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질문 내용과는 상관없으나, 우선 설교록을 읽는 자세를 한번 요약했습니다.
|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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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0
2001.12.20 00:00
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성경-성경일반-]/[-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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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설교록 파악이 정확했습니다. 설교록 이해에 필요한 말씀을 우선 드리겠습니다.
①설교록에는 틀린 곳이 적지 않습니다. 읽기에 불편할 정도로 많습니다.
이곳은 성경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설교록을 가장 중요한 참고 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설교록 편찬을 전담해왔으며 또한 설교록 연구 전념 20년을 하고 있는 설교록의 주체로서 이번 질문의 내용을 두고 우선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설교록에는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자 탈자 등의 인쇄 편집 실수, 설교자의 원 설교 내용에 실수 착오 등이 적지 않음을 우선 강조하고 싶습니다.
설교하신 백목사님 자신도 종종 착오 실수 오해하신 경우를 스스로 알고 그 교정을 지시하기도 하였고 또 자주 나오는 실수는 편집 과정에서 실무진이 알아서 하도록 위임까지 하였습니다. 즉, 설교록을 연구의 최고 비중에 두는 이곳은 항상 설교록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기본 인식에 철저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②설교록은 한 부분의 파악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방향을 정확하게 잡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질문자께서는 질문하고자 하는 설교 일자와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용하시는 내용은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아닌 설교록을 대하는 접근으로서 아주 중요한 면을 가졌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설교록의 표현 하나 하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면서 전체 파악을 같이 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설교록을 대하는 분들에게 이곳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선은 작은 표현 구체적인 어투 하나하나를 집중하시라는 것이고 그다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 설교가 안내하는 깨달음의 전체 방향을 잡으시라는 것입니다.
이곳은 설교록에 특별히 은혜받고 집착하는 분들을 광범위하게 상대해 왔습니다. 한결같이 아쉬운 것은, 설교록이 안내하는 전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한 부분에만 몰두되어 스스로 그 범위 내에 갇힌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어느 특별한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를 가지고 남다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체 방향을 파악치 못하여 결국은 자기 발걸음이 자기가 원하는 중심에서 멀어지고 결국은 엉뚱한 데로 가는 데도 끝까지 자기 자신은 확신있게 가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게 됩니다.
③설교록을 읽으실 때는, 각 부분을 부분으로 보면서 동시에 전체 속에서 꼭 비교를 하셨으면
▶부분적으로 설교를 본다면 죄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두 면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면 우리는 죄값에 눌리게 됩니다. 그러나 눌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죄를 짓고 자랑스러워하여 또 다시 죄를 지을 자신감에 차서야 되겠습니까? 죄를 지은 결과는 우리에게 감당못할 결과로 다가온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설교가 아닐 것입니다. 성경 어디를 붙들고 들어가도 죄를 짓지 않아야겠고 죄의 결과를 생각해서 어떤 죄든 물리쳐야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둘째, 그러나 우리에게는 죄와 상관없는 대속과 중생이 있음을 또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죄, 어떤 죄값에 대하여도 우리는 하늘이 땅에서 아득히 초월하여 있듯이 우리는 너무도 상관없는 높은 세계로 올려져 있습니다. 그 아득한 창공에서 죄와 상관없게 된 우리가 여전히 죄에 얽매여 있는 인생들을 내려다 보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죄값에 초월해 있는 우리를 가르쳐 기쁨과 한없는 감사로 살게 하는 것이 또한 설교입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각기 다른 면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한자리에 모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러하기 때문에 당연히 설교록에도 수도 없는 부분들이 서로 대칭되며 대치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각각 달라 보이는 내용들, 이렇게 각각 모순되어 보이는 부분들은 반드시 한 자리에 앉혀놓고 한 시각으로 연결시켜 모순 없는 결과가 나와야만 진정 아는 사람이 됩니다. 한 자리에 앉혀놓고 유심히 뜯어보고 살펴보다 보면 반드시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체계가 나오게 되고 또 그 연결될 부분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결론을 얻기 위하여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모순되는 각각의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이고 또 한 자리에 앉혀놓아 보는 것인데 이렇게 되려면 성경이나 설교록을 읽을 때 현재 읽고 있는 부분과 이전에 읽었던 부분을 자꾸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과거에 읽었던 부분의 세세한 표현과 내용 자체에도 정통해야겠지만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한 설교를 대할 때는 그 설교가 가르치고 있는 내용의 흐름을 요약해서 가지는 습관을 가지시기를 권합니다. 설교 내용 하나 하나에서는 그 내용이 전하는 은혜를 받고, 동시에 그 내용 전체가 안내하는 흐름은 따로 추출하여 두시면 후에 다른 곳에 비교를 하거나 체계를 잡을 때 아주 크게 유용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자리에 앉혀놓은 모순들이 정확하게 한 몸이 되도록 체계화 시키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한 곳에 옮겨놓고 나면 당장에라도 지우개로 지울 표현들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설교록에는 없는 내용인데 읽는 사람이 알아서 보충해야 할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양 모순이 하나로 합해져서 한 체계가 되어야 하는 절대 전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값이 있는 법이고 그 결과가 감당 못할 만큼 크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한 성경이기 때문에, 이 흐름의 설교는 죄를 초월하고 기쁨으로만 사는 것이 성도라고 설교한 내용의 정확한 정의를 잡아주게 됩니다. 기쁨을 가지라는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 주관으로 지나쳐 가졌던 기쁨을 제거하는 것은 죄의 결과를 강조한 설교의 흐름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죄값의 결과가 그러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주신 소망이 있어 그 죄의 값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다가오는지는 불택자와 전혀 다른데 우리가 가지지 말아야 할 무서움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대속의 기쁨을 강조한 설교가 이를 정리하게 되어집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자기 부모를 버려야 한다는 성구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잡아주고 있으며, 반대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 부모를 버려야 한다는 성구는 부모를 공경하되 어떻게 어떤 경우에 공경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성구를 한 자리에 앉혀 놓는 것이 일차 할 일이며 그다음 두 내용을 가지고 하나로 체계화 시켜 나가는 것이 깨달음의 최종입니다.
④이런 점에서 이곳은 질문내용과 같은 연구가 이곳에서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곳은 백목사님의 자료 전체라고 생각하는 양을 보관하고 있으며 그 모든 자료를 이곳에 그대로 올려놓고 또 출간하는 것을 일차 작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차적으로는 이 자료들의 상호 충돌 모순 되는 부분을 전부 한 자리에 집합시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그 모든 모순이 전부 하나로 정리되고 이해되어 실은 한 진리가 각기 다른 사람을 각기 달리 길러가는데 각기 다른 면을 강조한 것이라는 진리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백영희조직신학'을 향하고 있습니다. 평생 전념할 이곳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 목표는 이곳의 목표이기 전에 백목사님의 자료를 접하는 모든 분들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신앙이란 아는 가운데 자라가는 법이라는 것은 재삼 말할 필요가 없는 상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알려는 분이 적기 때문에 아는 이가 적고, 더우기 모순 충돌되는 면들은 아예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덮어버리는 면이 많기 때문에 오늘 교회와 시대의 어지러움이 극도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극단적으로 사적 감정과 악감에 충천하여 갖은 욕설을 다 하시는 분들의 발언까지도 아끼며 보존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받을 어린 신앙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진리의 넓은 세계, 최종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발언일찌라도 이곳이 집중하는 이 신앙노선에 존재하는 모순과 충돌되는 부분은 그런 분들이 가장 잘 드러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께 이곳에서 드리고 싶은 안내말씀은, 이곳의 모든 자료 중에서 모순과 충돌되는 내용을 꼭 살펴 주시라는 것입니다. 설교의 어느 한 부분에 대한 것은 좁은 범위이며 그 설교의 흐름을 봐 두시고 다른 곳에서 다른 내용이 나올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은 진리의 넓은 세계로 나갈 첫 문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성경-성경일반-]/[-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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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설교록 파악이 정확했습니다. 설교록 이해에 필요한 말씀을 우선 드리겠습니다.
①설교록에는 틀린 곳이 적지 않습니다. 읽기에 불편할 정도로 많습니다.
이곳은 성경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설교록을 가장 중요한 참고 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설교록 편찬을 전담해왔으며 또한 설교록 연구 전념 20년을 하고 있는 설교록의 주체로서 이번 질문의 내용을 두고 우선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설교록에는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자 탈자 등의 인쇄 편집 실수, 설교자의 원 설교 내용에 실수 착오 등이 적지 않음을 우선 강조하고 싶습니다.
설교하신 백목사님 자신도 종종 착오 실수 오해하신 경우를 스스로 알고 그 교정을 지시하기도 하였고 또 자주 나오는 실수는 편집 과정에서 실무진이 알아서 하도록 위임까지 하였습니다. 즉, 설교록을 연구의 최고 비중에 두는 이곳은 항상 설교록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기본 인식에 철저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②설교록은 한 부분의 파악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방향을 정확하게 잡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질문자께서는 질문하고자 하는 설교 일자와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용하시는 내용은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아닌 설교록을 대하는 접근으로서 아주 중요한 면을 가졌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설교록의 표현 하나 하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면서 전체 파악을 같이 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설교록을 대하는 분들에게 이곳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선은 작은 표현 구체적인 어투 하나하나를 집중하시라는 것이고 그다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 설교가 안내하는 깨달음의 전체 방향을 잡으시라는 것입니다.
이곳은 설교록에 특별히 은혜받고 집착하는 분들을 광범위하게 상대해 왔습니다. 한결같이 아쉬운 것은, 설교록이 안내하는 전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한 부분에만 몰두되어 스스로 그 범위 내에 갇힌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어느 특별한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를 가지고 남다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체 방향을 파악치 못하여 결국은 자기 발걸음이 자기가 원하는 중심에서 멀어지고 결국은 엉뚱한 데로 가는 데도 끝까지 자기 자신은 확신있게 가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게 됩니다.
③설교록을 읽으실 때는, 각 부분을 부분으로 보면서 동시에 전체 속에서 꼭 비교를 하셨으면
▶부분적으로 설교를 본다면 죄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두 면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면 우리는 죄값에 눌리게 됩니다. 그러나 눌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죄를 짓고 자랑스러워하여 또 다시 죄를 지을 자신감에 차서야 되겠습니까? 죄를 지은 결과는 우리에게 감당못할 결과로 다가온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설교가 아닐 것입니다. 성경 어디를 붙들고 들어가도 죄를 짓지 않아야겠고 죄의 결과를 생각해서 어떤 죄든 물리쳐야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둘째, 그러나 우리에게는 죄와 상관없는 대속과 중생이 있음을 또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죄, 어떤 죄값에 대하여도 우리는 하늘이 땅에서 아득히 초월하여 있듯이 우리는 너무도 상관없는 높은 세계로 올려져 있습니다. 그 아득한 창공에서 죄와 상관없게 된 우리가 여전히 죄에 얽매여 있는 인생들을 내려다 보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죄값에 초월해 있는 우리를 가르쳐 기쁨과 한없는 감사로 살게 하는 것이 또한 설교입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각기 다른 면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한자리에 모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러하기 때문에 당연히 설교록에도 수도 없는 부분들이 서로 대칭되며 대치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각각 달라 보이는 내용들, 이렇게 각각 모순되어 보이는 부분들은 반드시 한 자리에 앉혀놓고 한 시각으로 연결시켜 모순 없는 결과가 나와야만 진정 아는 사람이 됩니다. 한 자리에 앉혀놓고 유심히 뜯어보고 살펴보다 보면 반드시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체계가 나오게 되고 또 그 연결될 부분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결론을 얻기 위하여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모순되는 각각의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이고 또 한 자리에 앉혀놓아 보는 것인데 이렇게 되려면 성경이나 설교록을 읽을 때 현재 읽고 있는 부분과 이전에 읽었던 부분을 자꾸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과거에 읽었던 부분의 세세한 표현과 내용 자체에도 정통해야겠지만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한 설교를 대할 때는 그 설교가 가르치고 있는 내용의 흐름을 요약해서 가지는 습관을 가지시기를 권합니다. 설교 내용 하나 하나에서는 그 내용이 전하는 은혜를 받고, 동시에 그 내용 전체가 안내하는 흐름은 따로 추출하여 두시면 후에 다른 곳에 비교를 하거나 체계를 잡을 때 아주 크게 유용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자리에 앉혀놓은 모순들이 정확하게 한 몸이 되도록 체계화 시키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한 곳에 옮겨놓고 나면 당장에라도 지우개로 지울 표현들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설교록에는 없는 내용인데 읽는 사람이 알아서 보충해야 할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양 모순이 하나로 합해져서 한 체계가 되어야 하는 절대 전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값이 있는 법이고 그 결과가 감당 못할 만큼 크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한 성경이기 때문에, 이 흐름의 설교는 죄를 초월하고 기쁨으로만 사는 것이 성도라고 설교한 내용의 정확한 정의를 잡아주게 됩니다. 기쁨을 가지라는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 주관으로 지나쳐 가졌던 기쁨을 제거하는 것은 죄의 결과를 강조한 설교의 흐름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죄값의 결과가 그러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주신 소망이 있어 그 죄의 값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다가오는지는 불택자와 전혀 다른데 우리가 가지지 말아야 할 무서움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대속의 기쁨을 강조한 설교가 이를 정리하게 되어집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자기 부모를 버려야 한다는 성구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잡아주고 있으며, 반대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 부모를 버려야 한다는 성구는 부모를 공경하되 어떻게 어떤 경우에 공경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성구를 한 자리에 앉혀 놓는 것이 일차 할 일이며 그다음 두 내용을 가지고 하나로 체계화 시켜 나가는 것이 깨달음의 최종입니다.
④이런 점에서 이곳은 질문내용과 같은 연구가 이곳에서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곳은 백목사님의 자료 전체라고 생각하는 양을 보관하고 있으며 그 모든 자료를 이곳에 그대로 올려놓고 또 출간하는 것을 일차 작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차적으로는 이 자료들의 상호 충돌 모순 되는 부분을 전부 한 자리에 집합시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그 모든 모순이 전부 하나로 정리되고 이해되어 실은 한 진리가 각기 다른 사람을 각기 달리 길러가는데 각기 다른 면을 강조한 것이라는 진리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백영희조직신학'을 향하고 있습니다. 평생 전념할 이곳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 목표는 이곳의 목표이기 전에 백목사님의 자료를 접하는 모든 분들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신앙이란 아는 가운데 자라가는 법이라는 것은 재삼 말할 필요가 없는 상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알려는 분이 적기 때문에 아는 이가 적고, 더우기 모순 충돌되는 면들은 아예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덮어버리는 면이 많기 때문에 오늘 교회와 시대의 어지러움이 극도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극단적으로 사적 감정과 악감에 충천하여 갖은 욕설을 다 하시는 분들의 발언까지도 아끼며 보존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받을 어린 신앙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진리의 넓은 세계, 최종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발언일찌라도 이곳이 집중하는 이 신앙노선에 존재하는 모순과 충돌되는 부분은 그런 분들이 가장 잘 드러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께 이곳에서 드리고 싶은 안내말씀은, 이곳의 모든 자료 중에서 모순과 충돌되는 내용을 꼭 살펴 주시라는 것입니다. 설교의 어느 한 부분에 대한 것은 좁은 범위이며 그 설교의 흐름을 봐 두시고 다른 곳에서 다른 내용이 나올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은 진리의 넓은 세계로 나갈 첫 문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론/심판] 여러 가지 질문들 - '죄값과 징계' 외
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성경-성경일반-]/[-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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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십니까?
1. 죄값과 징계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시25:11>의 성구를 묵상하다가 죄악과 하나님의 징계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설교록 중 궁금했지만 그냥 가슴에 담아 두고 지나쳤던 부분이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집회 설교록인데 몇년도 설교록인지, 정확한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정'에 연결된 질문인 것 같습니다. '환난'에 관한 설교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징계도 예정하셨는데 그것이 죄에 뒤따라 일어나서 죄 때문에 징계가 따른 것으로 보여지도록 하시는 것 뿐이다]
라는 의미의 말씀이었습니다.
정확한 문맥은 생각나지 않지만 확실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위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시각에서는 '죄 때문에 이런 징계를 주셨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님 시각에서는 죄와 징계, 혹은 죄값은 상관관계없는 별개의 것들로 해석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질문>
다른 설교록에서 불신자의 죄값과 믿는자의 징계의 차이점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위의 말씀에 비추어서 '징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죄'와 '징계'의 상관관계에 대한 말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2. 경건치 않은 행위에 대한 심판
다음 성구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주석에 의하면 거짓교사에 대한 말씀이라는데...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 유1:15'
이 성구에서 '뭇사람'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입니까?
(불택자 모두를 말씀하심입니까?)
택자에게도 역시 해당되는 말씀이라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도 이미 사함받은 '모든' 경건치 않은 행위도 심판의 대상(혹은 하나님의 노여움, 정죄의 대상)이 됩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고서도 내가 저지른 경건치 않은 모든 행위들에 가슴을 치며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까요?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가7:18-19'
와 같은 말씀으로 위안을 받다가도 위와 같은 말씀을 대하게 되면 큰 죄인이라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3. 둘째 사망
계21:14에서 말씀하신 둘째 사망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둘째 사망'과 '사심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4. 주일 성수
혼자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굳이 질문드립니다.
모든 세상적 불이익을 무릅쓰고 엄격한 기준으로 생명걸고 주일을 지키는 총공회 입장에서는 단호한 답이 나올 수 있겠다고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만...
신약시대에도 역시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는 '사망'에 해당될 정도로 하나님을 노엽게 해 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을까요?
아침부터 이것저것 (지적 수준이 의심되는 유치한 질문까지...) 질문드려서 죄송합니다.
많이 바쁘시리라 생각되어 간략하게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 어떤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 생각되시면 그냥 지나치셔도 상관없겠습니다.
언제나 영육간 강건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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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성경-성경일반-]/[-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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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십니까?
1. 죄값과 징계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시25:11>의 성구를 묵상하다가 죄악과 하나님의 징계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설교록 중 궁금했지만 그냥 가슴에 담아 두고 지나쳤던 부분이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집회 설교록인데 몇년도 설교록인지, 정확한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정'에 연결된 질문인 것 같습니다. '환난'에 관한 설교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징계도 예정하셨는데 그것이 죄에 뒤따라 일어나서 죄 때문에 징계가 따른 것으로 보여지도록 하시는 것 뿐이다]
라는 의미의 말씀이었습니다.
정확한 문맥은 생각나지 않지만 확실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위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시각에서는 '죄 때문에 이런 징계를 주셨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님 시각에서는 죄와 징계, 혹은 죄값은 상관관계없는 별개의 것들로 해석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질문>
다른 설교록에서 불신자의 죄값과 믿는자의 징계의 차이점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위의 말씀에 비추어서 '징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죄'와 '징계'의 상관관계에 대한 말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2. 경건치 않은 행위에 대한 심판
다음 성구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주석에 의하면 거짓교사에 대한 말씀이라는데...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 유1:15'
이 성구에서 '뭇사람'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입니까?
(불택자 모두를 말씀하심입니까?)
택자에게도 역시 해당되는 말씀이라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도 이미 사함받은 '모든' 경건치 않은 행위도 심판의 대상(혹은 하나님의 노여움, 정죄의 대상)이 됩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고서도 내가 저지른 경건치 않은 모든 행위들에 가슴을 치며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까요?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가7:18-19'
와 같은 말씀으로 위안을 받다가도 위와 같은 말씀을 대하게 되면 큰 죄인이라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3. 둘째 사망
계21:14에서 말씀하신 둘째 사망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둘째 사망'과 '사심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4. 주일 성수
혼자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굳이 질문드립니다.
모든 세상적 불이익을 무릅쓰고 엄격한 기준으로 생명걸고 주일을 지키는 총공회 입장에서는 단호한 답이 나올 수 있겠다고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만...
신약시대에도 역시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는 '사망'에 해당될 정도로 하나님을 노엽게 해 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을까요?
아침부터 이것저것 (지적 수준이 의심되는 유치한 질문까지...) 질문드려서 죄송합니다.
많이 바쁘시리라 생각되어 간략하게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 어떤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 생각되시면 그냥 지나치셔도 상관없겠습니다.
언제나 영육간 강건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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