히, 오래 전부터 백목사님의 설교를 접한 교역자들은 1979년 이전 설교를 그렇게 선호합니다. 1979년 이전 설교는 본문 하나를 중심으로 축절적으로 해석하시고 그 중 몇가지 요약할 내용을 전하기 때문에 각론적이며 명료하고 전후 좌우의 내용이 또렷했으며 따라서 누구든 이해가 쉽고 은혜가 된다고 느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교역자들로서는 설교거리 마련을 위해서는 포장된 fast food 같다고 하겠습니다. 반면 1979년 이후, 특히 1982년을 지나면서부터는 설교가 평생 설교 전체를 한꺼번에 요약하듯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슨 말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고 또 추상적인 높은 차원의 말씀이 많습니다.
맥을 잡기 어려워 설교거리로 재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듣는 교인들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으며, 전하는 교역자도 시장에서 쏟아져 나온 각가지 청과물 재료만 받는 듯 하여,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고 느낄 정도의 설교 형태였습니다. 이 단계에서 과거 1979년 이전 설교로 전적 방향을 잡고 나간 것이 서울 대구공회 교역자 거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깊이는 그 이후 너무도 안타까울 정도로 얕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부산공회쪽에는 과거 그대로라는 분위기가 있었고 따라서 녹음 기록된 1979년 이후 설교를 무작정 반복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자연히 설교가 어렵게 되고 무슨 설교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교인들이 곳곳에서 많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높은 차원의 말씀을 붙들고 계속하므로 그 설교의 깊이가 전반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1979년 이전의 자료를 거의 전부 소장하고 있고 또 현재 데이타화 시켜 이곳에 공개하고 있으나 1979년 이전의 설교는 어디까지나 연구 참고용에서 활용하고,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는 1979년부터 시작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1982년부터 꾸준히 뒤로 가는 방법을 권합니다.
백목사님은 자신이 스스로 평하여 '5년 정도면 설교의 대부분이 한번 지나가게 된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1985년부터 89년까지 5년을 따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만일 1년 단위로 읽겠다면 어느 해를 기준으로 해도 상관이 없겠습니다.
참고하실 것은, 어느 해 설교든 1-2년, 혹 2-3년치 설교만 잘 집중하게 되면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 전부를 정통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고 이 기초는 수학의 공식 이해와 같아서 나머지 설교 전부를 그 공식선상에서 이해하고 나가면 저절로 정리되고 파일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내용분류 : [-성경-성경일반-]/[-설교록-]/[-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앙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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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설교록도 성경을 읽을 때와 꼭같이 하시면 됩니다.
설교록을 읽을 때도 앞에서 말씀드린 성경 읽을 때와 같은 자세로 하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상식 수준에서 아시겠지만, 설교록은 성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설교록을 대해도 성경을 대하는 자세로 대하라고 권할 책은 칼빈의 설교록 외에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이는 설교자의 기본 자세가 신학적 또는 도덕 교양 상식을 전달하는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설교록은 그 설교를 전하는 설교자의 기본 자세가 성경을 대하는 가장 모범적인 자세, 즉 앞에서 말씀드린 성경 연구자세 이상으로 늘 살아왔고 전했던 경우이기 때문에 일반 신학서적이나 설교록을 대하는 자세와는 기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2.설교록을 대하면서 주의할 점 하나입니다.
외부로 발표하기에는 대단히 위험스런 표현이지만, 누구든 설교록을 진지하게 꾸준하게 읽어보았다면 성경보다 더 은혜롭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흠만 잡고 토만 다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하지 말라고 해 보는 소리일 뿐입니다. 어느 교회 어느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다 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특히 너무도 은혜가 되고 또 특별하기 때문에 한 마디 덧붙이는 것입니다.
설교는 성경을 풀어 증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신앙이 어리고 무지하기 때문에 더 은혜되는 성경은 덜 은혜롭게 읽고 덜 은혜되는 설교는 더 은혜롭게 느끼는 것입니다. 설교가 성경보다 더 은혜롭다는 것은 절대치로 말한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체감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일 설교보다 성경이 더 은혜로운 정도의 사람이라면 성경 하나만으로 설교할 사람이고 그는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들어서는 안되는 특수 은혜의 사도 바울이나 백목사님 같은 신앙의 사람일 것입니다.
설교록을 대할 때,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은혜롭고 또 마음에 와 닿기 때문에 설교록에서 만족하고 성경으로까지 직접 나아가는 일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실제 총공회 내부 교역자와 교인 중 설교 은혜를 강하게 받은 분들 중에는 많은 분들이 의외로 설교록에 막혀 성경에 나아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록을 바로 읽는 자세는 설교록에서 성경이 보이고 성경으로 안내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록을 대하면서 성경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또 실제 성경을 대하게 되고, 또 성경을 많이 알아갈수록 설교록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들리게 되면 그가 설교록에서 얻은 수입은 성경 이외에는 설교록 한권만 가지면 충분하겠다고 느낄 정도에 이를 것입니다. 설교록의 설교는 백목사님의 성경중심 성경유일 성경대로의 설교를 한 기록이기 때문에 가능한 세계입니다.
성경을 늘 마음에 두고 설교록을 읽으시라는 권면으로 요약하겠습니다.
3.설교록을 읽으실 때 가장 은혜받고 또 파악하시는데 빠른 길은 설교록 교정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연구하면서는 안 될 법이지만, 설교록은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펜을 들고 감히 교정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의 잘못 발언한 것도 있고, 설교자가 혹 착각한 것도 있습니다. 또한 설교록 편집 직원들의 오자는 그 수를 다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설교록 출간에 관련한 편집 직원 전체의 수준이 그 책임의 위치에 있었던 답변자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세상 수준이 낮았으며 이곳에 답변하는 국문 표기법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교록은 원본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얼마든지 교정할 수 있는 책입니다.
헤드폰을 착용하시고, 설교록을 쭉 따라 보면서 틀린 곳, 바로 고쳐야 할 부분, 또는 이렇게 편집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편집 직원의 위치와 근무 자세'로 설교록을 직접 첨삭해가며 교정을 해본다면, 백목사님 설교에 정통할 수 있는 가장 지름길이며 어느 누구라도 다 이곳의 답변자와 같은 심정에 이를 수 있다고 봅니다.
이유는, 설교록에 자신의 마음을 가장 집중 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중만 하게 되면 설교 때에 설교자를 붙들었던 그 영감의 역사가 다시 읽는 이들에게 또한 역사하는 영감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 설교록 관련 모든 출간물을 1982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만 20년간 전담한 이곳의 모든 연구회 직원들, 또 그동안 이 출간 과정에 잠깐동안씩 거쳐 갔던 모든 분들 전부가 일치 통과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방법으로 권하여 드린 분 중에 그 설교록의 세계를 이전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겪어보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부산공회(3)으로 함께 하는 이곳 관련 교회들은 5월과 8월의 집회를 지금도 설교록을 들고 테이프를 들으면서 설교록을 그냥 읽는 것보다 오자나 탈자, 또는 편집자의 편집 내용 자체를 변경해야 할 곳을 찾는 마음으로 설교록을 재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회 전체 참석 인원의 1/3에 해당하는 주일학생들이 장시간의 집회 설교를 다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 분위기만 가지고는 다른 어느 집회와는 아주 눈으로 확인되는 특별한 말씀 은혜가 있다는 것도 설교록 출간 과정에서 가진 전 직원들의 경험입니다. 백목사님 사후 집회 방향을 결정할 때도 이곳 직원들의 요청으로 부산공회는 일반화 되어 있는 방법입니다.
현 부산공회 집회는 설교록 은혜 받는데 가장 좋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공회 간 노선 갈등이 집회 장소까지 따라 가기 때문에 현재 재독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연장선에서 반발세력으로 분류되는 분들이 일반 목회자들의 설교로 대신하고 있으나 크게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이곳의 주장입니다. 설교가 잘못이 아니며 설교자의 노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듣는 귀를 어떻게 열어 어떻게 길러가야 하는지를 전혀 반대로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4.설교록을 여러 면으로 분해하고 또 요약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 설교는 제목을 붙이자면 어떻게 요약을 할 수 있겠는가? 이 과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들어보시면 아주 달리 들릴 것입니다. 설교 중 어느 부분까지가 서론에 해당되겠는가, 어느 라인에서 내용 상 구분을 할까, 본론이라고 한다면 본론 중에서 몇 가지를 가르친 설교라고 대지를 잡아 볼까, 그리고 그 대지를 잡을 때 분류 기준을 어떻게 해 볼까 하는 등으로 설교 내용 자체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내용을 설교 전체 차원에서 분석을 해 보시면, 대개 10-15페이지의 설교 한 개 분량을 10줄 정도의 요약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그 10줄 정도를 다시 한 문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몇 개의 단어로 된 제목으로 함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제목 하나만 가지고 줄거리를, 줄거리를 가지고 설교 내용의 전반적인 윤곽 정리를 하면서 설교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채살을 오므렸다 펴는 것처럼, 설교 내용 전체를 간단하게 요약하고 요약된 내용으로 다시 전체 설교를 설교록을 보지 않고 그대로 펴낼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이미 일반 교계에서 보기 드문 설교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볼 것입니다.
총공회 내부에는 그 신앙노선이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성경으로 설교하는 면에 있어서는 대단히 탁월한 분들이 적지 않으며 그분들은 대개 이런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십년 설교를 연구한 분이나 몇 개월 이렇게 집중해서 연구한 분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비교되고 또 드러나기도 합니다.
부산공회(2)에 현재 소속한 이진헌목사님의 경우 일반 교계에서 가장 정평있는 설교가로 이름이 있으며, 김명재목사님은 공회 내부에서, 또한 정경수목사님 등 많은 분들이 여러 면에서 그런 세계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소개드리는 방법이면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다 그런 분들을 능가할 수 있겠다는 주관적인 자신감이 심겨질 정도로 누구나 설교록을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일반 교계 목회자들은 대예배 설교거리를 찾지 못해 남모르는 고통으로 수없는 신학 서적과 주석들을 뒤적이지만 늘 같은 소리밖에 없어 결국 세상 여러 뉴스나 예화를 사용하며 애를 먹고 있습니다. 공회 안에서는 일반 주일학교 반사일지라도 설교록을 통해 어느 정도 말씀을 파악한 이들은 다른 실력이 없어 목회를 못하지 설교가 부족하고 설교에 낭패를 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이 다 설교록을 통해 쌓은 실력입니다. 일반 교인들은 설교를 이렇게 연구해볼 기회는 거의 없지만, 목회자들이 없을 때 강단을 맡게 되는데 그런 경우 설교록으로 설교를 준비하게 되면서 앞에서 소개받은 설교록 접촉의 집중력이 순간 높아지게 되면서 습득케 되는 훈련이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5.설교록을 읽는 순서 등
설교록을 읽는 순서는 제일 앞에서부터 차근 차근 읽으셨으면 합니다. 단, 설교록에 붙인 홋수는 100호부터 182호로 출간하고 그후 99호부터 밑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연대별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는 1982년을 전후로 하여 대단히 수준과 그 깊이에 차이가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1979년 7월부터 백목사님 자신이 자신 설교 전체를 녹음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녹음 등 기록에 대하여는 극단적으로 금지하던 분이기 때문에 이 의미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1979년 7월에서부터 뒤로 읽어가시면 좋겠다고 권합니다. 흔히, 오래 전부터 백목사님의 설교를 접한 교역자들은 1979년 이전 설교를 그렇게 선호합니다. 1979년 이전 설교는 본문 하나를 중심으로 축절적으로 해석하시고 그 중 몇가지 요약할 내용을 전하기 때문에 각론적이며 명료하고 전후 좌우의 내용이 또렷했으며 따라서 누구든 이해가 쉽고 은혜가 된다고 느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교역자들로서는 설교거리 마련을 위해서는 포장된 fast food 같다고 하겠습니다. 반면 1979년 이후, 특히 1982년을 지나면서부터는 설교가 평생 설교 전체를 한꺼번에 요약하듯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슨 말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고 또 추상적인 높은 차원의 말씀이 많습니다.
맥을 잡기 어려워 설교거리로 재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듣는 교인들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으며, 전하는 교역자도 시장에서 쏟아져 나온 각가지 청과물 재료만 받는 듯 하여,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고 느낄 정도의 설교 형태였습니다. 이 단계에서 과거 1979년 이전 설교로 전적 방향을 잡고 나간 것이 서울 대구공회 교역자 거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깊이는 그 이후 너무도 안타까울 정도로 얕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부산공회쪽에는 과거 그대로라는 분위기가 있었고 따라서 녹음 기록된 1979년 이후 설교를 무작정 반복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자연히 설교가 어렵게 되고 무슨 설교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교인들이 곳곳에서 많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높은 차원의 말씀을 붙들고 계속하므로 그 설교의 깊이가 전반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1979년 이전의 자료를 거의 전부 소장하고 있고 또 현재 데이타화 시켜 이곳에 공개하고 있으나 1979년 이전의 설교는 어디까지나 연구 참고용에서 활용하고,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는 1979년부터 시작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1982년부터 꾸준히 뒤로 가는 방법을 권합니다.
백목사님은 자신이 스스로 평하여 '5년 정도면 설교의 대부분이 한번 지나가게 된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1985년부터 89년까지 5년을 따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만일 1년 단위로 읽겠다면 어느 해를 기준으로 해도 상관이 없겠습니다.
참고하실 것은, 어느 해 설교든 1-2년, 혹 2-3년치 설교만 잘 집중하게 되면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 전부를 정통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고 이 기초는 수학의 공식 이해와 같아서 나머지 설교 전부를 그 공식선상에서 이해하고 나가면 저절로 정리되고 파일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신앙자세] 성경 읽는 법, 설교록 읽는 법, 신앙의 알맹이를 대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제목분류 : [~성경~성경일반~]
내용분류 : [-성경-성경일반-]/[-설교록-]/[-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앙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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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을 읽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연경교재를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백영희 목사님께서 자신의 주관대로 읽되 틀린 것을 바로 잡을 귀와 마음을 열어두라는 말씀도 좋은 것 같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2. 설교록을 재독하는 법.
제 개인의 경우는 성경을 꾸준히 읽되 설교록은 대충 골라서 가끔씩 봅니다. 그 가끔씩 볼 때, 은혜와 깨달음이 있어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체계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1년치 설교록을 꾸준히 보는 것이 좋겠는지요? 좋은 조언 주세요..
3. 신앙의 알맹이를 대하는 법.
나쁜 '사람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설교를 듣다가 '아, 사람이 어떻게 이런 설교를 할 수 있을까'하고 감탄만 하고 실제 내용은 생활에서 버립니다. 또,
자료를 읽다가, '아 이글 쓴사람 대단하구나. 자기가 깨달은 것을 정리해 놨구나' 하고 감탄만 하고 실생활에 적용을 하는 것은 뒤로 한단 말입니다. 신앙의 알맹이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말을 줄이고 묵상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4.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제가 타교인으로서 백영희란 분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 분이 시무하던 교회에서는 일제시대 때 주일학교 학생 하나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말을 듣고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목사들이 다 똑같지라는 생각에 설교테이프를 권해도 별로 들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이 분은 뭔가 다르겠구나 생각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제 삶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습니다. 아뭏튼, 아무 사심없이 질문드리건데, 저같이 멀리서 백영희 목사님께 감탄한 사람도 감탄만 하고 교훈은 잊을 때가 많은 데 백목사님 가까이 있던 분들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것이 있고 없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있다해도 제가 비판할 자격도 없고 수준도 안됩니다. 단, 그런 것을 어떻게 극복해서 진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만 걸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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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성경~성경일반~]
내용분류 : [-성경-성경일반-]/[-설교록-]/[-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앙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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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을 읽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연경교재를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백영희 목사님께서 자신의 주관대로 읽되 틀린 것을 바로 잡을 귀와 마음을 열어두라는 말씀도 좋은 것 같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2. 설교록을 재독하는 법.
제 개인의 경우는 성경을 꾸준히 읽되 설교록은 대충 골라서 가끔씩 봅니다. 그 가끔씩 볼 때, 은혜와 깨달음이 있어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체계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1년치 설교록을 꾸준히 보는 것이 좋겠는지요? 좋은 조언 주세요..
3. 신앙의 알맹이를 대하는 법.
나쁜 '사람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설교를 듣다가 '아, 사람이 어떻게 이런 설교를 할 수 있을까'하고 감탄만 하고 실제 내용은 생활에서 버립니다. 또,
자료를 읽다가, '아 이글 쓴사람 대단하구나. 자기가 깨달은 것을 정리해 놨구나' 하고 감탄만 하고 실생활에 적용을 하는 것은 뒤로 한단 말입니다. 신앙의 알맹이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말을 줄이고 묵상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4.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제가 타교인으로서 백영희란 분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 분이 시무하던 교회에서는 일제시대 때 주일학교 학생 하나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말을 듣고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목사들이 다 똑같지라는 생각에 설교테이프를 권해도 별로 들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이 분은 뭔가 다르겠구나 생각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제 삶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습니다. 아뭏튼, 아무 사심없이 질문드리건데, 저같이 멀리서 백영희 목사님께 감탄한 사람도 감탄만 하고 교훈은 잊을 때가 많은 데 백목사님 가까이 있던 분들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것이 있고 없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있다해도 제가 비판할 자격도 없고 수준도 안됩니다. 단, 그런 것을 어떻게 극복해서 진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만 걸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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