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2. 설교를 중심으로 살펴본 공회의 '목사'관과 기타 공회적 행정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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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06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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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공회의 불문법 행정을 성문화시켜 어느 개인이 임의로 사용치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
총공회를 총공회라고 부르려면, 최소한 3가지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그 중에 첫째 원칙이 모든 교회의 운영은 성경을 유일한 법으로 삼고 인간의 행정 처리는 참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성경 외에 따로이 사람끼리 정하는 법을 규정하지 않겠다는 2차적인 원칙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 교단들이 '헌법'이라는 이름과 여러 종류의 규칙을 정하여 교회를 운영하는 명문법 또는 성문법 원칙을 신앙노선 차원에서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어느 개인이 임의로 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겠으나, 어느 한 개인이 교회를 마음대로 움직일 때는 규정 자체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그 규정을 가지고 그 교회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면까지를 봐야 합니다. 많은 숫자만 확보하면 교단도 교회도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법은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숫자를 확보하는 방법은 기도와 진리 연구에 있지 않고 사교술과 정치력입니다. 교회를 속화 타락시키는 가장 평범하고 빠른 길이며 오늘까지 교회 역사입니다.
어느 개인이 마음먹게 되면, 법은 있든 없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명문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인데 성문이 되면 그 성문의 규정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복음 운동이 막히고 변질된다는 단점이 하나 더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불문법이 완전이라거나 또는 타락의 소지가 없다는 점 때문이 아니고 성문법은 그 규정이 세워지는 순간부터 영감 역사와 개인 개교회의 신앙자유를 막는 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니 이를 폐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보다 성경법이 유일이요 지상인데 그 성경법에 어느 법으로 더 보충을 해야겠느냐는 신앙의 노선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공회의 법은, 성경이 이렇게 가르치니 이런 점은 이리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정도로 원칙을 세우는 것으로 마칩니다. 다음에도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렇게 세운 규정은 변경 못할 법으로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으로 나아가는 공회의 의논이며 방향 설정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3.설교, 예배, 교회 행정에 특별한 직책을 지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직분이 필요없다는 주장
우리는 모두가 목사이며 장로이며 집사라는 것이 공회의 기본 시각입니다. 목사만 하나님의 종이며 목사만 말씀을 맡고 목사를 대적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일반 교회의 시각은 전혀 반대합니다. 신앙으로 사람을 기르는 사람이면 전부가 목사이고, 교회의 살림을 맡고 그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사라는 시각입니다. 전부가 어린 사람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장로이며 또 그리 되어야 하고 그리 되지 않으면 성경 위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회에 전도부장이란 전도만 책임진 사람인가? 전도회 모든 부서에 부원이 되고 관심을 갖고 또 할 일을 다하여야 하며 동시에 전도부서에 관하여는 특별한 책임을 하나 더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회계부라면 공무원이 내 일만 하면 되고 내 일은 남이 하면 안 된다는 독점적 사고로 하듯 하지 않고 전도회의 모든 일이 다 내 일이요 내가 할 일이지만 회계부서는 남보다 좀 더 앞서서 하고 또 회계부의 일에는 다른 분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일에 책임을 앞서 가지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한 교회를 '목사' 직책 한 사람에게 위임 시켜 둘 일이 아닙니다. 온 교인이 전부 목사의 심정이라야 하고 목사의 책임을 가져야 하며 목사 노릇을 해야 합니다. 신약 구원의 특성이 그러합니다. 단, 각 자의 형편과 신앙의 범위가 있어 세상 직장을 가지다 보니까 그 중 한 사람에게 특별히 목사라는 이름까지 붙여놓고 그에게 특별히 한 직책에 가장 앞서 나가라고 맡긴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잘하면 온 교인은 숨어 목사노릇을 하고, 만일 목사가 삐뚤어지면 전 교인이 그 목사의 삐뚤어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옳은 길을 찾고, 만일 꼭 함께 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그 목사는 그가 옳다는 길로, 교인들은 자신들의 양심과 신앙으로 자신들의 길로 가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공회는, 목사라는 직책을 일반 교단에 비하여 그렇게 특화하지 않습니다. 그가 비록 목사가 아니더라도 신앙으로 앞서 있기 때문에 대접 받을 수준에서 대접받는 것이지 그가 목사 자격증을 땄다고 하여 그날부터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시무투표라든지 목사 대접과 예우에 있어 이런 신앙흐름은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목사가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장로님 역시 교회의 한 이름을 가진 교인으로 꼭 장로님이라는 이름으로 할 일이 있을 때 그 '명의 사용' 때문에 주로 장로님을 세우는 것이지 장로님이 온 교인을 치리하고 다스려야 할 사람이냐?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력있는 목사님은 목사님 이전에 실력이 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고 신앙있는 장로님을 대우하는 것은 그의 신앙 때문에 대우하지 장로님이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론 대접하는 일반인이 다윗이 사울을 끝까지 존대하듯 한다면 그것은 그의 신앙이며 그가 받을 복입니다. 그러나 공회적으로는 목사를 특별 대우하라거나 장로님을 특별히 인정하라는 식은 전혀 없습니다.
구약적 직분 직책 개념보다 신약의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신앙 내적 실체에 따라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5.여자분이나 어린 아이까지도 설교자로 세우는 문제가 제기된다면
이런 점에서 질문하신 말씀과 같이 여자 분이나 어린 아이까지도 설교를 맡을 수 있거나 또 맡기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백목사님은 평생에 여자 분들에게 설교를 비롯 공식 예배 전체를 다 맡기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서부교회 추순덕집사님이나 나인숙권사님 이말출권사님의 설교는 아직까지 공회 어떤 교역자도 그 수준이나 그 은혜에 이른 분이 없다고 본 답변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목회자 양성원' 과정을 마치고 성경 100독을 끝낸 분들이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만, 말씀 능력과 말씀 은혜와 그 말씀이 교인들에게 양식이 되는 일에 목사님들보다 여집사님들이 더 은혜가 있었으니 목사님들이 자진해서 그 여집사님들에게 배우고 또 가르침을 받으려 찾아 다닌 것은 서부교회의 평범한 사실입니다. 지금도 부산공회(2)로 운영되는 공회는 그 주도 목회자 거의 전부가 김효순권사님을 신앙의 지도자로 알고 백목사님 이상의 위치에서 무슨 명령이라도 순종할 수 있는 자세로 목회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회의 운영과 공회의 신앙노선까지도 그리하고 있으니 그분들은 스스로 신앙의 실제 어머니로 늘 따르고 있습니다. (문답방 질문답변 101-105을 참고)
이곳은 그분들의 판단과 노선이 아주 틀렸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신앙 차원과 신앙 실제에 있어서는 그 권사님의 말씀이 진정 은혜가 되고 옳아서 따르고 있으니 질문자의 지적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만들고 모세를 모세되게 한 지도자는 요게벳이었습니다.
또한 어린 주일학교 반사의 설교가 노련한 공회 원로 목사님보다 더 은혜스러워 그 반사를 큰 교회 목회자로 바로 내보낸 것이 공회의 행정이며 주일학생도 말씀을 전할 은혜가 있고 또 그리할 형편이면, 우리 공회는 그리 합니다. 주일학생은 장년반 강단에 설교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거부합니다. 장로교 헌법의 일반적 규정에 의하여는 불법일지라도 우리는 성경에 옳으면 옳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동성연애자와 같은 이가 설교를 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스데반을 죽인 바울이 다메섹에서 바로 설교하고 전도하는 것은? 이렇게 반문하겠습니다. 과거 죄로 말한다면 어떤 죄인이었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로 그 사람의 형편이 설교를 할 수 없는 건강이나 설교를 할 수 없는 현재 진행 중인 죄 가운데 있을 때는 당연히 설교를 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되묻는다면 신학대학을 나와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거치고 '정식으로' 목사가 된 분 중에는 동성연애자가 없겠는가? 비록 7계명에 해당되는 동성연애는 아닐지라도 8개명에 해당되는 경제부정자로서 설교하는 목사의 숫자는 적겠는가? 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짓고 있는 죄라면 자숙해야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과거의 죄로 말한다면 없는 사람 없고 또 회개가 문제이지 그 과거는 문제가 아닙니다. 목사 아닌 사람으로 설교를 시키는 경우 동성연애자도 설교하겠다는 반론인 줄 압니다. 목사라도 그 이상의 죄인이 많습니다. 목사든 아니든 공개적으로 표시가 나고 또 현재 진행 중인 죄 가운데 있는 이라면 설교는 저절로 할 수 없는 것이겠고 다만 목사든 아니든 그 죄짓는 수준과 범위는 다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6.설교에 대한 공회의 입장은 신학교 대신 개교회의 교인 양육으로 나가는 입장이겠다는 반문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학교의 폐해를 백목사님만큼 철저히 강하게 또 이치적으로 설명하는 분은 아직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 답변자는 공회 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외부 세계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역시 신학교란 신앙을 삶는 곳이지 기르는 곳이 아닙니다. 신학은 어학과 학설공부이고 어학은 목회자로 하여금 공염불을 하게 하고 학설은 성경의 깊은 깨달음으로 들어가게 하지 못하는 인의 장벽이라는 것이 공회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학벌이나 여러 세상 상식을 전부 포기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말씀에 충실하고 충직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백영희목사님의 공회노선이었습니다.
공회 산하에 목회자 양성원을 두어 초기에는 여러 신학 과목들을 그 입문 수준에서라도 가르쳤지만 결국 그분의 결론은 신학은 책 목차나 잠깐 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옳겠다고 단정하여 신학의 여러 과목들을 거의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성경과 설교록 자기 연구로 모든 양성원 과정을 대신하게 됩니다.
목회자는 어디서 양육할 것인가?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에게 책과 노트 그리고 펜을 잡고 배우라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보를 하는 교인의 어려움을 알고 그 어려움 속에서 연보하는 교인의 아까운 마음을 알고 그리고도 연보해야 복받는 실감과 체험을 먼저 가지면 목회자는 저절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내보내어 세상을 알게 하고 그 세상 속에서 배운 말씀으로 실재 겪어 보고 그다음 목회자로 나가게 합니다. 이것을 산 교육 이것을 산 신앙의 양성법이라 합니다. 교계의 오해나 특별한 경우 등을 생각하여 양성원 과정을 두는 것이지 양성원이나 신학교가 목회자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회 입장이 아닙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하여는 학벌에 목마른 공회들이 양성원 대신 신학교를 하고, 신학교도 외부 다른 진영의 교육부 허가된 신학대학들을 다니고 있지만, 공회의 본 노선으로 본다면 탈선이며 이탈입니다.
7.답변자의 설명대로라면 공회는 자기 정체성을 시급히 규정할 것
사실 설교 하나를 중심으로 살펴보아도 광범위한 점에서 총공회는 일반 장로교 교단이라 할 수 없는 본질적이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장로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장로교에서 출발했으며 우리가 출발한 장로교는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의 신앙노선을 이어온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장로교 이름 뒤에 '총공회'라는 이름을 추가한 것은, 우리가 출발한 장로교에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점을 수정 보완하였고 또 미비된 점을 바로 잡다 보니까 지금까지 내려 온 장로교의 신앙 성격이 대단히 많은 면으로 고쳐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일반 장로교 기존 장로교와는 더 발전되고 더 장성한 노선이 되었다는 표시를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총공회'라는 이름이 '예수교 장로회' 뒤에 붙은 것은 내적으로는 공회의 신앙노선에 정체성을 확인했다는 확신이며 외적으로는 이제 세계교회와 역사교회 앞에 공회의 신앙노선이 2천년 교회사의 앞날을 이제부터 맡겠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공회는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점검도 확인도 전부 끝낸 상태입니다. 공회 내에서 아직도 공회의 여러 모습을 두고 일어나고 있는 반론들은 이미 공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 주장들이 잘못된 것이며 과거에 있었던 폐습이라고 분명히 확정을 했는데도 대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의사소통 문제로 반복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혹 신앙본질 자체가 공회 신앙노선에 맞지를 않아서 그런 경우도 있으니 그런 분들이나 그런 공회는 외형적으로는 총공회 소속으로 분류했으나 실질적으로 공회 외부인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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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공회의 불문법 행정을 성문화시켜 어느 개인이 임의로 사용치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
총공회를 총공회라고 부르려면, 최소한 3가지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그 중에 첫째 원칙이 모든 교회의 운영은 성경을 유일한 법으로 삼고 인간의 행정 처리는 참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성경 외에 따로이 사람끼리 정하는 법을 규정하지 않겠다는 2차적인 원칙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 교단들이 '헌법'이라는 이름과 여러 종류의 규칙을 정하여 교회를 운영하는 명문법 또는 성문법 원칙을 신앙노선 차원에서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어느 개인이 임의로 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겠으나, 어느 한 개인이 교회를 마음대로 움직일 때는 규정 자체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그 규정을 가지고 그 교회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면까지를 봐야 합니다. 많은 숫자만 확보하면 교단도 교회도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법은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숫자를 확보하는 방법은 기도와 진리 연구에 있지 않고 사교술과 정치력입니다. 교회를 속화 타락시키는 가장 평범하고 빠른 길이며 오늘까지 교회 역사입니다.
어느 개인이 마음먹게 되면, 법은 있든 없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명문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인데 성문이 되면 그 성문의 규정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복음 운동이 막히고 변질된다는 단점이 하나 더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불문법이 완전이라거나 또는 타락의 소지가 없다는 점 때문이 아니고 성문법은 그 규정이 세워지는 순간부터 영감 역사와 개인 개교회의 신앙자유를 막는 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니 이를 폐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보다 성경법이 유일이요 지상인데 그 성경법에 어느 법으로 더 보충을 해야겠느냐는 신앙의 노선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공회의 법은, 성경이 이렇게 가르치니 이런 점은 이리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정도로 원칙을 세우는 것으로 마칩니다. 다음에도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렇게 세운 규정은 변경 못할 법으로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으로 나아가는 공회의 의논이며 방향 설정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3.설교, 예배, 교회 행정에 특별한 직책을 지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직분이 필요없다는 주장
우리는 모두가 목사이며 장로이며 집사라는 것이 공회의 기본 시각입니다. 목사만 하나님의 종이며 목사만 말씀을 맡고 목사를 대적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일반 교회의 시각은 전혀 반대합니다. 신앙으로 사람을 기르는 사람이면 전부가 목사이고, 교회의 살림을 맡고 그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사라는 시각입니다. 전부가 어린 사람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장로이며 또 그리 되어야 하고 그리 되지 않으면 성경 위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회에 전도부장이란 전도만 책임진 사람인가? 전도회 모든 부서에 부원이 되고 관심을 갖고 또 할 일을 다하여야 하며 동시에 전도부서에 관하여는 특별한 책임을 하나 더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회계부라면 공무원이 내 일만 하면 되고 내 일은 남이 하면 안 된다는 독점적 사고로 하듯 하지 않고 전도회의 모든 일이 다 내 일이요 내가 할 일이지만 회계부서는 남보다 좀 더 앞서서 하고 또 회계부의 일에는 다른 분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일에 책임을 앞서 가지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한 교회를 '목사' 직책 한 사람에게 위임 시켜 둘 일이 아닙니다. 온 교인이 전부 목사의 심정이라야 하고 목사의 책임을 가져야 하며 목사 노릇을 해야 합니다. 신약 구원의 특성이 그러합니다. 단, 각 자의 형편과 신앙의 범위가 있어 세상 직장을 가지다 보니까 그 중 한 사람에게 특별히 목사라는 이름까지 붙여놓고 그에게 특별히 한 직책에 가장 앞서 나가라고 맡긴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잘하면 온 교인은 숨어 목사노릇을 하고, 만일 목사가 삐뚤어지면 전 교인이 그 목사의 삐뚤어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옳은 길을 찾고, 만일 꼭 함께 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그 목사는 그가 옳다는 길로, 교인들은 자신들의 양심과 신앙으로 자신들의 길로 가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공회는, 목사라는 직책을 일반 교단에 비하여 그렇게 특화하지 않습니다. 그가 비록 목사가 아니더라도 신앙으로 앞서 있기 때문에 대접 받을 수준에서 대접받는 것이지 그가 목사 자격증을 땄다고 하여 그날부터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시무투표라든지 목사 대접과 예우에 있어 이런 신앙흐름은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목사가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장로님 역시 교회의 한 이름을 가진 교인으로 꼭 장로님이라는 이름으로 할 일이 있을 때 그 '명의 사용' 때문에 주로 장로님을 세우는 것이지 장로님이 온 교인을 치리하고 다스려야 할 사람이냐?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력있는 목사님은 목사님 이전에 실력이 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고 신앙있는 장로님을 대우하는 것은 그의 신앙 때문에 대우하지 장로님이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론 대접하는 일반인이 다윗이 사울을 끝까지 존대하듯 한다면 그것은 그의 신앙이며 그가 받을 복입니다. 그러나 공회적으로는 목사를 특별 대우하라거나 장로님을 특별히 인정하라는 식은 전혀 없습니다.
구약적 직분 직책 개념보다 신약의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신앙 내적 실체에 따라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5.여자분이나 어린 아이까지도 설교자로 세우는 문제가 제기된다면
이런 점에서 질문하신 말씀과 같이 여자 분이나 어린 아이까지도 설교를 맡을 수 있거나 또 맡기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백목사님은 평생에 여자 분들에게 설교를 비롯 공식 예배 전체를 다 맡기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서부교회 추순덕집사님이나 나인숙권사님 이말출권사님의 설교는 아직까지 공회 어떤 교역자도 그 수준이나 그 은혜에 이른 분이 없다고 본 답변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목회자 양성원' 과정을 마치고 성경 100독을 끝낸 분들이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만, 말씀 능력과 말씀 은혜와 그 말씀이 교인들에게 양식이 되는 일에 목사님들보다 여집사님들이 더 은혜가 있었으니 목사님들이 자진해서 그 여집사님들에게 배우고 또 가르침을 받으려 찾아 다닌 것은 서부교회의 평범한 사실입니다. 지금도 부산공회(2)로 운영되는 공회는 그 주도 목회자 거의 전부가 김효순권사님을 신앙의 지도자로 알고 백목사님 이상의 위치에서 무슨 명령이라도 순종할 수 있는 자세로 목회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회의 운영과 공회의 신앙노선까지도 그리하고 있으니 그분들은 스스로 신앙의 실제 어머니로 늘 따르고 있습니다. (문답방 질문답변 101-105을 참고)
이곳은 그분들의 판단과 노선이 아주 틀렸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신앙 차원과 신앙 실제에 있어서는 그 권사님의 말씀이 진정 은혜가 되고 옳아서 따르고 있으니 질문자의 지적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만들고 모세를 모세되게 한 지도자는 요게벳이었습니다.
또한 어린 주일학교 반사의 설교가 노련한 공회 원로 목사님보다 더 은혜스러워 그 반사를 큰 교회 목회자로 바로 내보낸 것이 공회의 행정이며 주일학생도 말씀을 전할 은혜가 있고 또 그리할 형편이면, 우리 공회는 그리 합니다. 주일학생은 장년반 강단에 설교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거부합니다. 장로교 헌법의 일반적 규정에 의하여는 불법일지라도 우리는 성경에 옳으면 옳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동성연애자와 같은 이가 설교를 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스데반을 죽인 바울이 다메섹에서 바로 설교하고 전도하는 것은? 이렇게 반문하겠습니다. 과거 죄로 말한다면 어떤 죄인이었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로 그 사람의 형편이 설교를 할 수 없는 건강이나 설교를 할 수 없는 현재 진행 중인 죄 가운데 있을 때는 당연히 설교를 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되묻는다면 신학대학을 나와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거치고 '정식으로' 목사가 된 분 중에는 동성연애자가 없겠는가? 비록 7계명에 해당되는 동성연애는 아닐지라도 8개명에 해당되는 경제부정자로서 설교하는 목사의 숫자는 적겠는가? 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짓고 있는 죄라면 자숙해야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과거의 죄로 말한다면 없는 사람 없고 또 회개가 문제이지 그 과거는 문제가 아닙니다. 목사 아닌 사람으로 설교를 시키는 경우 동성연애자도 설교하겠다는 반론인 줄 압니다. 목사라도 그 이상의 죄인이 많습니다. 목사든 아니든 공개적으로 표시가 나고 또 현재 진행 중인 죄 가운데 있는 이라면 설교는 저절로 할 수 없는 것이겠고 다만 목사든 아니든 그 죄짓는 수준과 범위는 다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6.설교에 대한 공회의 입장은 신학교 대신 개교회의 교인 양육으로 나가는 입장이겠다는 반문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학교의 폐해를 백목사님만큼 철저히 강하게 또 이치적으로 설명하는 분은 아직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 답변자는 공회 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외부 세계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역시 신학교란 신앙을 삶는 곳이지 기르는 곳이 아닙니다. 신학은 어학과 학설공부이고 어학은 목회자로 하여금 공염불을 하게 하고 학설은 성경의 깊은 깨달음으로 들어가게 하지 못하는 인의 장벽이라는 것이 공회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학벌이나 여러 세상 상식을 전부 포기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말씀에 충실하고 충직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백영희목사님의 공회노선이었습니다.
공회 산하에 목회자 양성원을 두어 초기에는 여러 신학 과목들을 그 입문 수준에서라도 가르쳤지만 결국 그분의 결론은 신학은 책 목차나 잠깐 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옳겠다고 단정하여 신학의 여러 과목들을 거의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성경과 설교록 자기 연구로 모든 양성원 과정을 대신하게 됩니다.
목회자는 어디서 양육할 것인가?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에게 책과 노트 그리고 펜을 잡고 배우라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보를 하는 교인의 어려움을 알고 그 어려움 속에서 연보하는 교인의 아까운 마음을 알고 그리고도 연보해야 복받는 실감과 체험을 먼저 가지면 목회자는 저절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내보내어 세상을 알게 하고 그 세상 속에서 배운 말씀으로 실재 겪어 보고 그다음 목회자로 나가게 합니다. 이것을 산 교육 이것을 산 신앙의 양성법이라 합니다. 교계의 오해나 특별한 경우 등을 생각하여 양성원 과정을 두는 것이지 양성원이나 신학교가 목회자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회 입장이 아닙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하여는 학벌에 목마른 공회들이 양성원 대신 신학교를 하고, 신학교도 외부 다른 진영의 교육부 허가된 신학대학들을 다니고 있지만, 공회의 본 노선으로 본다면 탈선이며 이탈입니다.
7.답변자의 설명대로라면 공회는 자기 정체성을 시급히 규정할 것
사실 설교 하나를 중심으로 살펴보아도 광범위한 점에서 총공회는 일반 장로교 교단이라 할 수 없는 본질적이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장로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장로교에서 출발했으며 우리가 출발한 장로교는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의 신앙노선을 이어온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장로교 이름 뒤에 '총공회'라는 이름을 추가한 것은, 우리가 출발한 장로교에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점을 수정 보완하였고 또 미비된 점을 바로 잡다 보니까 지금까지 내려 온 장로교의 신앙 성격이 대단히 많은 면으로 고쳐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일반 장로교 기존 장로교와는 더 발전되고 더 장성한 노선이 되었다는 표시를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총공회'라는 이름이 '예수교 장로회' 뒤에 붙은 것은 내적으로는 공회의 신앙노선에 정체성을 확인했다는 확신이며 외적으로는 이제 세계교회와 역사교회 앞에 공회의 신앙노선이 2천년 교회사의 앞날을 이제부터 맡겠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공회는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점검도 확인도 전부 끝낸 상태입니다. 공회 내에서 아직도 공회의 여러 모습을 두고 일어나고 있는 반론들은 이미 공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 주장들이 잘못된 것이며 과거에 있었던 폐습이라고 분명히 확정을 했는데도 대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의사소통 문제로 반복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혹 신앙본질 자체가 공회 신앙노선에 맞지를 않아서 그런 경우도 있으니 그런 분들이나 그런 공회는 외형적으로는 총공회 소속으로 분류했으나 실질적으로 공회 외부인이라 할 것입니다.
[설교/공회] 질문 1,2 감사합니다. 질문 3 (장로님의 설교에 대하여 - 관리자)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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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질문자의 요청에 따라 실명으로 질문된 것을 익명처리합니다. - 2001.11.12.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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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질문 1의 내용을 좀 더 연구해서 질문을 다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2의 답변을 좀 더 연구해서 질문을 다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긴 설명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공회에는 장로님이 공식설교(주일 오전,오후,삼일 예배)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1)목사님이 계시지 않을 때(개척 교회) 2)목사님이 해외 출장 중 자리가 비었을 때 3)수습 목사가 파견되기 전
등의 조건이 아닐 때에는 공식적으로 예배에 설교를 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복음과 상황 5.9,10월호'에서는 설교에 은사받은 사람이 설교를 해야하며 목사들은 강단권을 개방하라고 했습니다. 대중 설교도 평신도가 주도하는 예를 실어 놓았습니다.누구나 설교를 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화란에서 장로님의 설교는 목사님의 원고를 읽는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제가 일반교단 신학자에게 문의를 해 보았습니다. 위의 조건(3가지)외에는 설교를 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공회법에서는 가능한 일인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몇 교회에서는 장로님이 목사님을 초빙하지 않고(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본인이 설교를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목사님의 할 일과 장로님이 할 일은 박병진,교회정치통람에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우리 공회의 입장을 발씀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개교회에서 임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또 담임 목사님이 부목사,전도사님이 계시는데 설교를 장로님에게 부탁하여 장로님은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부목사님이 한 부서의 설교를 장로님에게 부탁하여 설교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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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질문자의 요청에 따라 실명으로 질문된 것을 익명처리합니다. - 2001.11.12.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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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질문 1의 내용을 좀 더 연구해서 질문을 다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2의 답변을 좀 더 연구해서 질문을 다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긴 설명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공회에는 장로님이 공식설교(주일 오전,오후,삼일 예배)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1)목사님이 계시지 않을 때(개척 교회) 2)목사님이 해외 출장 중 자리가 비었을 때 3)수습 목사가 파견되기 전
등의 조건이 아닐 때에는 공식적으로 예배에 설교를 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복음과 상황 5.9,10월호'에서는 설교에 은사받은 사람이 설교를 해야하며 목사들은 강단권을 개방하라고 했습니다. 대중 설교도 평신도가 주도하는 예를 실어 놓았습니다.누구나 설교를 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화란에서 장로님의 설교는 목사님의 원고를 읽는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제가 일반교단 신학자에게 문의를 해 보았습니다. 위의 조건(3가지)외에는 설교를 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공회법에서는 가능한 일인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몇 교회에서는 장로님이 목사님을 초빙하지 않고(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본인이 설교를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목사님의 할 일과 장로님이 할 일은 박병진,교회정치통람에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우리 공회의 입장을 발씀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개교회에서 임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또 담임 목사님이 부목사,전도사님이 계시는데 설교를 장로님에게 부탁하여 장로님은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부목사님이 한 부서의 설교를 장로님에게 부탁하여 설교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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