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에 소개한 자료가 사실이라면, 'CCM'은 신앙인으로서는 명확히 단절하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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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에 소개한 자료가 사실이라면, 'CCM'은 신앙인으로서는 명확히 단절하셔야겠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찬송~]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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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선 글을 읽는 분들의 편리를 위해 'CCM'을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CCM'은 현대(Contemporary) 기독교(Christian) 음악(Music)의 약자입니다. 말하자면 '현대화' 된 찬송 또는 복음성가라는 뜻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현대 음악에 맞춘 기독교식 음악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럼, 율동, 화음, 발음, 음의 처리 등 모든 음악 내적 외적 요소를 요즘 현대 사회에서 사용되는 기법으로 처리한 교회 음악이라는 뜻입니다.


2.질문자께서 받은 증거가 있는데 그것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참 어렵습니다.


지금 질문자께서 눈으로 본 것을 말씀하는데 답변자는 그것을 잘못 보셨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어렵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질문자께서 손으로 만져 보고 느낀 대로 말씀하는데 근처에 가 보지도 않은 답변자는 잘못 만졌고 잘못 느꼈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일단 서로의 시각과 서 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해 해 주셨으면 합니다.


질문자를 가차없이 비판하는 듯 들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지만, 그냥 이론적으로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CCM'을 두고 이곳에서 드릴 수 있는 입장입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셔도 방향은 같을 것입니다.


장님이 만져본 코끼리는 분명 코끼리인데 장님은 코끼리를 만진 것이 아니고 뱀을 만졌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토론이 벌어질 때는 서로 한 마디씩 발언 한 다음 서로가 신중하게 상대방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장님과 눈 뜬 사람이 계속 말로만 주고 받는다면 토론의 방향은 옳은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 변질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3.위에 올린 CCM 자료는 CCM 전문가 애호가들의 주장입니다.


CCM 전문가 애호가들이 가장 객관적으로 설명을 하되 최대한 CCM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마치 이곳에서 백영희신앙노선을 소개하듯 소개한 자료입니다. 이 자료들이 사실이라면, CCM은 완전히 세상 속 깊은 곳으로 나간 타락한 음악입니다. 세상을 닮아버렸다는 말을 세속화라고 합니다. 그런 음악이라고 단정하겠습니다.


그러나 반론하시는 분들은 그 CCM을 통해 받은 은혜가 있다고 간증하시겠지만, 천주교와 같은 이단에서 만든 마리아 승천가라는 찬양도 있고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성곡도 있습니다. 이런 곡들은 수백년씩 듣는 이들에게 깊은 신앙심과 종교성을 심었다고 세계가 평가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착각은 자유인데....'라고 웃고 넘어가 버리고 말아버립니다.


지금 윗글에서 소개한 바에 의하면, CCM은 '현대'와 '기독교'와 '음악'이라는 3글자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 '기독교'라는 단어가 '현대'와 '음악'을 붙든 것이 아니고, '현대'가 '기독교'와 '음악'을 붙든 형태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현대'와 '음악'이 '기독교'를 삼켜 이용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4.지금까지 요즘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교회 음악을 비판했지만, 알고보니 더 비판해야겠습니다.


이번 자료를 보지 않고 그냥 잠깐씩 찬송한다는 소식과 그 가사들 또 그 찬송을 하는 형태 등만을 듣고도 이곳은 듣는 분들이 그냥 듣고 지나치기에는 민망할 만큼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질문 때문에 CCM측의 자료를 읽게 되었고 그 결과, CCM의 실상은 너무도 탈선이 심하고 그 부패가 끝이 없는 정도이기 때문에 이곳이 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지 그런 음악을 손대는 이들을 붙들어 내어 구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넘칩니다.


이미 그 음악의 단점과 관련 폐단은 이곳 문답방 여러곳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자세하게 분석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곳이 이곳의 진심을 다해 CCM음악을 믿는 사람이 예배당이나 신앙모임에서 손에 대거나 음에 대는 것은 단호하게 금하시라고 권고하겠습니다.


담배가 처음 나올 때는 약인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재미거리 정도인 줄 알았습니다. 멋이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습니다. 100여년 전 한국교회는 건강이나 다른 병폐는 없지만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종이불에 태워없애는 취미는 낭비라는 뜻으로 반대하고 금했습니다. 최근에는 불신사회에서도 만인의 적이 되었고 천하의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최근까지 CCM을 만들고 전파하고 주도한 교회들 신앙가들 그 자유주의노선 쪽에서는 목사가 담배 피우지 말라는 법이 있어? 라고 비웃고 있었습니다.


5.질문하시는 분이 공회 소속 교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단절하셨으면 합니다.


지금 CCM 문제를 두고, 공회 내에서 신앙의 지도급 인물치고 이를 지지할 분은 없을 것입니다. 있다면, 목회 차원에서 교회 내 소란이나 분란을 피하기 위한 몸조심일 것입니다. 만약 진정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하시는 분이 있다면 자기 과거 목회는 거짓말로 한 것이라고 스스로 확인하는 일입니다.


일반 교계 교인들이라면 설명 드리고 토론해야 할 부분이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회 노선의 교인이라면, 사실 그것이 대단히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이미 감지하고 계실 듯 합니다. 아무리 대구공회가 속화와 타락의 정도가 심하다고 해도 그 깊은 속에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찝찝하기 그지 없을 것입니다.


대구공회에 소속된 교인들은 대구공회를 주도하고 대구공회를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고 소속 교인을 인도하는 목회자들, 공회 지도자들을 따르는 분들 아닙니까? 자기를 인도하는 목회자, 자기 목회자의 선생 목회자, 자기 목회자의 지도급 목회자들이 CCM에 대하여는 가차없이 교회법으로 치리를 하실 것입니다. 그분들은 대구공회를 오늘의 공회로 발전시키고 확립시키기 위해 그분들의 신앙소신에 틀린 것은 가차없이 제명 제적 처리를 하되 주저함이 없었던 분들입니다.


6.질문하신 내용들을 세분하여 설명하겠습니다.


>목사님, ccm자체가 우리에 믿음을 떨어뜨린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잘못되어서 그렇지 , 그 자체가 믿음을 떨어뜨린다

>고 생각하면 좀 위험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에 좀 너무하다싶은 ccm이

>많이 나오는것은 걱정이 됩니다.


- 일반적으로 세상 모든 것은 바로 사용하면 복이 되고 잘못 사용하면 저주가 되는 것이지 세상 것 그 자체가 죄되고 복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돈이나 지식이나 자식 등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간혹 그 자체가 죄되는 것이 있으니 무당 불상 미신은 그 자체를 버려야 할 것이고 단절할 것이지 불상을 집에 놓고 바로 이용하면 복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것이 아니고 신앙 내부로 들어오면 사용에 따라 은혜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있으나 대개는 그 자체를 버려야 할 것이 있고 그 자체는 일단 붙들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일단 붙들고 봐야 할 교리입니다. 이해와 은혜는 붙든 다음에 생각할 일입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예배도 그렇습니다.


반대로,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은 그 안에 있으면서도 잘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신앙에 삐뚤어지게 만들어진 것은 타락이고 탈선입니다. 이런 것은 흉내도 내지 말고 듣고 보지도 말아야 복된 것들입니다. CCM으로 이름 붙는 찬송 중에도 그 찬송 자체가 은혜로운 것이 있다면 은혜로운 것입니다. 비록 찬송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세상 유행가식으로 만들어 신앙의 탈선을 조장하는 것이라면 그 찬송을 입에 부르며 탈선치 않으려고 할 것이 아니고 입에서 떼내 버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현대식'으로 예수를 믿고 '현대식'으로 찬송을 하고 '현대식'으로 예배당을 운영한다고 할 때 그 '현대식'이라는 개념과 그 개념에서 비롯된 모든 조처는 암과 같은 것입니다. 그냥 떼내버리면 될 것이지 그것을 붙들고 있을 대상이 아닙니다.


>찬송가에 있는건 좋고, 요즘나오는 ccm은 믿음만 떨어뜨린다고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찬송가에 수록된 곡들도 영국에서 복음성가로 불려지

>던 것들이었습니다. 또한 268장 온세상 위하여"는 찬송가중에 가장 최근에 작

>곡된 것입니다. 그 찬송가 보다 더 전에 만들어져서 불려지고 있는 ccm들도

>많습니다.


- 답변자는 찬송이나 음악에는 조예가 없지만, 한국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적 집단이라는 곳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1964년도 초등학교 1학년 때 성탄절 찬송을 영어로만 배우고 발표했던 기억도 있으며, 선교사들의 톱날 찬송 바이올린 찬양, 1970년대 CCC의 4영리 전도법 초기 개발시 교육훈련과정 등, 현재 이곳과 정반대로 나가는 곳에서 평상 생활 전부를 통과해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 현재 총공회 목회자 중에서만 말한다면 이곳 답변자 이상으로 자유주의 신앙, 현대주의 신앙에 깊은 곳을 다 통과해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별별 현대주의적 예배형태라 하여 공회 내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은, 이미 40여년 전에 미국 교회를 휩쓸고 30여년 전에 한국교회에 상륙하여 1-20년씩 쓸고 갔던 그런 형태들입니다. 새로울 것도 없고 오히려 캐캐묵은 낡은 것입니다. 미국에서 사용하고 하다가 닳고 닳아서 쓰레기통에 쳐박아 놓은 것이 한국으로 수입이 되고 나면 'Made in USA'가 되어 대단한 첨단이 되고 신사고가 되며 발상의 전환이라는 용어가 붙고 있습니다. 참 무식이 탈이라는 개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에 설명한 찬송의 여러 형태를 말씀하셨으나, 그런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비판한 것이 아니고 그런 내용을 적어도 40여년 이상 파악하고 쭉 지켜보며 변형되어 온 내력까지를 대충 알고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짠 음식이 맛있는 사람은 짜게 먹는 것입니다. 입맛은 분명히 좋을 것이나 짠 음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원리와 원칙만은 이곳에서 소리높혀 외치고 싶습니다. 마약에 취한 듯 입술이 우물거리며 무슨 가사를 읊조리는지도 모를 정도의 속도로 주를 찬양하는 요즘 유행가식 찬송으로 은혜를 받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의 감정과 주관과 그 느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백해무익이라는 표현은 서슴없이 사용하겠습니다.


>한 성령님께서 "온세상 위하여"의 때까지만 충만하게 역사하시고, 그 이후엔

>음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하심을 조금만 하셨을까요? 그래서 영성을 떨

>어뜨리는 더러운 영이 그때부터 틈타게 된걸까요? 그시대와 그 후에도 한 성

>령님이실줄로 믿습니다.


- 찬송가들이 은혜 있던 시절까지는 성령의 역사가 충만했습니다. 그 이후 찬송가들이 급격하게 세속화될 때에도 성령의 역사는 충만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전에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분들이 더러 있었고, 그 이후에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분들이 없는 시대입니다. 믿는 자를 보겠느냐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말세가 되어갈수록 믿음을 배반하고 전부 자기 중심으로 악한 사람이 되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까지 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이 맞기 위해서라도 오늘 일반적 교회의 형편은 극심한 타락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일부러 끼워맞추기 위해서가 아니고 실상이 그렇습니다.


오늘 예배가 있습니까?

오늘 찬송이 있습니까?

오늘 기도가 있습니까?

오늘 목사가 있습니까?

오늘 교회가 있습니까?


있다면 몇 개 있을 것이고 있다면 몇 명 있을 것입니다. 그 몇 명 중에 끼이기 위해서 이렇게 극단적으로 주장하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 속에 끼이지를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다면? 수에 칠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요즘에 ccm중에서 세속에 물든 것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가스펠중에는 차라리 안듣는게 나을것같은 곡들도 많습니다.

>

>그러나, 찬송가책자에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건 찬송가가 아니라 믿음만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긴 어려울것 같습니다. 너무나 좋은 곡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용하는 방법이 점점 변질되고 있음이 잘못인것입니다.


- 찬송가에 포함되고 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찬송가는 신앙있던 분들이 많던 시대에 신앙있던 분들에 의하여 찬송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곡이 많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누락된 부분들이 더러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은 찬송가일 뿐입니다. 그러나 찬송가가 바로 되었다면 마치 제2의 성경이나 되는 것처럼 우리 신앙에 사용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찬송을 그렇게 중요하게 보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우리가 겪고 사용해 온 경험으로만 본다면, 신편찬송가 새찬송가 공회찬송가는 아쉬운 면들이 더러 있어도 그래도 찬송가라고 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새찬송가를 부르던 시절도 신앙있는 분들은 그 안에서 일부만 주로 불렀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 통일찬송가 정도라면, 아예 찬송가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사실 저는 선교단체에서 예배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에서도 많은 찬양팀과 성가대를 하고 있습니다.

>

>제가 섬기는 선교단체의 집회 청중은 모두 구체적으로 선교에 헌신한 자들

>입니다. 그들에겐 ccm을 통하여서도 성령님께서 강하게 기름부으십니다.

>반면에 교회에서는 ccm이 모두에게 효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

>면 굉장히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있고, 신앙성숙도도 천차만별이니까요.


- 현재 활동하시는 곳을 두고 말씀한다면 다른 이의나 반론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분들의 현 신앙상태가 CCM 찬송에라도 은혜를 받아야 할 수준에 있을 수 있고 그런 신앙형편에 계신 분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남선목사님이 처음 예수를 믿고 예배 볼 때는 3-4명이 둘러 앉아 찬송 한번 부르고 담배 한 대 피워가며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만일 해방 후 평양감옥에서 출옥한 뒤에도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면 이곳은 그의 신앙을 독립운동가로 보지 신앙가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예수 믿을 때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은혜가 됩니다. 그 위대한 신앙가가 담배를 물고 예배를 보며 출발했으니, 나는 그분보다 좀더 나은 신앙가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등의 소망입니다.


지금 선교단체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면, 선교라는 것은 그 단어에서부터 가장 복음에 멀리 있는 이들을 접촉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그곳 분들의 현 신앙형편을 기준으로 그들에게 몰랐던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알리는 과정에서 시도되는 형태는 이곳에서 전혀 비판하거나 언급할 문제가 아님을 꼭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공회 교회들도 1960년대까지는 여름성경학교 때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손씻고 밥먹기'와 같은 세상 위생지도를 했고, 세상 노래인 '곰 세 마리'도 가르쳤습니다. 체조도 시킨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겉에서 안으로, 어린 데에서 장성한 데로, 세상에서 신앙으로 자꾸 나아지고 좁아지느냐, 아니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세상으로 가까워지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이곳 답변은 주로 일반론적인 문제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CCM은 아주 나쁜 것이라는 것이 이곳의 단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쁜 것을 선교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 분이 계신다면,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는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CCM의 찬송 중에 어느 찬송이 처음 믿는 분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일일이 비판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기는 전하시는 분이 전도 뿐 아니라 선교의 현장에서까지 이 복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장 높은 것으로 전했으면 할 뿐입니다.


>찬송가도 너무 귀하고, ccm도 너무 귀합니다. 제 생각엔 분별하는 것이 중요

>한것 같습니다. 점점 세속화되어가는 ccm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청중에 맞게,

>자리에 맞게 부르는 것이 올바른것 같습니다. 올바른 분별을 하기 위해서는

>늘 말씀 가운데 서있고, 성도들을 배려하는 사랑 가운데 서있어야만 할 것

>입니다.


- CCM과 관련해서는 현재 질문자께서 이 문제를 보다 넓은 눈으로 보다 근본적인 신앙시각을 먼저 정립한 다음 새로 보셨으면 합니다. 새로 보면 새로 보일 수 있는 신앙의 귀한 장점과 요소들을 다 갖추고 계신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바로 분별한다면 이 시대 모든 분들에게 그분들이 좋아하는 취향을 따라가서 '현대 취향'의 예배를 드릴 것이 아니고, 그분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하나님의 취향에 그분들이 따라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를 배려하는 것은 그들의 다리 불편을 이해하여 의자 조절을 하는 것이 배려이며 사랑입니다. 불교에서 개종한 분들을 배려한다 하여 석가는 구원에 포함되었을지 모르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교인들을 배려한다 하여 애양원 내 병원의 벽화에는 한복입은 예수님이 한복입은 나환자들을 고치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배려가 아니고 천국을 해체하여 세상을 건설하는 매국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곳은 답변자 스스로 젊은 사람들의 욕정 발산과 막가는 현재 사회 구조와 자기 중심의 극단적 상황에서 자란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런 과정을 답변자에게는 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면도칼을 달라는 젖먹이에게 면도칼을 쥐어주는 배려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CCM 찬송은 면도칼 정도로 섬뜩하게 보이고 또 그렇게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이 그 면을 조심하라고 알리는 것은 목청껏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200곡으로 한정하여 부르겠다고 하는것은 어떻게 보아야할지

>고민입니다...


200곡도 좀 많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200곡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십니다. 200곡으로는 부족을 느끼는 분들이 계십니다. 공회의 신앙노선은 예배찬송은 200곡 정도를 넘어서는 곤란하겠다고 제시한 것입니다. 성탄 발표, 찬양대 연습곡 등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곡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준은, 공회의 예배 찬송을 200곡으로 정한 것을 고려한다면, 그 외의 찬송을 택한다고 해도 어떤 기준으로 어떤 면을 중심으로 정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찬송가 200곡을 두고 말씀드릴 때마다 늘 아쉬운 것은 200곡만 사용해야 하느냐, 그 외 많은 찬송들은 왜 사용하면 안되느냐는 내용으로 의견들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200곡도 다 사용해야 하느냐? 200곡으로 공회 찬송을 정한 것은 공회 내의 신앙 어린 사람들을 고려해서 가장 넓게 수용한 외곽선이 200곡이니, 그 200곡 안에서도 실은 은혜가 되기 때문에 자주 부르는 찬송은 100여곡으로 줄어들어야 신앙이 발전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신앙이 더 발전하게 되면 50여곡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세상 것은 이것 저것 곡이 많아야 다양해서 좋은 것인데, 신앙은 은혜되는 한 두가지에 붙들려 부른 찬송을 또 부르고 또 부르고, 밤새도록 불러도 2곡 3곡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되어야 자라가는 신앙일 것입니다.
[찬송] ccm에 관해서 입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찬송~]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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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김현아입니다.저는 대구공회소속 교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목사님께서 하신 귀한 말씀들중에 걸림이 있어서 이렇게 올립니다.

목사님, ccm자체가 우리에 믿음을 떨어뜨린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잘못되어서 그렇지 , 그 자체가 믿음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면 좀 위험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에 좀 너무하다싶은 ccm이 많이 나오는것은 걱정이 됩니다.

찬송가에 있는건 좋고, 요즘나오는 ccm은 믿음만 떨어뜨린다고 말씀을 들었을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찬송가에 수록된 곡들도 영국에서 복음성가로 불려지던 것들이었습니다. 또한 268장 온세상 위하여"는 찬송가중에 가장 최근에 작곡된 것입니다. 그 찬송가 보다 더 전에 만들어져서 불려지고 있는 ccm들도 많습니다.


한 성령님께서 "온세상 위하여"의 때까지만 충만하게 역사하시고, 그 이후엔 음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하심을 조금만 하셨을까요? 그래서 영성을 떨어뜨리는 더러운 영이 그때부터 틈타게 된걸까요? 그시대와 그 후에도 한 성령님이실줄로 믿습니다.


요즘에 ccm중에서 세속에 물든 것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가스펠중에는 차라리 안듣는게 나을것같은 곡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찬송가책자에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건 찬송가가 아니라 믿음만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긴 어려울것 같습니다. 너무나 좋은 곡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용하는 방법이 점점 변질되고 있음이 잘못인것입니다.


사실 저는 선교단체에서 예배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에서도 많은 찬양팀과 성가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선교단체의 집회 청중은 모두 구체적으로 선교에 헌신한 자들 입니다. 그들에겐 ccm을 통하여서도 성령님께서 강하게 기름부으십니다.

반면에 교회에서는 ccm이 모두에게 효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있고, 신앙성숙도도 천차만별이니까요.


찬송가도 너무 귀하고, ccm도 너무 귀합니다. 제 생각엔 분별하는 것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점점 세속화되어가는 ccm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청중에 맞게, 자리에 맞게 부르는 것이 올바른것 같습니다. 올바른 분별을 하기 위해서는 늘 말씀 가운데 서있고, 성도들을 배려하는 사랑 가운데 서있어야만 할 것 입니다.

언제까지나 200곡으로 한정하여 부르겠다고 하는것은 어떻게 보아야할지 고민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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