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가지 가르침을 주셨다고 읽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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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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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28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전도~]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전도-]/[-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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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적해 주신 내용을 2가지로 나누어 새겼습니다.
①첫 번째 지적은, '전도'를 강조해야 한다고 읽었습니다.
1185번의 답변 내용에서 이곳의 기본구원관은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정도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이곳의 입장이야 그럴 리가 없겠지만, 지나가는 평범한 분들이 읽을 때 그렇게 읽었다면 글을 적은 사람의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기본구원은 전적 은혜요 예정으로 되는 것이지만, 지적하신 말씀처럼 먼저 믿는 우리에게 '전도'를 명령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어느 면이든 부족하게 설명이 되었다면 이곳의 부족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믿게 되는 중생은 기본구원인데, 이 기본구원은 인간으로는 그 영이 죽어 있어 스스로는 어떤 노력을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구원하려고 애를 써도 헛수고라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시간 하나님이 직접 움직여서 살리는 것이니 인간 노력은 개입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그 설명 자체는 교리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문제는, 중생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그 설명만 하고 그치면, 전도는 헛수고라는 글로 끝이 난다는 점입니다.
중생의 본질은 하나님 단독의 행위이지만, 인간에게는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설명했어야 했고, 전도라는 기본구원을 왜 우리가 나서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을 했어야 했습니다. 설명하는 사람이 오른팔만 강조하다 보니까 듣는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는 왼팔이 없다고 오해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②두 번째 지적은, 복음에 수고하는 분들과의 관계를 강조했다고 읽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여러 면으로 수고하는 종들과 교회들이 있는데 이곳은 외부에 대하여 너무 부정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듯 합니다. 이곳에 대하여 좋은 시점에 지적을 해 주셨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계의 탈선과 타락은 집단적이며 전체적이라는 것은 이곳의 단정입니다만, 100%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을 받게 되면 할 말은 없게 됩니다.
이곳이 교계의 동반 타락에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면, 또 다른 곳에서도 자기 맡은 자리에서 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자기만 남았다고 알고 있었으나 그것은 엘리야가 알고 있는 범위였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달리 역사하도록 사명을 주신 7천명의 의인들이 있었습니다. 만일 이곳이 진정 엘리야처럼 혼자 남은 곳이라면, 그렇다 해도 이곳이 모르는 7천명의 의인들이 활동하는 복음 운동을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리적 입장이 아니라면, 아직도 이 나라에는 석원태목사님과 같이 타협 없이 보수 개혁신앙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 접촉할 기회가 없어 모르고 있을 과거 김현봉목사님과 같은 분들도 오늘 함께 살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곳이 다른 곳의 복음 수고를 인정하거나 또는 이곳과 다른 현실로 인도하는 분들에 대하여 감사해야 하는 것을 잊어 본 적은 없습니다.
이곳이 잡고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고 또 이곳이 그 장점 때문에 실수하기 쉬운 단점도 동시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지적을 받았을 때, 이곳은 바로 지적하신 분이 말씀하신 면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이런 면은, 지적하신 분과 또 이곳을 찾는 분들께서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①이곳의 답변이 모든 면을 다 고려하여 적기에는 시간과 장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전도가 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도라는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또 그 명령에 따라 전도를 해야만 하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에 따라 답변을 하다 보면 기본구원의 본질을 중심으로 살펴 볼 때가 있고 또 기본구원이 전달되는 과정에 전도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살펴 볼 때도 있습니다. 물론 양면을 다 고려해야 하고 또 답변이 질문 자체에 대하여 답변이 되는 동시에 관련 모든 사항을 포함하는 정리본이 되도록 작품 완성도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곳의 답변은 일반 홈과 달리 그 분량이 적지 않습니다. 교리적 문제점을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 않는 분들은 답변에 대하여 짧고 쉽게 적어달라고 하시지만, 이렇게 생각이 깊으신 분들이 제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하기 때문에 답변은 질문내용을 주제로 하여 전반적인 정리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중요한 면들을 함께 고려했다 하지만 일부 빠지는 부분이 있게 되는 것은 답변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이곳의 시간과 또 여기가 문의답변방이라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혹 이곳에 적는 답변 중 이번 지적하신 내용처럼 문제점이 발견되거나 또는 하나를 강조함으로 다른 신앙면에 손해가 예상되는 경우, 바로 그 답변 밑에다가 재질문이나 보충질문으로 반론 이의제기 등을 해 주시면 자연스럽게 그 부분을 포함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요는, 지적은 언제 어떤 형태로 해 주셔도 환영하지만 이해와 이런 요청을 드립니다.
②설명에서 빠지는 부분이 없도록, 근본적 해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은 20여년 이상 준비하고 정리했던 모든 자료를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신앙노선의 체계화를 위해 '조직신학' 정리를 하고 있는 바, 이 자료가 완성이 되면, 이곳에 들어오는 질문에 대하여는 해당 질문 내용에 집중하여 답변을 드리고 그 답변 내용에서 제기 될 수 있는 모든 주변 문제는 조직신학으로 정리한 자료에 해당되는 부분을 참고하시도록 안내하려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에서 인간의 노력이 필요한가를 질문 받게 되면, 죽은 영을 살리는 문제는 199% 하나님의 역사라고 단정하고 그 면에 대한 답변에 집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변에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 즉 '전도'의 필요성이나 그 의미 등에 대하여는 완비된 조직신학 자료에서 해당되는 부분을 안내하여 그곳을 참고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곳이 다른 복음 운동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입장도, 그 정리된 조직신학에서 교회론에 다 포함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곳이 이곳의 신앙노선을 강조하다가 다른 곳을 다 부정하는 듯하게 보일 수가 있을 때는, 그 면으로 오해가 없는 교회의 지체론을 소개하겠다는 것입니다.
③이곳의 답변은, 아직까지 현장 대응식으로 급조된 적은 없습니다.
이곳 '문의답변방'과 '쉬운문답방'에는 그동안 약 2천여건의 글들이 오고갔지만, 아직까지 어떤 질문에 대하여도 말로 땜질하고 넘어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답변드리는 모든 글은 많은 세월 속에서 수없이 살펴보았고 또 실제 그런지 지켜보았던 내용들입니다. 우선 답변자는 현재 가진 신앙과 반대 입장으로 나가던 때가 먼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소개하는 자료들을 두고 그 찬반에 대한 자문자답을 많이 거친 후 현재처럼 지금은 이곳에서 답변하는 신앙노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 도중 그 신앙단계에 따라 제기 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총괄하여 먼저 조직신학으로 정리를 했더라면, 지적하시는 분처럼 이곳을 사랑하고 또 생각이 깊은 분들에게 염려를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리가 다른 업무 때문에 오랫동안 늦어졌고 이곳 홈에서 질문을 먼저 받게 되어 이곳의 답변은 조직신학 정리를 위한 작업장의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덧붙이는 것은, 혹 다른 분들이 지적을 할 때 지적 받는 사람은 자기 입장에 대한 옹호 본능이 먼저 발동하게 되어 모처럼 자기를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곳도 외부 지적에 대하여 일단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계실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근본적으로 이곳이 먼저 정리한 자료들이 있었어야 했다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그렇다고 각 질문에 대하여 제기 될 수 있는 문제점 전부를 다 고려하여 답변을 하기에는 시간과 장소에 어려움이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리된 전체 교리가 먼저 제공되어야 했다는 것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지막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이번 지적을 받게 되면서 그 작업을 더 서둘러야 근본적으로 원인이 해결되겠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④교리 전반에 대한 정리본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전반적으로 교리와 신앙노선이 먼저 정리되고 제공되면, 혹 이곳에서 전도에 대한 필요성을 무시하는 발언이 있다 해도 그 정리된 교리와 이곳 답변을 비교하여 자가 수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리정리가 잘못 되었으면 그것을 고쳐야 할 것이고, 교리정리에서는 바로 말을 했는데 답변이 잘못 되었으면 다른 분들의 지적에 앞서 자기 글로 자기 글이 수정되고 비판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질문자께서 따로 수고 할 것도 없이, 정리본이 잘못되었으면 그곳에 지적을 하시면 되고, 또 정리본은 바로 되었으나 답변에 문제가 있으면 간단하게 양자 모순이 있다고만 하셔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이것으로 저것을 수정하고 저것으로 이것을 수정하면서 점점 더 나아질 것까지 기대를 하는 것이 본심일 것입니다.
3.지적하신 내용 중 '전도'에 대한 필요성은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중생이라는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단독 역사이지만, 먼저 믿는 사람에게 전도라는 사명을 맡기신 이유에 대한 교리적 입장입니다.
①'전도'는 하나님이 맡기셨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일단 말씀으로 명령한 것이면 순종부터 해놓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신앙은 자기 머리에서 이해되는 부분도 있으나 이는 극히 일부이고 신앙이란 근본적으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갓난아이가 제 엄마라는 것을 확인한 후 젖꼭지를 빠는 것이 아니고 또 그 젖꼭지를 빨아야 하는 이유를 알고 난 후라야 빠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빨고 봐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도는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대로, 성경의 명령입니다. 우리에게는 일단 그 명령을 따라 전도에 힘써 노력하면서 왜 전도를 명령했는지는 전도를 하면서 생각하고 또 전도를 한 뒤에 생각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실 신앙입니다. 십일조도 주일도 십계명도 다 그렇습니다.
②'전도'를 굳이 우리에게 맡긴 것은, 앞서 믿는 사람을 기르는 방편입니다.
모든 신앙문제가 다 그렇지만 특히 전도라고 하는 기본구원 제일의 행동을 우리 인간에게 맡긴 것은 기본구원의 본질과는 모순이 되는 듯 합니다. 그런데도 전도라는 행위를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뒤로는 하나님 혼자 단독으로 처리하는 이유는, 우리 앞서 믿는 사람을 통하여 그 뒷사람을 길러가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상에서 이런 저런 모순과 부족이 많지만, 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기 이룰 구원을 다 이루고 함께 서게 되는 날은, 우리 성도 전부를 하나님께서 개별적으로 분리해서 활동하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 전체를 한 몸과 같이 움직이게 하십니다. 거대한 단일 유기체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그 몸의 각 분야와 세포는 우리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혼자 할 수 있지만 일부러 우리를 통해 하시겠다는 것이 인간 창조의 근본 목적입니다.
자존자로서 전혀 부족이 없는데도, 불편하시게 이 모든 만물을 다 만드시고 운영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를 만드시고 그의 몸으로 영원히 활동할 수 있게 하시니 이 이상의 영광이 없고 존귀가 없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할 수 있는 일도 꼭 성도를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앞에 질문과 답변에서는 주로 기본구원에 대하여 말씀드렸지만, 건설구원도 역시 알고 보면 하나님 단독의 행위이지 인간이 인간의 노력으로 행하고 움직인 것은 전부가 인적요소이기 때문에 하늘나라로 옮겨져 갈 수는 없습니다.
기본구원도 건설구원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인데, 다만 건설구원은 누가 봐도 우리 노력으로 하는 것처럼 그런 형식 그런 모습을 하나님이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 등으로 우리를 재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말씀 때문에 우리 인간의 자기 노력으로 건설구원을 한다고 오해할 정도로 힘쓰고 있습니다.
③전도를 할 때 가져야 하는 자세는, 누가 나를 통해 믿을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꼭같이 봐야 합니다.
누가 택자인지 누구에게 하나님께서 이 순간 나의 전도 노력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로 역사하실지를 미리 말씀해 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 혼자 아시고 주권 결정하지만 그 중에서도 다른 것은 일부 알 수 있는 표시를 여러 가지로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절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중생이고 하나는 주님 만날 때입니다. 언제 누가 믿을지, 또 언제 죽을지 아니면 언제 예수님이 오실지에 대하여는 인간이 전혀 알지 못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강퍅한 사람은 언제 올지 모르니까 이 시간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또 하루를 허송하게 됩니다. 복있는 사람은 이런 말을 들을 때 언제인지 모르니까 오늘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생도, 누구에게 언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지 모르겠으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라고 했으니까 더욱 부지런하게 전하는 사람이 있고, 인간 계산으로 이 사람은 아닐 것이라 저 사람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이 전적 단독으로 역사하는 것이 중생인데, 다만 우리에게는 그 시점과 대상을 알리지 않고 그냥 열심히 전하기만 하라고 했고 또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다 이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때라고만 알고 움직이게 했습니다. 이 면을 알고 나면 모르고 그냥 열심을 낼 때보다 아는 가운데 자라간다는 말씀처럼 정말로 평생을 흔들리지 않고 전도에 힘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신앙의 현실입니다.
참고로, 이 교리 입장을 가지고 있는 공회는 이 교리 입장을 잘 모르고 단순히 전도와 선교에 전력하는 교회와 비교할 때,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는 비율이 아주 높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면으로 깨닫고 움직인 결과 중 하나가 주일학교 사역이었습니다. 절대 다수가 안 믿는 학생들을 순수하게 전도해서 데리고 왔지 행사나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교회 학생들이 이리 저리 몰릴 수 있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배제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지적하신 답변 내용이 비록 전도를 무시한다고 볼 정도였지만, 바로 그 교리 바탕에서 가지고 있던 전도의 의미와 필요성 그리고 그 전도를 위해 힘써야 할 바를 가르친 결과가 유래 없는 전도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이 곳의 설명이 누가 봐도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곳 신앙노선의 전반적인 면을 모르는 분들이 보면 오해할 점들이 많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혹 그런 분들께는 이제 마지막으로 전도에 대한 몇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 내용을 어떻게 포함시키느냐는 것으로 숙제를 삼겠습니다.
특히 질문자처럼 '전도에 사명감을 더 느끼는 분들께는 고개 숙여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전도-]/[-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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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적해 주신 내용을 2가지로 나누어 새겼습니다.
①첫 번째 지적은, '전도'를 강조해야 한다고 읽었습니다.
1185번의 답변 내용에서 이곳의 기본구원관은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정도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이곳의 입장이야 그럴 리가 없겠지만, 지나가는 평범한 분들이 읽을 때 그렇게 읽었다면 글을 적은 사람의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기본구원은 전적 은혜요 예정으로 되는 것이지만, 지적하신 말씀처럼 먼저 믿는 우리에게 '전도'를 명령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어느 면이든 부족하게 설명이 되었다면 이곳의 부족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믿게 되는 중생은 기본구원인데, 이 기본구원은 인간으로는 그 영이 죽어 있어 스스로는 어떤 노력을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구원하려고 애를 써도 헛수고라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시간 하나님이 직접 움직여서 살리는 것이니 인간 노력은 개입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그 설명 자체는 교리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문제는, 중생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그 설명만 하고 그치면, 전도는 헛수고라는 글로 끝이 난다는 점입니다.
중생의 본질은 하나님 단독의 행위이지만, 인간에게는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설명했어야 했고, 전도라는 기본구원을 왜 우리가 나서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을 했어야 했습니다. 설명하는 사람이 오른팔만 강조하다 보니까 듣는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는 왼팔이 없다고 오해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②두 번째 지적은, 복음에 수고하는 분들과의 관계를 강조했다고 읽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여러 면으로 수고하는 종들과 교회들이 있는데 이곳은 외부에 대하여 너무 부정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듯 합니다. 이곳에 대하여 좋은 시점에 지적을 해 주셨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계의 탈선과 타락은 집단적이며 전체적이라는 것은 이곳의 단정입니다만, 100%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을 받게 되면 할 말은 없게 됩니다.
이곳이 교계의 동반 타락에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면, 또 다른 곳에서도 자기 맡은 자리에서 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자기만 남았다고 알고 있었으나 그것은 엘리야가 알고 있는 범위였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달리 역사하도록 사명을 주신 7천명의 의인들이 있었습니다. 만일 이곳이 진정 엘리야처럼 혼자 남은 곳이라면, 그렇다 해도 이곳이 모르는 7천명의 의인들이 활동하는 복음 운동을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리적 입장이 아니라면, 아직도 이 나라에는 석원태목사님과 같이 타협 없이 보수 개혁신앙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 접촉할 기회가 없어 모르고 있을 과거 김현봉목사님과 같은 분들도 오늘 함께 살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곳이 다른 곳의 복음 수고를 인정하거나 또는 이곳과 다른 현실로 인도하는 분들에 대하여 감사해야 하는 것을 잊어 본 적은 없습니다.
이곳이 잡고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고 또 이곳이 그 장점 때문에 실수하기 쉬운 단점도 동시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지적을 받았을 때, 이곳은 바로 지적하신 분이 말씀하신 면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이런 면은, 지적하신 분과 또 이곳을 찾는 분들께서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①이곳의 답변이 모든 면을 다 고려하여 적기에는 시간과 장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전도가 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도라는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또 그 명령에 따라 전도를 해야만 하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에 따라 답변을 하다 보면 기본구원의 본질을 중심으로 살펴 볼 때가 있고 또 기본구원이 전달되는 과정에 전도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살펴 볼 때도 있습니다. 물론 양면을 다 고려해야 하고 또 답변이 질문 자체에 대하여 답변이 되는 동시에 관련 모든 사항을 포함하는 정리본이 되도록 작품 완성도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곳의 답변은 일반 홈과 달리 그 분량이 적지 않습니다. 교리적 문제점을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 않는 분들은 답변에 대하여 짧고 쉽게 적어달라고 하시지만, 이렇게 생각이 깊으신 분들이 제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하기 때문에 답변은 질문내용을 주제로 하여 전반적인 정리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중요한 면들을 함께 고려했다 하지만 일부 빠지는 부분이 있게 되는 것은 답변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이곳의 시간과 또 여기가 문의답변방이라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혹 이곳에 적는 답변 중 이번 지적하신 내용처럼 문제점이 발견되거나 또는 하나를 강조함으로 다른 신앙면에 손해가 예상되는 경우, 바로 그 답변 밑에다가 재질문이나 보충질문으로 반론 이의제기 등을 해 주시면 자연스럽게 그 부분을 포함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요는, 지적은 언제 어떤 형태로 해 주셔도 환영하지만 이해와 이런 요청을 드립니다.
②설명에서 빠지는 부분이 없도록, 근본적 해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은 20여년 이상 준비하고 정리했던 모든 자료를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신앙노선의 체계화를 위해 '조직신학' 정리를 하고 있는 바, 이 자료가 완성이 되면, 이곳에 들어오는 질문에 대하여는 해당 질문 내용에 집중하여 답변을 드리고 그 답변 내용에서 제기 될 수 있는 모든 주변 문제는 조직신학으로 정리한 자료에 해당되는 부분을 참고하시도록 안내하려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에서 인간의 노력이 필요한가를 질문 받게 되면, 죽은 영을 살리는 문제는 199% 하나님의 역사라고 단정하고 그 면에 대한 답변에 집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변에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 즉 '전도'의 필요성이나 그 의미 등에 대하여는 완비된 조직신학 자료에서 해당되는 부분을 안내하여 그곳을 참고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곳이 다른 복음 운동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입장도, 그 정리된 조직신학에서 교회론에 다 포함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곳이 이곳의 신앙노선을 강조하다가 다른 곳을 다 부정하는 듯하게 보일 수가 있을 때는, 그 면으로 오해가 없는 교회의 지체론을 소개하겠다는 것입니다.
③이곳의 답변은, 아직까지 현장 대응식으로 급조된 적은 없습니다.
이곳 '문의답변방'과 '쉬운문답방'에는 그동안 약 2천여건의 글들이 오고갔지만, 아직까지 어떤 질문에 대하여도 말로 땜질하고 넘어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답변드리는 모든 글은 많은 세월 속에서 수없이 살펴보았고 또 실제 그런지 지켜보았던 내용들입니다. 우선 답변자는 현재 가진 신앙과 반대 입장으로 나가던 때가 먼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소개하는 자료들을 두고 그 찬반에 대한 자문자답을 많이 거친 후 현재처럼 지금은 이곳에서 답변하는 신앙노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 도중 그 신앙단계에 따라 제기 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총괄하여 먼저 조직신학으로 정리를 했더라면, 지적하시는 분처럼 이곳을 사랑하고 또 생각이 깊은 분들에게 염려를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리가 다른 업무 때문에 오랫동안 늦어졌고 이곳 홈에서 질문을 먼저 받게 되어 이곳의 답변은 조직신학 정리를 위한 작업장의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덧붙이는 것은, 혹 다른 분들이 지적을 할 때 지적 받는 사람은 자기 입장에 대한 옹호 본능이 먼저 발동하게 되어 모처럼 자기를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곳도 외부 지적에 대하여 일단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계실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근본적으로 이곳이 먼저 정리한 자료들이 있었어야 했다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그렇다고 각 질문에 대하여 제기 될 수 있는 문제점 전부를 다 고려하여 답변을 하기에는 시간과 장소에 어려움이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리된 전체 교리가 먼저 제공되어야 했다는 것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지막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이번 지적을 받게 되면서 그 작업을 더 서둘러야 근본적으로 원인이 해결되겠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④교리 전반에 대한 정리본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전반적으로 교리와 신앙노선이 먼저 정리되고 제공되면, 혹 이곳에서 전도에 대한 필요성을 무시하는 발언이 있다 해도 그 정리된 교리와 이곳 답변을 비교하여 자가 수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리정리가 잘못 되었으면 그것을 고쳐야 할 것이고, 교리정리에서는 바로 말을 했는데 답변이 잘못 되었으면 다른 분들의 지적에 앞서 자기 글로 자기 글이 수정되고 비판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질문자께서 따로 수고 할 것도 없이, 정리본이 잘못되었으면 그곳에 지적을 하시면 되고, 또 정리본은 바로 되었으나 답변에 문제가 있으면 간단하게 양자 모순이 있다고만 하셔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이것으로 저것을 수정하고 저것으로 이것을 수정하면서 점점 더 나아질 것까지 기대를 하는 것이 본심일 것입니다.
3.지적하신 내용 중 '전도'에 대한 필요성은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중생이라는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단독 역사이지만, 먼저 믿는 사람에게 전도라는 사명을 맡기신 이유에 대한 교리적 입장입니다.
①'전도'는 하나님이 맡기셨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일단 말씀으로 명령한 것이면 순종부터 해놓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신앙은 자기 머리에서 이해되는 부분도 있으나 이는 극히 일부이고 신앙이란 근본적으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갓난아이가 제 엄마라는 것을 확인한 후 젖꼭지를 빠는 것이 아니고 또 그 젖꼭지를 빨아야 하는 이유를 알고 난 후라야 빠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빨고 봐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도는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대로, 성경의 명령입니다. 우리에게는 일단 그 명령을 따라 전도에 힘써 노력하면서 왜 전도를 명령했는지는 전도를 하면서 생각하고 또 전도를 한 뒤에 생각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실 신앙입니다. 십일조도 주일도 십계명도 다 그렇습니다.
②'전도'를 굳이 우리에게 맡긴 것은, 앞서 믿는 사람을 기르는 방편입니다.
모든 신앙문제가 다 그렇지만 특히 전도라고 하는 기본구원 제일의 행동을 우리 인간에게 맡긴 것은 기본구원의 본질과는 모순이 되는 듯 합니다. 그런데도 전도라는 행위를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뒤로는 하나님 혼자 단독으로 처리하는 이유는, 우리 앞서 믿는 사람을 통하여 그 뒷사람을 길러가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상에서 이런 저런 모순과 부족이 많지만, 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기 이룰 구원을 다 이루고 함께 서게 되는 날은, 우리 성도 전부를 하나님께서 개별적으로 분리해서 활동하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 전체를 한 몸과 같이 움직이게 하십니다. 거대한 단일 유기체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그 몸의 각 분야와 세포는 우리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혼자 할 수 있지만 일부러 우리를 통해 하시겠다는 것이 인간 창조의 근본 목적입니다.
자존자로서 전혀 부족이 없는데도, 불편하시게 이 모든 만물을 다 만드시고 운영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를 만드시고 그의 몸으로 영원히 활동할 수 있게 하시니 이 이상의 영광이 없고 존귀가 없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할 수 있는 일도 꼭 성도를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앞에 질문과 답변에서는 주로 기본구원에 대하여 말씀드렸지만, 건설구원도 역시 알고 보면 하나님 단독의 행위이지 인간이 인간의 노력으로 행하고 움직인 것은 전부가 인적요소이기 때문에 하늘나라로 옮겨져 갈 수는 없습니다.
기본구원도 건설구원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인데, 다만 건설구원은 누가 봐도 우리 노력으로 하는 것처럼 그런 형식 그런 모습을 하나님이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 등으로 우리를 재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말씀 때문에 우리 인간의 자기 노력으로 건설구원을 한다고 오해할 정도로 힘쓰고 있습니다.
③전도를 할 때 가져야 하는 자세는, 누가 나를 통해 믿을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꼭같이 봐야 합니다.
누가 택자인지 누구에게 하나님께서 이 순간 나의 전도 노력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로 역사하실지를 미리 말씀해 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 혼자 아시고 주권 결정하지만 그 중에서도 다른 것은 일부 알 수 있는 표시를 여러 가지로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절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중생이고 하나는 주님 만날 때입니다. 언제 누가 믿을지, 또 언제 죽을지 아니면 언제 예수님이 오실지에 대하여는 인간이 전혀 알지 못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강퍅한 사람은 언제 올지 모르니까 이 시간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또 하루를 허송하게 됩니다. 복있는 사람은 이런 말을 들을 때 언제인지 모르니까 오늘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생도, 누구에게 언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지 모르겠으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라고 했으니까 더욱 부지런하게 전하는 사람이 있고, 인간 계산으로 이 사람은 아닐 것이라 저 사람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이 전적 단독으로 역사하는 것이 중생인데, 다만 우리에게는 그 시점과 대상을 알리지 않고 그냥 열심히 전하기만 하라고 했고 또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다 이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때라고만 알고 움직이게 했습니다. 이 면을 알고 나면 모르고 그냥 열심을 낼 때보다 아는 가운데 자라간다는 말씀처럼 정말로 평생을 흔들리지 않고 전도에 힘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신앙의 현실입니다.
참고로, 이 교리 입장을 가지고 있는 공회는 이 교리 입장을 잘 모르고 단순히 전도와 선교에 전력하는 교회와 비교할 때,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는 비율이 아주 높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면으로 깨닫고 움직인 결과 중 하나가 주일학교 사역이었습니다. 절대 다수가 안 믿는 학생들을 순수하게 전도해서 데리고 왔지 행사나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교회 학생들이 이리 저리 몰릴 수 있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배제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지적하신 답변 내용이 비록 전도를 무시한다고 볼 정도였지만, 바로 그 교리 바탕에서 가지고 있던 전도의 의미와 필요성 그리고 그 전도를 위해 힘써야 할 바를 가르친 결과가 유래 없는 전도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이 곳의 설명이 누가 봐도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곳 신앙노선의 전반적인 면을 모르는 분들이 보면 오해할 점들이 많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혹 그런 분들께는 이제 마지막으로 전도에 대한 몇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 내용을 어떻게 포함시키느냐는 것으로 숙제를 삼겠습니다.
특히 질문자처럼 '전도에 사명감을 더 느끼는 분들께는 고개 숙여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전도] 이곳에서 말씀하는 기본구원은 그저 칼빈의 가르침을 반복하는 수준이라고 여겨집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전도~]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전도-]/[-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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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신앙에서 전도지도 만들고 예수 믿고 구원받자는 증거도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펴보는 수준으로는 에베소서 4:11에서 말씀하신 복음 전하는 자(evangelists)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제가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이곳에도 전도인들이 있다고는 믿습니다.
전도의 필요성조차 깨닫지 못한다면 극단적인 칼빈주의로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다고 공감하실 것입니다.
저도 역시 성경이 말씀하는 예정과 선택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 예정과 선택은 로마서 9-11장을 상고해 볼때 결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믿음과 떨어져서는 생각할수 없는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예정됐으니 언젠가는 믿을것이라는 것이라는 가르침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다고 여깁니다. 누군가 쉽게 이 믿음과 예정교리를 설명한 이야기를 기억하는데 곧 믿고 보니 예정되었더라는 사실입니다. 천국의 앞문에는 믿으라 써있고 그래서 믿고 들어가보니 뒷문에는 선택이라는 말씀이 씌여 있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으로 맞는 가르침이지 선택되었으니 언젠가는 믿을것이라는 가르침은 어패가 있다고 믿습니다.
사도행전에 영생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다고 했는데 영생얻기로 작정된 자를 어떻게 알수 있겠습니까? 오직 믿는 사실하나로 아는것 아닙니까?
이곳에서 말하는 기본구원은 제 생각으로는 아직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를 잘 대접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성경은 분명히 복음 전하는 자를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목회하고 가르치는 것처럼 구원받을 영혼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제생각으로는 이곳 신앙이 가진 방향이 성경적으로 가장 올바르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교회전체에 대한 진리를 독점하셨다고 보와서는 않된다고 여겨집니다. 전도자의 눈물과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혼구령하는 일에도 크게 역사하신다고 믿습니다. 알미니안주의라고 여겨지는 무디같은 전도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고 전했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이지만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것을 통해서 구원하시기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런 면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교회 곧 복음전해서 낳고 자라고 파송하는 일들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사실이지 공회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라는 일 다시 말씀드리면 이곳에서 말씀하는 건설구원은 성경이 말씀하는 가장 중심적인 진리중의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 믿고 구원받은 사람 단지 기본구원을 받은 그사람의 가치도
우리주 예수님 보시기에는 건설구원을 이룬 사람과 아무 차이도 없는 피값으로 구원한 형제입니다.
다만 이곳의 자랑이 은혜안에서 다른 성경이 말하는 진리들을 소유한 교회들에게 덕을 세우고 인정해주고 또한 주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나누어주어 섬기는 일에 드려졌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지만 건설구원많큼이나 기본구원역시 중요하고 이 기본구원이라는 일을 위해서도 주님은 복음전하는 자들을 세우셨고(사실 교계의 부흥사들은 거의 진리적으로 볼때 타락했다고 봐야 한다고 봅니다.) 이들의 사역또한
하나님이 크게 쓰셔서 영혼구령하는 일에 사용하신다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펄젼은 정통 청교도 신앙이었지만 복음전도자 무디를 크게 대접하고 무디또한 스펄젼을 하나님이 세우신 목회자로 크게 대접했습니다.
참으로 이와같은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 교회상황들을 볼때에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혹시라도 같은 진리에 행하면선도 남을 섬기지 못하는 것으로 주님의 교회를 허물고나 있지 않은지 마음이 저또한 아픕니다.
박옥수 목사님 같은 경우도 자신들만을 인정하는 것들을 볼때에 과연 그분들이 하나님의 양떼들을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안에서 키워가고 있는지 ..
아무튼 영혼이 완전히 죽었어도 전도의 미련한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혼 구령하시는 그 가치또한 이곳에서도 받아들이셔서 단순한 칼빈주의를 뛰어넘어서 신약성경이 말씀하는 균형있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데로 나아가시기만을 기도합니다.
이곳을 귀히여기고 사랑하는 한 전도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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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전도~]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전도-]/[-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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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신앙에서 전도지도 만들고 예수 믿고 구원받자는 증거도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펴보는 수준으로는 에베소서 4:11에서 말씀하신 복음 전하는 자(evangelists)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제가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이곳에도 전도인들이 있다고는 믿습니다.
전도의 필요성조차 깨닫지 못한다면 극단적인 칼빈주의로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다고 공감하실 것입니다.
저도 역시 성경이 말씀하는 예정과 선택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 예정과 선택은 로마서 9-11장을 상고해 볼때 결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믿음과 떨어져서는 생각할수 없는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예정됐으니 언젠가는 믿을것이라는 것이라는 가르침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다고 여깁니다. 누군가 쉽게 이 믿음과 예정교리를 설명한 이야기를 기억하는데 곧 믿고 보니 예정되었더라는 사실입니다. 천국의 앞문에는 믿으라 써있고 그래서 믿고 들어가보니 뒷문에는 선택이라는 말씀이 씌여 있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으로 맞는 가르침이지 선택되었으니 언젠가는 믿을것이라는 가르침은 어패가 있다고 믿습니다.
사도행전에 영생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다고 했는데 영생얻기로 작정된 자를 어떻게 알수 있겠습니까? 오직 믿는 사실하나로 아는것 아닙니까?
이곳에서 말하는 기본구원은 제 생각으로는 아직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를 잘 대접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성경은 분명히 복음 전하는 자를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목회하고 가르치는 것처럼 구원받을 영혼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제생각으로는 이곳 신앙이 가진 방향이 성경적으로 가장 올바르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교회전체에 대한 진리를 독점하셨다고 보와서는 않된다고 여겨집니다. 전도자의 눈물과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혼구령하는 일에도 크게 역사하신다고 믿습니다. 알미니안주의라고 여겨지는 무디같은 전도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고 전했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이지만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것을 통해서 구원하시기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런 면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교회 곧 복음전해서 낳고 자라고 파송하는 일들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사실이지 공회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라는 일 다시 말씀드리면 이곳에서 말씀하는 건설구원은 성경이 말씀하는 가장 중심적인 진리중의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 믿고 구원받은 사람 단지 기본구원을 받은 그사람의 가치도
우리주 예수님 보시기에는 건설구원을 이룬 사람과 아무 차이도 없는 피값으로 구원한 형제입니다.
다만 이곳의 자랑이 은혜안에서 다른 성경이 말하는 진리들을 소유한 교회들에게 덕을 세우고 인정해주고 또한 주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나누어주어 섬기는 일에 드려졌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지만 건설구원많큼이나 기본구원역시 중요하고 이 기본구원이라는 일을 위해서도 주님은 복음전하는 자들을 세우셨고(사실 교계의 부흥사들은 거의 진리적으로 볼때 타락했다고 봐야 한다고 봅니다.) 이들의 사역또한
하나님이 크게 쓰셔서 영혼구령하는 일에 사용하신다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펄젼은 정통 청교도 신앙이었지만 복음전도자 무디를 크게 대접하고 무디또한 스펄젼을 하나님이 세우신 목회자로 크게 대접했습니다.
참으로 이와같은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 교회상황들을 볼때에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혹시라도 같은 진리에 행하면선도 남을 섬기지 못하는 것으로 주님의 교회를 허물고나 있지 않은지 마음이 저또한 아픕니다.
박옥수 목사님 같은 경우도 자신들만을 인정하는 것들을 볼때에 과연 그분들이 하나님의 양떼들을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안에서 키워가고 있는지 ..
아무튼 영혼이 완전히 죽었어도 전도의 미련한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혼 구령하시는 그 가치또한 이곳에서도 받아들이셔서 단순한 칼빈주의를 뛰어넘어서 신약성경이 말씀하는 균형있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데로 나아가시기만을 기도합니다.
이곳을 귀히여기고 사랑하는 한 전도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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