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몰랐던 소식입니다. 대구공회에서 시무투표의 형태가 있었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 분류 |
|---|
yilee
0
2002.08.24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시무투표-]
--------------------------------------------------------------------------------------------
1.부산공회 외에 시무투표의 형태가 남아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이곳에서 부산공회 외에는 시무투표가 남아 있지 않다고 '단정'을 할 때는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시행될 리가 없는데 듣고 보니 그런 곳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고 역시 숨은 7천의 의인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이 없다고 단정할 때는 그리 쉽게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합리화로 보지 마시고 자세히 들어보신다면 이해될 면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던 시무투표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시행한다는 점은 대단히 반갑습니다만 시무투표가 시무투표로 시행되려면 몇 가지 본질적인 문제점을 알아야 하고 이런 점을 감안해서 결정했다면 이곳이 말하는 시무투표에 해당이 되겠으나 시무투표의 본질적인 문제가 흐려졌다면 이곳이 말하는 시무투표에서는 제외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곳은 비록 이곳이 말하는 시무투표가 아닐지라 해도 '시무투표'라는 흔적이 대구공회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으니 이 면에 대하여는 참으로 반갑게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잠깐 훑어보겠습니다.
2.이전 시무투표제에 비하여 질문자께서는 보다 나은 시무투표제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우선 시무제도 자체에 대하여는 좋다고 보시는 것이 질문자 교회의 입장 같습니다. 그러나 서목사님의 시무투표 사태에서 대단히 문제점이 많은 것을 지적하시고 그런 문제점을 보완하여 원래 시무투표의 좋은 취지를 살려 나가신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이제 원래 총공회에서 시행되는 시무투표와 질문자께서 수정 보완되었다고 소개한 시무투표를 비교하겠습니다.
①시무투표의 투표권자를 공동의회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 했다는 개선안에 대하여
시무투표의 투표권자가 공동의회 정식회원인 세례교인에 한하여 주어진다면, 이는 '백영희신앙노선'인 총공회의 기본개념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시무투표 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배제시키느냐는 점만 지나치게 연구하다가 더 중요한 문제를 야기시켰다는 것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소뿔을 뽑다가 소를 잡아버린 실수라고 하겠습니다.
공동의회 정식 회원은 세례교인입니다. 물론 일반 장로교 헌법은 근본적으로 세례교인만 교인입니다. 세례교인이 아닌 사람은 막말로 말하면 장로교에서는 사람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인간 구원의 본질과 교회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오해했다는 것이 총공회 신앙노선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을 일반장로교의 일부로 보지 않고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로 나누는 차원에서 총공회를 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는 본래 그 출발의 색채가 귀족정치입니다. 사람다운 사람, 신사같은 사람, 제법 배워서 기본 자세가 되어 있고 앉을 자리 설 자리를 아는 사람이 다닐 교회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은 장로교에서 출발했고 장로교의 중요교리에서 대단히 큰 은혜를 받고 또 배웠지만, 교회의 근본 구성과 운영을 일정한 교육과 양식을 갖춘 사람으로 한정하고 또 교회 책임을 귀족적으로 신사적인 사람에게 맡기며 더구나 교회의 운영을 의회민주주의와 같이 운영하는 것을 아주 반대하는 편입니다. 인간 구원의 현장을 너무 몰랐고, 악령의 교회 접수법이 어디로 통하여 오는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너무 순수하고 착하고 교양있는 학자들이 만든 교파라 그렇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례받은 교인만이 교역자 신임을 두고 시무투표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일단 총공회 시무투표와 이름은 같지만 그 본질적 내용이 너무 달라 우리가 말하는 시무투표라고 하기가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②물론 세례교인으로 한정을 할 때는 그 부작용 때문이셨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부교회 서목사님의 시무투표에서 중간반 학생들의 참여로 문제가 야기 되었다고 들으셨고 또 그리 보실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중간반 학생들이 아니라 중간반 학생들을 지도하는 중간반 반사들이 서목사님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중간반사들이 학생들을 동원하여 반대표를 증가시키지 않았다면 그렇게 투표로 표시하는 대신 파이프를 들고 강단위로 쫓아 올라 갔을 것입니다. 차라리 동원한 학생들의 숫자로 반대하는 소수의 반대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 줄 알고 육탄투쟁을 벌이기 이전 그 내면상황을 파악하고 참고했더라면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야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시는 분들의 숫자가 적지만, 원래 시무투표라는 것은 인원동원이 허용되고 장려되어 있습니다. 30여명도 채 안되는 시골교회에 반대하는 집사님들이 불신자 집안을 동원하여 70여명이 넘는 출석을 기록하며 시무불신임을 통과시킨 경우가 1988년 백목사님 생전에 있었습니다. 그 동원은 문제가 있지만 금지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렇게까지 동원해서라도 폭력이나 그 이상의 방법으로 분출되지 않고 투표로 분출되면 그것을 참고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몇 명이 반대하느냐는 것보다 그 반대하는 사람의 반발강도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까지 고려한 것이 동원 가능의 방법입니다.
말이 쉬워 그렇지 정작 동원을 해보려면 다른 곳과 달라서 교회 투표 동원이란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그 방법을 사용할 정도로 반대측이 반대를 한다면 그 반대하는 사람의 숫자는 그 반대하는 사람 머리수로만 계산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간반 학생들의 동원이 있었다는 것은, 서부교회 시무투표 분란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표출된 현상일 뿐이고 정작 그 원인은 그 내부에 있었으며 그 내부 폭발이 조용하게 숫자로 표시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살펴보실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②중간반 학생의 범위는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일정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기억하신 것이 대체로 맞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도 중간반 예배에 참석하도록 한 경우도 있으며 마지막에는 대학생도 중간반 학생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지금은 장년반으로도 중간반에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 '중간반'은 중고교 학생을 지도하는 중간반이라기 보다 중간반을 지도했던 분들이 중간반 학생과 중간반 출신 교인들을 신앙의 한 노선으로 지도하며 나가는 서부교회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무투표 때 '중간반학생'도 투표권이 있다고 되어 있지 않고 '중학교 1학년 학생'이상이면 투표권이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광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통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면 이는 개별적 문제일 뿐이고 원 취지는 중학생이면 이미 사춘기에 들어서게 되면서 생각하는 사고도 독립적이기 때문에 완전 부모에게 맡겨지며 길러지던 때와 달리 자기 목회자에 대하여 충분히 찬 반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초등학교 1학년이 교대 졸업한 교사를 어찌 평가하겠냐고 할지 몰라도 그 초등생이 '가' '나' '다'를 쓸 줄은 몰라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잘 가르치더라 답답하더라 저 선생님이 더 잘하더라 하는 판단은 아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학교를 6년 잘 통과한 학생이 교회 출석한지 1년밖에 안되는 세례받은 장년반보다 나은 경우가 허다하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며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무투표의 중간반 학생을 포함하는 이유입니다.
③중간반이 시무투표에서 집단행동한 것은 잘못이라 볼 수 없습니다.
중간반사 뿐 아니라 서부교회의 구역장을 포함 다른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하고 지도할 수 있는 분들은 누구에게든지 자기 신앙을 지도할 교역자에 대하여 그 찬과 반에 대한 지도를 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하기 싫다는 것을 강제로 한다든지 돈이나 다른 방법이 동원되었다면 잘못이겠으나 설득과 설명으로 이해시켜 그들로 하여금 반대를 스스로 하게끔했다면 이는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찬성측도 역시 그리했습니다. 그러나 반대측이 더 열심히 했고 성공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찬성측은 찬성측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양측을 어느 누구보다 그 내부로 알고 있을 위치에 있습니다. 양측이 꼭같이 죽자고 찬과 반을 두고 노력했으며 실력이 부족하고 열심이 부족해서 진 것입니다. 양측은 시무투표를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을 했습니다.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미움으로 했는데, 한쪽만 그렇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연구적이지 못하다는 입장입니다.
④재론되는 이야기지만, 세례받은 무흠교인만이 투표권이 있다는 것은 좀더 고려할 문제입니다.
본 답변자는 일반 장로교 뿐 아니라 여러 교단과 교회들을 안팎으로 많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장로교 헌법 비교 연구를 서부교회 십일조 회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과분한 연구비를 받으며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교계의 어떤 외부 학자들과도 총공회의 행정노선과 일반 교단의 문제점을 두고 비교한 적이 적지 않습니다.
'무흠교인'의 '무흠'의 의미를 아시는지요? 세례교인의 규정, 6개월 무흠교인 등등 일반 장로교의 헌법은 한국교회 50년 분리 투쟁역사의 제일 중심에 서 있습니다. 교회 헌법이란 주먹을 사용하지 말고 있는 힘껏 싸워보라는 투쟁방법이지 그것이 교회의 화평과 복음운동의 건전한 면에 필요하다는 것은 아예 존재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총공회는 그 출발 첫 발언에서 '성경법'만으로 법을 삼겠다고 한 것인데, 이는 무식한 백목사님이 무식해서가 아니고 고신 15년 교권투쟁사를 그 한가운데에서 잘 살폈고 특별한 지혜와 영안으로 교회 정치의 정곡을 바로 찌른 노선 발표였습니다. 백목사님 인간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전적 보여주셔서 본 기적이라고 본인은 평가하고자 합니다.
⑤서부교회 시무투표가 공동의회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미 교회가 아니겠지요.
이런 인식이 백영희신앙노선의 기본 시각이기 때문에 총공회는 그 특별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교회가 교회로 존립이 되지 않을지라도 교회가 걸어갈 신앙의 근본노선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신앙노선을 붙들지 예배당을 붙들지 않으며 진리의 길을 잡지 사람을 모아두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신앙걸음에 최종 판단은 자기가 해야 합니다. 그것을 세례받은 분들에게 위임하여 그들의 결정에 내 구원을 맡긴다는 것은 총공회 신앙노선이 아닙니다. 장로님들의 회의체인 당회에 맡기지도 않습니다. 목회자들의 회인 교역자회에도 맡기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성자들의 회의인 추기경회에도 맡기지 않고 당대 최고 신앙가인 교황에게도 맡기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의 최종 결정은 자기가 한다는 것을 두고 개인신앙자유라고 합니다. 사실 이 개인신앙자유 원칙은 장로교의 출발정신 제1호이며 모든 장로교 헌법의 제일 첫 페이지에 올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교 헌법의 다음 페이지부터는 이 원칙을 없애는 규정밖에 없습니다.
신앙자유와 함께 개교회는 교회자유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가 조금이라도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신앙근본 원칙입니다. 그래서 헌법 첫장에는 전부 이것을 기록해두지만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개교회 속박 규정과 개인 속박 규정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단체타락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리의 원칙대로 나가다가 분규가 나면 나는 것이 주의 뜻이고 교회가 공중분해되면 되는 것이 우리의 신앙걸음입니다. 사람을 모아두고 붙들어 놓기 위해서 성경에 없는 법이나 신앙노선에 틀린 방법이라도 동원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총공회는 개인신앙자유 개교회자유주의이며 이런 뜻을 분명히 교인과 교회의 모임이 바로 '공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원칙을 변경해서라도 조직과 운영을 해 나가려 한다면 일단 '총공회'라는 이름은 떼놓아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공동의회가 적어도 교회의 안정을 위한 최소 조처는 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질문자는 아마 당분간 답변자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공동의회라는 이름으로 교회가 모여지고 움직인다면 이미 교회는 교권투쟁과 세상세력으로 끝장나는 바로 다음 모습을 보셨으면 합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는 것은 이제 세상 범위이므로 세상에게 물어보고 세상사를 보면 너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주총회, 각종단체의 이사회, 일반 기독교계의 총회 노회의 임원을 했던 분들은 답변자의 이런 몇 주장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은 공동의회제도로, 당회제도로, 또 헌법적 운영으로 수십년씩 모든 일을 다 해보았고 또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안된다는 것은 알지만 그 해결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현상유지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모든 단점을 파악하고 그 해결의 길을 내놓은 것이 바로 백목사님의 행정노선입니다. 이런 점에서 총공회 신앙노선이 비교우위적으로 '최고'노선임을 증명할 일은 참으로 많습니다.
질문 내용은 간단하나 총공회 신앙노선의 근본적인 문제가 대단히 많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대구공회의 신앙노선은 최근 복구주의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총공회'와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이 강조되고 있지만 어느 하나도 총공회 신앙노선의 본질적 연구와 정리는 전혀 없이 그냥 과거 회상적 감상주의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질문자에 대한 개인적 공방이 아님을 양해해 주시고, 대구공회 소속 어느 교회가 몇 가지 개선된 시무투표의 시행이 있었다는 소식 자체를 두고, 총공회 신앙노선의 원 취지에서 살펴본 몇 가지 비판이었다고 보셨으면 합니다.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시무투표-]
--------------------------------------------------------------------------------------------
1.부산공회 외에 시무투표의 형태가 남아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이곳에서 부산공회 외에는 시무투표가 남아 있지 않다고 '단정'을 할 때는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시행될 리가 없는데 듣고 보니 그런 곳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고 역시 숨은 7천의 의인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이 없다고 단정할 때는 그리 쉽게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합리화로 보지 마시고 자세히 들어보신다면 이해될 면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던 시무투표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시행한다는 점은 대단히 반갑습니다만 시무투표가 시무투표로 시행되려면 몇 가지 본질적인 문제점을 알아야 하고 이런 점을 감안해서 결정했다면 이곳이 말하는 시무투표에 해당이 되겠으나 시무투표의 본질적인 문제가 흐려졌다면 이곳이 말하는 시무투표에서는 제외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곳은 비록 이곳이 말하는 시무투표가 아닐지라 해도 '시무투표'라는 흔적이 대구공회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으니 이 면에 대하여는 참으로 반갑게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잠깐 훑어보겠습니다.
2.이전 시무투표제에 비하여 질문자께서는 보다 나은 시무투표제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우선 시무제도 자체에 대하여는 좋다고 보시는 것이 질문자 교회의 입장 같습니다. 그러나 서목사님의 시무투표 사태에서 대단히 문제점이 많은 것을 지적하시고 그런 문제점을 보완하여 원래 시무투표의 좋은 취지를 살려 나가신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이제 원래 총공회에서 시행되는 시무투표와 질문자께서 수정 보완되었다고 소개한 시무투표를 비교하겠습니다.
①시무투표의 투표권자를 공동의회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 했다는 개선안에 대하여
시무투표의 투표권자가 공동의회 정식회원인 세례교인에 한하여 주어진다면, 이는 '백영희신앙노선'인 총공회의 기본개념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시무투표 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배제시키느냐는 점만 지나치게 연구하다가 더 중요한 문제를 야기시켰다는 것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소뿔을 뽑다가 소를 잡아버린 실수라고 하겠습니다.
공동의회 정식 회원은 세례교인입니다. 물론 일반 장로교 헌법은 근본적으로 세례교인만 교인입니다. 세례교인이 아닌 사람은 막말로 말하면 장로교에서는 사람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인간 구원의 본질과 교회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오해했다는 것이 총공회 신앙노선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을 일반장로교의 일부로 보지 않고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로 나누는 차원에서 총공회를 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는 본래 그 출발의 색채가 귀족정치입니다. 사람다운 사람, 신사같은 사람, 제법 배워서 기본 자세가 되어 있고 앉을 자리 설 자리를 아는 사람이 다닐 교회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은 장로교에서 출발했고 장로교의 중요교리에서 대단히 큰 은혜를 받고 또 배웠지만, 교회의 근본 구성과 운영을 일정한 교육과 양식을 갖춘 사람으로 한정하고 또 교회 책임을 귀족적으로 신사적인 사람에게 맡기며 더구나 교회의 운영을 의회민주주의와 같이 운영하는 것을 아주 반대하는 편입니다. 인간 구원의 현장을 너무 몰랐고, 악령의 교회 접수법이 어디로 통하여 오는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너무 순수하고 착하고 교양있는 학자들이 만든 교파라 그렇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례받은 교인만이 교역자 신임을 두고 시무투표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일단 총공회 시무투표와 이름은 같지만 그 본질적 내용이 너무 달라 우리가 말하는 시무투표라고 하기가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②물론 세례교인으로 한정을 할 때는 그 부작용 때문이셨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부교회 서목사님의 시무투표에서 중간반 학생들의 참여로 문제가 야기 되었다고 들으셨고 또 그리 보실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중간반 학생들이 아니라 중간반 학생들을 지도하는 중간반 반사들이 서목사님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중간반사들이 학생들을 동원하여 반대표를 증가시키지 않았다면 그렇게 투표로 표시하는 대신 파이프를 들고 강단위로 쫓아 올라 갔을 것입니다. 차라리 동원한 학생들의 숫자로 반대하는 소수의 반대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 줄 알고 육탄투쟁을 벌이기 이전 그 내면상황을 파악하고 참고했더라면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야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시는 분들의 숫자가 적지만, 원래 시무투표라는 것은 인원동원이 허용되고 장려되어 있습니다. 30여명도 채 안되는 시골교회에 반대하는 집사님들이 불신자 집안을 동원하여 70여명이 넘는 출석을 기록하며 시무불신임을 통과시킨 경우가 1988년 백목사님 생전에 있었습니다. 그 동원은 문제가 있지만 금지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렇게까지 동원해서라도 폭력이나 그 이상의 방법으로 분출되지 않고 투표로 분출되면 그것을 참고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몇 명이 반대하느냐는 것보다 그 반대하는 사람의 반발강도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까지 고려한 것이 동원 가능의 방법입니다.
말이 쉬워 그렇지 정작 동원을 해보려면 다른 곳과 달라서 교회 투표 동원이란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그 방법을 사용할 정도로 반대측이 반대를 한다면 그 반대하는 사람의 숫자는 그 반대하는 사람 머리수로만 계산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간반 학생들의 동원이 있었다는 것은, 서부교회 시무투표 분란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표출된 현상일 뿐이고 정작 그 원인은 그 내부에 있었으며 그 내부 폭발이 조용하게 숫자로 표시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살펴보실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②중간반 학생의 범위는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일정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기억하신 것이 대체로 맞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도 중간반 예배에 참석하도록 한 경우도 있으며 마지막에는 대학생도 중간반 학생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지금은 장년반으로도 중간반에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 '중간반'은 중고교 학생을 지도하는 중간반이라기 보다 중간반을 지도했던 분들이 중간반 학생과 중간반 출신 교인들을 신앙의 한 노선으로 지도하며 나가는 서부교회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무투표 때 '중간반학생'도 투표권이 있다고 되어 있지 않고 '중학교 1학년 학생'이상이면 투표권이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광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통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면 이는 개별적 문제일 뿐이고 원 취지는 중학생이면 이미 사춘기에 들어서게 되면서 생각하는 사고도 독립적이기 때문에 완전 부모에게 맡겨지며 길러지던 때와 달리 자기 목회자에 대하여 충분히 찬 반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초등학교 1학년이 교대 졸업한 교사를 어찌 평가하겠냐고 할지 몰라도 그 초등생이 '가' '나' '다'를 쓸 줄은 몰라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잘 가르치더라 답답하더라 저 선생님이 더 잘하더라 하는 판단은 아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학교를 6년 잘 통과한 학생이 교회 출석한지 1년밖에 안되는 세례받은 장년반보다 나은 경우가 허다하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며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무투표의 중간반 학생을 포함하는 이유입니다.
③중간반이 시무투표에서 집단행동한 것은 잘못이라 볼 수 없습니다.
중간반사 뿐 아니라 서부교회의 구역장을 포함 다른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하고 지도할 수 있는 분들은 누구에게든지 자기 신앙을 지도할 교역자에 대하여 그 찬과 반에 대한 지도를 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하기 싫다는 것을 강제로 한다든지 돈이나 다른 방법이 동원되었다면 잘못이겠으나 설득과 설명으로 이해시켜 그들로 하여금 반대를 스스로 하게끔했다면 이는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찬성측도 역시 그리했습니다. 그러나 반대측이 더 열심히 했고 성공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찬성측은 찬성측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양측을 어느 누구보다 그 내부로 알고 있을 위치에 있습니다. 양측이 꼭같이 죽자고 찬과 반을 두고 노력했으며 실력이 부족하고 열심이 부족해서 진 것입니다. 양측은 시무투표를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을 했습니다.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미움으로 했는데, 한쪽만 그렇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연구적이지 못하다는 입장입니다.
④재론되는 이야기지만, 세례받은 무흠교인만이 투표권이 있다는 것은 좀더 고려할 문제입니다.
본 답변자는 일반 장로교 뿐 아니라 여러 교단과 교회들을 안팎으로 많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장로교 헌법 비교 연구를 서부교회 십일조 회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과분한 연구비를 받으며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교계의 어떤 외부 학자들과도 총공회의 행정노선과 일반 교단의 문제점을 두고 비교한 적이 적지 않습니다.
'무흠교인'의 '무흠'의 의미를 아시는지요? 세례교인의 규정, 6개월 무흠교인 등등 일반 장로교의 헌법은 한국교회 50년 분리 투쟁역사의 제일 중심에 서 있습니다. 교회 헌법이란 주먹을 사용하지 말고 있는 힘껏 싸워보라는 투쟁방법이지 그것이 교회의 화평과 복음운동의 건전한 면에 필요하다는 것은 아예 존재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총공회는 그 출발 첫 발언에서 '성경법'만으로 법을 삼겠다고 한 것인데, 이는 무식한 백목사님이 무식해서가 아니고 고신 15년 교권투쟁사를 그 한가운데에서 잘 살폈고 특별한 지혜와 영안으로 교회 정치의 정곡을 바로 찌른 노선 발표였습니다. 백목사님 인간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전적 보여주셔서 본 기적이라고 본인은 평가하고자 합니다.
⑤서부교회 시무투표가 공동의회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미 교회가 아니겠지요.
이런 인식이 백영희신앙노선의 기본 시각이기 때문에 총공회는 그 특별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교회가 교회로 존립이 되지 않을지라도 교회가 걸어갈 신앙의 근본노선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신앙노선을 붙들지 예배당을 붙들지 않으며 진리의 길을 잡지 사람을 모아두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신앙걸음에 최종 판단은 자기가 해야 합니다. 그것을 세례받은 분들에게 위임하여 그들의 결정에 내 구원을 맡긴다는 것은 총공회 신앙노선이 아닙니다. 장로님들의 회의체인 당회에 맡기지도 않습니다. 목회자들의 회인 교역자회에도 맡기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성자들의 회의인 추기경회에도 맡기지 않고 당대 최고 신앙가인 교황에게도 맡기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의 최종 결정은 자기가 한다는 것을 두고 개인신앙자유라고 합니다. 사실 이 개인신앙자유 원칙은 장로교의 출발정신 제1호이며 모든 장로교 헌법의 제일 첫 페이지에 올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교 헌법의 다음 페이지부터는 이 원칙을 없애는 규정밖에 없습니다.
신앙자유와 함께 개교회는 교회자유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가 조금이라도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신앙근본 원칙입니다. 그래서 헌법 첫장에는 전부 이것을 기록해두지만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개교회 속박 규정과 개인 속박 규정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단체타락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리의 원칙대로 나가다가 분규가 나면 나는 것이 주의 뜻이고 교회가 공중분해되면 되는 것이 우리의 신앙걸음입니다. 사람을 모아두고 붙들어 놓기 위해서 성경에 없는 법이나 신앙노선에 틀린 방법이라도 동원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총공회는 개인신앙자유 개교회자유주의이며 이런 뜻을 분명히 교인과 교회의 모임이 바로 '공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원칙을 변경해서라도 조직과 운영을 해 나가려 한다면 일단 '총공회'라는 이름은 떼놓아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공동의회가 적어도 교회의 안정을 위한 최소 조처는 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질문자는 아마 당분간 답변자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공동의회라는 이름으로 교회가 모여지고 움직인다면 이미 교회는 교권투쟁과 세상세력으로 끝장나는 바로 다음 모습을 보셨으면 합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는 것은 이제 세상 범위이므로 세상에게 물어보고 세상사를 보면 너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주총회, 각종단체의 이사회, 일반 기독교계의 총회 노회의 임원을 했던 분들은 답변자의 이런 몇 주장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은 공동의회제도로, 당회제도로, 또 헌법적 운영으로 수십년씩 모든 일을 다 해보았고 또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안된다는 것은 알지만 그 해결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현상유지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모든 단점을 파악하고 그 해결의 길을 내놓은 것이 바로 백목사님의 행정노선입니다. 이런 점에서 총공회 신앙노선이 비교우위적으로 '최고'노선임을 증명할 일은 참으로 많습니다.
질문 내용은 간단하나 총공회 신앙노선의 근본적인 문제가 대단히 많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대구공회의 신앙노선은 최근 복구주의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총공회'와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이 강조되고 있지만 어느 하나도 총공회 신앙노선의 본질적 연구와 정리는 전혀 없이 그냥 과거 회상적 감상주의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질문자에 대한 개인적 공방이 아님을 양해해 주시고, 대구공회 소속 어느 교회가 몇 가지 개선된 시무투표의 시행이 있었다는 소식 자체를 두고, 총공회 신앙노선의 원 취지에서 살펴본 몇 가지 비판이었다고 보셨으면 합니다.
[노선/공회] 궁금합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시무투표-]
--------------------------------------------------------------------------------------------
목사님 평안하신지요....
저는 서부교회 교인입니다..
그리고 서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궁금한것은 시무투표에 대한 목사님에 행동이 옳은것인지 궁금하구요...
그안에 숨어있는 내막도 궁금합니다...
백목사님 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정말 설교하실때 서목사님은 진실한분인것 같은데..
제가모르는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하구요..
여기에 들어 올때마다 서목사님에대한 불신이 생기는것은 왜인지...
이영인목사님께서 알고 판단하시는 서목사님에 대한 견해를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목사님 건강하세요....
---------------------------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시무투표-]
--------------------------------------------------------------------------------------------
목사님 평안하신지요....
저는 서부교회 교인입니다..
그리고 서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궁금한것은 시무투표에 대한 목사님에 행동이 옳은것인지 궁금하구요...
그안에 숨어있는 내막도 궁금합니다...
백목사님 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정말 설교하실때 서목사님은 진실한분인것 같은데..
제가모르는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하구요..
여기에 들어 올때마다 서목사님에대한 불신이 생기는것은 왜인지...
이영인목사님께서 알고 판단하시는 서목사님에 대한 견해를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목사님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