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것을 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도, 진리도, 진리 순종도, 결과도 전부는 은혜입니다.

문의답변      


옳은 것을 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도, 진리도, 진리 순종도, 결과도 전부는 은혜입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


1.'교만'을 이기려고 싸운 경험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으로 예를 들겠습니다.


실제 예를 들지 않고 원리만을 말씀드리다 보면, 교리서 한 권이 다 동원되는 것이 '율법주의'라는 주제입니다. 이제 교만과 싸웠던 경험을 잠깐 말씀하셨으니 이 실제 예를 가지고 살펴보겠습니다.


교만을 버리기 위해 대속은 높고 나는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계속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상전을 펼치다 보니 실제로는 큰 노력도 없었는데 언젠가 마음에서 교만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는 말씀이 질문자의 경험이었습니다.


①우선, 교만으로 고통하시고 교만을 뽑기 원했던 마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바로 알기만 해도 은혜주의로 사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질문자께서는 마음에 교만이 고통스러워 이를 뽑으려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셔서 가지는 마음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런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마음입니다. 사람이란 날 때부터 자기 중심을 원죄로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제 잘난 맛에 사는 것이 본성인데, 이런 인간의 근본 본성과 다른 마음, 즉 교만이라는 것을 오히려 회개하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습니다.


이렇게 자기 속에 생겨진 의로운 마음, 자기를 고쳐 보려고 했던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는 것을 '알기만 해도' 일단 회개를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 은혜로 시작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니 '은혜주의'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 이런 마음이 생겨지더라도, 자기가 남보다 좀 착한 사람이라서 이런 겸손한 생각도 하게 된 줄로 아는 것이 일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출발시켜 주신 것을 제가 잘 나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율법주의'입니다. 회개의 시작부터도 율법주의로 삐뚤어진 것입니다.


②이제, 교만을 뽑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이 계셨을 것인데, 이때가 문제입니다.


교만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는, 그 마음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생각이라고 알기만 해도 은혜주의로 출발하는 신앙이 됩니다만, 실제 교만을 뽑기 위해서 노력하는 순간부터는 교만을 뽑기 위해 노력도 해야 하고 또 그 노력이 주님의 인도를 따라 주님 도우시는 은혜로 뽑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인간의 노력만 남아버리고, 정작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는 깜빡 내버리기가 쉽습니다.


교만을 뽑는 순서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알고 자기의 위치를 알고 구원에 들어간 주님의 희생을 알고 또 각자에게 주신 장점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맡긴 것임을 알게 되면 저절로 교만은 서서히 말라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진리는 내가 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신 것입니다. 교만의 치료법과 치료약도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았으니 자기 교만을 죽이는 과정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은혜주의로 계속 실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또 그 치료약을 사용할 때도 이것은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사용하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의 치료하는 노력은 전적 은혜주의로 주님 진리에 피동되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③그러나, 교만을 치료하는 진리라 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나의 노력 아닙니까?


교만을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넣어주신 분도 하나님,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

교만을 고치는 진리말씀도 하나님이 내셨으니 고치는 과정도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

교만을 고치려는 노력도, 교만을 고치는 진리에 순종한 것이니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

교만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순종한 그 순종의 행위가 실제 이루어지도록 힘을 주시고 그 행위가 계속 되도록 하신 분도 알고 보면 하나님, 그러니 교만을 고치는 내 행동 하나 하나는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만 계속되었습니다.


천국 가는 기본구원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노력하는 심신의 성화 과정도, 그 하나 하나가 이런 식으로 전부는 하나님에 의하여 시작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진행되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완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나의 행동을 시작시킨 분도 하나님이시지만 그 행동이 실제 나오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도우셔서 나온 것입니다. 어디 한 틈도 하나님 아닌 곳이 없고 비어 있는 곳이 없습니다.


2.기타 질문하신 내용으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①율법주의를 싫어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율법주의로 사는 자신을 보셨는가요?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총론적으로는 율법주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시작부터 과정까지 그리고 마지막 결과까지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했고 진행되고 마쳐졌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때는 벌써 주님은 간 데 없고 혼자 밤거리를 헤매는 가출 소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심신의 성화를 위한 노력도,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벌써 율법주의가 된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성화구원의 그 본질과 이루어지는 그 과정이라는 것도 일반적으로 그냥 성화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날까지 순간도 방심없는 '온전을 향한' 순종의 걸음일 뿐입니다. 그렇게 주님 위해 살고, 또 말씀대로 자기를 고쳐 살려고 실행하는 참으로 귀한 신앙걸음이 위에서 설명드린 면을 잊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바로 '인간이 하나님 없이 의롭게 살려는 것'이니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②칼빈 교리의 '성도의 견인'은 건설구원 개념이 배제된 교리입니다.


칼빈의 교리 중에서 성령이 성도를 끝까지 구원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시고 기어코 구원하신다는 견인 교리는 옳은 깨달음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이 부분이 건설구원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의 교리는 근본적으로 기본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믿은 사람의 이후 노력하게 되는 건설은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시급한 교리가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길러가시는 순서 상 그 후세에 허락한 교리였습니다.


어쨌든 칼빈의 예정론은 기본구원적으로 믿을 사람을 예정했다는 교리가 중심입니다. 그리고 심신이 건설구원에 노력하는 그 한 행동 행동까지 전부 예정했다는 절대 예정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에 허락한 교리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③'자신의 성화도 하나님의 전적 은혜였다'고 당당하게 고백하신 것이 오히려 맞습니다.


자신의 성화도 자신 스스로 움직였던 것은 그냥 전부 헛수고였습니다. 자신의 성화도 저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그 시작도 중간도 마지막도 알고보니 전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을 당당하게 하는 것이 성화구원을 아는 사람입니다. 다만, 자신의 성화도 하나님이 전적 담당하는 것이니 나는 놀고 먹고 잠만 잤었고 그런데도 성화는 다 완성되어 있더라는 사람이라면 심히 부끄러울 일입니다.


성화란 모든 사람에게 꼭같은 분량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그 성화의 양이 꼭같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칼빈의 견인교리에서는 성령이 우리를 끝까지 붙들고 성화시킨다는 것만을 윤곽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자세하게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도의 성화란 개별 신앙에 따라 각자 그 건설하는 양과 종류와 실력이 제각각 다릅니다. 천국의 영광의 차이가 다를 것이니 각자에게 미리 배당시켜놓은 그 성화의 분량을 향해 성령이 견인한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입니다.


④사죄 칭의 화친 소망을 외치는 그 인간이 누구냐는 것까지 고민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말했으면, 나머지 뒷 행동은 전부가 다 옳은 것인가? 물론 아닙니다. 질문자의 탄식이 맞습니다. 민주주의를 연설 초기에 한번 외친 사람은 그의 평생 모든 행동이 전부 민주주의에 맞는 행동이었겠는가? 천부당 만부당한 말입니다. 주님 대속이 필요한 줄 알고 그 대속으로 살려고 했는데, 그 후 행동은 대속과 상관없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또 끝까지 대속을 입에 달고 다녔는데도 실은 그 대속을 부르짖는 것은 지식에 그쳤고 자기의 주님 동행은 실종되었던 상태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주님 대속을 부르짖는 자기라는 그 인간을 여러모로 분석하다 보면 아주 불순분자의 헛소리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속으로 '의'를 이루겠다는 자신도 많은 면에서 살펴보고 분석해 볼 일입니다. 평생에 주님 동행을 생각에서 뿐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나 자신 속에 내가 주인이 되어 있는지, 주님이 주인이 되어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이 면을 주력하다 보면, 교계에 나갈 시간이 없고 교권을 두고 논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와 같이 거리가 먼 세계를 보실 것입니다.


⑤주인집에는 꽃병도 밥그릇도 필요하지만 요강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꽃병으로 만드시려고 하는지 요강으로 만드시려고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 집에서 꽃병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은혜를 주시는 분도 있고 전도에 주력하도록 은혜를 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반반씩 섞어 인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주신 현실에서 '충성'하는 것까지만 우리 할 일입니다. 주신 현실에 충성이 부족한 것은 고치도록 노력하고, 주신 현실에 충성을 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은 하나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주신 현실에 충성을 한 다음 그 충성한 결과가 이리 되었으면, 저리 되었으면 하고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학도 거기에서 나옵니다.


3.질문 내용이 많았습니다.


단번에 전부를 해결하려 마시고 이제 적은 내용을 참고하시고 또 다시 여러 면으로 생각을 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제 문답으로 살펴본 내용은 특히 이론적인 면이 강한 것입니다. 자기 내면 깊은 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심리변화까지를 관리하고 조절해야 하는 '미세 구원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주제는 극히 세미한 것을 계속해서 따지고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자칫 이렇게 따지기만 하다 보면, 실행으로 깨달아야 하는 단계까지 논리로만 해결하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문답 정도에서 일단 숨을 돌리시고, 이번 답변을 가지고 오랜 시간 실제 현실 속에서 이런 인식으로 실행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면밀하게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어떤 것은 이치로 따져야 하고, 어떤 것은 실행을 통해서만 넘어가는 곳도 있습니다. 현재 그런 위치에 서 계신 것 같습니다.
[건설구원] 실생활에서의 율법주의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


안녕하세요?


신앙에 열심이 있는 사람 치고, '율법주의'적인 면이 없는 사람이 없을 듯 싶습니다. 율법주의와 은혜주의를 구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메모에 보니,

율법주의 : 예수님의 대속없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려는 것

은혜주의 :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 주님의 것된 것이 주님의 은혜로 의를 이루는 것


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실생활에서 자기도 모르는 율법주의의 예와 무서움과 막는 방법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쉬운 문답
(2) 게시판 검색
(3) 통합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059
    감사
    2003.01.30목
  • 1058
    박예인
    2003.01.28화
  • 1057
    yilee
    2003.01.29수
  • 1056
    김누겸
    2003.01.27월
  • 1055
    yilee
    2003.01.29수
  • 1054
    김누겸
    2003.01.29수
  • 1053
    yilee
    2003.01.29수
  • 1052
    戰鬪人
    2003.01.26일
  • 1051
    yilee
    2003.01.26일
  • 1050
    김철진
    2003.01.25토
  • 1049
    yilee
    2003.01.26일
  • 1048
    안순철
    2003.01.25토
  • 1047
    yilee
    2003.01.25토
  • 1046
    교인
    2003.01.23목
  • 1045
    yilee
    2003.01.24금
  • 1044
    김종태
    2003.01.23목
  • 1043
    yilee
    2003.01.23목
  • 1042
    김진수
    2003.01.23목
  • 1041
    yilee
    2003.01.23목
  • 1040
    관심
    2003.01.24금
  • 1039
    yilee
    2003.01.24금
  • 1038
    서정
    2003.01.23목
  • 1037
    yilee
    2003.01.23목
  • 1036
    pkist
    2003.01.23목
  • 1035
    yilee
    2003.01.23목
State
  • 현재 접속자 189(1) 명
  • 오늘 방문자 6,715 명
  • 어제 방문자 6,972 명
  • 최대 방문자 7,646 명
  • 전체 방문자 3,254,397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