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사님과 접촉 관련 자료 및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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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사님과 접촉 관련 자료 및 성격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인물~손양원~]

내용분류 : [-인물-손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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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손목사님과 백목사님의 접촉은 거의 없었습니다. 주기철목사님과는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에 첨부할 자료를 참고하시면 아시겠지만, 주목사님 부탁으로 1947.1.31. 손목사님을 거창도사경회 강사로 초청하기 위해 애양원을 방문하였으나 손목사님의 출타로 만날 수 없었고 2.26.-3.5. 손목사님이 거창교회에 사경회 인도를 하기 위해 머물 때에도 특별히 접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평생 설교 중에서는 늘 접촉하던 주남선목사님보다 손목사님에 대한 기록이 훨씬 많습니다.


주기철목사님과는 전혀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백목사님이 예수를 믿던 시기는 1936년이었고 경남 성경학교를 잠깐 다닌 것 외에는 일제말기까지 거창 밖으로 교회일로 다닌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시기에 주목사님은 마산문창교회에서 평양산정현교회를 담임하였고 일경에서 수차례 검거를 당하면서 끝내 옥사하게 됩니다.


2.백목사님과 손목사님의 관계는 접촉보다는 신앙의 교통이었습니다.


서로 앉아 대화하며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으나 두 분은 당시 한국교계 생존자 중에서는 몇 손가락 꼽는 신앙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손목사님은 전국 부흥회 인도로 잠시도 시간을 낼 수가 없었고 백목사님은 일제 박해에 이어 교인 가정들의 박해로 일제 때보다 더 큰 환란을 겪고 있는 때였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현실에 충성하다 보니 육체로 함께할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를 완전 초월하고 모든 인간들이 얽매이는 것을 이분들처럼 초월한 이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말 한 마디 소식 하나 설교 내용 하나만으로도 서로가 오랫동안 접촉하고 사귄 친우 이상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백목사님이 손목사님만큼이나 많이 인용하는 분이 성프란시스인데 800년전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분에 대하여도 백목사님만큼 친근하게 또 자세하게 소개하는 경우가 많지를 못합니다. 내려오는 그 사람의 이력 하나 발언 하나에서 읽어내고 교분을 가지는 시공초월 육체초월의 이런 세계는 육체를 이 땅위에 두고 살지만 그 심령은 신령한 세계가 자유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3.몇 가지 중요한 근거를 제시해 드린다면


1950년 손양원목사님이 6.25점령치하에서 순교한 후, 애양원교회가 즉시 손목사님의 신앙노선에서 벗어나자 사모님은 애양원 바로 앞 신풍마을에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애양원의 지원과 혜택이 대단히 컸지만 이를 다 물리치고 어렵게 개척을 하면서 그 모든 지원을 부산의 고신 교회들에게서 받게 됩니다. 부산에 오게 되면 백목사님 사택에 와서 백목사님 사택식구들과 한 방에서 유숙하는 정도로 가까운 사이입니다.


1960년, 애양원교회는 백목사님을 집회강사로 초빙하게 됩니다. 1975년, 손양원목사님 사모님은 자신이 손목사님 사후 바로 개척했던 교회를 총공회 소속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물론 백목사님 신앙노선의 교회로 가입하게 되는 실무적인 수고는 젊은 교인들이 하고 있었으나 이 교회에서 그분의 발언 하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모님이 '백목사님은 손목사님과 꼭같은 신앙이라'고 보증하여 소속을 확정지우게 하고 이후 백목사님 8월집회도 참석하다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4.한상동목사님에 대한 평가는 '정치목사들이 가는 불행한 경우'입니다.


신사참배 고난 기간의 생애에 대하여는 한상동목사님이 주님과 동행함으로 인간을 초월하고 능력으로 승리했던 귀하고 귀한 것이라고 늘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자 집안의 좋은 조건을 다 버리고 주님을 택한 신앙출발 역시 백목사님은 평생 예를 들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상동목사님은 해방 후 고신의 진리운동을 주도하면서, 그 이후 정치목사로서 평생을 걸었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한상동목사님의 해방 후 고신운동은 초기 몇 순간을 제외한다면 전부 실패였습니다. 신앙지조도 걸레가 되어버렸고 고신은 완전 속화되어 버렸으며 평생동안 한 것은 신앙동지들과 끝없는 전투만 벌였습니다. 진리의 종들은 전부 제거하는 일을 했고. 결국 말년이 너무도 비참했습니다.


따라서 고신이 한 종교집단으로서 그 존립을 두고는 창립의 시조로 평가할지 몰라도 신앙적인 면을 두고 평가한다면 대단히 가혹할 만큼 부정적입니다. 백목사님이 고신에서 박해당한 피해자였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하여 지나치게 보복한다고 고신에서는 비판할 수 있겠으나, 백목사님의 비판은 늘 자기 초월을 기본으로 하여 성령에 붙들려 나왔던 분이라고 이곳은 평가하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한상동목사님에 대한 평가는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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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1: 애양원교회 1차 방문기록)


1947년


1.28.화


저녁 주남선목사님 댁에서 유숙


1.29.수


새벽5시 기상, 가정예배, 경남의 진리운동과 도사경회 강사강사관계로 상별. 화물차로 남원까지. 이 이날이 연중 가장 추운 날. 여관서 주인과 불교인에게 전도. 삼일예배는 가정예배로.


1.30.목


새벽4시반 열차로 순천. 여관에서 전도. 오후 5시반 차로 신풍에서 하차, 6시에 손목사님댁을 방문, 유숙. 손목사님은 각처 부흥회로 1개월이 지났으나 아직 오지 않았고 일단 강사초빙을 위해 당회를 모이도록 요청.


1.31.금


아침식사후 사모님과 함께 애양원 영내로 들어가서 사무실 방문. 교회는 장로 8인 집사 10여인, 전교인수 850명. 강사초빙에 대한 당회 허락 받고 부흥회 일자는 목사님이 오신 뒤 결정키로. 애양원동산과 성전을 구경, 성전에서 예배, 나환자 개인 가정들을 방문 기도. 애양원 내부를 순회할 때 수도원 느낌이 있었고 기쁨과 신성감이 말할 수 없었으며 어쩐지 하늘에서 온 신성감이 생겨 애양원을 떠나기 싫었으나 이별할 수 밖에 없었음. 천국을 바라고 지옥에 나가는 느낌이 말할 수 없었다고 전하며 사모님을 작별하고 오후 7시반 차로 순천 도착 유숙.


2..1.토


순천 출발 남원 도착


2.3.월


함양 경유 거창 도착


2.4.화


주목사님 출타로 2일간 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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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2: 거창읍교회 일지)


2.26.-3.5.


1947.2.26. 수기도회

주장인: 주남선목사

성경: 요2:13-22

제목: 조선인의 유월절이 가까웠으니

강도인: 손양원

記事: 거창지방 都사경회 개최 강사 손양원목사 1주간


1947.3.2. 주일예배

주장인: 주남선목사

성경: 행21:1-10

제목: 명0자에게 예수를 소유하였는가

강도인: 손양원목사


1947.3.2. 찬양예배

주장인: 전성도목사

성경: 눅12:13-33

제목: 일용 양식을 주옵소서

강도인: 손양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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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3. 집회 기록)


애양원교회 집회


1960.11.29.화


월야(夜) - 목조(朝): 요5:1-18

목오(午) - 금오(午): 벧후1:1-11

금야(夜) - 주야(夜): 빌2:1-11

월조(朝) : 사26:1-끝
[인물] 백영희목사님과 손양원목사님
제목분류 : [~인물~손양원~]

내용분류 : [-인물-손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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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십니까?

백영희 목사님께서 주남선목사님이 쓰시던 성경책을 물려 받아 보관하고 계시다가 고신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하신 것과 주목사님 돌아가셨을때 백목사님이 주목사님의 유족들 이상으로 장례까지 신경을 쓰신 것을 보면 백목사님과 주목사님의 관계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설명을 안들어도 잘 알 것 같습니다.

아마 백목사님께서 목회에 가장많이 영향을 받은 목사님을 꼽으라면 주남선목사님과 김현봉 목사님이라는 말씀을 이곳 홈지기이신 목사님의 글을 읽고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7.9.20. 주일 오전 설교(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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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에서도 손양원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내가 손양원 목사 님을 먼저 쓰나 주기철 목사님을 먼저 쓰나 많은 기도 가운데서 손양원 목사님을 먼저 썼습 니다. 그는 정치 사상이나 민족 사상은 하나도 아니고 순전히 전인류 사상으로서 끝까지 그는 주님을 따라서 갔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많은 고문 고형 당했지마는서도 끝까지 주님만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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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설교말고도 백목사님께서는 손양원목사님을 존경하셨고.... 또 손양원목사님에 대해서 설교도중에 많은 말씀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손양원목사님과 백영희 목사님과는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으신지요.....


손목사님 살아생전에 백목사님께서 직접적으로 손목사님을 뵙지 못하셨다면..... 그렇게 자주 인용하시거나.... 손목사님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할수 없다고 봅니다.


위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손목사님에 대해서 백목사님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신듯하는데..... 손목사님 살아계실때 백목사님과 한번이라도 만나 서로의 교신이 있었는지 궁금하며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기철목사님과 백목사님과는 어느정도의 교분이 있었는지...


마지막으로 백목사님 생애에 고신의 한상동목사님에 대해 백목사님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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