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집에서 교회가는데 사용하는 교통비와 출타에서 돌아오는 교통비는 다릅니다.

문의답변      


자기 집에서 교회가는데 사용하는 교통비와 출타에서 돌아오는 교통비는 다릅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


1.다음 자료를 우선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연구실/문의답변방/

------------------------------------------------------------------------------------

945번, 1.평소 승차권을 사시고 일반 교통을 이용 .../ 2.특정업무의 경우는 .... ■02/09/21

------------------------------------------------------------------------------------


2.집에서 예배 때문에 차를 타는 것과, 출타해서 예배보러 온다며 차를 타는 것은 경우가 다릅니다.


①예배당과 집의 거리는 그 사람의 신앙정도입니다.


거주 공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현재 신앙을 알 수 있는 현황과 같습니다. 그 사람의 경제 형편과 예배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어 집을 마련할 때 결정을 하게 됩니다. 차를 타고 예배당을 가야하도록 거리를 멀리 잡은 분들은, 예배에 대한 인식이 그 거리만큼이나 희박한 분들이고 또 그 가깝게 가고 싶어도 경제면으로 실력이 없으면 멀리 떨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실력도 과거에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라지기 때문에 좀 억울한 분들도 있겠지만, 경제실력은 신앙실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봐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예배당과 자기 집의 거리는 그 사람의 신앙을 나타내고 있다고 통계를 낸다면 거진 맞는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요즘 경제지표니 노동지표니 해서 여러가지 사회현상을 수학 수치로 공식화하는 것을 많이 들어봅니다만, 예배당과 집의 거리로 신앙수치를 공식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②집에서가 아니라, 출타한 곳에서 교회로 차편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사는 집이 교회와 거리가 멀어서 교통편을 이용한다고 하면, 그 교통비 지출은 그 사람의 신앙이 현재로서는 주일에 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는 신앙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타를 해서 그곳에서 교회까지 오느라고 교통비를 지출하는 것은, 현 신앙상태보다 몇 발 더 뒤로 후퇴를 해서 죄를 짓는 것으로 보셔야 합니다.


물론 이 문제를 가지고 '죄'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어겼다는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양심을 기준으로 죄가 된다는 표현입니다.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죄냐 의냐 할 때는 개인 형편이 개재될 여유가 없습니다. 모두에게 꼭 같습니다. 신사참배처럼, 또 주일에 예배를 빠지는 것처럼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신앙양심을 기준으로 죄냐 의냐 할 때는 각자 자기 신앙의 현 수준에 따라 죄가 되고 의가 되는 것이 각각 달라집니다.


목회자가 토요일 밤에 친구집에 걸어서 놀러갔다가 새벽 2시에 자기 집으로 들어왔다면, 주일을 어겼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죄가 큰 죄는 지극히 큰 죄겠지만 신앙양심에 기준으로 죄문제를 논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자기 신앙의 현 상황에서 자기 혼자 노력해서 발전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부모 초상 때문에 주일예배 인도를 뺐다면 명백하게 죄가 되겠지요?


주일날 예배보러 가는 길에 교통비 지출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가진 분들은 기본적으로 신앙이 어린 상태입니다. 오늘부로 10점짜리 신앙에게 100점짜리가 되라고 재촉하지는 않겠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도 바울과 같고 또 백목사님과 같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경우가 되겠습니다만, 적어도 10점짜리가 20점으로 나아지도록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100점에 도달하도록 목표는 최상치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자기 경제실력과 예배인식을 계산해서 예배당과 집의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예배당으로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또 경제실력을 갖추어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으로 가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인데, 현 거주지에서 출타를 해버리면 명백하게 주일날 예배보러 갈 때는 현재보다 더 떨어진 거리에서 가야 합니다. 그런 줄 알면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으로 출타하는 것은 생각할 문제입니다. 토요일은 주일을 준비하라고 주신 날이므로 주일예배에 편리하도록 일정을 조절하는 것이 옳습니다.


물론 출타해야 하는 상황이 어떤 일이냐에 따라 또 달라지겠습니다만, 최소한 원리적으로는 이렇게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③군복무 중에 있는 사람은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토요일 아침에 휴가를 받게 되어 자기 본 교회까지 오려고 해도 교통편이 주일 새벽이라야 도착하게 된다면? 군 교회가 비록 비빔밥이 되어 있는 교회라 해도 부대 내에 있을 때는 그곳을 교회로 생각하고 출석하겠지만 휴가를 받은 이상 비록 주일날 차를 타더라도 자기 신앙노선에 있는 자기 본 교회로 출석하기 위해 차를 타는 것은 신앙의 후퇴가 아니라 전진이 될 것입니다.


직장문제로 출타를 한 경우도 그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려면 그 돌아오는 시간이 주일 새벽이나 아침이라고 한다면 출장 간 외지에서 아무 교회를 찾아 예배를 보는 것과, 주일 아침에 차를 타고 들어오더라도 본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것과 둘을 비교해야 할 것입니다. 정상적인 교인이라면 본 교회로 들어와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토요일 오후에 원거리로 출장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면으로 노력해야 하겠지만 자기 능력으로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어느 것이 보다 자기 신앙에 유리하겠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3.현재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마음에 고통이 되는 분들에게


①양심의 가책은 좌절의 고통으로 사용마시고 소망의 사명감으로 가지시길


지금 질문하시는 분이, 비록 직장이나 군입대 문제는 아니지만 그 가정 내부의 어려움이 만일 직장보다 더 어려울 정도가 된다면 당분간은 주일예배 참석을 하는 정도로 시간을 맞추어 주일 아침에 차량 이용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는 평소에 노력하고 기도해서 언젠가 그런 문제가 없도록 자기 생활과 가족간의 관계를 조절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해결되는 시점이 빠를수록

좋고 또 단번에 그렇게 한다면 더 좋겠습니다만, 눅14:31 말씀도 자기 신앙전진에 있어 중요한 교훈으로 새기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②신앙의 싸움은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고, 준비가 된 싸움만 하는 것입니다.


이겨야 하는 것이 전쟁이지만, 현 상황으로는 더 큰 손해와 패전이 예상된다면 우선 화친해서 현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협하고 비굴하게 원수와 손을 잡으라는 것인가? 현 실력을 계산해서 주신 범위 안에서 전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원수와 타협하고 손을 잡는 것이 신앙양심에 어긋난다면, 속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신앙준비를 한다음 다음에는 꼭 그 원수를 갚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밤중이 왔는데 현재 가진 기름이 없으면 그 밤에는 실패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날의 고통은 다음날 다시 기회 주실 때 그때 총력을 다해서 그 다음 환란에서는 되풀이 하지 않는데 총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여러가지 신앙양심에 고통이 되기 때문에 이곳에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고통이 없는 사람은 신앙으로 완전히 잠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현재 자기 상황이 신앙과 세상 관계에 있어 주일을 완전히 잘 지킬 수 없는데 죄책감으로 위축이 되면 의인같은데 실은 가장 무서운 죄에 사로잡힌 더 큰 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일을 범하면서 떳떳하게 얼굴을 치켜들고 안식일은 편히 쉬고 노는 날이며 주일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율법주의라는 등의 표현을 한다면 아주 희망없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나갈 목표는 말씀이 가르치는 최고로 삼으시고

당장에 마주친 현실에서는 현재 가진 신앙 정도를 살펴 대처하시고

양심에 가책이 되는 부분은 앞날에 고쳐나갈 각오로 바꾸셨으면 합니다.


③우리 평생을 통해 숙제가 완료되는 순간은 없습니다. 죽는날까지 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실은 그 어떤 신앙의 인물이라 해도 자기대로는 자기 양심에 늘 이런 고통은 있게 됩니다. 신앙이 앞서 가면 갈수록 더 세미한 문제를 가지고 자기대로는 이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평생 이런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므로 단 한 순간에 끝이 나고 자기 양심에 남은 평생 늘 개운하게 살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적절하게 가지는 양심의 고통이 내면에 있으면 늘 충성하는 사람인데도 늘 겸손한 사람이 되고, 늘 자기를 고쳐 발전을 하는데도 늘 부족하면 하나님 앞에 몸둘 바를 모르는 충성이 계속됩니다. 그러면서도 속에서는 고쳐가고 발전을 해가고 있으므로 발전이 되는 그 부분만큼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주시는 은혜를 체험으로 가졌기 때문에 확신있고 담대한 신앙이 됩니다.
[주일] 토요일 출장 및 멀리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에서의 주일 문제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


저는 부산에 사는 평신도 입니다. 부산에서 아내와 둘이 살고 있으며, 본가 부모님은 대전에, 처가 부모님은 포항에 계십니다. 본가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며, 처가 부모님은 통합측 시골 교회에 다니십니다. 저는 총공회 교인입니다.


부모님 생신, 설, 추석 때 1년에 3~4차례 대전과 포항을 왕래하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도 왕래합니다. 대전은 기차로 왕래하며, 포항은 승용차로 왕래합니다.


1. 포항에 다녀올 경우

주일아침에 승용차를 몰고, 부산에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토요일 저녁에 오려면 인정상도 쉽지 않고, 제 운전실력 미숙으로 피곤함을 감수하고 밤에 운전을 못합니다.

주일오전에 오면, 돈도 써야하며, 주일예배 말씀듣기에 피곤합니다.


2. 대전에 다녀올 경우

기차가 있어 토요일 저녁에 오면 다행이나, 시간이 되지 않으면 주일을 대전에서 보내야 합니다. 또 예배후 대전에서 주일날 부산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주일을 이렇게 보내게 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큰 죄를 짓는 것 같습니다.


정황적인 문제를 살펴보면,

1) 회사원으로 토요일이 아니면 부모님을 찾아뵙기가 힘듭니다. 주일을 정확히 지키겠다면 전화로 때우고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2) 대전이던 포항이든 하루 자지 않고 온다는 것은 참으로 힘듭니다. 부모님 보시는 것도 그렇고 몸이 피곤함도 그렇습니다. 대전은 기차라도 있지만 너무 멀고, 포항은 가깝지만 기차가 없습니다.

3) 토요일날 출장을 가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러차례 고민했으나, 해답이 명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663
    노하우
    2003.06.03화
  • 1662
    지나가다가
    2003.06.04수
  • 1661
    yilee
    2003.06.03화
  • 1660
    정절
    2003.06.02월
  • 1659
    yilee
    2003.06.02월
  • 1658
    정절
    2003.06.04수
  • 1657
    yilee
    2003.06.04수
  • 1656
    이윤미
    2003.06.01일
  • 1655
    yilee
    2003.06.02월
  • 1654
    노하우
    2003.06.01일
  • 1653
    yilee
    2003.06.02월
  • 1652
    윤영삼
    2003.05.31토
  • 1651
    윤영삼
    2003.05.31토
  • 1650
    yilee
    2003.05.31토
  • 1649
    윤영삼
    2003.05.31토
  • 1648
    yilee
    2003.05.31토
  • 1647
    윤영삼
    2003.06.01일
  • 1646
    yilee
    2003.06.03화
  • 1645
    yilee
    2003.05.30금
  • 1644
    바람2
    2003.05.30금
  • 1643
    yilee
    2003.05.30금
  • 1642
    바람
    2003.05.30금
  • 1641
    yilee
    2003.05.30금
  • 1640
    최은
    2003.05.30금
  • 1639
    yilee
    2003.05.30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