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약사 1990년판과 서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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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공회 약사 1990년판과 서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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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가 개척한 부산의 서진교회는 2020년에 시무투표를 통해 불신임 처리를 한바가 있습니다. 불신임을 당한 측에서는 2025년 1월에 교인들을 예배당 건물에 출입을 금지한다며 법원에 고소했습니다. 첫번째 궁금한 것은 불신임 된 목회자가 서진교회를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상 해명을 하시기 바랍니다.

불신임을 당한 측에서는 '총공회 약사'라는 1990년 출간서가 총공회의 노선을 공식으로 담은 문건이라 합니다. 그 문건에 따르면 공회는 개교회자유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공회가 개교회에 간여할 수 없으니 시무투표도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사실 관계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사후 총공회가 1990년에 대구공회와 부산공회로 나뉠 때 '총공회 약사'가 출간된 것은 잘 기억합니다. 당시 부산공회와 분쟁 중이었던 대구공회 측은 이 문건을 부산공회 입장만 반영한 부산공회의 편파적 부산공회용 내부 출간물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대구공회는 이 책 출간을 두고 반발이 극심했습니다. 전국에 부산공회와 대구공회의 분쟁이 있던 교회마다 이 책은 부산공회 측 교인들에게 하나의 교과서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책을 근거로 시무투표가 참고용이며 공회는 개교회가 알아서 운영한다니 혼란스럽습니다.
담당 2025.06.08 08:19  
(총공회 약사)
* 목회연구소의 발간
'총공회 약사'는 1990년 초에 목회연구소가 발간했습니다. 목회연구소는 목사님 사후를 대비하여 독립 기관이라고 성격은 규정해 놓았으나 실제로는 총공회와 서부교회와 백영희에 관한 교훈과 노선의 이론을 출간하던 유일 기관입니다. 송종섭 목사님은 총공회 3대 기관으로 '서부교회' '양성원' '연구소'를 늘 손꼽았습니다. 서부교회는 당시 총공회 100개 중 하나지만 총공회 교회라는 뜻이고, 양성원은 목회자 양성의 유일 기관이며, 연구소는 공회의 생명인 교훈과 행정의 이론을 맡았다는 뜻입니다.

* 집필자
당시 목회연구소는 목사님 생전 마지막 순간에 외부적으로는 서부교회 옆에 건물을 가지고 있었으나 연구와 실제 운영은 신풍의 연구 부장이 모두 주도했습니다. 생전과 사후의 '연구소' 이름은 이영인 연구 부장이 최종 저자였습니다. 법적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하여 출간물의 대표는 이민영 소장이고, 내용물은 연구 부장의 전결이었습니다. '설교록' 전부와 설교록을 편집한 '소선집', 설교록의 내용을 성경 신학과 조직 신학으로 정리하는 첫 출발의 '메모'도 연구 부장이 백 목사님의 지도로 진행했습니다.

목사님 사후, 총공회의 신앙 노선을 전면 개편하고 교계를 대폭 수용하자는 대구공회가 당시 총공회 주도권을 잡고 몰아 칠 때 오늘의 부산공회가 되는 분들은 몇 명뿐이었고 그들조차 가진 자료와 이론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끌려 갈 때 서부교회 내에서는 훗날 남정교회로 개척하는 분들이 총공회의 지도부와 하나가 되어 주일 예배까지 막고 나설 때, 목회연구소의 연구 부장이 목사님 생전에 받아 둔 공회 모든 기록과 연구소의 자료 일체로 당시 총공회를 장악한 대구공회에 맞서 현 부산공회를 지킵니다.

'총공회 약사'는 목사님 사후 교계로 편입하자는 대구공회의 논리를 부산공회를 시작하던 몇 명이 총공회 총회와 교역자회 회의 진행에서 압도하던 내용입니다. 총공회의 각종 회의에서 회원수는 절대 다수가 대구공회였으나 자료와 논리는 부산공회가 일방적으로 옳았는데 문제는 서부교회와 전국의 교회 현장에서는 이 내용이 전해 지지 않고 있어 신풍교회 서성교회 중계동교회 3곳 외에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대구공회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서부교회도 김효순 권사님이 주도하여 대구공회 주장이 옳다고 나오는 상황이 되어 서부교회와 전국 교회와 모든 교역자들을 위해 연구소는 '총공회 약사'를 출간하게 됩니다. 이 내용은 백 목사님 생전 서부교회의 마지막 사경회 내용입니다. 1989년 1월에 있었고 연구 부장이 강사였으며 강의 내용은 목사님이 5층에서 일일이 확인하고 평가한 내용이며 교역자들이 전국 교회에 테이프로 전했습니다. 공회에서 목사님 음성 외의 테이프가 전해 진 것은 이 것뿐입니다.


* 대구공회의 반응
책자로 출간이 되기 전에 사안 별로 자료가 나가기 시작하자 대구공회의 논리는 한꺼번에 허물어 졌고 부산공회는 3개 교회 정도에서 3분의 1까지 추가 되었습니다. 김정웅 목사님 등도 대구공회의 중심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부산공회를 비판하며 활동하다 돌아 왔고 서영호 목사님은 끝까지 중립을 지키다 총공회 분리가 된 1990년 3월 총공회에 지각 참석하여 최종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또 서울 지방에서는 안산교회 김영환 당시 조사님 교회에서 양쪽 총공회가 공청회를 정식으로 개최하여 대구공회가 확실히 손을 들 때 부산공회 측으로 발언한 분들의 손에는 사전에 이 내용들이 전해 져 있었습니다.

대구공회는 이 자료들과 책으로 출간된 총공회 약사를 전면 부정했으나, 훗날 대구공회 소속의 포양교회가 합동으로 이탈하게 될 때 포양교회 내에서 대구공회 잔류를 원하던 교인들은 총공회 약사를 대거 구매하여 대응했습니다. 오늘의 대구공회는 총공회 약사 내용 자체를 두고 허위라거나 개인 의견 등으로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의 부산공회들보다 더 '총공회 약사'에 가깝습니다.



(서진교회의 경우)
* 불신임 건
어디든 입장이 곤란하거나 입장이 바뀌면 이후 모든 말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을 보면 동쪽인데, 일본에서 보면 서쪽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동쪽이다 서쪽이다 반대로 표현할 때 말하는 분이 선 곳을 입장이라 하는데 입장을 먼저 살피지 않으면 이후 발언은 다 달라집니다. 서진교회는 목사님 생전에 1983년부터 연구소의 주력으로 설교록 출간 거의 전부를 도맡던 이치영 목사님이 1991년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총공회 약사를 출간할 때 기초 자료를 도맡아 함께 검토했던 분이 1998년에 동천교회를 개척하면서, 서진교회의 개척 노선을 충실하게 따르겠다는 서약을 한 분이 2020년 불신임 받은 분입니다.

이 분은 스스로 연구 부장을 평생 순종하고 따랐던 분입니다. 1990년에 대구공회를 만들고 출발 시킨 실질적인 주역 배종일 목사님의 창동교회에 반사로 계셨는데 그 교회 몇몇 분이 연구 부장을 초청하고 부산공회 입장을 듣고 창동교회 내에서 대구공회 탈퇴를 요구하여 성사 시킨 주역입니다. 그 때 자료와 논리가 바로 총공회 약사입니다. 따라서 그 분이 총공회 약사의 존재와 내용을 두고 연구 부장과 입장이 같다면 서진교회로 오실 때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며, 만일 그 존재나 논리가 달라 졌다면 불신임 때문에 전향을 해버린 것이 됩니다.


* 불신임 받은 분이 '총공회 약사'를 법원에 제출
1990년에 연구 부장이 출간한 '총공회 약사'는 공회가 지킬 법이라면서 이 내용에 '개교회자유'가 공회의 기본 정신이니 시무투표를 통해 강제 퇴직 시키는 것은 공회의 원래 정신과 다르다는 취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 '총공회 약사'는 백태영 목사님이 1990년에 일반 장로교의 총회장처럼 또 다수결을 통해 자기 원하는 대로 전국의 교회를 장악하기 위해 활동하던 행위들이 왜 잘못 된 것인지를 밝히는 책입니다. 개교회자유란 개교회 멋대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개교회가 시무투표와 전원일치와 불문법을 받아 들이겠다고 자기 약속을 했고 그대로 지키겠다고 했으면 그 것은 개교회의 자유입니다. 목회자로 나서면서 기존 모든 재산을 연보하겠다고 자기가 약속했으면 그 약속은 공회나 외부의 강제법이 아니라 자기 법으로 자기가 지키는 것이고 공회는 그 약속이 잘 지켜 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여호와증인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니라는 논리만 구성합니다. 총공회 약사는 1990년에 발간 된 이후 대구공회만 초기에 반대하다 훗날 돌아 섰고, 부산공회는 1990년 이 책을 근거로 이 책의 소개 그대로 출발했습니다. 필요할 때만 하나씩 빼다 쓰고 불리한 대목이 나오면 연구 부장의 개인 의견이라고 팽개치는 일은 부공3의 '연구 공회'에서도 절반의 지도자들이 최근에 계속 그러고 있습니다. 그냥 입장이 그러니 그러는 것입니다. 모두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먹고 살기 위해서는 검찰만이 구국의 용사라고 했다가 검찰만 없으면 이 나라는 지상낙원이 된다고 하면서 일단 눈치를 보면서 자기 입장, 자기 명예, 자기 영역, 자기 경제, 자기의 활동 공간을 창출해 내는 것입니다.

* 넓게, 이해하실 문제
목회자가 불신임을 당하면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어 버립니다. 조건 없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끼리는 언젠가 자기도 그렇게 될 것을 생각해서 새로 부임할 자리를 찾게 되고 또 찾아 주자고 서로 노력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교인들에게 '공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정치를 하게 되는데 크게 보면 교역자들이 서로 챙기기를 하면서 교회를 희생 시킵니다. 교인들은 공회를 잘 모르고 보통은 다 당합니다. 서부교회부터 그렇지 않은 교회는 없습니다. 성문법 명문법을 가진 타 교단은 한 번 읽어 버리면 맞설 수가 있는데 공회는 '역사'와 '흐름'과 '사례'라는 불문법 관습법으로 만사를 처리합니다. 매월 교역자회를 참석하는 목회자들과 참석할 기회가 없는 교인이 맞서면 목회자 또는 주변의 목회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자료만 가지고 휘두르는 것인데, 목사님 생전은 지켜 보는 목사님 때문에 슬쩍 벗어나다가 붙들려 왔다면, 1988년 12월부터입니다. 1989년 9월 목사님 사후부터는 역사를 반대로 만들어 조작을 대놓고 했습니다. 그래서 연구소는 과거 모든 자료를 전부 공개를 했고, 타 공회도 눈치가 있는 분들은 자료를 다 가질 수 있었으나 그 가치는 대개 모르는 법이고 목회자들은 모두가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도 유리한 것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것이 지속되면 자기를 중심으로 앞날을 구축하기 어렵다고 느낀 분이 연구소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기 위해 고소를 했고, 이 곳의 자료가 다시 제공되기 위해 모습을 바꾸다 보니 당분간 혼란이 진행 되고 있으나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혼란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주변에 찾아 보면 되고 여기 문의하면 됩니다.

* 서진교회의 부임 과정
1991년, 연구소 연구부 직원 이치영 조사님이 서부교회의 원래 모습을 추구하기 위해 서부교회 서쪽에 개척을 했고
1998년, 같은 취지로 개척한 장영목 조사님이 방향을 바꾸자 첫 취지를 고수하겠다는 교인들 때문에 동천교회를 재개척하며 이치영 목사님이 동천을 맡으면서 서진교회는 후임이 애매하여 이치영 목사님이 양 쪽 교회를 모두 담당했습니다. 일단 후임으로 연구소 직원 장기웅 조사님을 파송해 봤으나 1년 정도를 거치며 목회가 곤란하여 손용모 창동교회 집사님을 부탁해 봤으나 2000년 시무투표에서 불신임을 당해 다시 목회자를 구했으나 연구 공회의 목회자 조건이 어려워 지원자가 없었습니다. 이 곳은 '목회자는 최저 생활비로 살고, 사택 돈으로 대학 공부를 시키지 않으며, 초중고도 사교육 시키지 않고, 있던 재산은 전부 공회에 연보하고, 시무투표에 불신임 되면 조건 없이 사직하고, 주보나 공회 전도지 외에는 전도용 인쇄물도 사용하지 않고, 총공회 간판과 공회 찬송가는 기본이며, 만사 제쳐 놓고 연구소의 사명이 교회 목회보다 앞선다는 등의 조건입니다.

조건이 까다로워 후임자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창동교회 한 분이 화재로 산업 기반을 잃고 할 일이 없다고 연락이 왔기 때문에 연구 부장이 화재 다음 주간에 현장을 찾아 부부에게 공회 조건과 서진 부임을 권했습니다. 이후 연구 부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고 순종했으며 서진교회의 교회 내 사정은 서진교회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이치영 목사님이 계속 중요한 결정을 해왔습니다. 2015년경 연구 공회 내에 목회자들이 공회 기도원을 개인 소유로 전환하기 위해 갑자기 예배당 소송이 좋은 것이며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공회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쪽의 요구를 다 들어 주자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연구소 주변과 관련 전국 교회나 기도원 안팎에 수백 건을 고소하면서 10여년을 투쟁했는데 서진교회 목회자가 그 쪽에 가담을 했습니다. 예수님 교회에도 12제자들의 집단 반발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생전에도 공회에는 윗선의 지도부 차례로 항상 탈퇴나 반발이 있어 왔습니다. 우리는 자기 속에도 자기를 파멸로 이끄는 또 하나의 자기가 있습니다. 예상을 한다 하여 암수술 하듯 도려 낼 수는 없고 오히려 우리는 회개를 시키는 생명 역사로 상대합니다.

현재 서진교회의 분쟁은 가슴 아픈 일이나, 현재 상황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고소하는 불신임 측이 스스로 잘 알 것이고, 우리는 최소한의 방어만 하고 '고소금지원칙'에 따라 훗날 역사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 것이 공개 석상에서 서진교회의 가슴 아픈 교인들에게 전해 드릴 이야기입니다. 사실 공회들마다 다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으로 이 곳이 할 일은 어느 정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있을 때는 공회와 이 곳의 취지를 적극 찬동하고 나옵니다. 그러나 먹고 살기가 힘들다 보면 우리가 다 연약하기 때문에 마음에 없는 이야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설마 속속들이 모르기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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