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5장 탕자비유와 눅17장의 무익한 종의 비유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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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장 탕자비유와 눅17장의 무익한 종의 비유로 살펴보겠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앙자세~]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앙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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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곳을 즐겨찾는 사람들 중에는, 전쟁터에서 막 돌아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곳이 집중하고 있는 신앙노선은 1989년부터 2000년까지 신앙노선에 관련된 전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소강상태가 되어 휴전 비슷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쟁이 치열하던 시기에는 별별 전투가 다 있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도 있었고, 후방 교란 공작 폭파 행위도 있었고, 겨자씨라는 삐라를 전국에 돌려 불신자들에게 상대방 교회를 파묻는 행동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배당 4개층 벽에 차량용 락카를 뿌리고 커텐을 가로질러 가위로 절단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수년 째 잠잠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 이제 주먹 대신 말로 해야 하고, 여기서 발언하는 것은 기록으로 남게 되므로 맞고함을 지를 때보다는 엄청나게 자제를 하고 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심을 하는데도 질문자께서 고통을 겪을 정도로 표현들이 과격하니, 그 당시 맞붙을 때는 얼마나 대단했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 신앙노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단점들입니다. 의를 위해 했다고 하지만 실은 우리 속에 자기 성깔과 기질이 들어서 그리 한 것이 아마 거의 전부일 것입니다. 이제 전쟁이 끝나고 최전방 군인들이 막 후방으로 돌아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기들은 행동을 조심한다고 해도, 일반 사회인들이 볼 때는 거칠기 이루 말도 못할 것입니다. 이곳의 발언은 비록 익명으로 한다 해도 글을 적은 자기는 자기 글을 알고 있을 것이고, 한번 적은 것을 세월 속에 두고두고 다시 보면 스스로 부끄러울 것입니다.


이곳을 처음 시작하던 1999년에 올려졌던 글들에 비하면 지금은 문제될 표현이 없다할 만큼 그렇게 모두들 좋아지셨습니다. 이렇게 발전적으로 나간다는 점을 이해하셔서, 혹 어느 분이든 그 발언이 강경하다면 이제 설명드린 것처럼 전쟁터에서 막 돌아온 전사가 아직도 그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고 이해 해 주셨으면 합니다.


2.아들로 아버지를 대하는 것과 종이 되어 주인을 대하는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너무도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아이를 앉혀놓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만 하루종일 하면 그 아이는 도둑놈이 되고 맙니다. 도둑질에 대하여 몇 마디 하고 또 따끔하게 매를 댈 때는 대지만, 평소 대부분 시간을 그 아이와 놀아주고 공부할 것을 찾아주고 해야 할 일을 바쁘게 시키면 모든 나쁜 것이 다 잊어집니다.


1971년에 심방왔던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우는 아이에게 그 엄마가 '목사님이 야단치신다'고 말하자 그 목사님은 '울지 않아야 목사님이 기뻐한단다' 라고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한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죄 짓지 말고, 저 죄 짓지 말고.... 이렇게 하다보면 아주 죄인을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염려하시는 면이 크게 본다면 이런 방향이라고 답변자가 이해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 형편이 어느쪽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가? 그렇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들로서 아버지를 상대하는 것과 종으로서 주인을 상대하는 것은 이런 면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3.눅15:11,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올 때 가져야 할 마음은 19절에서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라야 합니다. 만일 돌아오는 탕자가 돌아오는 그 과정에서 '아들로서' 돌아온다면 이는 아버지를 떠나 외국으로 도망 간 죄에 더하여 이번에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짓밟는 더 큰 죄가 됩니다. 아들의 회개가 바른 자세로 돌아왔기 때문에 아버지는 크게 잔치를 합니다.


첫째 아들은,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 아들이 종놈 중의 하나로 돌아왔기 때문에 상대를 한다면 당연히 종놈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아들로 상대하는 것을 보고 그만 분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문제는, 이 큰 아들의 자세입니다. 돌아오는 둘째는 스스로 종놈으로 왔으니 회개를 잘 한 것입니다. 그런 동생을 대하는 첫째가 가질 마음은 둘째를 그의 행동에 합당하다 하여 종놈으로 대할 것이 아니고 '동생으로' 또는 '아버지의 아들로' 상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왜 종놈으로 상대할 인간에게 아들로 상대했느냐고 반론을 했습니다.


4.지금 이 시대, 오늘 교회가 하나님을 상대하는 자세는?


오늘 우리 교회가 너와 나를 따로 구별하지 말고, 오늘 교회를 전체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 앞에 세운다면, 칭찬받고 자랑스러워 해야 할 아들일까요? 아니면 돼지막까지 쳐박혔다가 돌아오는 탕자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 교회 중에서 억울하다고 할 교회도 있고 교인들도 많겠지만, 오늘 교회를 전체로 묶어 하나로 보고 하나님 앞에 세운다면, 눅15장의 탕자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한 죄인들입니다. 이런 죄인들이 회개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라'는 이 면을 강조해야 할까요, 아니면 오늘 교회의 상태는 '하나님 앞에 감히 아들로 돌아갈 수 없으니 종놈 중에 하나로 거두어주시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때는 '종놈'의 자세로 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감싸 안아 주시고 씻기시고 완전히 어루만져 이제는 이전 아들처럼 아버지를 기뻐시게 하고 완전히 회복을 한 다음, 그때부터는 이제 궁색하게 늘 징징 짜고 살 것이 아니고, 어떤 때는 종처럼 어떤 때는 사랑하는 아들이 되어 아버지께 어리광도 부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가는 방법을 그 뒷장 눅17:5-10에서 가르치면서 무익한 종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5.따라서, 어떤 때는 아들로, 어떤 때는 종놈으로 주인 앞에 우리는 서야 합니다.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치우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들이면서 종입니다. 그러나 현 시대, 현 우리 모습은 너무 죄송스러워 고개들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를 많이 씻고 회개한 다음, 그다음에 아들 위치를 서서히 가져야 옳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모두들 기가막힌 과거와 내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고 있는 면이 많기 때문에 이곳에서 여러 공회와 그 지도자들을


phulla wrote:

> 이토록 다툼의 장이 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비판하는 것 아닙니다.

> 어떤 교회든지 완전한 곳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곳의 교리가 깊고 심오하며

> 순결하게 지키고자 하는 곧은 곳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 그래서 저도 이따금 이곳에서 권면받기를 좋아합니다.

>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 위에 또 그 위에것이 있습니다.

>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종의 위치에서 보면 복종만을

> 강요당하게 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것이 은혜임을

> 알수있고 그 사랑으로 행하기에 훨씬 가볍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 했을 뿐입니다.

> 계속 발언이 계속된다면

> 판단하셔서 삭제하셔도 무방합니다.
[신앙자세] 이런것은 선하지 못합니다.
이토록 다툼의 장이 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비판하는 것 아닙니다.

어떤 교회든지 완전한 곳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곳의 교리가 깊고 심오하며

순결하게 지키고자 하는 곧은 곳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도 이따금 이곳에서 권면받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 위에 또 그 위에것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종의 위치에서 보면 복종만을

강요당하게 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것이 은혜임을

알수있고 그 사랑으로 행하기에 훨씬 가볍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계속 발언이 계속된다면

판단하셔서 삭제하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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