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신 역사 자료에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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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신 역사 자료에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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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 목사님 계열의 계신에서 학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당연히 그 쪽을 중심으로 하겠지만

1. 거창교회의 경우
초량교회의 선례를 따랐다고 했는데, 일단 거창교회는 고소한 총회파 교인들이 나가서 개척했고 거창교회는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근거로 제시한 남영환 목사님의 '교단사' 380쪽에는 거창교회가 초량교회와 달리 대처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거창교회 담임 목회자가 바로 저자인 남영환 목사님입니다. 남 목사님은 맞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니 그렇게 했을 가능성도 사실 없습니다.


2. 고신의 고소 반대
박윤선 목사님이 소송을 반대할 때 뒤를 따르는 사람을 이인재 김창인 김현봉 이병규 전칠홍 목사님 등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는데 이런 대목에서 '백영희' 이름을 빼고 가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쨌든 빼버렸다는 점에서 이 논문이 집중하고자 하는 이름은 이병규 목사님이며, 그 이름을 집중하기 위해 다른 이름은 그렇게 배치를 하면 도움이 되겠지만 백영희라는 이름이 그 곳에 들어 가면 이병규 목사님 측에서는 대단히 불편하고 곤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글의 방향이 정해 졌다면 그렇게 적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객관적으로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대목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주로 인용을 한 출처가 남영환 목사님의 '교단사'인데 그 책을 인용하면서 '백영희' 이름을 뺀 것은 너무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3. 공의회 구성
논문 56쪽에서 1960년에 김현봉 이병규 백영희 3 명이 공의회를 구성했다는데 이병규 목사님 이름은 3번째 거론되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병규 목사님은 백 목사님께 배우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님 쪽에서는 평생 백 목사님을 안수한 인물이 이병규 목사님이라고 하는데 김현봉 백영희 목사님의 세계는 목사 안수라는 것을 일반 교계의 무슨 서열처럼 또는 자격증처럼 생각하지 않았던 분입니다.


>> 목회자 님이 쓰신 내용 <<
:
: 소식 게시판에 소개된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과 계신 교단의 설립'이라는 석사논문을 살펴봤습니다. 석사논문이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역사신학의 교수 3명이 검토하고 사인을 했다면 최소한의 사실관계, 그 중에서도 중요한 사건은 검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 논문의 43쪽에서 44쪽을 보면 고신교단이 총회측으로부터 1951년에 축출이 되고 연이어 총회측에서는 고신의 대표가 될 5개의 교회들을 찍어서 예배당 명도 소송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부산초량교회(한상동) 부산영도교회(박손혁) 마산문창교회(송상석) 경남거창교회(주남선) 경남진주교회(황철도)를 상대로 먼저 소송이 시작되었는데 한상동 목사님이 10월 14일에 예배당과 모든 기물을 내어 주고 교회를 떠났고 거창교회도 초량교회의 선례를 따랐다고 적습니다. 이 사실은 남영환의 '한국기독교 교단사 380쪽'을 인용합니다.
:
: 제가 찾아 본 바로는 거창교회의 경우는 아니라고 보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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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논문의 52쪽에서 1956년 9월의 총회에서 고신 내 박윤선 목사가 법정소송에 대한 시정을 제기할 때 박윤선 목사님의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을 '이인재 목사를 비롯하여 김창인 목사 김현봉 목사 이병규 목사 전칠홍 목사 등이라고 합니다. 인용은 역시 남영환 목사님의 교단사이며 403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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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쪽에서는 '1958년 9월, 예배당 소송의 중지를 요청하며 행정보류를 선언한 경기노회가 고신 총회에서 추방 당한 후, 김현봉, 이병규, 백영희 목사 등은 이후 특별한 조직 없이 성경 중심의 신앙운동을 하다가 1960년에 '성경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생활을 목표로 개혁주의와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노선에서' 공의회를 조직하였다고 했습니다.
:
: 사실일까요? 좀 애매해 보입니다.
 계신 역사 속의 '거창교회'와 '공회'
소식 게시판에 소개된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과 계신 교단의 설립'이라는 석사논문을 살펴봤습니다. 석사논문이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역사신학의 교수 3명이 검토하고 사인을 했다면 최소한의 사실관계, 그 중에서도 중요한 사건은 검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의 43쪽에서 44쪽을 보면 고신교단이 총회측으로부터 1951년에 축출이 되고 연이어 총회측에서는 고신의 대표가 될 5개의 교회들을 찍어서 예배당 명도 소송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부산초량교회(한상동) 부산영도교회(박손혁) 마산문창교회(송상석) 경남거창교회(주남선) 경남진주교회(황철도)를 상대로 먼저 소송이 시작되었는데 한상동 목사님이 10월 14일에 예배당과 모든 기물을 내어 주고 교회를 떠났고 거창교회도 초량교회의 선례를 따랐다고 적습니다. 이 사실은 남영환의 '한국기독교 교단사 380쪽'을 인용합니다.

제가 찾아 본 바로는 거창교회의 경우는 아니라고 보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또한 논문의 52쪽에서 1956년 9월의 총회에서 고신 내 박윤선 목사가 법정소송에 대한 시정을 제기할 때 박윤선 목사님의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을 '이인재 목사를 비롯하여 김창인 목사 김현봉 목사 이병규 목사 전칠홍 목사 등이라고 합니다. 인용은 역시 남영환 목사님의 교단사이며 403쪽입니다.

56쪽에서는 '1958년 9월, 예배당 소송의 중지를 요청하며 행정보류를 선언한 경기노회가 고신 총회에서 추방 당한 후, 김현봉, 이병규, 백영희 목사 등은 이후 특별한 조직 없이 성경 중심의 신앙운동을 하다가 1960년에 '성경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생활을 목표로 개혁주의와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노선에서' 공의회를 조직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일까요? 좀 애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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