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교리에 대하여 중요한 면을 두루 이해한 좋은 글이라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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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교리에 대하여 중요한 면을 두루 이해한 좋은 글이라고 보았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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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경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계신 분의 책을 소개하신 것 같습니다.


①소개하신 글은, 믿는 사람의 천국 모습이 각각 다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믿은 이후 불순종으로 산 것만큼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믿는 사람이 천국에서 인격과 능력 면에서 각기 다를 것을 말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믿은 이후에도 세상에서 열심히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②교리적으로 평가를 한다면


한번 중생된 사람은 그 사람의 불순종에 상관없이 천국에 가는 것은 확정하고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의 영혼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생교리와 기본구원의 절대성을 바로 본 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심판에서, 믿는 우리는 각각 평생 자기가 살았던 생활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계산을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행위에 대한 보응과 보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설구원의 차이점을 바로 본 글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은 이후에 왜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너무도 잘 말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분리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힘써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글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전반을 명쾌하게 이해하는 분입니다.


2.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적 입장에서 소개하신 글을 비교 평가한다면


①건설구원의 초보적 단계에 있다고 보입니다.


현미경이 발견되면서 세포라는 존재를 비로소 알게 된 때가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인체를 여러 종류의 천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생물체는 세포라는 기본 단위로 되어 있다고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장차 상상 못할 의료 발전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지금은 우주만큼 복잡한 하나의 세포 내부를 완전 해체하여 설계도를 작성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소개한 내용만으로 볼 때, 그 책이 건설구원에 대하여 파악하고 있는 바는 현미경으로 세포를 처음 발견하던 때와 같은 초보적 수준이라고 보입니다. 물론 과거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의 깨달음이나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와 비교할 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②믿는 사람의 내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듯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내용과 분리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사람의 구성을 삼분으로 보고 그 삼분의 가운데 있는 요소가 마음이며, 그 마음이라는 것은 물질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해야만 건설구원의 중급으로 나아갈 수 있을 터인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내부 구성이 몸과 마음으로 된 물질과 영으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믿는 사람의 구원이 차이가 있다는 것만을 보았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초보적 단계라는 표현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사람의 내부 구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듯 합니다. 이 문제가 또렷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상호관계 차이점 비교 등에서도 총론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교리 전반에 대한 이해도 역시 아침 안개 속을 걸어야 하는 문제가 됩니다. 말하자면 X선 촬영기의 발견은 인체 내부를 손바닥처럼 보게 하였고 요즘 CT나 MRI는 인체 내부 모든 상황을 손금보듯 보게 했는데, 사람의 구성 요소에 대한 이해는 이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③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참으로 귀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교리역사의 흐름이 그 방향을 과거와 구별이 될 정도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새로 진행할 때, 바로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 함께 나가는 것은 몇 세대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신앙이 아니고는 어렵습니다. 이곳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고 전부를 배워서 알고 있기 때문에 착실한 학생 정도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질문에서 소개한 내용을 말한 분이 만일 스스로 깨달아 이렇게 주장을 했다면 비록 그 깨달음이 이 교리의 초보수준에 있다 할지라도 한 시대에 몇 명 나오지 않는 신앙일 것입니다.


참고로, 1985년 John Murray와 같은 조직신학 학자 또는 한 두 분의 다른 사람 서적에서도 혹 이런 유사한 표현이 지나간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는 바로는 이번 소개한 내용은 그 방향이 이곳과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결론적으로 평가한다면, 건설구원은 어느 교리체계 어느 신학과 접촉을 해도 그곳이 가진 모든 모순을 일거에 해결하는 열쇠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건설구원론은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이해될 때에야 비로소 그 역할을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삼분과 중생된 영은 범죄치 않음과 마음은 물질이라는 점이 체계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개하신 내용으로만 볼 때 구원론에 대한 설명만 있고 인간의 내적 요소가 비어 있습니다.


3.건설구원을 강조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는 희미해지고 인간의 수고가 강조되지 않는가?


①질문 뒷 부분을 우선 요약하겠습니다.


질문하신 분은, 교리적 체계에 따라 이론적으로 말하면 믿는 사람은 중생 이후 건설구원 문제로만 평생을 살아가게 되지만 건설구원을 강조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는 희미해지고 인간의 수고가 전면에 나오게 되는 면이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듯 합니다.


또한 구원론에 대한 교리적 체계가 비록 지식적으로 완비되어 있어도 정작 세상을 초월하고 진정 하나님과 동행하여 걸어갔던 참 신앙인들은 교리 체계를 정확하게 모르고도 오히려 이 교리 체계를 가진 사람보다 더 귀한 걸음을 능력으로 걸어갔던 것을 지적하신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우려하고 또 지적하신 내용을 잘못 파악했다면 재질문이나 보충질문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 이해를 잘못 했다 하더라도, 이런 의문은 많은 사람에 의하여 제기되는 것이므로 일단 몇 말씀을 드립니다.


②건설구원의 뿌리를 바로 이해한다면, 전적 은혜라는 면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임을 안다면 건설구원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전적 은혜면이라는 것이 흐려질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를 바로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면 예수님 연구 때문에 하나님 연구가 흐려지거나 소홀해 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건설구원도 그 외부는 인간의 노력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건설구원에 관련된 인간의 노력 중에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잊어버린 노력이 있다면 그 노력은 건설구원과 상관없는 인간의 인본행위일 뿐이고 바로 그 노력을 모아다 불사르는 것이 건설구원의 마지막 계산대인 그리스도의 심판대입니다. 평생 열심히 신앙생활에 힘쓰는 우리의 노력이, 외부에서 볼 때는 건설구원을 이룬 원동력같이 보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려 순종한 노력은 건설구원에 합류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려 움직이지 않은 행위는 어떤 신앙행위라 해도 전부 마7:21이후에 해당되는 헛수고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구조역학을 모르는 어린아이 눈에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은 바퀴의 수고요 바퀴의 능력입니다. 물론 분명히 맞는 말이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자동차 내부를 설계하고 구조역학에 정통한 기술자에게는 차체로 덮어 가루어 놓은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엔진이 자동차를 움직이는 수고요 능력일 것입니다. 차량을 움직인 타이어는 엔진으로부터 톱니바퀴 하나 하나에 맞물려 돌아간 것 뿐입니다.


우리가 자주 착각하는 것은, 엔진이 멈추었으나 여전히 내리막을 내려가고 있는 트럭과 그 옆에 벤즈엔진을 달고 내리막을 내려가는 승용차와 종종 구별을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차량의 구조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자동차의 미세한 움직임을 보고도 엔진이 멈춘 상태에서 활강하는 차량인지 엔진이 차량을 움직이고 있는지를 당장에 알아차립니다.


하나님께 100% 붙들려 움직인 것만 건설구원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열심히 뛰어 다닌 수고 전부를 건설구원으로 계산하는 착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됩니다. 따라서 건설구원의 성질과 성격을 바로 안다면 교만이란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고, 하나님의 전적 은혜에 붙들리기 위해 바짝 긴장하며 그분만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980년대 후반, 백목사님이 강조한 건설구원은 이렇게 하나님께 100% 붙들리는 노력과 수고를 재촉하고 있었는데 당시 해외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던 국내 정상급 신학자들은 '건설구원을 강조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희미해진다'고 양성원에서 반론을 끝까지 지피고 맞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해외에서 10여년 공부를 하되 건설구원의 개념이 없었던 일반 신학으로 자기의 신학을 삼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염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아마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간과 형편이 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질문자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건설구원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하여 총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③건설구원의 교리적 체계는 미흡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다간 종들도 있습니다.


교리적 체계에 정통한 사람들은, 대개 이론과 지식면으로 많은 사색과 연구를 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염려되는 것은, 실제 매 현실마다 닥치는 어려움 속에서 주님 동행을 체험하고 이로 인해 권능있는 종들로 살아가는 면이 적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리체계가 좀 미흡해도 기본적인 정통의 신앙에 확실한 사람들은, 현실에서 실행하며 말씀의 능력을 실제 체험하는 면이 훨씬 앞서 있을 것인데, 마지막 천국의 모습은 실행을 준비한 이론에 있지 않고 실행에 있음을 질문자께서 제일 마지막으로 지적한 것 같습니다.


대개 신학자보다 목회 일선에서 주님 의지하고 몸을 던져 살고 있는 분들의 신앙이 훨씬 깨끗하고 높고 또 귀한 것이 거의 전부일 것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부분에 대하여 아마 유례가 없을 만큼 강조하고 그 면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또 동감하고 있습니다. 우려하신 바로 그런 면 때문에 백영희신앙노선은 교계가 말하는 '신학'의 개념을 아주 삭제해 버리고 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 나오는 모든 교리체계와 이론은, 백목사님이 예배를 준비하고 설교를 하면서 깨달았던 것이며 또 교인을 심방하면서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서부교회 주일학교 운영이라는 이론서도, 주일학생을 전도하고 가르치고 심방하면서 깨달아지고 또 시행되었던 것을 그 훗날 책으로 요약을 한 것 뿐이지, 이론을 먼저 구성하고 그 이론에 따라 실험과 시행을 추가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의 모든 교훈과 교리체계가 다 그러합니다.


문제는, 이제 질문자가 마지막으로 지적하신 부분이 앞으로는 이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체계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교리의 형성은 실행과 순종의 결과였기 때문에 이 교리의 높음만큼이나 이 교리를 체계화 한 백목사님의 신앙이 높지만, 체계화 된 이 교리 노선에서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는 질문자의 지적은 항상 잊어서는 안 될 제1의 주의점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교리체계를 배우게 되었다 해도, 하나님 앞에 설 때 내 모습은 교리체계의 이론 파악에 있지 않고 그 교리 상에서 실행한 순종에 있기 때문입니다.


4.한 가지 덧붙이고, 또 한 가지 감사 말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일반 방문인을 위해 또 이곳에 좋은 주제를 주신 질문자께 드리고 싶은 것은, 교리 등 이론이 가진 위험성은 이제 말씀하신 질문자의 지적이 분명히 해당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바른 교훈 없이 바른 행위가 나올 수는 없다는 것도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점 때문에 교회사는 사실 교리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 손목사님이 건설구원 교리까지를 아셨더라면 사도 바울을 능가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할 정도일 것이고, 칼빈에게도 청교도들이 순교 당하던 환경이 주어졌더라면 칼빈은 순교자로 하나님 앞에 서셨을 것입니다.


질문에 앞서 답변하는 자신이 자신부터를 먼저 깊이 살펴볼 수 있도록 좋은 주제를 제공하신 질문자께 감사합니다. 질문자께서는 비록 질문을 하셨지만 그 내용은, 이곳과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어디를 향해 힘써야 할지를 깊이 깨우치는 선생의 말씀이 되셨습니다.
[건설구원] 건설구원에 대한 질문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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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의 불순종은 현재에서는 마음의 고통과 징계가 따를 것이며 주님이 재림시 그 분의 심판대에 설때에는 불로써 공력을 평가받고 이때 온전치 못한 부분들은 불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불순종자체는 하나님의 자녀가 행하든 마귀의 자녀가 행하든지 하나님앞에 무한히 악한 것이고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는데 그리스도인은 구속의 공로를 힘입은 사람들이므로 불순종으로 인해서 그 영혼의 해는 없을지라도 구속의 공로로 인한 의의 행실이 불순종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앞에서 반드시 직고해야하며 불로써 그 공력들이 드러나고 영원히 평가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이에 연관해서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는 점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옷입고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에는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듯이 그 인격과 능력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영원히 있다는 사실이다.그렇치 않고 만약 구원받았고 해서 그리스도안에서 순종한 사람과 그렇치 않은 사람과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방법에 어긋난다.바로 여기에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이 헛되지 않는 이유이며 더 나아가서 이는 지금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순종하는 삶의 중요성과 그 보상이 얼마나 확고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통치방법이다. -괄호부분은 번역자 양현모의 첨가부분-]


위의 부분은 저희 교회에서 하나님의 통치부분중 보상과 처벌부분중에서 영원한 형벌 부분을 번역한 다음 이 부분에 대한 번역자의 의견을 그리스도인의 삶에 연관시켜 생각해 본것입니다.

이 입장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백영희 신앙노선과 비교시에 어떤 보충부분이나 더 분별하고 더 세워져서 들어가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조언부탁드립니다.


또한가지 생각해서 여쭈어 볼 부분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통치방법중에서 처벌부분은 믿는 우리의 불순종에 대한 책임이라 확신하지만

그렇다고 이와반대로 보상의 부분과 상급의 부분을 사람의 구원의 실력차이로서

분별하는 것은 좋지만 바울의 고백대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한 높임이 잘 보여지지 않아서 혹이라도 인간에게 혹이라도 의가 돌아갈까봐 걱정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백영희 신앙에서 말씀하는 건설구원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이며 이에 대한 참된 반응은 참된 순종으로서 그 역사가 나타난다고 할때

건설 구원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높임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겸손뿐이라고 생각되며 또한 이런 것들을 능력으로 나타낸 분들이 손양원 목사님같은 분들이라고 여기는데 바로 여기에 교리적인 기독교 지식의 분별의 한계가 있지 않나 하는데...다시 말하면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건설구원부분까지도 분별하는 지식을 소유한다손 치더라도 이 역시 교리적인 체계로서의 가치이며 이만한 것을 나타낼수 있는 부분은 신앙밖에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칼빈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진리를 세웠어도 그 진리대로 살았던 부분들은 청교도들에게서 더 힘있게 나타났다고 저는 보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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