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총에 신앙을 담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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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총에 신앙을 담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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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가 밥을 입으로 먹는다고 교인은 밥을 귀로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은, 타락한 후에도 밥을 먹고 말을 하는 자연 은혜의 기관으로 주셨으니 그렇게 이용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달밤을 이용해서 책을 읽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것이고, 달밤을 이용해서 도적질을 하러 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달밤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어떻게 이용을 했는지, 용도 문제입니다.

전체적으로 처음 타락했을 때는 자연은총 중에서 신앙으로 이용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 전에는 사람들이 나무처럼 오래 살았습니다. 세월 속에 사람들은 점점 신앙과 관계 없거나 신앙과 반대 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극단적이 되어 있습니다.

노래의 경우, 불신자가 제 정신을 차리고 부르면 부모를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려 하면서 하나님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이런 면도 잘못 악화가 되어 지금은 순간에 자기 감정 하나만 자극하여 즐거우면 부모나 주변이나 사회는 물론 인생의 근본 문제를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불신자가 부모를 그리는 노래가 예전에는 많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 해도 장난삼아 부르는 대상일 뿐입니다. 찬송은 자연 속에 은혜를 담을 것을 찾게 됩니다. 부모를 그리는 노래에는 애절함이 있습니다. 그 애절함을 울리게 만드는 곡은 찬송 중에 애절함이 필요한 부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는 곡의 분위기에는 주님 떠난 우리의 신앙이 허무함을 담기가 좋습니다.

마치 강한 콘크리트로 불신 사회는 빌딩을 지어 사회를 힘있게 만들지만 우리는 그 강한 콘크리트로 예배당의 바닥과 벽에 사용하여 안전하게 예배를 드리는 원리와 같습니다. 우리는 대변과 거름을 가지고 예배당 벽과 바닥에 칠하지 않습니다. 같은 자연이라 해도 그 것은 땅 속에 묻어 썩히고 분해가 되고 나면 그 악취는 날라 가게 만들고 그 요소만 식물의 먹이로 줍니다. 찬송도 세상 재료 중에 우리의 신앙을 표시할 때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다만 세상 재료 중에 신앙의 표현에 아예 갖다 쓸 수 없는 대변과 거름들이 있습니다. 요즘 복음성가는 물론 요즘 찬송가까지도 그런 상황입니다.


불신 사회의 노래가 우리의 찬송 곡과 같거나 비슷하다면 바로 이런 원리로 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곡뿐 아니라 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언어 표현 중에 '깊다' '높다' '기쁘다' '슬프다'라는 단어들이 세상의 문학이나 각종 생활 언어에 사용이 됩니다. 우리가 찬송 가사를 만들 때 타락한 세상에 없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새 언어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 것은 하늘 나라에 가서 그렇게 할 것이고 세상에서는 세상 것을 사용합니다. 다만 세상 것을 자연은혜로 보고 그 자연은혜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우리의 여러 신앙에 담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조차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의 문화 속에서 만들어 진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따진다면 옛날 찬송은 클래식 세상 노래를 따라서 그렇게 노래풍이 되었으니 지금은 랩송처럼 찬송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막아 낼 수 있다고 보입니다. 예전의 클래식은 세상 것인데도 우리의 신앙에 찬송을 담아 낼 분위기로 적당하였고, 지금 노래는 마약에 찌든 인간이 쥐약을 먹고 발악을 하는 세상이므로 찬송을 그렇게 따라 가려 한다면 대변과 거름으로 예배당에 내장을 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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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회 찬송가 게시판의 이한나 사모님이 부르는 '저 목자여 깊은 잠을 깨어 일어나'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옆에서 다른 분이 찔레꽃 동요와 같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주기철 목사님의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은 불신자의 '사의 찬미' 곡입니다. 유재헌 목사님의 찬송들도 대체 그 시대 곡들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정통 찬송이라고 할 수 있는 '피난처 있으니, God is our refuge'라는 찬송은 영국의 국가인 'God save the Queen'이라는 찬송가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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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까지의 옛날 찬송은 세상의 클래식 고전 노래와 같고, 20세기 중반쯤 나온 찬송들은 조금 가벼운 듯하면서 당시 세상 노래를 배끼거나 비슷합니다. 지금은 속도가 아주 빠른 젊은이들의 요즘 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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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의 곡은 시대라는 그릇으로 담았다고 보여집니다.
동요와 찬송가가 비슷한 경우
연구회 찬송가 게시판의 이한나 사모님이 부르는 '저 목자여 깊은 잠을 깨어 일어나'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옆에서 다른 분이 찔레꽃 동요와 같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주기철 목사님의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은 불신자의 '사의 찬미' 곡입니다. 유재헌 목사님의 찬송들도 대체 그 시대 곡들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정통 찬송이라고 할 수 있는 '피난처 있으니, God is our refuge'라는 찬송은 영국의 국가인 'God save the Queen'이라는 찬송가와 같습니다.

19세기까지의 옛날 찬송은 세상의 클래식 고전 노래와 같고, 20세기 중반쯤 나온 찬송들은 조금 가벼운 듯하면서 당시 세상 노래를 배끼거나 비슷합니다. 지금은 속도가 아주 빠른 젊은이들의 요즘 풍입니다.


찬송의 곡은 시대라는 그릇으로 담았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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