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의 서부교회 방문은 유례가 없는 경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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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의 서부교회 방문은 유례가 없는 경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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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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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선이 아니고 국회의원 선거 때였습니다.


김 前대통령이 서부교회를 방문했던 때는 국회의원 선거 때였으나 우선 대선을 이해해야 합니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까지를 독재체제였다고들 합니다.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삼인이 치열하게 대결하던 때였고 완전 자유투표로 바뀌었다고 하여 세상이 떠들썩할 때였습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김영삼 김대중씨는 서로 양보치 않아 민간인이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를 또 다시 군인출신에게 빼앗겼다고 야당측에서 아쉬워할 때였습니다. 선거하는 법 자체를 완전 자유로운 상태에서 바꾸고도 졌기 때문에 소위 김영삼 김대중씨는 완전히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세상이 다 그렇게 알고 있었고 또 모든 언론도 그렇게 단정을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 다음해였던 1988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바로 있었고 그 두 사람은 절대적으로 자기를 지지하는 고향에서 출마하면 당선이 될 것이고 당선이 된다면 그것을 국민의 뜻으로 해석하여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습니다. 문제는 김대중씨가 아니라 김영삼씨였습니다. 목포쪽은 김대중씨가 재출마를 해도 백프로 당선되도록 적극 지지한다는 조사가 있었으나 부산쪽에서는 단정할 만큼 여론이 돌지 않았고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씨는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김영삼씨는 자기 지역구인 부산 서구에서 낙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김영삼씨는 극도로 위기감에 빠지게 됩니다. 부산 서구는 이름만 걸고도 늘 당선이 되고 자신은 전국을 다니며 다른 선거구만 돕고 다녔는데 1988년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영삼대통령이 부산 지역구를 직접 방문하고 선거운동을 하게 됩니다. 그때 어느 주일 서부교회를 방문하게 됩니다. 지금 질문자께서 보신 때는 바로 그때입니다.


2.김대통령과 서부교회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전통적으로 부산 제일의 주택가는 서구 대신동입니다. 법조인 재력가 등이 다 몰려있는 곳이고 또 일제 때부터 부산경남의 모든 관서가 위치한 곳도 서구 부민동입니다. 전쟁 때 이 지역은 바로 피난 정부와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했었습니다. 이곳에는 부산경남 최고 명문이라고 알려져 있는 경남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김대통령은 경남고 출신이며 이 서구를 지역구로 출마하여 현재까지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과 최장수 국회의원 기록을 가지게 됩니다. 서부교회는 바로 이 서구의 가장 중심지 동대신동 1가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한 자유당 당시부터 서구에서 제일 큰 교회였고 이후 부산 최대의 교회를 거쳐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로 알려지면서 모든 면으로 부산 제일의 교회라고 세상에까지 알려지게 됩니다.


손명숙영부인은 밤예배를 참석하며 철야기도를 교인들과 함께 하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에 충실했었고 김대통령은 주로 중앙무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서부교회를 출석하는 횟수는 많지 않았으나 그 중심이 서부교회와 백목사님에 대하여 각별했음은 평생을 통해 일관되었습니다. 중앙무대에서 급부상하면서 서부교회 전임 목회자였던 김창인목사님의 충현교회로 정식 등록했지만 이는 정치적 관계가 없다 할 수 없는 정황이 많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를 한번씩 찾을 때만큼은 정치색을 가지고는 올 수도 없고 또 와서도 안되는 곳임을 김대통령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백목사님 평생에 김대통령은 서부교회와 백목사님에 관한 한 꼭 자신이 순수하게 신앙적으로 필요할 때 찾아야 했던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3.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합니다.


백목사님은 이미 일제 때부터 교회로 접근하고 침투하는 외력에 대하여는 일제든 공산주의든 목숨 걸고 차단했었습니다. 어떤 것이든 세상이 교회 내로 들어오면 세상이라는 바다 위를 떠서 지나가야 하는 교회라는 배 안에 물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이 평생에 참으로 계속된 이는 거의 없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이 김구선생을 찾아 그 앞에서 휘호를 받느라고 앉아있는 사진이 애양원교회 기념관에는 자랑스럽게 걸려있지만 우리는 손목사님이 깊은 뜻이 있었든지 아니면 그의 평생에 가장 수치스런 사진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성도가 지나가다 인사를 한번 해도 그 인사가 잘못되면 원치 않는 자리에 앉아 그런 원치 않는 모습이 결과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까지 미리 보는 지혜와 신령한 면이 남다른 분이었습니다.


심지어 해방후 민족주의나 미국의 원조 또는 남한 건국 세력으로부터도 엄격하게 구별하여 왔으므로 좌익 우익 무정부주의자 민족주의자 등 세상 거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그와 같이 많은 박해를 받아온 인물도 없습니다.


더구나 서부교회로 부임한 후부터는 전쟁으로 인하여 피난정부가 서부교회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고 이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최상층에 있는 각계각층을 가장 절박하여 순수하게 인간적인 면이 다 드러나든 시점에 접촉하게 됩니다. 물론 교계의 지도자이며 교계의 신령한 선지자로서 그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과의 관계를 엄격하게 교인과 심방 또는 설교하는 목회자로서만 상대하였기 때문에 오늘 서울의 대형교회들보다 앞서 한국의 중앙에 앉을 모든 기회를 전부 강물에 흘려보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변영태라는 역사상 제일로 치는 학자이며 애국자이며 진정한 정치가를 완전히 품에 앉고 교계를 주물 수 있는 기회도 왔지만 그들이 그렇게 섭섭하게 생각했을지라도 결국 단절하고 말았던 것은 서부교회 초창기 교인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 부인이 장관부인들로 구성된 예배를 인도해 주시라 하여 전쟁 직후 서울까지 비행기로 예배를 드리러 가는 때도 있었고 비슷한 시기 국세청장이었던 분이 바로 사직동교회 창립교인 남편이었습니다. 송용조목사님이 탈퇴하고 교회대문을 막았을 때 답변자는 그 분과 서울대 법대학장을 지낸 김증한교수님 등과 함께 대문밖에서 10여명 함께 예배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못나고 힘없어 당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즘도 아니고 자유당 때 전후한 이야기입니다. 백목사님이 남산 밑에 감리교회 부흥회를 할 때는 자유당 당시 장관 5명이 교인으로 있던 곳입니다. 아마 당시는 장관의 숫자가 10여명 막 넘을 때였을 것입니다. 오늘처럼 그렇게 흔하고 많지 않을 때입니다. 백목사님의 정치감각이면 그들을 다 휘어잡고 오늘의 문선명이 그 발 밑에 엎드리게 할 수 있는 지혜와 실력을 가진 분이라는 것은 고신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백목사님 한 분이 마음 먹으면 고신 전체가 뿌리채 뽑힌다는 것을 고신의 최상 지도부는 잘 알고 있으며 어느 원로분의 회고에도 백목사님을 비난한다면서 언뜻 나온 표현 속에 고신의 위기감을 잘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유당 말기 전후의 여러 역사적 사실을 많은 말씀으로 드리는 것은, 그 당시 김영삼대통령은 오늘의 국가적 인물이 아니라 당시 수도 없이 많든 유망한 한 젊은 정치 출발생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그를 귀한 서부교회 교인으로 상대했고 마지막 1988년 백목사님을 찾았을 때에도 30년이 넘도록 서부교회를 진정한 마음 속 신앙의 모교로 두고 백목사님을 진정한 이 시대의 숨은 목회자로 따랐던 김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모처럼 찾아온 그를 따뜻하게 맞았던 것입니다. 김영삼대통령과의 깊은 관계를 이렇게 가지고 있었으나 일반 교계 지도자들과는 달리 서부교인들은 백목사님과의 관계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은 백목사님이 거의 언급치 않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은 생전 청와대로부터도 당대에 숨은 기독교계의 진정한 지도자라 하여 밤 늦은 시간 아무런 정치색 없이 순수하게 신앙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으로 의견을 듣기 위해 연락이 왔으나 일절 표시내지 않고 살았던 분입니다. 새마을운동에 성직자들도 참가시키라 하여 교단마다 전부들 새마을복으로 갈아입고 새마을교육 받는다고 입교할 때에 제1의 야당도시 부산의 제일 큰 교회를 이끌고 있는 백목사님은 끝까지 이를 거부하여 얼마나 미움을 당했으며 그로 인하여 큰 고초를 겪을 일이었으나 일선보다 그 상부에서 인정하고 백목사님은 정권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세상 정치 자체를 거부하는 분이라 하여 금지시켰던 것은 서부교회와 총공회 최고 지도부에서는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큰 사위 최재현목사님은 5공의 핵심세력에 바로 연결이 되어 정계 고위직으로 바로 영입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으나 백목사님의 거듭되는 경고로 결국 포기했던 것은 1980년의 일이었습니다. 5공의 출발기 기존 세력을 완전 물갈이 하면서 믿을 수 있고 또 순수한 민간인 출신의 인재를 구하던 때, 10.26. 박대통령 시해 사건 당시 정권 창출의 최 심장부와 바로 직결되었던 것도 완벽하게 단절시키고 교회는 순수하게 교회라야 한다고 엄금했던 분입니다.


4.김대통령과 그 집안의 신앙내력은 요즘 일반인이 아는 것과는 달리 아주 보수적이었습니다.


김대통령을 신앙면으로만 평가한다면, 우리가 확실히 아는 초창기 신앙심은 정치적 동기와 상관없이 확실하게 가졌던 인물로 평가합니다. 부친이 거제도 고향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를 오랫동안 담임했던 이가 이만기목사님으로 그는 당시 바로 백목사님 지도를 받는 분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부산 경남 지방의 고신은 백목사님 생전의 총공회와 비슷한 분위기였고 이런 신앙의 가정 분위기에다 6.25 전시 서울에서 점령 3개월을 숨어 지냈으니 신앙있는 집안의 사람이 생사가 시시각각으로 교차되는 시기를 그렇게 보냈다면 평생에 다시 잊어버릴 수 없는 순수한 신앙이 그 속에 심겨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도 확실한 것입니다. 비록 정치판에서 정치인으로만 세상에 나타났고 또 그 역시 교계를 정치의 후원단체로 삼았지만 그렇게 교회를 상대할 때는 정치 교회와 순수한 교회를 구별 못할 인물은 아닙니다. 소위 산전수전 다겪고 인간 심리의 각계각층의 모든 면을 다 보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김대통령은 평생 교회를 자기 정치 기반의 확실한 근거로 삼으면서도 오직 서부교회 백목사님과의 관계만은 숨겨 둔 자기 혼자만의 골방으로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그것을 단 한번 깬 것이 앞에 설명드린 1988년 대선 실패 후 정치적 최대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부교회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5.김대통령의 서부교회 방문 당시, 교회를 찾는 모습부터 특별했습니다.


제1야당의 당수로 가장 유력했던 대통령 후보로, 그것도 부산에서 그가 움직이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일단 기본적 예우는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가는 교회면 사전 예정에 의하여 통고가 가고 그 지역의 교계 지도자들이 교단적으로나 아니면 범 교단적으로 예우를 갖추고 또 속으로는 내심 장차 기대를 하고 안면을 익혀 두려고 머리가 깨지는 형편입니다. 또 김대통령 자신도 장로님이기 때문에 장로교 법에 의하여 교회내 위치에서도 목사와 동일한 자격으로 자리를 함께 할 수 있고, 또 교회가 예우할 국가적 지도자로 모든 예우를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 때 최고위 내빈 위치를 홀로 받으면서 광고 소개, 특별 기도, 그를 위한 설교 등 교회는 그를 위한 교회로 일순간 바뀌게 되는 것이며 그도 여러 보좌진을 자기 위치와 홍보에 적당하도록 진용을 갖추고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다급하였고 또 이번만은 아주 어려운 중에 부탁하러 오게 되었지만 역시 서부교회였기 때문에 정치인의 모습을 갖추고 간다면 백목사님의 평소를 생각한다면 어떤 극단적인 발언이 나올 수도 있으며 또한 서부교인들의 체질 자체가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날도 비서 한 사람만 대동하고 들어왔습니다.


김대통령의 재기 여부를 가릴 국회의원 재선 문제에 서부교회의 역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컸습니다. 그의 절대적이었습니다. 서구는 원래 큰 지역구였으나 정권이 밉게 보고 사하구를 분리시켜 서구는 아주 초미니 지역구로 격하되었는데 서부교회는 1988년 최전성기였고 그 교인의 숫자는 초미니 지역구 전체를 절대적으로 좌우 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주일학교 세계 최대, 중간반 마찬가지, 장년반도 재적 1만명을 넘고 있었으니 서부교회 관련 식구가 최대 4-5만을 헤아렸고 그들 대부분은 교회 부근에 살고 있었으며 또한 서부교회는 그 전례가 없을 정도로 백목사님 한 분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한번도 그런 일은 없었지만 만일 백목사님 마음 먹은 선포 하나면 부산의 서구라는 지역만은 당장 당락으로 결판 날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김대통령으로서는 막판에 몰린 절박감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부터 한번씩 서부교회를 찾을 때는 서부교회 사거리 건너편 너머에 차를 대고 비서 한 사람만 데리고 일반 교인 속에 묻혀서 교회를 찾았지 정치가로 또 특별한 사람의 표시를 내고 찾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과 총공회 신앙노선에서는 세상이 김대통령을 어느 측면에서 보고 어떤 비판을 하든지 말든지, 순수한 신앙면으로만 보면 그는 자기 속에 진정한 자기 만의 지도자로 백목사님을 상대했던 인물이며 그의 한국 내 치솟던 위상에도 불구하고 백목사님을 그렇게 예우하고 알아보고 또 백목사님과 서부교회를 아껴 외부에서 충격주지 않고 순수한 교회 그대로 나갈 수 있도록 자기의 모든 위신과 처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그렇게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투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처신을 했다는 것만은 대단히 귀하게 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치가로서는 정치가답게 살았으나 신앙인으로서는 서부교회의 한 교인이었다는 것을 특별하게 인정합니다.


6.김대통령의 주일 예배


그날 주일 예배에 참석했을 때, 그를 알아본 한 장로님이 얼른 그를 좌석으로 안내 했습니다. 아다시피 서부교회는 강단위의 의자 3개 외에는 어떤 특석도 구별된 좌석도 없습니다. 따라서 주일오전 예배 들어오는 그 모든 과정은 장차 이 나라 대통령이며 당시 제1야당 총재로 부산의 영웅으로서 그렇게까지 겸손했고 조심했으며 그 이상 교회로도 표시내지 않고 들어온 그를 향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장로님은 김대통령이 예배를 보러 왔다는 메모를 강단 위로 올렸습니다. 물론 그 내용은 광고를 부탁하거나 한 말씀 교인들에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을 것입니다. 강단 위로 올라온 장로님의 메모를 백목사님은 한번 보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김대통령의 처지가 어렵다고 무시할 분은 아닙니다. 오히려 처지가 어려우면 파격적으로 위로하고 기회를 주는 분입니다. 그러나 김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그 자체가 신앙노선과 큰 것과 또 어린 교인에게 대한 작은 면, 또한 예배라는 그 자체, 그가 걸어온 평생의 성경진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던 것입니다.


세상을 평민으로 살아가면 그런 일을 예사로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백목사님은 그런 일로 일제때부터 6.25점령 치하 등 모든 역사 속에서 정권을 잡고 난 뒤에 보복이 어떠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정주영, 박철언씨 등이 당한 것을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식한 목사라 어떤 결과가 올지 몰라서가 아니고 너무 잘 알면서도 구별했던 것입니다. 이 나라 어느 교회인들 이런 예가 있겠습니까? 생사를 수없이 넘었다는 고신의 한상동목사님 전기를 읽어보시면 이승만대통령이 삼일교회를 참석했을 때 강단을 내어 준 일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적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 후 결국 기도 내용 중에도 한 마디 언급이 없었으므로 인간적으로는 김대통령은 그 이상으로 섭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백목사님을 알기 때문에 섭섭하면서도 속으로는 과연 이 김영삼이에게 하는 것을 봐도 이 나라에 진정한 목사님은 저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안내하는 장로님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동장도 유력인사고 경찰서장이면 하늘 같이 높은 사람입니다. 또 훗날 한 자리를 기대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백목사님이 알아서 표시내지 않으니 교회에 온 손님으로 최소한 손님 대접으로 바깥으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당시 서부교회는 예배가 마치게 되면 15분 정도를 빠져나가는 인파로 떼 밀려서 나가게 됩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인물이 퇴장할 때 앞뒤 사람들에게 몸이 닿는 것은 대단한 침노로 간주됩니다만, 서부교인들의 대부분은 세상에 무식하기를 이루 말을 못합니다. 누가 왔는지 알 사람도 알아주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없이 그냥 쓸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대문 바깥 별관 앞에 자리를 잡으면 10m 가량의 대문을 통하여 나가는데 병목현상이 생겨 설명절 때 귀성객들만큼 혼잡하게 되는데 그 곳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 대동했던 서부교회 내부 인사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불과 2-3명이었는데 더 기이한 것은 예배 마치고 나가는 교인들이 김대통령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먼저 청하면 악수를 하는 사람이 거의 절대 다수였습니다. 그리고 김대통령 한 사람 정도만 건너 나가는 사람이라면 앞만 보고 그냥 나가고 있었습니다. 무식이 탈이요 무지가 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 당시 상당한 분들도 없지 않았으나 당시는 백목사님의 서부교회였습니다.


지금 질문하시는 분은 약간의 소란과 몇 명의 안내 때문에 백목사님까지 오해를 하신듯한 표현입니다만, 1987년 부산바닥에 수십만 심지어 수영 해변가 쪽에 100만명이 모여 연호를 하고 부산 전체가 시뻘겋게 달아 올랐던 그 인물이었음을 생각하시고, 또한 서부교회는 당시 매주 처음 나오는 교인, 외부에서 견학오는 타교단 타교회 교인, 소문 듣고 한번 구경하러 오는 교인 등이 수백명에 이르렀음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미리 김대통령을 환대치 말라고 교육을 시킨 것도 아님을 감안한다면, 과연 교회다운 교회였습니다.


주일이며, 예배당 안이었으며, 그날 배운 말씀을 머리 속에 잊지 않기 위해 반복하며 땅을 보고 말씀에 눌려 나오는 교인들이 대부분이고, 교회의 중심에 있는 분들은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면 자기가 맡은 학생들 어린 신앙식구들 확인하고 데려다 주는 등 챙기느라고 일순간 전쟁의 포화속을 연상케 합니다. 그 열정과 그 순수 그 복음의 모습이 하늘나라의 천사들과 같았으므로 김대통령의 그날 예배 후 마당에서 교인들과 악수하던 모습은 인간적으로는 한없이 죄송한 분위기였고, 사회적으로는 서부교회를 맹신이나 세뇌되어 광신이 된 비인간성의 집단으로 매도가 되어야 할 분위기였습니다.


5천여명이 순간 빠져나가면서 가끔 한 두 사람이 '김영삼!'을 크게 외쳐 연호를 유도하였으나 2번 3번 고함을 질러도 자기 한 사람이었고 아무도 응답이 없자 참으로 무안하게 그냥 나가 버린 경우가 몇 건 있었던 정도였습니다. 혹 예배마친 직후 가장 초기에 나가는 이들이 가장 신앙어린 분들이고 해서 그때 일시 무슨 작은 연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답변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었습니다. 과연 역사에 언젠가 기록할 날이 있다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 상에 특별했던 기억으로 또 의미있는 교회의 완성도라 할 수 있는 차원에서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므로 이렇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답변자는 당시 교회의 가장 핵심에서 알 수 있는 일에 정통하고 있으며, 또한 초대형교회이기 때문에 왠만한 일들은 사람들이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예사인데 지극히 작은 일 하나라도 그냥 놓치지 않아야 했던 때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다 나간 뒤, 제일 마지막으로 기도하고 나오시는 것이 백목사님의 주일 오전예배입니다. 옆문으로 나와서 5층으로 올라가는 도중 김대통령이 마당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만났던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표정을 보셨으면 그렇게 환하고 그렇게 환대하는 모습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백목사님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교인, 특히 타진영에서 활동하는 과거 같은 노선의 사람을 만나면 그 이상 반갑고 기뻐할 수 없는 표정이 항상 나옵니다. 평상의 일반 서부교인으로서는 백목사님의 표정은 늘 가까이 하기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교회 처음 나오는 사람을 백목사님께 첫 인사 시켜 본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입장은 다음 다른 질문에 답변드릴 기회를 찾겠습니다.


백목사님은 김대통령의 아주 젊은 시절부터를 잘 기억하고 수십년을 늘 지켜보고 있던 인물입니다. 그렇게 특별하게 보고 있었던 것은 자유당 때는 기독교인 정치가가 봇물이 터져 한국교회를 망쳤고, 3공 이후에는 거의 소멸이 되어 김대통령 정도가 보수기독교인이면서도 자기 속에는 남다른 신앙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줄 백목사님이 스스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의 내면을 가진 사람이라면 혹시 하나님 앞에서 한 두 순서를 거쳐 인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 앞에 준비될 면만 되면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때는 순식간에 들어 쓰시고 또 그 영향이 교계에 엄청나게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개인 질문이 있으면 백목사님은 답변하는 분이고 혼자 마음 속으로 이 나라를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보시는 분입니다. 동시에 교회와 목회자는 정치와 상관없어야 함을 평생 가르쳤고 또한 그는 그리 살았습니다.


참고로, 백목사님은 이렇게 감추어 있는 사연이 너무너무 많은 분입니다. 언젠가 전기가 작성되면 이곳에서 드리기 곤란한 자세한 내용들이 많이 공개될 것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알면 알수록 참으로 은혜스럽기 그지 없는 실상의 걸음이 있기 때문에 이곳은 그 길을 한번 더 살펴보는 곳입니다.


7.그러나 이런 서부교회의 신앙흐름은 목사님 사후 단 한순간에 허물어졌다고 보며 안타깝습니다.


목사님 사후 김영삼대통령은 청와대로 입성하게 됩니다. 백목사님 없는 그 다음부터 그 주변에서 어떻게 군수자리 하나를 챙겨보고 공천권 하나를 살펴볼까 하여 서부교회 시절의 인연을 줄기차게 사용하려는 분들이 서부교회 안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또 그런 연장선에서 이어진 내용들은 현재 너무 가까이 우리 주변에서 진행된 일이니 이곳에서는 입을 닫겠습니다. 김대통령에게 서부교회 이름으로 접근해서 세상적 이익을 기대했는데도 끝내 줄을 대지 못하자 다음 선거에서도 또 서부교회라는 단체를 가지고 다른 곳에서 세상 이익과 정치 출세의 발판으로 삼는 일이 있었습니다.


정치가라면 서부교회는 부산에서 반드시 챙겨볼 이익단체로 부각될 수 있습니다. 1997년, 서부교회 지도부 중 일부가 서부교회 직책을 사용하여 공식적 정치모임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일이 사상 초유로 발생하였으나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서부교회의 신앙노선이 백목사님 생전대로 유지되려면 교회의 생사를 걸고 접근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하여는 정작 아무 말이 없었으니 이런 문제를 두고 새파랗게 질려서 하나님 앞에 떨어야 할 지도부는 이미 수년간 내부 교권문제로 투쟁하였고 모든 힘을 소진하여 이 생사문제는 눈만 껌벅거리면서 보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는 포크레인과 철봉들이 난무하였고 이 문제에 대하여는 아는 사람끼리 개인적으로 수군거리다 말았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뉴스 앞에 나와서도 다 하는 일이지만 서부교회만은 이런 일에 털어서 먼지 하나 나지 않았기 때문에 서부교회였습니다. 이런 작은 일 하나를 두고 답변자는 서부교회의 촛대를 하나님께서 옮겼다는 내적 증거로 보며 안타깝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 서부교회는 현 서부교회 지도부에게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맡겼습니다. 듣는 이상으로 어찌 할 수 없으니 그냥 지켜보는 것입니다.


서부교회는 이미 백목사님 신앙노선의 생전 주소였다는 의미 이상이기 어렵다고 답변자가 통탄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으나 그 중에 하나가 이런 경우입니다. 막았어야 하는 것이 막히지 아니하고 있었다면 그 흔적까지 제거하기 위해 진정 교회의 칼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미 전후 좌우의 방향감과 가치 평가력을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교권을 위해서는 창과 칼이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서부교회 주소지에 발을 딛지 않은 세월이 벌써 10여년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인물] 백목사님과 김영삼총재
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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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감사합니다.

간단한 질문으로 한다는 것이 회상이 길어졌습니다. 말씀대로 문의답변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그런 모든 사실들이 오해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지금부터 한 15-6년전의 일입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나 그때의 세상은 전두환 노태우정부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지금은 전직대통령이지만 그때는 아마 가택연금에서 풀려났거나 아니면 모 당총재였던 김영삼씨가 서부교회를 비공식적(?)으로 방문한 놀라운 사건이 있었던 때입니다.

아마 그분은 서부교회에 예배를 보러 온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대권출마를 위해 군중을 만나러 서부교회를 방문하였던 것 같습니다.

비공식적으로 방문하였기 때문에 측근은 대동하지 않고 혼자 간편한 옷차림으로 머리도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 연연한 노신사의 초라한 방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전예배를 마치고 서부교회 화장실 건물 쪽으로 포진한 김영삼씨는 밝은 얼굴로 서부교회 교인들을 만나 직접 악수를 청하고 밀려나오는 서부교인들을 향하여 손을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던 때였는데 그때 목회자양성원출신의 현재 서부교회에 봉직하고 계시는 몇몇 노목사님들이 김영삼씨를 상당한 관심으로 예우하였고….. 급기야 위 목사님들의 손에 이끌리어(저는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백목사님까지 교회바깥에 까지 나오셔서 김영삼씨를 환대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대중들 앞에 인기를 끄는 명망있는 정치인이 부산의 지방교회를 방문하였다면 좀 떠들석 한 일이기는 하겠으나…… 그때 당시 저는 백목사님의 김영삼씨에 대한 각별한….. 환대는 상당한 아이러니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저가 알기로는 백목사님은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극력히 반대하신 분으로 알고 있고 그러하셨기 때문에 고신에서 제명까지 당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영삼씨는 백목사님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닌데 백목사님은 김영삼씨를 만나기 위해 교회바깥에 까지 나오셨고 그리고 김영삼씨의 손을 백목사님께서는 두손으로 잡고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김영삼씨의 시선은 백목사님이 아닌 서부교회 군중들에게 있었고 한시라도 빨리 손을 놀려 서부교인 한사람이라도 손을 잡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그정치인을 위해 총공회의 거장이신 백목사님은 버선발로 나오셔서 그정치인을 기쁘게 맞는 모습은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저의 눈에는 실망 그자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면 모를 일이나 세상에서 평가하는 큰자와 작은 자가 가려지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세상일과 정치에는 조금도 관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노종께서 분명히 자신을 만나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목사님 당신께서도 잘 아시면서도 그정치인을 만나보기 위해….. 일부러 교회 화장실있는 곳까지 친히 나오셨던 조그마한 사건……

그분은 모장로교회의 장로이기는 하지만…… 국가의식때에는 국립묘지 참배까지 서슴지 않은 우리신앙인에게는 이방인었습니다.


적어도 어린신앙을 가진 저로서는

아무리 유명한 정치인이 왔다고 하더라도--주일을 범하고 유세활동을 하기 위해 방문한 정치인을— 백목사님 만큼은 그자리에 나오시지 않으셨더라면 하는 안타깝기만하던 그때의 그조그마한 사건이 15-6년이 지난 지금도 저의 머리속에는 지워지지 않고 기억이 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정신적 지도자이셨던 목사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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