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리적으로, 죄값은 성도에게 없습니다. 징계를 강조할 때, 목회적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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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리적으로, 죄값은 성도에게 없습니다. 징계를 강조할 때, 목회적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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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성경-성경일반-]/[-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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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죄값과 징계


(1)죄값과 징계에 대한 전체 요약


①믿는 우리 성도에게는 죄값이 해당될 수도 없고 상관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의 모든 죄를 전부 사했습니다. 그 죄를 사하는 조건은 죄의 값을 대신 담당하여 죄값을 전부 지불했기 때문에 그 죄값의 원인인 죄가 없어지게 된 것이고 죄가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된 것입니다. 아들이 남의 차를 불태웠기 때문에 감옥에 간 것인데, 부모가 차값에 벌금, 합의금 등 모든 값을 다 지불하고 아들을 감옥에서 빼낸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믿는 사람에게는 죄값이라는 말은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고 해당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②믿는 사람과 관련하여 '죄값'이라는 표현을 자주하는 것은 '교훈적 표현'입니다.


앞에서는 '교리 사전'적 관점에서 말씀드렸으나 이런 교리를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교리교과서적 표현이 아니라 죄를 짓지 말아야 함과 죄는 감당못할 영원 결과가 있음을 강조할 때 죄값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설교 내용 중 믿는 사람에게 죄값을 언급할 때는 앞뒤 내용이 목회적 교훈으로 죄를 멀리하라는 강조로서 '죄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지 교리적 '죄값'이 아님을 구별해서 들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북한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따위 가정에 하나님이 계시겠어요?'라고 할 때, 교리적으로 하나님은 무소부재이기 때문에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데 북한이든 어느 가정이든 하나님이 없는 진공상태가 있다는 말이 되면 이단이 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교리적 논란이나 교리적 교훈을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 신앙어린 사람에게 알아듣기 쉽도록 그 신앙어린 사람의 수준에서 표현하는 강조는 그렇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혹, 진리는 말 한 마디 표현에까지 신중해야 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반론이 있다면 성경을 근거로 반론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무소부재인 하나님의 속성을 안다면 이는 불가능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리 적은 것은 알아듣지 못하는 미개 무지한 우리 인간의 말로 인간의 수준에서 인간의 표현으로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눈' '손'이라는 표현도 성경에는 종종 나오지만 하나님은 무형입니다. 하나님은 눈과 손이 없으나 눈과 손이 있다는 성구가 분명히 나옵니다. 성경 전체적 표현을 한 자리에서 한 표현으로 단정할 때는 교리적 표현이 됩니다. 이 교리적 표현으로 수평 비교하면 분명히 틀린 말이 되는데도 성경 자체가 그런 틀린 표현을 '틀린 상태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을 일부러 사용하는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재론하지만, 교리적으로 명확하게 죄값과 징계를 구분해야 하는 설교에서는 우리에게는 죄값이 없다는 것을 항상 단정하고 있습니다. 히12:1-13 본문으로 설교하는 경우에는 항상 이 문제를 교리적으로 먼저 정리해 놓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2)죄와 징계는 이렇습니다.


①죄를 짓고 나면 죄값이 뒤따르는 것으로 보이도록 예정하셨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십일조만큼 경제 손실이 생기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어떤 교단에서 예수를 믿어도 진실되이 자신을 살펴보는 이들은 이런 경험을 너무도 많이 하기 때문에 십일조는 교단에 상관없이 거의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십일조를 하지 않아야 하는 교리를 바탕으로 시작하는 교단들도 십일조 생활만큼은 철저히 하는 우스운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십일조를 누락시켰을 때 그 돈을 손해 보는 일들이 발생되면 도둑이나 사고가 생겨 병원비로 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흔히들 죄값이라고 합니다. 십일조를 빼 먹은 행위는 죄입니다. 의가 될 수는 없지요? 십일조를 빼 먹은 행위 때문에 발생한 '도둑' '교통사고' 등이라고 본인과 주변이 환하게 알도록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그런 불행스러운 일을 우리는 죄값이라고 합니다. 의의 상급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②이제 교리적으로, 다시 말하면 성경을 종합적으로 살펴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십일조를 강조하는 설교나 권면에서는 '십일조 떼먹는 죄값은 꼭 여러분들에게 닥치니까 그러지 마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설교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을 두고 만일 교리적으로 냉정하게 다시 정리하라고 한다면,


십일조를 떼먹은 죄의 값은 이미 2천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대신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죄값이 우리에게는 올 수가 없습니다. 이미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한번 값을 치렀는데 다시 값을 치르는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공지성법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가 십일조를 누락시키는 행위와 그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값'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되겠습니다. 십일조를 떼먹고 싶은 마음 속의 욕심과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성령의 소욕 중에서 우리는 어느쪽을 잡고 움직일 것인지 망설이게 됩니다. 물론 2천년 후 내가 이런 기로에 설 것은 예수님이 미리 아시고 그 결과적 죄값까지 해결은 해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우리에게 예정되고 또 발생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성을 길러가는 한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정답을 아시고 위에서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이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몰래 떼먹을까, 아니면 그냥 연보해버릴까 하는 문제로 자기대로는 혼자 '몰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말자는 욕심을 따라 최종적으로 떼먹었다고 한다면, 그다음 하나님께서는 그 떼먹은 죄에 대한 값으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물질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버린 연약함을 고쳐서 앞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어떤 세상 것이라도 버릴 줄 아는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 '건설구원의' '연단' '경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경험은 하나님께서 다른 일을 통해서 주셔도 되지만 인간이 느낄 때 십일조 도적과 매맞은 결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야 '말씀 위반 = 고통'으로 알게 되고 다음에는 말씀을 지켜야 할 힘이나 결심에 도움이 되도록 십일조 떼먹는 죄의 행위와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매의 종류와 시기를 예정 가운데 적절하게 조절하신 것입니다.


③이런 점에서 같은 죄 하나를 두고 불택자와 우리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결국 연약하여 짓는 것이 죄인데, 이 죄 하나를 두고도 불택자의 죄는 그 죄 하나 하나가 전부 선악과 먹은 죄와 동일한 값으로 계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인류 전체가 당하는 고통은 선악과 먹은 죄 하나의 값입니다. 그 값 전부로 당하는 것이 아니고 그 값의 극히 일부분을 맛배기로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선악과 먹은 죄 하나의 진정한 값은 지옥에 가야 본격적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더하여 여러 사람이 짓는 자기 죄들로 인해 오는 값도 그 극히 일부의 맛만 보이고 있습니다. 땅 위에 있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 가르치기 위해 전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고통만으로 말한다면 인류의 지상 모든 고통은 선악과 죄값의 맛배기만으로도 차고 넘칩니다. 자기가 짓는 죄값의 맛배기는 볼 시간도 없는 것이 죄값의 크기인데 우리 위해 전시용으로 여러 죄값의 모양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짓는 모든 종류의 죄도 예수님의 대속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값이 동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사 모든 믿는 사람 전부의 원죄와 본죄, 그 값의 영원 전부를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단번에 다 담당해 버렸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아예 죄값과 그 죄값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과 결과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믿는 사람이 이런 저런 죄를 지을 때마다 그 행위에 해당되는 여러가지 고통을 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죄값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미리 단정하고 있지 않으면 신앙의 발전은 전혀 기대하지 못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교리 교훈 노선 외에서는 아직까지는 기독교 역사에서 이 면이 명쾌하게 해결된 교리가 없고 교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선생님께 매 한 대를 맞으면 나아지거나 아니면 나아질 조짐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혹 하나씩 있는 일이지만 아무리 때려 봐야 자기가 맞는 매와 학생으로 나아져야 할 방향을 전혀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다른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까봐 매가 가면 갈까 그 아이만을 위해서는 매를 대서 안되는 지적 수준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어떤 성격인지 왜 오는 것인지 그 결과를 무엇으로 예상하시는지를 전혀 생각지 않고 먹다가 아프니까 손을 움츠리는 반사신경만 남아 있는 경우로 예를 들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죄를 짓고 그 결과 죄값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기본구원으로 천국은 갈찌라도 말씀으로 건설할 자기 성화는 아예 기대할 수가 없는 수준인 것입니다.


④우리가 짓는 죄를 따라 우리에게 닥치는 고통을 대할 때


우리는 우리가 분명 죄를 지었을 때 그 죄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며 고통이나 불편 등 어떤 형태의 것이라도 주실 때에는 이것은 죄값으로는 이미 없어진 것이고 대신 이렇게 연관된 고통을 주는 것은, 앞에 행한 행위의 죄값이 아니라 이 행위를 나의 심신이 고치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면 이 행위를 하는 내 심신은 영원히 나와 상관없는 심신의 요소가 되는데 그 것이 자기에게는 정말 영원한 문제라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지금 망설이는 이 행위 하나로 지옥가는 일은 없고, 또 죄값으로 내가 당하는 일은 없다 할찌라도 내가 가진 내 심신의 요소가 이 죄되는 행위 때문에 영원한 천국의 기쁨과 감사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니 그 면을 생각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행위를 하나 바로 할 때 하나님이 이 땅위에서 보여주는 복의 댓가를 보며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내가 가질 참된 것을 생각하여 죄를 이길 수 있는 나 자체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자체가 얼마나 하나님을 닮아가느냐는 것이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이룰 건설구원이며 성화의 목표인데, 이 목표를 위해 하나님께서 더 빨리 달려가라고 채찍질을 한다면 이는 죄값으로 죄인에게 가해지는 형벌이 아니고 형벌의 고통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훈련의 땀이며 훈련의 고난 기간에 들어가는 수업료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믿는 사람이 죄를 짓고 그다음 죄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일 중에 내가 싫어하고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일이 닥칠 때는 한 마디로 '징계'라고 성경이 표현하여 요약해 놓았습니다. 오늘 우리 말로 하면 수업료가 될 수 있고 훈련의 땀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징계라는 단어는 이미 성경이 그리 적었으니 우리가 반복해서 사용할 표현으로 확정을 짓고, 이 '징계'의 의미는 국어사전을 찾거나 우리가 사회생활 중에서 알고 있던 의미로 알지 마시고, 그런 것은 선입관념으로 다 지워버린 다음 우리가 아는 징계라는 것은 죄값이 없고 죄값이 해당도 될 수 없는 자기 아들에게 아버지를 닮도록 하는데 필요하여 동원된 모든 종류의 어려움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 어려움은 예를 들면 대통령이 되도록 확정은 되었는데 경제와 국방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니 모르는 경제이론을 가르치고 국방에 대한 전문지식과 그 현장의 어려움을 대통령 될 사람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가 이것을 배우려면 힘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징계입니다. 이 힘들여 배우는 것은 앞으로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만물의 총책임자로 내가 사용할 내 기술이며 내 실력입니다. 내가 갖춘 실력 하나에 따라 많은 존재들의 영원 행복의 양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죄값과 징계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소망 중에 하나는 절망 중에, 하나는 죄값으로 하나는 훈련의 땀으로, 하나는 무서워 떨기만 해야 하는 고통으로 하나는 포부를 가진 사람의 창창한 앞날을 담보하는 자기 성숙으로 대할 것입니다.


*죄와 징계의 상관관계는 질문의 방향을 정확히 파악치 못하겠으나 재질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죄론/심판] 여러 가지 질문들 - '죄값과 징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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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십니까?


1. 죄값과 징계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시25:11>의 성구를 묵상하다가 죄악과 하나님의 징계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설교록 중 궁금했지만 그냥 가슴에 담아 두고 지나쳤던 부분이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집회 설교록인데 몇년도 설교록인지, 정확한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정'에 연결된 질문인 것 같습니다. '환난'에 관한 설교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징계도 예정하셨는데 그것이 죄에 뒤따라 일어나서 죄 때문에 징계가 따른 것으로 보여지도록 하시는 것 뿐이다]

라는 의미의 말씀이었습니다.

정확한 문맥은 생각나지 않지만 확실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위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시각에서는 '죄 때문에 이런 징계를 주셨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님 시각에서는 죄와 징계, 혹은 죄값은 상관관계없는 별개의 것들로 해석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질문>

다른 설교록에서 불신자의 죄값과 믿는자의 징계의 차이점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위의 말씀에 비추어서 '징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죄'와 '징계'의 상관관계에 대한 말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2. 경건치 않은 행위에 대한 심판

다음 성구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주석에 의하면 거짓교사에 대한 말씀이라는데...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 유1:15'


이 성구에서 '뭇사람'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입니까?

(불택자 모두를 말씀하심입니까?)

택자에게도 역시 해당되는 말씀이라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도 이미 사함받은 '모든' 경건치 않은 행위도 심판의 대상(혹은 하나님의 노여움, 정죄의 대상)이 됩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고서도 내가 저지른 경건치 않은 모든 행위들에 가슴을 치며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까요?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가7:18-19'

와 같은 말씀으로 위안을 받다가도 위와 같은 말씀을 대하게 되면 큰 죄인이라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3. 둘째 사망

계21:14에서 말씀하신 둘째 사망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둘째 사망'과 '사심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4. 주일 성수

혼자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굳이 질문드립니다.

모든 세상적 불이익을 무릅쓰고 엄격한 기준으로 생명걸고 주일을 지키는 총공회 입장에서는 단호한 답이 나올 수 있겠다고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만...

신약시대에도 역시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는 '사망'에 해당될 정도로 하나님을 노엽게 해 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을까요?


아침부터 이것저것 (지적 수준이 의심되는 유치한 질문까지...) 질문드려서 죄송합니다.

많이 바쁘시리라 생각되어 간략하게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 어떤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 생각되시면 그냥 지나치셔도 상관없겠습니다.

언제나 영육간 강건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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