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84년 5월 9일 새벽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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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uri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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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3 00:00
하나님이 그때사 빛을 비추어 주는거는 아니고 하나님은 언제든지 빛을 비추고 있지만 자기가 어두워서 받지 못하다가 그렇게 단합이 돼가지고 찬송을 하게 되니까 주님께서 영감시켜주시는 그영감의 빛이 자기에게 오게되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기와 주님과의 일체화 되어서 주님의 형상으로 자기는 변해지고 또하나님은 나를 통해가지고서 무슨 일을 하게되어서 ,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문을 열면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나는 너를 통해 가지고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또 그 뜻을 행하게된다. 또 너는 나를 힘입어 가지고서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명령인 곧 내뜻 곧 너의 영생이 되어지는 그 영생을 네가하게된다 하는 그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번에 하나님이 처음부터 주시는 말씀이 뭐이냐 하면 외식을 버리라하는것을. 이 외식을 정리하는 말씀을 계속해서 하고있습니다.
이외식을 벗는 것은 기도 외에는 하는 길이 없다. 왜그런가 하면 이는 하나님밖에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는것을 늘계속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다서에 보면 괴이한 그색을 따라간다. 그러는데 그것을 마지막에 인간들에게 표현하기를 음행으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변하여 색욕거리 삼았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그리스도의 이구속의 도리와 모든은혜를 가지고 색욕거리라 말은, 괴이한 색이라 말은 이세상에 여러모양으로 번쩍거리는 아주 이십세기의 과학이나 같지만 또문화와 과학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예술들, 또 모든 물질들, 모든 운동들, 모든재미 취미 또 영광 그런것들 이런것들을 치중하게된다. 물론기독교가 들어가면 차차따라서 문예부흥도 일어나는것이고 문화도 자꾸 부흥되게 되고 경제도 부흥되게 되고 또 그다음에는 사람부흥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것이지만 그만 이기독교의 이 진수인 싱앙이 바로됨으로 그런것들이 이제 광채와 같이 나타나야 될터인데 근본쭈리인 그본체는 없어지고 자꾸 거기에 치중을 해서 나아가서 이제는 기독교가 세상운동되어지고 문화운동되어지고 자꾸 그렇게 나간ㄷㅏ, 이렇게 타락해 가는것을 가리켜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변하여 색욕거리를 삼았다'
그렇게 말씀하는것입니다. 혹 그것을 사람들이 생각할때에 아 이거는 간음이나 하고 음행이나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말이지 우리에게는 해당된말이 아니라 그렇게 마귀라는 놈이 꼬우지만 그사람은 통통속고 있는것입니다.
또 찬송의 목적이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되어서, 우리하나님은 누구하나님인고 하니 우리하나님은 반은 사람이요 반은 하나임이신데, 이래서 온전한 하나님이요 온전한 사람으로서 한격위를 이룬 예수님이 우리하나님이신데 예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되도록 하기위해서 하는것이 찬송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씻는거와 같이 자꾸 씻습니다. 찬송으로 자기를 씻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사람은
찬송으로 씻는것을 연습해서 자기를 잘씻는 사람도 있고
또 이성경말씀을 가지고서 자기를 잘씨는사람도있고
어떤사람은 또 기도로 가지고서 자기를 잘 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말씀대로 찬송을 함으로 쓸데 없는 욕심과 감정과 분노와 모든 그 관심 그런것들이 차차 없어지게 됩니다.
찬송을 통하여 싯는 사람은 정서면을 타고 들어오는 악령의 역사를 막기가 좀 힘이 듭니다. 그게 찬송으로 씻는 그점이 단점입니다.
또 기도로 가지고서 자기를 씻는 그사람은 자기 주관을 통해가지고 들어오는 악령의 그역사를 막기어렵고 그 유혹을 받아서 씻엇으나 나중에 깨긋하게 씻었는데 보니까 하나도 씻긴것은 없고 그만 그것을 가리켜서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가장 객관주의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것같이 말을 하나 들어볼때에 그본인은 순전히 자기주관이 하나님이 돼가지고서 자기주관대로 하나님은 어지러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은 무 비판 무평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어지러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은 무비판 무평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반사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반물리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람들이 몰라그렇지 속에뚫고 들어가면 속에 진짜는 다 하나님의 복음과 딱들어맞게 되는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찬송으로도 목적이 뭐이냐? 주님 만나는 것이오 주님 만날라고 하면 자기가 깨끗해지는것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오
그런데 성경을 가지고서 주님을 만날라고 하는사람은 잘못하면 그만
지식주의자가 돼가지고서 하나의 율번주의자가 되어서 결국은 자리를 변화는 시키지 못하고 자기를 하나님의 말씀인 이진리가 율법이 돼가지고서 이진리에게 율법에게 자기를 붙들어 매에서 자꾸 정죄하는 살마만 되어져 버렸고 이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이제 자기가 정죄 받았는데 ,실상은 자기가 정죄 받았아느 그 겉어머리로 나타나는 것은 다른사람을 정죄 하는 사람으로 서 나타나버리고 맙니다. 그러기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지식은 교만케 한다 그렇게 말씀하신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찬송이 좋으나 우리는 조심해야되고
" 기도 " 조심
" 성경 " 조심해야 됩니다.
찬송은 반드시 찬송으로 시작했으나 찬송은 이기도와 성경을 영접해서 영접해서 성경과 기도를 높이 평가하고 대우하면서 이성경과 기도를 대접하는 찬송이되어야만 그 찬송이 찬송의 목적을 속히 달성할수있습니다.
또 기도로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그반편으로 시작한 사람은 그기도에만 주력하고 하면 탈선됩니다. 기도에서 성경 말씀과 찬송을 영접해야 됩니다. 찬송을 영접해서 성경말씀으로 자기를 분석하고 자기를 모두 다정리정도하고 기도하면서 또 찬송으로써 자기의 모든 주관이나 감정이나 이런것을 자꾸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도록 깨끗게 하는 사람이 되어져야 합니다.
또 성경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필요합니다. 성경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찬송과 비슷합니다. 그기도는 감정을 움직여가지고서 역사하는것이고 성경은 이성을 움직여가지고서 역사하는것인데 성경으로 주님앞에 나아가는 살마들은 기도가 필요하고 또 기도만 하면 자기에게있는 그전체의 감정으로 말하면 빠지는 감정이 많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그럴때에 이 고장을 고치는것은 무엇이냐? 어제 말하는 대로 이제 실행하는것입니다. 실행하는것.........
그러므로 우리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그리스도의 성전이 되는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그리스도의 것이되는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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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프리메이슨에 관한 것을 접하고 제가 좀 들떳나 봅니다.
편집해서 올릴려고 했으나...어제 새벽에 좀 피곤해서..자료만 올리고 잤습니다.
어린신앙을 미쳐 생각 못한것 죄송하게생각합니다.
백목사님의 설교.. 세상신학..이두가지가 있을때에 저는 백목사님 설교를 선택할것입니다..
음...음성설교 하루에 10개씩들으려고 목적했는데..어제는 5개 밖에 못들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번에 하나님이 처음부터 주시는 말씀이 뭐이냐 하면 외식을 버리라하는것을. 이 외식을 정리하는 말씀을 계속해서 하고있습니다.
이외식을 벗는 것은 기도 외에는 하는 길이 없다. 왜그런가 하면 이는 하나님밖에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는것을 늘계속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다서에 보면 괴이한 그색을 따라간다. 그러는데 그것을 마지막에 인간들에게 표현하기를 음행으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변하여 색욕거리 삼았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그리스도의 이구속의 도리와 모든은혜를 가지고 색욕거리라 말은, 괴이한 색이라 말은 이세상에 여러모양으로 번쩍거리는 아주 이십세기의 과학이나 같지만 또문화와 과학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예술들, 또 모든 물질들, 모든 운동들, 모든재미 취미 또 영광 그런것들 이런것들을 치중하게된다. 물론기독교가 들어가면 차차따라서 문예부흥도 일어나는것이고 문화도 자꾸 부흥되게 되고 경제도 부흥되게 되고 또 그다음에는 사람부흥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것이지만 그만 이기독교의 이 진수인 싱앙이 바로됨으로 그런것들이 이제 광채와 같이 나타나야 될터인데 근본쭈리인 그본체는 없어지고 자꾸 거기에 치중을 해서 나아가서 이제는 기독교가 세상운동되어지고 문화운동되어지고 자꾸 그렇게 나간ㄷㅏ, 이렇게 타락해 가는것을 가리켜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변하여 색욕거리를 삼았다'
그렇게 말씀하는것입니다. 혹 그것을 사람들이 생각할때에 아 이거는 간음이나 하고 음행이나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말이지 우리에게는 해당된말이 아니라 그렇게 마귀라는 놈이 꼬우지만 그사람은 통통속고 있는것입니다.
또 찬송의 목적이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되어서, 우리하나님은 누구하나님인고 하니 우리하나님은 반은 사람이요 반은 하나임이신데, 이래서 온전한 하나님이요 온전한 사람으로서 한격위를 이룬 예수님이 우리하나님이신데 예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되도록 하기위해서 하는것이 찬송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씻는거와 같이 자꾸 씻습니다. 찬송으로 자기를 씻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사람은
찬송으로 씻는것을 연습해서 자기를 잘씻는 사람도 있고
또 이성경말씀을 가지고서 자기를 잘씨는사람도있고
어떤사람은 또 기도로 가지고서 자기를 잘 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말씀대로 찬송을 함으로 쓸데 없는 욕심과 감정과 분노와 모든 그 관심 그런것들이 차차 없어지게 됩니다.
찬송을 통하여 싯는 사람은 정서면을 타고 들어오는 악령의 역사를 막기가 좀 힘이 듭니다. 그게 찬송으로 씻는 그점이 단점입니다.
또 기도로 가지고서 자기를 씻는 그사람은 자기 주관을 통해가지고 들어오는 악령의 그역사를 막기어렵고 그 유혹을 받아서 씻엇으나 나중에 깨긋하게 씻었는데 보니까 하나도 씻긴것은 없고 그만 그것을 가리켜서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가장 객관주의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것같이 말을 하나 들어볼때에 그본인은 순전히 자기주관이 하나님이 돼가지고서 자기주관대로 하나님은 어지러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은 무 비판 무평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어지러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은 무비판 무평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반사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반물리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람들이 몰라그렇지 속에뚫고 들어가면 속에 진짜는 다 하나님의 복음과 딱들어맞게 되는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찬송으로도 목적이 뭐이냐? 주님 만나는 것이오 주님 만날라고 하면 자기가 깨끗해지는것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오
그런데 성경을 가지고서 주님을 만날라고 하는사람은 잘못하면 그만
지식주의자가 돼가지고서 하나의 율번주의자가 되어서 결국은 자리를 변화는 시키지 못하고 자기를 하나님의 말씀인 이진리가 율법이 돼가지고서 이진리에게 율법에게 자기를 붙들어 매에서 자꾸 정죄하는 살마만 되어져 버렸고 이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이제 자기가 정죄 받았는데 ,실상은 자기가 정죄 받았아느 그 겉어머리로 나타나는 것은 다른사람을 정죄 하는 사람으로 서 나타나버리고 맙니다. 그러기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지식은 교만케 한다 그렇게 말씀하신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찬송이 좋으나 우리는 조심해야되고
" 기도 " 조심
" 성경 " 조심해야 됩니다.
찬송은 반드시 찬송으로 시작했으나 찬송은 이기도와 성경을 영접해서 영접해서 성경과 기도를 높이 평가하고 대우하면서 이성경과 기도를 대접하는 찬송이되어야만 그 찬송이 찬송의 목적을 속히 달성할수있습니다.
또 기도로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그반편으로 시작한 사람은 그기도에만 주력하고 하면 탈선됩니다. 기도에서 성경 말씀과 찬송을 영접해야 됩니다. 찬송을 영접해서 성경말씀으로 자기를 분석하고 자기를 모두 다정리정도하고 기도하면서 또 찬송으로써 자기의 모든 주관이나 감정이나 이런것을 자꾸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도록 깨끗게 하는 사람이 되어져야 합니다.
또 성경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필요합니다. 성경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찬송과 비슷합니다. 그기도는 감정을 움직여가지고서 역사하는것이고 성경은 이성을 움직여가지고서 역사하는것인데 성경으로 주님앞에 나아가는 살마들은 기도가 필요하고 또 기도만 하면 자기에게있는 그전체의 감정으로 말하면 빠지는 감정이 많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그럴때에 이 고장을 고치는것은 무엇이냐? 어제 말하는 대로 이제 실행하는것입니다. 실행하는것.........
그러므로 우리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그리스도의 성전이 되는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그리스도의 것이되는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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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프리메이슨에 관한 것을 접하고 제가 좀 들떳나 봅니다.
편집해서 올릴려고 했으나...어제 새벽에 좀 피곤해서..자료만 올리고 잤습니다.
어린신앙을 미쳐 생각 못한것 죄송하게생각합니다.
백목사님의 설교.. 세상신학..이두가지가 있을때에 저는 백목사님 설교를 선택할것입니다..
음...음성설교 하루에 10개씩들으려고 목적했는데..어제는 5개 밖에 못들엇습니다.
Npuritan님이 올리신 글들을 읽고 난뒤의 생각들
Npuritan님의 생각은 오늘날 미국 세대주의 계통, 특별히 클라렌스 라킨이라는 성경학자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결국은 그리이스신화에 나오는 부도덕한 신들과 여인들과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낳게 된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인물은 성경에 나오는 네피림과 동류이며 따라서 그리이스로마신화도 왜곡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간에 대한 진리를 그 자체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군요.
이러한 생각들은 참 이성적인 성경해석이고 또 이러한 생각들이 요즘 뉴에이즈 운동등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UFO 출현등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결국은 외계인들이 타락한 천사들로서 이들과 상관하는 지구의 여인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이세대의 종말도 창세기 6장이나 가나안 멸망과 같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 되겠군요.
이성적으로 보면 맞는 논리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에 대하여 유의할점이 있는데 이는 곧 복음에서 떨어져 나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같이 성경의 경고를 받을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서에서 사사로이 억지로 성경을 풀다가 망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경계의 목적은 마귀 사탄과 그 집의 구조를 분석하고 대응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결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특별히 세대주의 종말론 중심으로 거잡을 수도 없이 범람하는 인간중심의 성경해석이 성경이 정하는 분량을 넘어서 단지 문자주의라는 매력때문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데 이는 곧 하나님 말씀의 내재화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는 이렇다 할 열매들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이 가진 지식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식은 교만케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입니다.
위조지폐를 가려내는 방법처럼 오직 진폐만을 보고 따라가면 어떤 종류의 위조지폐도 다 가려낼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의 진폐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성경을 주신 목적도 지식을 탐구하라 함이 아니요. 그분을 더욱 알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했습니다. 종말의 두려움, 말세의 공포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런 세상에 우리를 남겨놓으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밝히라고 하심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 곧 영생을 취하는 싸움이 필요할때이지 지식으로 사람을 망쳐서는 않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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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uritan님의 생각은 오늘날 미국 세대주의 계통, 특별히 클라렌스 라킨이라는 성경학자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결국은 그리이스신화에 나오는 부도덕한 신들과 여인들과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낳게 된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인물은 성경에 나오는 네피림과 동류이며 따라서 그리이스로마신화도 왜곡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간에 대한 진리를 그 자체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군요.
이러한 생각들은 참 이성적인 성경해석이고 또 이러한 생각들이 요즘 뉴에이즈 운동등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UFO 출현등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결국은 외계인들이 타락한 천사들로서 이들과 상관하는 지구의 여인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이세대의 종말도 창세기 6장이나 가나안 멸망과 같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 되겠군요.
이성적으로 보면 맞는 논리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에 대하여 유의할점이 있는데 이는 곧 복음에서 떨어져 나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같이 성경의 경고를 받을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서에서 사사로이 억지로 성경을 풀다가 망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경계의 목적은 마귀 사탄과 그 집의 구조를 분석하고 대응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결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특별히 세대주의 종말론 중심으로 거잡을 수도 없이 범람하는 인간중심의 성경해석이 성경이 정하는 분량을 넘어서 단지 문자주의라는 매력때문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데 이는 곧 하나님 말씀의 내재화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는 이렇다 할 열매들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이 가진 지식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식은 교만케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입니다.
위조지폐를 가려내는 방법처럼 오직 진폐만을 보고 따라가면 어떤 종류의 위조지폐도 다 가려낼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의 진폐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성경을 주신 목적도 지식을 탐구하라 함이 아니요. 그분을 더욱 알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했습니다. 종말의 두려움, 말세의 공포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런 세상에 우리를 남겨놓으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밝히라고 하심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 곧 영생을 취하는 싸움이 필요할때이지 지식으로 사람을 망쳐서는 않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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